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3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38화(38/275)
“무슨 마법을 부린 거야?”
경기장 밖으로 튕겨 난 챈들러가 허리춤을 붙잡고 일어났다. 레이먼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이름은 아직이에요. 공간 마법, 공기 팽창 마법, 형태 유지 마법을 겹쳐서 만든 마법식이라서요.”
“세 가지나?”
“제가 세 가지나 겹치지 않으면 이 정도 마력 양으로 선배님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내가 파훼 마법을 쓸 줄은?”
“당연히 알았죠?”
레이먼이 능청스럽게 눈을 크게 떴다.
“선배님, 완드 논문 외에도 파훼 마법 관련 보고서도 쓰셨잖아요. 그러니 그걸 염두에 둬야죠. 그래도 이번 승리는 선배님이 방심하셔서 얻은 거라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네요.”
“허.”
“한 번 더 하실래요?”
이번 승리는 가치가 없다.
이후 있을 그 ‘비밀스러운’ 놈들과의 대결에서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거다. 오히려 챈들러의 자신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제아무리 성숙하다 해도 10대잖아.
챈들러는 잠깐 고민하더니 씨익 웃었다.
“좋아!”
예상보다 회복이 빠르네. 레이먼도 흔쾌히 웃었다.
“좋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
“그래, 그래. 이제 안 봐줄 거야.”
그리고 챈들러는 정말 봐주지 않았다.
“선배! 선배! 선배!”
“자자! 레이먼 얼른 너도 파훼 마법을 써 봐!”
“아직 연습이-! 선배!!”
10대를 화나게 하면, 안 되는구나. 그렇게 레이먼은 1시간 내내 공중에 떠 있었다.
***
훈련이 끝난 뒤, 챈들러는 잠시 숨 좀 돌리자며 디찬이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실은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디찬이 있는 곳은 학생도 오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문을 열자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콜록 콜록. 기침 소리를 들은 챈들러가 손을 휘저으며 소리쳤다.
“디찬, 여기 있어?”
“어. 있어.”
연기가 거둬질 때쯤, 고글을 쓴 디찬이 챈들러 쪽으로 걸어왔다. 레이먼이 그녀를 향해 가볍게 고갤 숙였다.
“크리스가 대신 가줘서 고맙대.”
“크리스 성적은?”
“추가 시험은 아직이야. 챈들러, 네 꼴은 왜 그래? 레이먼 너도.”
디찬이 짝짝이 눈썹 표정을 지으며 둘의 몰골을 살폈다.
챈들러는 흙먼지로 뒤덮인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레이먼의 옷은 비교적 멀쩡했다. 다만, 레이먼은 머리가 공기포에 맞기라도 한 것처럼 뒤집어져 있었다.
둘이서 개싸움이라도 했나?
디찬이 고갤 삐딱하게 기울였다. 위아래로 바쁘게 굴러다니는 그녀의 눈을 보며 챈들러가 웃었다.
“아냐, 아냐. 자고 있었는데 레이먼이 갑자기 마법 훈련을 하고 싶다고 졸라서.”
“네, 제가 졸랐어요. 선배님이 후배한테 이렇게 진심일 줄은 몰랐네요.”
“그렇구나.”
디찬은 짧게 답하고 몸을 휙 돌렸다. 그녀는 다시 연구용 테이블로 향했다. 게임 속 연구실처럼 정체 모를 액체가 플라스크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고 그 옆엔 약초 몇 가지가 놓여 있었다. 레이먼이 슬쩍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오벨리스크의 버들잎으로 뭘 하시려고요?”
“너 보면 알아?”
“마법 약초 책을 읽은 적 있어서요.”
“몇 권?”
“…한 20권인가?”
“다 기억해?”
“네.”
디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진짠가?
그녀는 제 옆에 있던 약초 하나를 들어 보였다. 약초들 중엔 생김새가 유난히 비슷해 구분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런 건 디찬도 가끔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 약초들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책에 나오는 모든 차이점을 외우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 약초가 뭔지 알아?”
“산맥 독초잖아요.”
“…버들잎이 아니라?”
레이먼은 디찬이 들고 있던 약초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잎 하나를 가리켰다. 잎사귀의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나 있었다.
“버들잎은 여기 구멍이 없어요. 산맥 독초의 강한 독성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구멍이거든요. 그거 외엔 생김새나 색깔이 일치해서 구분하기 어렵긴 하죠.”
“맞… 아.”
“이걸로 뭘 만드시려고요?”
“레이먼.”
“네?”
“너 재수 없어.”
“너무 똑똑해서요?”
“아니까 더 짜증 나.”
다시 홱 돌아선 디찬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는 듯 챈들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해되니까 이제 그만 가줄래? 너희들 일정에 연구 프로그램 방해 이런 것도 있어?”
“확인할 게 있어서.”
챈들러가 그제야 앞으로 나섰다.
“디찬, 너 혹시 왕성 내부에 다른 마법 아카데미가 설립 준비 중인 거 알고 있어? 이미 학생들도 좀 있는 것 같던데.”
“헛소리하는 거야?”
“귀찮게 왜 그래야 해?”
디찬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챈들러가 그런 귀찮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진짜야?”
여전히 플라스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디찬이 묻자, 이번에는 레이먼이 답했다.
“그 사람들이랑 저희가 아카데미 대표로 경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해서요.”
“있는 게 아니라 하는 거지.”
“그래서 선배는 혹시 알고 계셨는지 여쭤보러 온 겁니다.”
이마 위에 올려뒀던 고글을 내리며 디찬이 고갤 저었다.
“알았다면 1학년짜리를 데려오지 않았을 거야. 이제 나가 봐, 방해돼.”
“미리 준비해 놔.”
“알아서 해, 멍청아.”
“하하. 그 말 처음 들어본다.”
***
“전하. 이제 슬슬 만나러 가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일정은 대부분 끝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럴까?”
탁. 렌스의 말에 유타가 반갑게 웃었다. 그는 레이먼이 왕성에 온 이후로 한 번도 제 친구를 마주치지 못했다. 밀린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유타는 공부 머리가 좋진 않았다. 남들이 한 번 보면 이해할 걸 그는 3번을 봐야 했고, 3번 보면 이해할 걸 9번은 봐야 했다. 하지만 그 부분을 들킬 수는 없었다. 유능해 보이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야 했다. 보이는 노력은 원하는 걸 얻어내기엔 부족했다.
포레스튼의 모든 과정을 이미 끝낸 유타였지만 그는 다음 학기를 위한 준비를 미리 시작해야 했다. 그는 레이먼의 일정을 확인한 뒤, 얼른 공부를 시작했다. 다행히 레이먼이 자유일정을 시작할 무렵쯤, 유타도 제 공부를 끝냈다.
“레이먼은 지금 어디 있어?”
“연구실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일정은 없으니 메이드가 손님용 객실에 계시라고 미리 안내를 줬을 겁니다.”
“좋아! 얼른 가자!”
유타가 복도를 가로지르며 활짝 웃었다. 렌스는 그 웃음 뒤를 따랐다.
레이먼 반 스플린. 스플린 가문의 첫째 아들. 지지리도 마법에 재능이 없고 유약한 놈이라고 들었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름 머리도 돌아갔고 마법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유타, 아니 유리아 왕녀님의 곁에 두기에 나쁘지 않은 능력자였다. 게다가 또래다.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또래.
‘다행입니다, 왕녀님.’
늘 뒤에 있는 자신과 달리, 처음으로 나란히 있어 줄 친구를 가졌다는 게. 만약 그가 배신한다면 자신이 죽이면 되는 일이니 유리아… 아니, 유타 왕자님께 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게 만들면 된다.
“전하, 걸음이 너무 빠르십니다.”
“오랜만에 보는 거잖아.”
“유타?”
익숙한 목소리에 유타가 우뚝 섰다. 렌스도 몸을 돌려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고개를 숙일만한 인물은 이 성에 그리 많지 않았다.
유타 역시 그에게 짧게 인사하며 말했다.
“형님.”
“방학 중에 별채가 아니라 왕성에 머문다고 하더니, 오랜만이구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 듣자마자 알 수 있다. 분명 이 사람은 세상의 어두운 면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채 자랐겠구나.
온 세상이 금빛일 거라 생각하는 남자. 스턴 왕국의 셋째이자 실질적인 첫째.
서머셋이 2학년 회장으로 임명되기 전, 최연소로 포레스튼의 학생회장을 맡았던 남자이며, 포레스튼 내의 파벌 싸움을 모두 없애고 자신이 재학 중이던 시절에는 모든 이들이 하나가 되어 이 사람을 응원하게 만들었던 학생.
유타와 서머셋의 형.
매너스 스테디움 스턴.
그는 선이 굵은 얼굴에 짙은 흑색 눈썹을 호탕하게 드러낸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유타 역시 동급생에 비해 작은 체구는 아니었으나 3왕자에 비교하면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한 번 안아보자.”
“괜찮습니다.”
“동생 안아보는 게 뭐 어때서.”
그는 웃으면서 다가와 동생을 한 번 끌어안았다. 사내자식이 좀 더 근육을 키워야지, 라는 시답잖은 조언을 하며 손을 거뒀다.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아아, 내일 일정 중에 미리 조율해야 할 게 있어서. 아, 그리고 네 동급생 중의 한 명이 이번에 포레스튼의 대표로 왔더구나.”
매너스의 눈이 빛났다. 그는 레이먼에게 흥미가 동한 듯했다. 한편 유타는 그가 제 친구에게 보내는 관심이 싫었다.
“크리스 선배님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어 대타로 왔다고 들었습니다.”
“1학년에 버틀러 자리를 꿰찬 것도 모자라 크리스가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거든. 그놈이 그렇게 보여도 사람 보는 눈 한번 까다롭잖아. 서머셋처럼 말이야.”
매너스의 붉은 눈동자가 허공을 바라보다 순식간에 유타를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바뀌었다. 그가 말했다.
“너랑도 친하니?”
“….”
“레이먼이란 아이가.”
“…….”
“같은 클래스에 같은 학년이면 당연히 친하겠지.”
렌스는 제 주인의 뒤를 가만 지켰다. 그녀의 등이 오늘따라 유독 작아 보였다. 그러나 렌스는 그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네.”
자신의 역할을 주인의 앞에 서는 게 아니라,
“친합니다.”
주인이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지켜주는 것이니까.
***
“그래?”
매너스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유타는 그가 다음 말을 내뱉기 전에 선수 치듯 말을 이었다.
“아시다시피 제 목숨도 구해줬고, 같은 클럽이기도 해서요. 앞으로도 쭉.”
“…….”
“쭉 가장 친한 동급생일 것 같습니다.”
유타의 말이 끝나자 매너스가 피식 웃었다.
“걱정 마라, 동생아.”
“…….”
“내가 동생의 것을 빼앗을 정도로 궁하진 않으니.”
그는 유타의 기사 렌스에게도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곤 그들을 가로질러 갔다.
“…….”
매너스가 떠난 뒤에도 유타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유타는 매너스가 불편했다. 자신과 달리 왕실의 엘리트 코스를 따라 걸어온 장남. 언제나 빛에 감겨 있던 이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유타가 원한다 해도 가질 수 없는 모종의, 환한 무지개 같은 것이었다.
“전하.”
“응.”
“돌아가시겠습니까?”
렌스의 질문에 유타가 획 고개를 돌렸다. 유타는 형님이 가지지 못한 제 기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렌스, 넌 내 것이지?”
“전하.”
“어서 말해. 왕실이 아니라 내 사람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전 언제까지 전하의 사람입니다.”
렌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무감하게 답했다. 그리고 그 고저 없는 답변이 유타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주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갈까, 레이먼한테? 늦진 않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