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4화(4/275)
“여, 여기예요.”
“그래.”
‘생각보다 되게 좋네.’
검술을 쓰지 않는 레이먼이 기사단의 훈련장에 오는 일은 드물었다.
기사단은 마구간 바로 옆에 자리한 공터를 훈련장으로 쓰고 있었다. 원형의 경기장과 울타리,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오두막과 검을 만드는 대장간까지. 스플린 가는 마법 가문이지만 사병을 키우는 데도 열심인 모양이었다.
“도련님, 이런 귀한 분이 누추한 곳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스플린 공작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는 기사단장이 레이먼을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 눈치 특성이 발동합니다. ] [ 기사단장의 거짓이 간파됩니다. ] [ 누추한 분이 이런 귀한 곳까지 무슨 일이지? ]이 새끼 이거 꽤나 좋은 포커페이스를 지니고 있잖아.
‘하긴 마법 능력도 없는 장남이라면…굳이 좋게 생각할 일 없는 썩은 동아줄이긴 하지.’
레이먼이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기사단 훈련장을 가볍게 훑어 보았다.
“갑자기 기사단이 어떤 훈련을 하는지 궁금해져서 말이야. 곧 있을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통과하면 기사단의 훈련을 구경하는 것도 힘들 거고.”
“그렇군요. 마침 오전 대련시간이었습니다. 한 번 보고 가시죠.”
기사단들은 대부분 꾀죄죄한 차림새거나 상의를 탈의한 채였다. 검술 훈련 중인 기사들은 뒤늦게야 장남의 존재를 눈치채고 급히 달려와 앞다퉈 인사를 건넸다. 대부분 레이먼에게 호의적이었다.
‘썩은 동아줄이라고 해도 줄은 줄. 굳이 잡지 않을 이유는 없으니까. 거짓 간파가 아니었다면 기사단장의 말도 호의적으로 들렸겠지.’
레이먼은 심드렁한 얼굴로 원형 경기장에서, 콜로세움의 기사처럼 대련을 시작한 그들을 구경했다.
“저놈이냐?”
때마침 훈련장에 나선 기사 한 명을 본 소년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자 레이먼이 물었다.
“그, 그게 무슨-.”
삶은 달걀의 껍데기 같은 얼굴을 한 소년이 레이먼을 바라보았다. 그만큼 누렇고 보기 싫었다는 뜻이다.
“다 알고 온 거야. 저놈이 널 괴롭혔냐 이 말이다.”
이대로라면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은데. 좋다. 지금이 바로 그 쓰레기 같은 특성을 발휘할 때다.
“옛말에 ‘우둔한 기사라면 제 동료를 탓하고 저능한 기사라면 제 동료를 죽인다. 우수한 기사가 되기 위해선 행적에 있어 그림자를 남겨선 안 된다.’라는 말이 있어. 나는 우리 가문에 더러운 행적을 남기는 기사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 그런 말이 정말 있나요?”
레이먼이 상냥하게 웃었다.
‘아니, 없지.’
하지만 뭐 어떤가.
[ 양심이 쓰레기 특성을 발동합니다. ]“그래, 있어. 다른 왕국의 기사도 강령이지만.”
[ 당신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립니다. ]“나는 네가 우수한 기사라고 생각한다.”
[ 당신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립니다. ]“그러니까 널 돕고 싶은 거야.”
[ 당신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립니다. ]“자, 그러니 편히 말해봐. 저놈이냐?”
소년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이윽고 아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기사랑 그 뒤에 있는 세 명은… 평민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몰락 귀족 출신의 분들인데 저희 같은 놈들이랑 섞이기 싫다고 하셔서요. 게다가, 저는 공간이기도 하고…. 기사단에서 그들에게 주의를 시키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라…”
몰락 귀족인가. 저런 놈들이 종종 있지. 타고난 위치나 명예가 폭락하고, 그 패배감에 추락한 자신보다 밑에 있는 놈들을 괴롭히는 자식들.
딱히 악인이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놈들이다. 악의는 평범함 속에 숨어있으니.
‘전형적인……악당이니까. 시험하기에는 딱 좋네.’
레이먼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그래. 알겠다.”
대충 상황은 파악했다.
“이봐.”
단차가 있는 경기장 원형 땅에 올라선 레이먼이 연습용 목검을 들었다. 레이먼이 훈련장 위 기사를 바라보았다.
“네 이름이 뭐지?”
“…번들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도련님.”
“그래. 번들. 나와도 잠깐 대련해줄 수 있겠나?”
“…예?”
번들의 눈썹이 꿈틀댔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기사, 도련님은 검술 연습 한 번 해본 적 없는 애송이였다.
“도련님은 검을 쥐어본 적이 없지 않으십니까. 마법 정진에도 여념이 없으실 텐데 감히 제가-.”
“단장, 그래도 되겠나.”
레이먼은 번들의 말을 끊고는 단장을 바라봤다. 아마 뒤에 이어졌을 말은 포장만 그럴듯할 뿐 ‘처맞고 마법 수련도 못 하게 될 텐데 까불지 마라.’ 같은 내용이었겠지. 영양가도 없고, 지루하고 어디서 본 듯한 내용.
들을 필요도 없다.
기사단장이 별다른 반발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뜻대로 하시죠. 번들, 준비해라.”
“……”
“도련님이라고 봐주지 말고. 도련님도 그걸 원하실 거다.”
기사단장은 충성스러운 스플린 가문의 심복이었다. 종종 오만해 보이는 태도를 보이곤 하였으나 그게 그에겐 있어서는 당연한 태도였다.
우수한 실력과 우수한 가문의 기사단장. 그런 단장의 위세에 놀라지 않고 그를 오시한 레이먼이 시선을 번들에게 돌렸다.
“그렇다는데?”
“…알겠습니다. 정말 봐 드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레이먼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원하는 대로.”
***
준비 체조를 하며 레이먼은 자신의 체력창을 살폈다.
[ 체력 : 500 ]음. 실력 간파 같은 건 없나. 내 체력이랑 저 기사의 체력을 비교해보고 싶은데. 가진 특성이라곤 양심 쓰레기랑 눈치 특성 등… 이따위뿐이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눈치 따위나 볼 바에야 차라리 다른 소설 주인공처럼 인물들의 상태창을 간파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혹시 모르지. 봉인된 특성 중 그런 게 있을지도.’
어쨌든, 그건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도록 하자.
“검술 훈련은 기본적으로 목검으로 진행합니다. 한쪽이 패배를 선언하면 종료가 되고, 연습이 실전에 피해를 주면 안 되니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게 목적이 되어선 안 됩니다. 이해되셨습니까?”
“이해했다.”
사실 단장의 설명은 연습 룰에 대해 모르는 레이먼을 향한 게 아니라, ‘도련님에게 상처는 입히지 말라’ 라는 번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였다. 번들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연습을 왜 갑자기 하자고 하시는 건지.’
당장에라도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감추며 단장은 생각했다.
‘저 소년을 위해 나선 건가?’
기사단장도 번들과 그 일행이 평민 출신의 견습 기사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정도가 심해진 것도.
추후 직접 벌하려고 했는데 첫째 도련님이 갑자기 나설 줄은 몰랐던 거다.
‘차라리 권력으로 찍어누르셔야지 굳이 대련을 신청하시다니… 자존심인가.’
귀족의 오만함. 가문에 소속된 기사라면 자신을 봐줄 줄 알고 이런 대련을 신청한 것이라면 실수다. 자신은 제 기사단을 그런 식으로 키우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기사단장은 두 가지를 착각하고 있었다.
첫째로 레이먼은 소년을 위해 나선 게 아니었다. 입학시험 전 자신이 마력을 사용할 만한 연습이 필요했을 뿐이고, 때마침 소년의 거짓말을 간파했을 뿐이다.
둘째로 레이먼은 번들이 자신을 봐줄 거라곤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마력을 활용하여 그를 이길 수 있는 철저한 계획을 상상했을 뿐이다.
훈련을 구경하는 동안, 스플린 기사단의 검술 특징은 이미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일직선으로 뻗으나 유연한 검의 궤도. 파도 같은 검의 궤도는 예측하기 어려운 동시에, 뻗어 나가는 힘은 강력했다. 스플린 가문의 상징인 ‘공작새’를 닮은 화려한 검술이었다. 화려한 첫수에 눈길을 빼앗기는 순간 그 승패가 결정 나게 되는 검술. 저질 체력에 검에 대한 재능이라곤 먼지만큼도 없는 레이먼이 그런 검술을 쓰는 번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마력뿐이었다.
“마력을 활용하는 건 가능한가?”
“…가능은 합니다만.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쓰셔도 괜찮습니다.”
단장은 무어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레이먼은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검에 마력을 감응시키는 건 상당히 훈련된 마검사여야만 가능하다는 걸 도련님은 모르시는 건가?’
다들 마검사, 마검사 노래를 부르지만 정말 마검사가 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막 방문을 열고 나온 레이먼 도련님이 마력을 활용해 자신의 검에 이를 적용하는 일이 가능할 리 없었다. 그게 기사단장을 비롯한 주변 기사들이 레이먼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럼 대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우렁찬 “시작-!” 과 함께 대련이 시작되었다.
번들의 검이 곧장 일직선으로 뻗어왔다. 쭉 뻗은 발 간격과 긴 장검이 합쳐져 공격이 재빠르게 앞으로 들어온다. 피할 겨를도 없다. 화려한 검술. 옆으로 피하면 유연한 팔놀림이 그대로 레이먼의 심장을 찌를 것이다. 모두가 이 일격에 승패가 결정 날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런 느낌이구나?’
그 예상이 틀렸을 뿐이었고.
레이먼은 그의 검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검으로 심장을 맞았다. 그러나 버텼다. 버텨냈다. 기사단장은 보았다.
목검의 끝이 뭉개지는 것을. 단단한 무언가에 뭉그러져 어긋난 나무의 끝과 옆으로 튀어 나간 파편 몇 조각들을.
저 옷 안에 무언가 입고 있나? 아니,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체력이라곤 전혀 없는 도련님이다. 저 얇은 천 안에 무언가 덧댔다면 분명 티가 났을 것이다. 그러니 아니었다. 이건 온전히 도련님의 실력이었다.
‘이게 무슨-.’
놀란 건 단장뿐만이 아니었다. 목검이 부서지는 걸 손끝으로 느낀 번들 역시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레이먼은 제 능력에 딱히 감탄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았다. 그저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았다.
‘적은 양이라도 한 점에 집중시키니 쓸모는 있네. 이런 식으로 첫 번째 일격은 막을 수 있겠어. 이제 다음은….’
첫 대련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레이먼은 목검의 끝에 마력을 실었다.
“마력을 실어 네 가슴을 찌를 거다.‘
“…자, 잠시-.”
마력을 실은 검격이라니. 아무리 약한 마력이라고 해도 평범한 힘과 몇 배는 차이가 생긴다. 그걸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맞았다간 몇 주 앓아눕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거다. 번들의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다.
[ 당신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립니다. ]‘거짓말이지만.’
레이먼은 검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는 대신 발을 걸어 번들을 넘어뜨렸다. 번들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번들의 광대가 바닥으로 처박혔다.
기사들이 침묵했다. 소년은 일어섰다. 기사단장은 승패가 결정 났음을 확신했다. 턱과 광대에 큰 충격을 받은 번들은 이미 한쪽 다리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그래서 패배를 선언하려 했다.
“번들. 한 가지만 말해두지.”
훈련장 아래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을 레이먼이 한 번 응시했다. 그러자 번들의 눈도 그를 따라갔다. 번들은 도련님이 어째서 자신에게 대뜸 대련을 걸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소년을 위해서구나.
차가운 시선이 번들의 심장에 꽂혔다.
“기사도를 지켜라.”
레이먼은 사실 기사들의 세계에 크게 관여할 생각은 없었지만 소년의 눈치가 보여 한마디 해준 것뿐이었다.
마력을 검에 담는 것을 실험해 볼 수 있었으니 이미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마지막으로 마력 발사를 도전해보고 싶었다. 입학시험이 코 앞이니 역시 지금 시험하는 수밖에 없겠지.
레이먼이 나직한 목소리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번들.”
"….“
번들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대체 어떤 말을….
“엉덩이는 한 개일까, 두 개일까?”
당혹스러운 질문에 한참 망설이던 번들이, “하, 한 개 아닙니까…?” 라고 답하자 레이먼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부터 두 개다.”
그날, 레이먼의 검에 의해서 번들의 엉덩이는 두 개가 되었다. 그 이후로 번들은 다시는 평민 기사들을 괴롭히지 않았고, 일전의 행동에 대해선 기사단장이 별도의 처분을 내렸다. 번들은 그 이후로 레이먼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고 회랑이나 정원, 혹은 서재에서 도련님의 모습이 보이면 늘 먼저 다가와 인사했다.
“레이먼 도련님! 오늘 아침도 평안하셨습니까?!”
“그래.”
쟤는 왜 저래. 엉덩이 뚫리고 제정신을 못 차리는 건가. 많이 아팠을 텐데. 다음에 약이라도 하나 사줘야겠어. 실험 대상이 되어줘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레이먼이 도와준 평민 아이도 레이먼이 보이면 조르르 쫓아와 구두를 닦아주거나 책 심부름을 해주곤 했는데 레이먼은 이를 특별히 거부하진 않았다. 손이 2개, 발이 2개 늘어나니 편했다.
“도련님, 저 나중에 꼭 도련님의 기사가 되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받아주실… 거지요?”
“어? 그래. 마음대로 해.”
평민 소년과 담소를 나누는 평화로운 날을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레스튼의 입학시험 날이 밝았다. 생각해보니 이 애, 이름을 안 물어봤구나?
‘뭐, 나중에 물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