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40)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40화(40/275)
“오닉스가 있어? 왕성에?”
“유타가 놀고 싶어서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날, 챈들러를 만난 레이먼이 상황을 찬찬히 설명했다.
“그쪽 수가 5명이었잖아요. 저희 쪽도 5명을 갖추는 편이 좋을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유타랑 오닉스한테 부탁해뒀어요.”
“1학년이잖아.”
“저랑 비슷한 실력이라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 네가 괜찮다면야.”
챈들러는 크게 하품했다. 그는 다른 학생들과의 대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이날은 하루 종일 자유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레이먼은 별다른 스케줄을 소화하지 않고 쭉 쉬었다. 마력을 담을 서클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유타가 종종 방에 놀러 오기도 했다. 나름 왕자라고 소화해야 할 일정이 많은 모양인지 그리 긴 시간을 함께하진 못했다.
그날 저녁, 아드리안인 레이먼의 방에 들렸다. 집으로 가기 전날 저녁, 자신의 방에 들리라는 형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가면 이 편지를 포레스튼 전교생한테 전달해줘. 주소록은 니콜이 전부 알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드리안이 물었다.
“내용은요?”
“가서 읽어봐. 어떤 내용을 보게 되더라도 꼭 전달해. 중간에 아버지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말해도 괜찮아. 이젠 도움을 주실 테니까.”
“알겠어요. 몸조심하시구요.”
아드리안은 형이 준 붉은 편지 봉투를 꼭 쥐었다.
방으로 돌아온 아드리안은 곧장 봉투를 뜯어 내용을 읽었다.
과연. 형님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구나.
‘하지만 이건 너무 부담스럽지 않나.’
왕실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잖아. 비밀 마법 아카데미를 만든 사람이 3왕자라고도 하셨는데. 만약 3왕자가 형님이 이 일을 꾸몄다는 걸 알면 뭐라고 하지 않으실까.
하지만 아드리안은 형님이 계획한 일을 그르칠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인사도 받아주지 않았던 형님이다. 이제서야 친해졌는데. 다음 날 아침, 아드리안은 캠프에 참가한 다른 가문의 자제들보다 훨씬 일찍 스플린 가의 마차를 타고 자택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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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이 지나 아드리안에게서 마법 전보가 도착했다. 허공을 날아다니는 편지에서 길게 내린 붉은 끈을 잡아당기자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드리안의 음성이 튀어나왔다.
[ 형님! 편지 그대로 모두에게 전달 드렸습니다. 편지 형식은 말씀해주신 대로 마법 전보 형태로 전달하였으니 이제 답장이 오길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선 별말씀하지 않으셨고요. 다른 일이 생기면 또 연락드릴게요. 부디 몸 조심히 돌아오세요.아드리안 보냄 ]
“아드리안은 목소리도 좋네. 네 동생인데 예의도 바르고.”
“맞아.”
레이먼은 아드리안의 편지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으며 유타의 말에 답했다. 그때, 챈들러가 밖에서 시종인과 함께 문을 열었다.
왕실의 시종인은 검은 턱시도를 입은 채, 흰 장갑을 낀 손을 왼쪽 가슴에 올리고 깍듯이 허릴 숙이며 말했다.
“두 분,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다녀와.”
“어, 그래야지.”
두 사람이 시종인의 뒤를 따라 향한 곳은 왕성 1층 홀의 식당이었다. 정원을 사용했던 서머셋과 달리 3왕자는 왕성 내부를 자유롭게 사용하여 식사 준비를 한 모양이었다. “들어와.” 하는 나긋한 목소리와 함께 양쪽 문이 묵직한 소릴 내며 열렸다.
긴 테이블 끝에 3왕자가 앉아있었다. 서머셋과 같은 검은 머리 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3왕자, 매너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먼과 챈들러에게 걸어왔다.
그는 손을 내밀어 레이먼에게 악수를 권했다. 한쪽 손은 코트 가슴 쪽에 숨겨둔 채였다.
“어서 와요. 챈들러는 저번에 봤고, 이쪽은 처음인 거 같은데.”
“스플린 가문의 레이먼 반 스플린입니다, 전하.”
“매너스다. 앉아.”
레이먼이 가볍게 묵례 후, 자리에 앉았다. 준비된 자리는 매너스의 양옆이었다. 식사 자리는 비교적 평범했다. 그는 포레스튼의 생활은 어떤지, 시험은 괜찮았는지, 힘든 점은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질문했다, 왕자라는 신분을 떠나 먼저 학교를 졸업한 선배로서 후배인 포레스튼의 학생에게 할법한 지극히 당연한 질문들이었다.
“그래요, 레이먼 학생은 뭐 힘든 점 없어?”
“크게 없습니다. 챈들러 선배님도 워낙 잘 챙겨주셔서요.”
“그래? 챈들러가 누굴 챙기는 편은 아닌데.”
의외네. 마지막 말을 낮게 중얼거리며 그가 챈들러를 한 번 바라보았다. 챈들러는 별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자신 앞에 놓여 있던 홍차를 홀짝였다.
“챈들러, 정말 졸업하고 왕실 마법사로 들어올 생각은 없는 거야?”
“지난번에 가지 않겠다고 말씀드린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너 같은 인재를 왕성에 두지 못하면 내 너무 아쉬운 거 같아서 그러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하긴 해?”
매너스가 호탕하게 웃었다. 매너스에게는 서머셋에겐 없는 특유의 시원스러움이 있었다.
챈들러는 그 말에 ‘아마도요.’라고 답하곤 스테이크로 시선을 돌렸다. 매너스는 이번엔 레이먼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아이들을 마주쳤다면서?”
“그 아이들이라고 하시면-.”
“금발 머리, 포레스튼과는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말이야. 내가 잘 키우고 있는 마법 아카데미 아이들이거든.”
레이먼은 ‘네.’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상으로 긴 대답을 들이밀 이유가 없었다. 그 이상의 대답을 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쓸데없는 단어 선택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모른다. 레이먼의 내심을 알 수 없는 답을 들은 매너스는 흰 천이 덮인 테이블 위로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그는 할 말을 고르는 듯 웃음을 머금고 잠시 침묵했다.
매너스가 물었다.
“레이먼, 귀족이 지니는 권위는 어디서 나오지?”
레이먼은 국교를 모두 외우고 있었으므로 그의 질문에 간단히 답할 수 있었다.
“신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을 손에 쥐여주며 자식들이 사는 땅에 보냈으니, 그들의 말을 신뢰하며 따르라.”
매너스가 웃으며 손뼉을 쳤다.
“정답이야, 레이먼. 그렇다면 그 말이 완전히 통용되지 않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지, 어딘지 아니?”
레이먼은 이번에도 즉답했다.
“포레스튼입니다, 전하.”
포레스튼이 완전히 평등한 공간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평민에게 신의 임명 대신 실력으로 작위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줬으니까.
“그것 또한 정답이지. 그렇다면 여기서 진짜 질문이야. 왜 나는 새로운 마법 아카데미를 개교하려고 하는 걸까?”
매너스는 레이먼과 챈들러가 이미 자신의 계획을 파악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듯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번엔 레이먼이 대답을 망설이자 챈들러가 먼저 그의 질문에 답했다.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닙니까?”
레이먼은 챈들러를 한 번 바라보았다. 챈들러는 3왕자가 계획한 새로운 마법 아카데미의 개교가 오로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함일 것이라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게 정답일 거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아카데미라면 그 뒤에서 조종하는 게 훨씬 쉬울 테니 말이다.
3왕자는 챈들러의 답에 은근한 미소를 짓고는 레이먼에게 재차 질문했다.
“1학년의 답도 듣고 싶은데.”
“저는 선배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생각하지?”
“…솔직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허하지.”
레이먼이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가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3왕자 전하께서 이미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으나 이번 시험에서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피데스 클래스의 학생들 중 명문 귀족 가문 출신의 학생들이 교수와 담합하여 시험지와 답안지를 빼돌린 사건이었는데, 이 역시 신분에 따른 차별의 존재를 함의하고 있는 일일 겁니다.”
매너스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레이먼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레이먼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선하고 참되어 보였는지 어쩌면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진심으로 레이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듯했고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으며 공감의 뜻을 보이기도 했다.
“뭐 당연한 일입니다. 애초부터 포레스튼의 출발점은 ‘훌륭한 마법사 양성’이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주로 마법 가문 출신 귀족들이 포레스튼에 입학합니다. 평민이 있으나 이들을 존중하는 까닭은 사실상… 그들이 지닌 부와 가능성 때문이죠. 평민이라고는 하나 사실 대부분은 충분한 재력을 갖춘 상회 출신들이니까요. 전하께서는 이런 불균형을 깨고 싶으신 게 아닌가요?”
“….”
“이상입니다.”
쟤가, 진짜.
챈들러는 말을 끝마친 레이먼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다 헛웃음을 지었다.
레이먼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으나 이는 결코 3왕자가 원한 대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레이먼의 말은 ‘왕실과 얽힌, 네가 만드는 아카데미도 똑같지 않겠느냐’와 같은 의미였기 때문이다.
챈들러는 매너스의 표정을 살폈다. 매너스는 살짝 몸을 뒤로 뺀 채, 손가락으로 테이블 모서리를 톡톡 쳤다. 그가 말했다.
“맞아! 그래서 내가 이번에 개교할 아카데미에는 평민이 절대다수를 차지할 거야. 교수진들은 마탑의 구성원들이지.”
왕실의 권위엔 전혀 흥미가 없는 마탑 마법사들로 교수진을 채울 예정이니 포레스튼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의미였다.
“네가 본 금발 머리도 부모님이 식당을 하는 평범한 집안의 아이란다. 그 아이의 재능을 발견한 건 아주 우연한 계기였지. 포레스튼의 시험을 치지 못했다고 하여 이유를 물어보니 시험 날에 부모님을 돕느라 시험을 치지 못했다고 하더구나. 그런 아이들을 모아 나는 왕성에 따로 아카데미를 만든 것뿐이야.”
매너스가 말을 이었다.
“포레스튼은 너무 오래 해 처먹었어.”
“……”
노골적인 단어 선택이었다. 매너스는 어떤 상황에도 마법 아카데미 개교를 미루거나 없앨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언제 개교하실 예정입니까?”
챈들러가 선수 치듯 질문을 던졌다. 의자에 몸을 완연히 기댄 매너스가 느릿하게 답했다.
“글쎄. 그래도 포레스튼의 겨울방학이 끝난 뒤엔 계획을 구체화해야겠지.”
“그래서 저희 아카데미와 그런 결… 아니, 대회를 준비한 겁니까?”
몸을 앞으로 숙인 매너스가 턱을 괴며 웃었다.
“하하하, 대회도 아니지. 개교를 위한 좋은 퍼포먼스같은 거라 생각해주게. 우리 쪽도 나름 명분은 있어야 하니까 말이야. 크리스가 오지 않은 건 아쉽지만.”
매너스는 자신이 준비한 이 퍼포먼스에서 승리를 거둘 요량이었다. 그가 준비한 아이들은 모두 우수한 인재였고 챈들러는 어렵더라도 크리스나 디찬을 이길 정도의 능력은 되었다. 물론 예상에서 약간 빗나가는 상황이었으나 새로 온 학생은 기껏해야 1학년이다. 뭘 할 수 있겠는가.
레이먼은 들고 있던 포크를 슬쩍 내려놓으며 운을 뗐다.
“그럼 판을 키워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판?”
“예, 판이요”
레이먼이 햇빛보다 환하게 웃으며 매너스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