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4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44화(44/275)
훈련장으로 향하는 길. 학생회 건물 로비에서 크리스가 울부짖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나의 디찬, 왜 그걸 이제야 말해주는 거야. 이런 거라면 너 대신 내가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야 하는데.”
“넌 멍청해서 참가 못 하잖아.”
“하지만 교류회에서 네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연극의 주연처럼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슬퍼하던 크리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졌다.
“난 정말 슬플 거야.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내가 다칠 거 같아?”
그런 애들 때문에? 자존심을 구긴 디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크리스가 자리에서 펄쩍 뛰며 디찬의 팔에 팔짱을 끼며 찰싹 붙었다. 물론 우리 자기가 질 일은 없지만, 그래도 말이야. 빌빌 기는 크리스 옆에서 챈들러가 뚱한 얼굴로 서머셋을 바라보았다.
챈들러의 시선에 서머셋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챈들러, 너 레이먼이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야.”
“……”
“이 교류회 준비도 네가 시켜줬다던데.”
“너야말로 마음에 든 모양이던데. 버틀러를 부추긴 것도 너잖아.”
“하하하, 난 귀찮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니까. 널 학생회에 데려온 것처럼 말이야.”
“…젠장할.”
저 얼굴로 말하면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니까. 챈들러가 흐트러진 긴 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에글린턴에서 교류회에 참가하는 인원 중 2학년은 총 2명. 나머지는 1학년이었다. 전력 구성이 나쁘다고 할 순 없었다. 개교를 위한 인원이라고 한다면 신입생이 대부분일 테니까. 게다가 나이가 있다고 해도 교육을 받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
그런 애들한테 자신들이 질 리가 없었다.
“뭐, 나머지도 알아서들 잘하겠지.”
“자, 여러분.”
서머셋이 문을 열어젖히기 전, 건물에 모인 학생회 일원을 바라보았다.
“교류회에 참석하는 학생회 인원은 1학년 버틀러를 포함해 3명이지만 그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을 기준으로 선발했기 때문이야.”
서머셋은 어쩌면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불만을 품고 있을 지점을 콕 집어 이야기했다.
“그러니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하도록 하자.”
“….”
“우린 영원히 포레스튼이니까.”
칠흑 같은 빛의 검은 머리에 거대한 빛이 반사되었다. 한낮의 빛이 그들을 덮쳤다. 콜로세움으로 변한 훈련장으로 들어선 그들을 향해 우렁찬 함성이 퍼졌다. 서머셋은 교류회 대결에 참석하는 5명의 학생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나머지 학생회 인원들은 다른 포레스튼에 섞여들었다.
“이거.”
“이게 뭔데?”
“스플린 가 장남이 뿌린 장식용 완드요. 비싼 건데 오늘을 위해 준비했다네요. 이거 빛도 나요.”
“어, 그래. 고맙다.”
이런 것까지 준비를 했어? 맹하게 장식용 완드를 받아든 학생회 일원들이 한눈에 띄는 붉은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매너스가 쓸데없는 연설을 한창 하는 내내 챈들러는 하품을 해댔다. 레이먼은 그를 말릴까 하다 참기로 했다. 어차피 챈들러는 남의 말을 귓등으로나 듣는 선배였기 때문이다. 매너스의 연설과 교류회 대결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 그들은 경기장 아래로 내려와 의자에 앉았다. 첫 순서를 정하기 위한 뽑기가 시작될 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뽑기 직전, 매너스가 한 손에 이름이 적힌 공을 들고 말했다.
“개교할 아카데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잖아?”
그가 천진한 표정으로 웃었다.
“포레스튼과 함께 스턴 왕국을 마법 강국을 만들어 줄 신 아카데미의 이름은.”
“빛보다 밝은 미래를 꿈꾼다는 의미에서 에글린턴.”
“에글린턴 아카데미.”
레이먼은 맞은편 학생 5명의 표정을 살폈다.
‘저놈들도 이름은 처음 듣는 모양이군.’
금발 머리가 방방 뛰는 모습을 보아하니 비공식적으로도 새로이 개교할 아카데미의 이름을 말한 건 이번이 처음인 모양이었다.
“에글린턴이라.”
유타가 중얼거리자 오닉스가 혀를 끌차며 말했다.
“구려.”
“별로 안 구린데?”
이 두 사람은 왜 싸우는 거야?
“레이먼, 네 생각은 어때?”
고래 싸움에 갑자기 끼어들게 생긴 레이먼은 입을 꾹 다물고 어깨를 으쓱했다. 실제로도 레이먼은 ‘에글린턴’이라는 이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매너스는 “그럼! 이름도 말했겠다, 에글린턴과 포레스튼의 제1회 마법 교류회의 첫 순서는 누구인지를 말해볼까?”라며 공에 뽑힌 이름을 따라 읽었다.
그의 음성을 따라 허공에 검은 문자가 새겨졌다.
“타일. 포레스튼에서는 디찬 모턴.”
“디찬!!”
디찬의 이름이 호명되자마자 관중석에서 남녀 한 쌍이 떠들썩하게 일어났다. 크리스와 블랭킷이었다. 그들은 언제 준비한 건지 알 수 없는 화려한 현수막을 양쪽으로 펼쳐 들었다.
[ 우윳빛깔 디찬 모턴! 이기고 와, 디찬 모턴! ]“하아.”
현수막을 발견한 디찬은 깊은 한숨을 내쉬곤 뒤에 남은 넷을 흘깃 곁눈질하며 말했다.
다녀올게.
멀어지는 디찬을 바라보며 레이먼은 챈들러에게 물었다.
“디찬 선배가 이길까요?”
“응? 왜, 불안해?”
“디찬 선배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요.”
“네 직속 선배인 데는 이유가 있겠지.”
레이먼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예상했다. 디찬이 이겼을 때, 졌을 때, 무승부였을 때. 그녀가 첫 경기였을 때, 마지막 경기였을 때. 하지만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가 디찬에 대해 아는 게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디찬은 어딘가 차가워 보이지만 또 나름 정은 있어 보였다. 마력량은 상당했으나 그 양을 제어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머리가 좋아 자신의 마력을 활용해 새로운 약물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들이 ‘디찬이 이길 것이다.’라는 확신을 주진 못했다.
경기장 위에 선 디찬은 맞은편 타일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타일 역시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였다.
안경을 쓴 타일이라는 소년은 디찬과 몸집도 키도 비슷했다. 디찬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질문했다.
“나이가?”
“16살입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그쪽은요?”
“당신보단 많습니다.”
의미 없는 대화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대결은 시작되었다. 타일은 허리춤에서 완드를 꺼내 들어 휘둘렀는데 완드의 생김새는 그의 외견처럼 깔끔했다. 보통 저 나이에 직접 만든 완드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완벽하게 떨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완드는 깊고 어두운 떡갈나무 색을 그대로 띠고 있었으며 맞은편에 선 디찬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매끄러워 보였다.
‘좋아 보이네.’
꽤 많은 마법이 걸려있는 게 틀림없었다.
한편 마찬가지로 완드를 확인한 디찬은 타일의 마법 실력이 상당하다는 걸 눈치챘다. 타일이 입으로 작게 무언가 중얼거리자 바닥에서 커다란 벽이 올라왔다. 쿠구구궁- 소리와 함께 경기장이 뚝 갈라졌다.
“우오어아아악-!”
“뭐야! 저쪽은 치사하게 4학년이 나온 거야?!”
“아냐! 저쪽은 16살이라고 했어!”
관중석 역시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포레스튼의 대표로 나온 4인은 타일의 마법을 멀뚱히 바라본 채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타일이 부린 마법이 웅장하기만 할 뿐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찬 역시 이를 느끼고 있었다.
디찬 역시 완드를 꺼내 들었는데, 그녀의 완드는 플라스크 모양이었다. 나무로 된 플라스크에는 흰 연기가 쏟아져 나와 타일이 만든 벽을 넘어 그의 다리를 휘감았다.
“이, 이게 뭐야-.”
“포그 허그.”
이내 흰 안개가 타일의 몸을 완전히 감쌌다. 흙은 물처럼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고 안개에 갇힌 타일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안개는 어느새 커다란 감옥이 되어 타일을 그 안에서 이리저리 굴렸다. 새장 속 새 타일이 열심히 완드를 휘둘러도 마법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경기장 바깥으로 굴러떨어진 타일은 그대로 콜로세움의 벽에 거꾸로 박혔다.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승리한다고 했나?”
“그런 룰도 있었지.”
“장외로! 포레스튼 측의 승리입니다!”
“우와아아-!”
“디차아아아안-! 나의 피앙세여-!”
크리스의 우렁찬 목소리가 콜로세움 전체를 울렸다. 그는 그대로 관중석을 뛰쳐나와 디찬을 껴안고는 빙글빙글 돌았다. 우욱-. 디찬은 경기에 임할 때보다 크리스가 태워주는 비행기 쪽이 더 고통스러운 듯했다.
승리 후, 내려오는 디찬에게 레이먼이 물었다.
“선배, 그 안개 마법에 걸리면 마법을 쓸 수 없게 되는 건가요? 아까 전에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게 된 것처럼 보여서요.”
“응. 맞아. 이번에 연구실에서 개발한 거야. 물론, 상대방의 마력 양에 따라 달라지지만.”
챈들러한테는 통하지 않는 마법. 짧게 중얼거린 디찬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디찬의 승리로 끝난 뒤, 관중석은 포레스튼 학생들의 함성으로 떠들썩했다. 그 모습에 위축될 만도 한데 에글린턴의 학생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돌아온 타일을 위로해주는 그들의 모습에선 한껏 여유가 넘쳐 보였다.
“괜찮아, 타일. 네 마법은 충분히 멋졌어.”
“응.”
“그래, 타일!”
얼마 있지 않아 호명된 학생은 에글린턴의 학생이었는데 그는 별 소득 없이 경기를 끝냈다. 그의 상대가 챈들러였기 때문이다. 챈들러는 완드를 들고 나가지 않았는데, 손가락 하나만으로 그를 이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선언대로 손가락 하나로 상대를 이겼다. 상대방이 완드를 휘두르기도 전에 챈들러의 검지가 허공을 한 바퀴 돌자 완드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해 부러졌다. 당황한 학생이 얼빠진 얼굴로 고갤 들자 챈들러는 그의 발목을 잡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깜짝 놀란 학생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지만 다친 구석은 전혀 없었다. 그가 떨어지기 직전 챈들러가 쿠션 마법을 바닥에 깔아두었기 때문이다.
“우으으으-.”
“포레스튼 승리-!”
“우와아아아악-!”
“앞으로 1승! 앞으로 1승!”
의식을 잃은 학생이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이 챈들러는 레이먼 옆으로 가 앉았다. 너무나 멀쩡한 챈들러의 표정이 오히려 얄밉기까지 했다. 하지만 챈들러의 승리로 레이먼의 고민은 더욱 커졌다.
레이먼은 1등을 하는 게 목표였지만 그에겐 더 큰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타를 띄워놔야 하는데.’
1학년 중 유타를 가장 눈에 띄는 학생으로 만들 책무가 그에겐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먼이 광대 짓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면 그 대미를 장식하는 건 유타여야 했다. 그래야 유타가 버려진 왕자라는 타이틀 대신 다른 타이틀을 따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만약 다음이 유타고, 유타가 승리한다면?
레이먼이 1등상을 차지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아.”
레이먼이 고뇌에 빠진 사이, 매너스는 다음 상대를 호명하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불린 건 다름 아닌 레이먼이었다.
“레이먼 반 스플린!”
“우아아아아-! 레이먼이다! 이겨라, 레이먼!”
“에글린턴에서는 리트리버.”
“얘들아, 다녀올게!!”
레이먼이 경기장 위로 올라오는 사이, 리트리버는 자신과 함께 온 친구들과 한 번씩 악수를 한 뒤 자리를 나섰다. 리트리버의 금발 머리는 레이먼의 붉은 머리카락과 전혀 다르게 눈에 띄었다.
“안녕, 레이먼.”
“안녕.”
“우리 즐거운 경기를 하자.”
싱글벙글 웃는 리트리버를 눈앞에 둔 레이먼은 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이겨야 할까, 져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