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45)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45화(45/275)
탁탁탁. 리트리버가 준비운동을 하듯 바닥에서 발을 굴렀다. 그는 허리를 돌리다가 다시 다리를 쭉 스트레칭하기도 했다. 그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일렁이는 푸른 바다가 같은 푸른 바다를 응시했다.
“레이먼. 최선을 다하자.”
즐거운 교류회, 새로이 알게 된 아카데미의 이름, 마음에 들었던 친구와의 첫 마법 대결. 이런 꿈같은 순간을 언제나 꿈꿔왔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리트리버는 허리춤의 완드를 집어 들었다.
‘뭐야 저건. 광선검이야…?’
리트리버의 완드는 주인만큼이나 특별했다. 일렁이는 금빛 마력으로 이루어진 무형의 완드. 챈들러도 저런 완드는 처음 본다는 듯 눈을 크게 치떴다. 물론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레이먼 역시 속으로 놀라움을 감춘 채 리트리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완드, 직접 만든 거야?”
“응? 당연하지. 자기 완드는 자기가 직접 만드는 거잖아. 나는 아직 어떤 완드를 만들지 이야기 나누지 못해서 이런 형태인 거지.”
“…대화? 누구랑?”
레이먼이 물었다. 리트리버가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내 완드지. 마법사는 자신의 완드와 대화를 나눌 줄 알아야 하는 거잖아.”
“…오. 그래.”
‘미치광이네.’라는 뒷말을 꾹 삼킨 레이먼도 팔목의 팔찌를 문질렀다.
그리고 리트리버의 공격은 예고 없이 다가왔다.
“라이트닝-!”
기본 전기 마법. 일전에도 당한 적 있는 마법이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직선 형태의 공격. 레이먼은 그의 공격을 가뿐히 피했다.
‘…이런 종류의 대결은 해본 적이 없는 건가?’
리트리버는 몇 초간 생각하더니 다시 라이트닝 마법을 시전했다.
“라이트닝 열 배.”
대신 그 양을 늘려서.
그의 완드 끝에서 10개의 번개가 퍼져 나왔다. 부채꼴 형태로 퍼져나오는 번개를 곧바로 피하긴 어려웠다. 레이먼은 곧바로 팔찌를 손목에서 끊어내 완드로 형태로 가공했다.
쾅-! 완드 끝에서 나온 바람과 함께 레이먼이 크게 뛰어올랐다. 관중석으로 향하던 번개는 결계에 닿아 순식간에 산산이 조각났다.
“라이트닝 스무 배. 체이스.”
‘체이스? 추적 마법까지?’
스무 줄기의 번개가 이제 레이먼의 뒤를 쫓았다. 레이먼의 도망치는 방향대로 쫓아오는 바람에 결국 레이먼도 챈들러 선배와의 승부 대 썼던 파훼 마법진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쫓아오는 속도가 빨랐다. 술식은 간단했지만, 레이먼은 보다 안전한 마법을 쓰기로 했다.
“업.”
짧은 주문에 대리석 바닥이 그대로 솟아올랐다. 무너지면서 솟아오른 바닥의 흙에 번개가 그대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벽 뒤에서 레이먼은 잠시 유타 쪽을 바라보았다.
– 화이팅
유타는 레이먼을 응원하고 있었다. 레이먼 역시 승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쪽 팀의 남은 전력을 보아라. ‘티키’라는 소녀 외엔 마력이 제대로 느껴지는 놈들은 없었다. 아마 3왕자가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타일, 티키, 리트리버 이렇게 세 명일 것이다.
그중에 2명이 졌다. 말은 안 해도 속은 꽤 타고 있겠지. 만약 여기서 리트리버까지 진다면 3왕자는 정말 에글린턴 개교 계획을 백지화시킬 수도 있었다. 아니, 아니지. 그럴 리는 없다. 백지화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니까.
이 교류회의 승패는 눈앞의 아이들이 앞으로 겪을 아카데미 생활엔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레이먼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라이트닝 백 배, 체이스, 영구.”
물론 리트리버의 실력도 나쁘지 않았다. 셋 모두 기초 마법이라고는 하지만 세 가지 술식을 동시에 이해해 하나의 식에 접목하는 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면 파훼 마법을 사용할 때도 복잡해진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레이먼은 리트리버의 번개를 빠르게 옆으로 피했다. 동시에 바람 마법으로 속력을 올렸다. 번개로 이뤄진 화살촉이 레이먼의 심장께를 노렸다. 레이먼은 서둘러 팔찌로 가슴팍을 가렸다.
“늦었네.”
챈들러가 작게 중얼거리고 동시에 강한 빛의 파동이 레이먼의 앞에서 일렁였다. 두 마법이 강하게 충돌한 것이다. 완전히 파훼되지 않은 번개 조각들이 레이먼의 온몸을 파삭파삭 태웠다. 레이먼은 끙끙 앓는 신음 소릴 내며 바닥을 굴렀다.
리트리버는 그런 레이먼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관중석은 처음으로 조용했고. 매너스 역시 조용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심판은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손을 번쩍 들었다.
“에글린턴의 리트리버 승!”
***
치료를 위해 레이먼은 클럽 하우스에 마련된 보건실로 향했다. 생활관이나 학습관의 보건실과 달리 클럽 하우스에는 다양한 응급약들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중반을 넘어선 교류회는 쉬는 시간을 맞이했다.
터벅터벅. 복도를 걸어가는 레이먼의 등 뒤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레이먼.”
“…리트리버?”
“리트리면 돼.”
금발 머리, 푸른 눈동자, 키는 자신보다 훨씬 큼. 그런 리트리버가 돌아선 레이먼의 코앞에 우뚝 멈춰 섰다.
‘…무표정.’
웃고 있지 않은 표정은 처음이네.
“뭐야?”
“다친 곳은 어때?”
“괜찮아. 가서 치료만 받으면 될 거 같은데.”
“거짓말하지 마, 레이먼. 너 치료도 받을 필요 없잖아.”
“…아닌데. 아아아. 정말 아프다.”
“레이먼. 너 연기에는 지독하게 재능이 없구나.”
리트리는 속이 상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네가 파훼 마법을 그리는 걸 봤어. 거의 완성한 것도. 근데 중간부터 네가 다른 마법진을 그리더라? 보호 마법 말이야.”
그 말에 레이먼이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눈이 좋네.’
리트리의 말이 맞았다. 레이먼은 중간부터 파훼 마법을 멈췄다. 미완성 상태의 식은 미완성인 상태로 발동된다. 즉 90퍼센트 완성시킨 식은 90퍼센트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레이먼은 딱 10방, 10방 정도 번개를 맞을 작정으로 마법진을 그리는 걸 멈췄다. 그리고 다른 마법진을 그렸던 거다.
“보호 마법은 그 마법을 막을 수 없을 때 발동하는 거잖아. 왜 그랬어?”
“뭐긴. 네가 이미 말했잖아. 막을 수 없을 거 같으니까.”
“끝까지 그러네. 어쨌든 난 정말 속상해, 레이먼. 난 정말로 너랑 제대로 된 마법 대결을 하고 싶었단 말이야.”
“……”
“에글린턴으로 전학 올 생각은 없어? 넌 충분히 나와 함께 할 수 있을 거야!”
리트리버는 아직 포기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레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이번 자리에 대표 중 하나로 참가할 만큼, 리트리의 실력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1학년치고는 우수한 편이었다. 아마 챈들러 선배 정도만 아니면 3학년까지는 어떻게 비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게 다였다. 당장 오닉스와 유타만 되어도 리트리를 깨부술 수 있을 것이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게 이런 건가.
레이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봐, 리트리. 뭘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키가 작은 레이먼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감한 표정으로 자신을 담은 푸른 눈을 리트리가 가만 지켜봤다.
“내가 너랑 제대로 대결할 리가 없잖아.”
“……왜?”
“그럴 수준이 안되니까.”
아야야, 아프네. 아파. 되지도 않는 엄살을 부리며 레이먼이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리트리버는 복도 중앙에 덩그러니 남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
– 쉬는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 자리를 벗어났던 학생들은 관중석으로 돌아와
교류회가 다시 시작되었다. 포레스튼이 1승만 더 거두면 끝난다. 자리로 돌아온 레이먼을 챈들러가 의자 위에서 까딱거리며 곁눈질했다. 눈빛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갈색 눈동자가 옷 위에 붕대를 칭칭 감은 레이먼을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여기 와서 좀 봐달란 식이네?”
“아프니까요.”
“하하하하, 일부러 늦은 거면서.”
“…선배도 눈치채셨어요?”
“여기 있는 사람은 대부분?”
“3왕자님도?”
“당연하지.”
그래요.
레이먼은 입을 꾹 다물었다. 뭐, 수석 졸업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그럴 만했다. 레이먼은 옆자리에 앉은 유타를 바라보았다. 바로 뒤 관중석에서는 렌스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흉흉한 기세로 앉아있었다.
“쟤는 네가 다치면 바로 튀어나오겠다.”
“렌스? 그렇겠지~.”
유타가 하하 웃었다. 레이먼은 뽑기가 시작된 단상 위로 시선을 돌렸다. 오닉스냐 유타냐. 오닉스가 나오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져야만 했다.
내가 왜 졌는데. 유타 한 명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졌는데.
“포레스튼의 다음 순번은-! 오닉스!”
제기랄. 생각대로 되는 게 없어. 레이먼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오닉스에게 걸어갔다.
“뭐야. 손 더러워져. 잡지 말지?”
“내 사랑 오닉스.”
“뭐?”
“이번 경기, 날 위해서라도 져줘.”
“…널 위해? 언제는 어떻게든 같이 나가달라더니? 져 달라고?”
특성을 쓸까? 세치 혀 특성을 사용하면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다. 하지만 세치 혀는 ‘악’ 특성이었다. 유타가 바로 옆에 있는데 사용해도 되는 건가? 아직까지 왕 후보 앞에서 ‘악’ 특성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시험 삼아 사용해볼까. 차라리 신뢰도가 얼마나 깎이는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 세치 혀 : 무슨 말을 하든 당신의 말솜씨에 상대방이 감탄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게 억지 논리라고 해도 말입니다. ] [ 그러나 세치 혀를 사용 중인 상황을 왕 후보에게 들킨다면 당신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니 주의하세요. 왕 후보와 친밀도가 높을수록 신뢰도는 적게 감소합니다. ] [ 세치 혀 특성을 발동합니다. ]“날 위해 져줄 수 있지? 우린 서로 처음 사귄 친구잖아.”
“이유는?”
[ 주의. 왕 후보가 당신을 응시합니다. ] [ 신뢰도가 5 떨어집니다. ]유타와 레이먼의 신뢰도는 현재 78 정도. 근데 거기서 5면 적은 편은 아니지 않나? 겨우 한 번에?
‘오닉스를 설득하려면 두어 번은 더 발동해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여기서 더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싶진 않아.
레이먼은 세치 혀 특성 발동을 멈췄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어 말했다.
“그… 편이 더 극적이잖아? 그래야 밀리포레에 기사를 실을 맛이 나지.”
흐릿해졌던 오닉스의 눈동자에 다시 총명함이 깃들었다.
“넌 그럼 유타가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일단은.”
“그래, 그렇다면 안타깝게 됐네. 그 모습을 볼 일은 없을 거니까.”
“뭐?”
오닉스가 레이먼의 손목을 쭉 끌어당겼다. 입가 근처로 다가선 레이먼의 귓가에 오닉스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애초에 내가 저놈들한테 지고 싶겠어?”
뒤져도 싫다.
그렇게 말한 오닉스는 혀를 쭉 내밀고선 경기장 위로 올라섰다. 그 위엔 오닉스의 상대인 티키가 기다리고 있었다. 삐딱하게 선 오닉스가 티키를 한층 더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