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46)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46화(46/275)
“저 본 적 있어요.”
대결 직전, 오닉스를 가만히 응시하던 티키가 말했다.
‘어디서 본 거 같은 얼굴.’
보라 머리가 흔한 머리 색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색도 아니었다. 왕실 마법사 중에서도 보라색 머리도 꽤 있었다. 하지만 티키 나이대의 마법사는 없었다. 티키는 리트리와 대결했던 소년과 한참 무어라 속삭인 뒤 올라오는 보랏빛 머리 소년의 찌푸린 인상을 가만히 바라보다 불현듯 떠올렸다. 그녀가 마탑 근처까지 산책을 갔을 때.
그때, 그때 저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마탑에서 살고 있나요?”
“….”
“마탑 근처에서 뵌 적 있는 것 같아서요.”
언제 본 거지?
정작 오닉스는 티키를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오닉스가 마탑에 자주 드나드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닌가요?”
“아닌데요.”
“그런가요.”
티키 자체도 추궁하는 스타일은 아니었기에 두 사람의 대화는 간단히 마무리되었다. 오닉스는 완성된 완드를 꺼내 들었다. 얼른 이 같잖은 교류회를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윈드….”
주문을 외기 시작하던 오닉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오닉스는 입을 떼지 않은 채로 완드를 가만히 쳐다보다 티키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뒷짐을 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완드를 들지도 않았고 주문을 외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오.”
등 뒤에서 서머셋이 감탄한 듯 약한 탄성을 내뱉었다.
“너도 봤지?”
레이먼 쪽으로 돌아본 챈들러가 물었다.
“네.”
레이먼이 작게 고갤 끄덕였다. 아마 오닉스도 지금쯤이면 깨달았겠지.
티키는 아마 디찬과 비슷한 계열의 마법사일 거다. 디찬이 썼던 안개 마법처럼 마법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약물이 그녀의 마법에 섞여 있었을 테고, 잠깐 대화를 나누는 틈에 마법을 시전했겠지. 살짝 흥분한 상태로 임했던 게 오닉스의 패착이었다.
오닉스의 미간에 주름이 잔뜩 졌다. 성난 주전자처럼 열을 잔뜩 뿜어낼 줄 알았던 보라색 머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한숨을 푹 내쉰 채, “기권-!” 이라며 소리를 꽥 질렀다.
관중석에 앉은 모두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오닉스가 유타나 레이먼만큼 유명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1학년들 사이에선 오닉스가 실력자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오닉스가 기권이라니. 무언가 있는 건가?
다들 이러쿵저러쿵 무어라 떠들어대는 사이 오닉스가 경기장을 내려왔다.
“제기랄.”
머리를 털며 툭 의자에 앉은 오닉스의 곁으로 유타가 슬쩍 다가와 말했다.
“물약? 마력?”
“마력 방지 물약. 무조건 10분짜리야.”
“몰랐어? 중간에 막을 수 있었잖아.”
너 정도 실력이면. 유타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딴 거에 정신 팔려있었나 보지.”
오닉스가 혀를 끌 찼다.
그는 더 이상 변명의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대신 유타의 정강이를 발로 툭 찼다. 당부의 발길질이었다.
“이겨라.”
“자기는 진 주제에.”
“야이 씨, 그건-”
“하하하하-”
유타는 여유로운 미소로 경기장 위에 올라섰다. 레이먼은 그 아래에서 유타의 뒷모습을 올려다보았다. 관중석의 렌스는 곧 뛰쳐나갈 것 같이 몸을 앞으로 쭉 뺀 자세였다. 콜로세움의 중앙 가장 높은 자리. 매너스와 함께 앉아있던 교수들 중 몇몇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 모두 왕실 마법사 자리에 흥미가 있는 교수들이었다.
‘여기서 유타 학생이 이겨도 되는 겁니까?’
‘그렇다고 승부 조작을 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매너스 전하의 의중을 파악하는 게 먼저 아닌지요.’
‘그래요, 누가 가서 물어봅시다.’
저걸 다 들리게 말하는 멍청이들은 여전히 있군. 매너스는 바로 뒤에서 쑥덕이는 교수들이 들으라는 식으로 제 옆에 서 있던 시종인을 불렀다.
“이봐. 너는 둘 중 누가 이길 것 같아?”
“예?”
“별 의미 없는 질문이니 대충 답해도 된다.”
“…어, 그게.”
눈치 빠른 시종인은 얼른 매너스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어느 쪽이 이기든 매너스 님껜 이득 아니겠습니까.”
“오? 왜지?”
“포레스튼은 매너스 전하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시고, 에글린턴은 매너스 전하가 새롭게 개척하는 신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매너스 전하께서는 양쪽 모두 소중히 여기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하, 네 말이 모두 맞지. 게다가 유타는 내 동생 아니냐.”
시종인의 답이 마음에 든 매너스가 크게 웃었다. 매너스의 붉은 눈이 초승달처럼 얇게 떠졌다. 쑥덕이던 교수들의 입술 역시 더 이상 달싹이지 않았다.
매너스는 자신만만한 표정의 제 동생과 에글린턴의 학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매너스 역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에글린턴에서도 그가 기대하는 학생은 따로 있었다. 그들 차례는 이미 끝이 났기에 매너스는 앞으로의 경기나 교류회의 결과에 큰 흥미가 없었다. 다만, 교류회에서 이기는 편이 명분을 만들기에 편리할 거라 생각할 뿐이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매너스가 팔걸이에 턱을 괴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
“우아아악-!”
“졌지?”
“네! 네! 네! 졌어! 졌다고!”
“그래.”
어머. 파릭사가 손바닥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러나 짧은 순간 터진 감탄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2학년 클래스장 파릭사. 그녀는 기프트 클래스를 싫어하진 않았다. 출세하는 마법사는 적었어도 그만큼 경쟁이 없고 평화로운 생활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서로에 대한 관심도 적은 편이었는데 파릭사가 신입생이었을 때는 그녀를 봐도 같은 클래스인지 알지 못하는 동급생들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가 바뀐 건 올해 저 아이들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피데스 클래스의 비리를 터뜨린 이후에는 몇몇 아이들이 기프트로 클래스를 옮기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걸 전해 듣기도 했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레이먼, 유타, 오닉스 저 세 아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레이먼이었다.
유타는 왕족이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종종 눈길을 끄는 것도 그 혈통 때문일 것이라 파릭사는 생각했다. 잘생긴 얼굴, 매너 있는 태도와 신뢰 가는 목소리. 잘 정돈된, 말 그대로 왕자 같은 느낌.
버려진 왕자도 왕자긴 하네- 정도의 생각을 가졌던 파릭사는 유타의 마법 실력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포레스튼 측의 승리! 3대 2로 포레스튼의 승리입니다!”
관중석에 손을 마주 잡고 앉아있던 학생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피데스, 오디트, 기프트 클래스가 모두 섞여 있었다. 그들은 장식용 완드를 하늘로 집어 던졌다. 환하게 빛나는 장식용 보석들의 빛이 겹쳐 허공에 무지개를 그렸다.
그중 한 명이 눈을 질끈 감고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우아아아아악-!! 우리가 이겼다아아!!”
“감히 포레스튼의 자리를 노려?”
“크하하하! 우리가 이겼어! 우리가!”
파릭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프트와 피데스 클래스가 서로 얼싸안은 채 방방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타! 유타! 유타!”
학생들은 마지막에 승리를 안겨준 유타의 이름을 우렁차게 호명했다. 유타는 여유로운 얼굴로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
교류회가 끝나고 학생들은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에글린턴의 학생들은 훈련장의 콜로세움 경기장을 벗어나 매너스에게로 향했다.
“우리 괜찮을까?”
“당연하지. 왕자님께서 이번 교류회는 단순 이벤트로 생각하라고 하셨잖아.”
“리트리, 정말이지?”
그럼 당연하지. 리트리는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편 끝에서 매너스의 실루엣이 보이자마자 리트리를 포함한 에글린턴의 아이들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매너스는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와 5명의 아이들을 향해 양팔을 뻗어 안아주었다.
“수고 많았다. 이겼으면 좋았겠지만 진 건 어쩔 수 없지. 오늘의 실패를 잊지 말고 기억하면 된단다.”
“…죄송해요.”
“지기 싫었는데.”
매너스의 따뜻한 말에 참았던 울음과 분이 울컥 솟았다.
사실 그들은 두려웠었다. 교류회가 에글린턴의 개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도 그 결과가 자신들에겐 ‘어떻게든’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왕자님이 만약 우릴 버리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우리도 먹고 살길을 찾아야지. 하지만 난 아카데미에 다니고 싶단 말이야. 걱정하지 마, 왕자님이 그럴 분은 아니시잖아. 시끄러운 속마음을 읽은 듯 매너스가 그들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자, 일단 돌아가자. 에글린턴의 건물은 아직 세워지는 중이란다.”
돌아선 매너스의 등을 따라나서며 그들이 우렁차게 답했다.
“네! 왕자님!”
***
포레스튼의 대표단이 콜로세움 대기실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교수들은 오늘의 MVP를 뽑기 위해 분주하게 상의 중이었다. 관중석에 남은 학생들은 오늘의 교류회에 대해 열띤 토의를 벌이고 있었다.
“누가 상을 받을까.”
“당연히 챈들러 선배님이지, 여유롭게 이기는 모습 못 봤어?”
“그래도 쐐기를 박은 건 유타잖아. 디찬 선배도 대단했다고! 그런 마법은 난생처음 봤다니까?”
“챈들러 선배의 마법은 또 어떻고?”
“유타 왕자님 너무 잘생기셨어. 여자친구는 없겠지? 있을까?”
서로 다른 의견이 오가는 사이, 니콜과 함께 앉아있던 아드리안이 관중석에서 일어났다.
니콜이 물었다.
“도련님, 어디 가세요?”
“형님한테 가보려고.”
“레이먼 도련님께요? 지금은 대기실에 가 계실 텐데. 그럼 같이 가요. 관중석에서 대기실로 가는 길은 복잡할 거예요.”
니콜의 말에 아드리안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가 답했다.
“아냐, 내가 없는 사이 형님에 대해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지 잘 들어줘.”
교류회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형님이 진 건 맞으니까. 분명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학생들도 있을 거야. 아드리안은 제 형이 경기에서 일부러 패배했다는 걸 대충 눈치채고 있었다. 아드리안의 당부에 니콜은 고갤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알겠어요, 작은 도련님. 길이 여러 갈래니 헷갈리지 마시고요.”
“응.”
니콜의 당부를 들은 아드리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복잡한 복도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밖으로 갈까.”
길을 잃었을 땐 빛을 따라가라고들 하니까. 헤매던 아드리안이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왼쪽으로 몸을 꺾자마자 그는 누군가와 부딪히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당황한 그가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희미하게 빛이 들어오는 시야 속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이 보였다.
“어.”
그가 환하게 웃었다. 흑발의 머리, 피처럼 붉은 눈동자. 아드리안은 그의 얼굴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 보면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아드리안이 서둘러 고갤 숙였다. 그는 그러지 말라는 듯 아드리안의 어깨에 다정하게 손을 올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래. 기억났다. 그 붉은 머리에 그 키. 너, 이번에 왕실에 방문했던 레이먼의 동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