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4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47화(47/275)
“맞을 텐데 답이 없네?”
서머셋이 아드리안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아드리안은 당연히 서머셋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드리안이 참가했던 체험 프로그램 개최자가 4왕자인 서머셋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내내 아드리안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있었다. 바로 자랑스러운 자신의 형이었다.
‘아드리안 님, 아드리안의 형님분이 바로 그 레이먼 맞습니까?’
‘오, 저도 딱 한 번만 그분의 실물을 보고 싶어요. 대체 왜 그런 훌륭한 분이 무능력한데다가 마법에 재능이 한 치도 없다는 이상한 소문에 휩쓸린 걸까요?’
‘그거야 그 재능을 시기 질투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귀족가의 자제 중에서도 레이먼에 관한 소문은 악질적이기로 유명했는데 대다수는 이를 공작가에 대한 재미있는 뒷담화 거리 정도로 생각하곤 했었다. 차마 공작가에 대들 수는 없으니 뒤에서라도 욕하고자 하는 인간의 단순한 본능 같은 것 말이다. 아드리안 역시 형님에 대한 이러한 소문을 알고 있었고 이런 소문을 바로잡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애초에 아드리안은 성인이 아니었다. 사교회에 참가할 나이도 아니었거니와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런 훌륭한 형님분을 두신 아드리안 님은 참 행복하시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만이었다. 형님은 혼자서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분이셨는데.
그들의 칭찬에 아드리안은 한껏 뿌듯한 얼굴로 화답했고, 그 대화를 멀리서 지켜보던 게 바로 서머셋이었다.
너무 멀리 있어 대화 내용을 전혀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드리안이 서둘러 고갤 숙이고 답했다.
“맞습니다.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너무 당황해서 그만 영광을 표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괜찮으니 고개를 들거라.”
레이먼의 동생이라면 내가 챙겨줘야지.
서머셋은 환하게 웃으며 아드리안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렸다.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손이었다. 옷감 위로도 느껴지는 한기에 아드리안은 웃지 못하고 그를 가만 올려다보았다.
“스플린 가문의 붉은 머리와 푸른 눈은 어딜 가나 눈에 띄네.”
“칭찬 감사합니다.”
“너희 형이 져서 많이 섭섭하겠어. 그치?”
“포레스튼이 승리하였으니 괜찮습니다.”
“하하하, 형보다 동생이 달변가네.”
그렇게 말한 4왕자의 눈이 뱀처럼 가느스름하게 변했다. 그는 아드리안의 몸속 마력을 가늠하고 있었다. 서클의 크기를 보면 대략적인 마력의 양을 알 수 있었고 마법사로서의 가능성 역시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해야 이런 파악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드리안의 서클의 크기를 확인한 서머셋의 입꼬리가 작게 올라갔다.
“형보다 나은 동생 없다더니 동생이 더 낫구나.”
“…아닙니다.”
“아냐, 아냐. 재능만큼은 네가 더 위야. 나이가 어떻게 되지?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정도면 내년에 포레스튼에 입학할 예정인가?”
아드리안이 답했다.
“14살입니다. 내년에 조기 입학 시험을 치르려 합니다.”
“조기 입학! 그거 좋지. 내년이면 내가 딱 5학년이 되는 해니 만날 수 있겠네. 나는 이제 그만 가봐야 하니… 즐거운 만남이었어, 아드리안.”
서머셋이 따뜻하게 웃었다. 근엄한 말투였으나 느껴지는 온화함에 왕족이라는 걸 잠시 잊을 뻔한 아드리안이 곧장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예.”
“그래. 또 보자.”
그리고 대기실은 저쪽이야. 서머셋은 아드리안이 가지 않았던 복도 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대기실로 가는 중이라고 말을 했었나.’
하긴. 내가 형을 찾으러 왔을 거라고 당연히 예상했겠지.
작은 의문을 남긴 아드리안은 4왕자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쭉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문 너머로 전해지는 대기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잘했어! 너네들 진짜 대박이다!”
호박색 눈. 문을 열자마자 눈에 띈 건 호박색 눈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그녀는 레이먼, 유타, 오닉스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아드리안.”
아드리안을 발견한 레이먼은 곧장 제 동생 쪽으로 다가오려 했으나 실패했다. 블랭킷이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잇, 블랭킷! 이거 놓으라고요! 처음 보는 형의 16살스러운 모습에 아드리안은 그만 풉- 하고 웃어 버렸다.
“세상에.”
블랭킷은 아드리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아드리안에게 속삭였다.
‘너네 동생 인물이 너보다 훨 낫다, 야.’
‘저도 압니다.’
그러니까 이것 좀 놓으시라고요. 레이먼의 발버둥을 못 이긴 척 놔준 블랭킷은 곧장 아드리안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난 4학년 블랭킷이야. 너희 형님의 4학년 선배고.”
“아, 저는 아드리안 반 스플린입니다. 올해 14살이 되었습니다.”
“어머, 어리다. 그럼 내가 졸업하고 나서 입학하겠네?”
“조기 입학을 하고 싶어서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 형제가 쌍으로 영리한가 보네.”
“그런 천박한 말투를 쓰다니!”
블랭킷의 ‘쌍으로’라는 표현에 꽂힌 건지 크리스가 갑자기 발끈하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크리스 세바스찬 파리앙입니다. 공작가의 자제니 말을 높이도록-.”
“뭐래. 다 낮추면서. 게다가 포레스튼에 입학하면 어차피 반말해도 되잖아.”
“아직 입학하지 않았으니 관계없다.”
생각보다 시끄러운 분위기에 아드리안은 얼른 레이먼의 등 뒤로 숨었다. 물론 레이먼보다 큰 덩치가 숨겨지진 않았다.
“다들 승리를 자축하는 중이었어.”
“형님은 괜찮으세요?”
“나…? 아, 다친 곳? 괜찮아. 치료도 받았고.”
“거기 동생, 너희 형 일부러 진 걸 이미 눈치채고 있지 않아?.”
아드리안의 걱정에 소파에 누워 쉬고 있던 챈들러가 얼굴을 가린 책을 떼어내며 물었다. 정곡을 찔린 아드리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 챈들러는 하하 웃으며 다시 책으로 얼굴을 가렸고 유타는 꽤 놀란 얼굴로 레이먼을 바라보았으며 오닉스는 잔뜩 화난 포도알이 되어 레이먼의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뭐? 너 일부러 졌다고? 왜 그딴 짓을-!”
격분한 오닉스와 달리 레이먼은 평화로운 얼굴로 말했다.
“그게 더 기사 쓰기 좋으니까.”
“뭐?!”
“밀리포레 말이야.”
그 말에 오닉스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레이먼의 목을 붙들었던 양손을 내려놓았다.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자기가 수도 편집장이라도 돼?’
– 자자, 시상식이 있으니 다들 밖으로 나오세요.
대기실의 난장판을 정리하려는 듯, 마법 전단지가 날아와 그들에게 시상 소식을 알렸다. 에글린턴의 5인은 이미 왕성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럼 이번 교류회 우승팀의 1등을 발표하겠습니다. 1등에게는 왕성에서 지원 가능한 범주의 상을-.”
“1등한테 상도 주나 봐!”
“대체 누가 될까?”
“1등은- 디찬 모턴!”
교류회의 우승팀은 포레스튼이었으므로 상을 받을 1등 또한 포레스튼에서 나왔는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디찬이었다. 디찬은 기대하지도 않았는지 평소라면 반쯤 감겨 있을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단상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는 디찬을 크리스가 높이 높이 들어 껴안았다.
“나의 피앙세! 나의 신부! 나의 꽃! 나의 검! 나의 완드! 우리 자기는 정말이지 최고야!”
“크리스, 내려줘. 머리 아파.”
“하하하하하! 디찬, 역시 우리 자기가 나의 길이라니까. 이 영광을 모두 자기에게 돌리겠어!”
“원래 내 꺼야, 크리스.”
아쉽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레이먼이지만 굳이 티를 내진 않았다. 디찬이 1등을 한 이유는 교류회에서 선보인 마법이 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새로운 마법식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1등을 할 만도 했다.
레이먼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생각하며 교류회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우승에 쐐기를 박은 건 유타였으니 적어도 이 교류회에 관중으로 참석한 이들은 유타의 이름과 실력을 기억할 테고 소문은 빠르게 번질 테니까. 게다가 밀리포레에서도 이 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을 거다. 유타 스테디움 스턴은 이제 버려진 왕자가 아니라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겠지.
‘별명은 뭐로 붙이지.’
속이 시끄러워진 레이먼의 곁에 아드리안이 딱 붙어 섰다.
“형님, 아쉽지 않으세요?”
“…별로.”
뭐 1등 상품이야 좀 아쉽긴 했지만.
‘비상금을 마련해둘 기회는 날아갔네.’
밀리포레 판매금액에 더하려고 했는데. 뭐, 날아간 기회를 어쩌겠는가. 다음에 찾아올 기회를 쫓아야지.
***
교류회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방학은 쏜살같이 흘렀다.
레이먼은 방학 내내 집에 틀어박혀 밀리포레에 담을 기사를 수정했고, 가끔씩 니콜과 함께 검술 훈련을 했으며 아드리안의 마법을 봐주기도 했다.
개학 전날. 아드리안은 레이먼과 마지막 마법 훈련을 마치고 물었다. 방학 동안 그들의 훈련 결과는 놀랍게도 레이먼의 전승이었다. 마력 양으로만 따졌을 땐 아드리안 쪽이 우세했으나 마법을 다루는 노련함이 달랐다. 겨우 2살 차이인데 이 정도라니.
시간이 흐를수록 다가오는 초조함을 아드리안은 감추기 어려웠다.
조기 입학 시험은 내년 4월. 그러나 아드리안이 불안해할수록 레이먼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답했다.
‘네 실력은 거의 2학년이야. 그러니까 입학시험 자체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을 텐데, 왜 그래?’
‘하지만 형님께 한 번도 이기질 못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내 실력이 4학년이니까.’
아드리안의 걱정을 한시름 덜어준 레이먼은 그날 저녁 아버지에게 향했다. 오랜만에 들른 아버지의 집무실에는 어디서 구했는지 알 수 없는 밀리포레 기사, 레이먼의 성적표, 포레스튼에서 보낸 레이먼에 관한 편지가 벽에 걸려있었다.
“더 필요한 건 없고.”
“용돈을 조금 더 올려주세요.”
“용돈을?”
“저번 학기에는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까요. 밀리포레를 좀 더 확장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 알겠다.”
“감사합니다.”
부자간의 무미건조한 대화가 끝나고 레이먼은 다시 방에 틀어박혔다. 기사는 거의 완성된 참이었다. 개학한 날 바로 인쇄를 시작하면 이틀 후쯤 교내에 뿌릴 수 있겠지.
다음 날, 레이먼은 아버지와 아드리안, 그리고 시종인들의 배웅을 받으며 포레스튼으로 향했다. 구름을 뚫자 다시 모습을 드러낸 포레스튼. 익숙한 광장에 도착해 탁 내려서자마자 주위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부분은 경외의 눈빛을, 일부는 질투의 눈빛을 보냈다.
‘다른 애들은 도착했나.’
개학 첫날은 1학년들도 분주한 날이었다. 새로운 시간표가 나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레이먼은 개학식 전까지 생활관에서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니콜과 함께 돌아온 생활관 클래스의 방 벽은 깔끔하게 보수되어 있었다. 이제 오닉스가 더 넘어올 일도 없어 보였다.
“니콜, 그 책은 다 읽은 거니까 네가 들고 가서-.”
“으아아아아아악-!”
한참 짐을 정리하던 도중, 방 밖 복도에서 이상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