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4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48화(48/275)
레이먼이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기프트의 1학년 꼬맹이들이 기프트 전용 휴게실을 이리저리 날뛰고 있었다. 오닉스도 비명 소리를 듣고 나온 모양이었다. 평소보다 더 부풀어 오른 보라 머리를 오닉스가 푹푹 긁으며 말했다.
“뭐하냐?”
오닉스의 말에 그 자리에 우뚝 선 1학년 중 한 명이 이번엔 제자리에서 위로 크게 점프했다. 그는 들고 있던 종이를 집어 던지고 오닉스의 양손을 덥석 잡았다.
“오닉스-! 너 대결을 왜 포기한 거야?!”
포기?
“교류회 말이야. 가문 행사가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었는데 교류회가 그렇게 재밌었다며. 너와 레이먼이 아쉽게 졌다고 들었거든. 게다가 네가 경기를 포기했다고들 하는데 다들 이유를 몰라서 말이야. 자, 말해봐. 내가 들은 소문이 맞는 거야?”
뭔 소문.
오닉스가 눈빛으로 그렇게 물었다. 레이먼도 궁금했다. 대체 무슨 소문이 돌고 있는 걸까?
“네가 에글린턴으로 전학을 간다는 이야기가 나돈다고.”
“뭔 개소리야.”
“그렇다고 머리를 때리면 어떡해, 오닉스.”
“넌 더 처맞아.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더 퍼지는 거 아니야.”
“아파, 오닉스!”
“더 처맞아, 야, 어디 가. 야!”
오닉스는 도망가는 친구를 쫓아 그 애의 대가리를 깨기 시작했다.
레이먼은 그 광경을 보며 하하 웃었다.
‘밀리포레 다음 호를 얼른 내야겠네.’
그런 소문이 퍼져있을 줄은 몰랐다. 하긴. 교류회에 참석한 모두가 상대편의 마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학생회 선배들이나 고학년들이 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먼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들었다. 도망친 동급생이 버리고 간 종이였다.
“시간표잖아.”
1학년 2학기 시간표였다. 포레스튼은 1학년까지 수강 신청을 직접 하지 않았으므로 아마 모든 클래스의 1학년은 같은 수업 시간표를 들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클래스별로 차이가 있기도 했는데 그건 한 학년 위의 클래스장이 수업 하나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프트 클래스 1학년이라면 기프트의 2학년 클래스장 파릭사가, 피데스 기숙의 1학년이라면 피데스의 2학년 클래스장이 수업 하나를 고르는 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1학년 2학기에만 잠깐 도입되었다. 순전히 재미 삼아 넣은 교칙임이 틀림없었다.
“마법추리학?”
그리고 이번 기프트 1학년생들이 들을 수업은 ‘마법 추리학’이었다.
‘파릭사 선배가 추리를 좋아했나?’
레이먼은 도서관에서 읽었던 수업에 대한 설명자료를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포레스튼은 필수 수업과 선택 수업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선택 수업은 추후 선택할 진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케이스가 많았다.
예를 들어 마법 기사단에 들어가고 싶다면 전술 필수 수업을 들은 후, 마법과 공격 무기를 조합하는 선택 수업을 듣는 편이 좋았고 왕실 마법사라면 왕실의 역사나 왕실 제도 도입 마법에 대한 선택 수업을 우선적으로 추천받았다.
그런 선택 수업 중에서도 애매한 수업이 바로 이 마법 추리학이었다. 이미 벌어진 사건에서 마법이 쓰였는지, 쓰였다면 어떤 마법인지 밝혀내는 방법이나 과정을 실습하는 과정.
물론 어디에나 쓰일 수는 있었다. 마법사는 고문에도 종종 들어가곤 했고 암살 과정에서 마법이 쓰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파릭사 선배한테 찾아가 볼까.
***
우글우글. 첫 방학을 마치고 개학식을 맞이한 1학년들이 모두 중앙홀로 보였다. 개중에는 머리를 호밀빵 색으로 염색하고 온 놈도 있었고 어떤 놈은 완드를 3개나 사 왔다며 자랑했다. 시제 완드를 사 오는 게 전혀 자랑이 아닐 텐데도 말이다.
레이먼과 유타, 오닉스가 중앙홀에 들어서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꽂혔다. 유타를 따라 들어온 렌스도 무의식적으로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유타도 살짝 당황한 듯 레이먼을 곁눈질했다. 정작 레이먼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넌 떨리지도 않아?”
유타가 물었다. 레이먼은 유타를 슥 올려다보고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익숙해져. 나중엔 이보다 많은 사람을 상대할 거잖아.“
“맞는 말이지만.”
이런 시선이 익숙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는 건 왕성에서부터 그랬으니까. 다만 유타가 어색한 건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이었다. 단순 왕족으로서의 경외가 아닌 그 자체에 대한 기대감, 경외심. 선망과 질투가 뒤섞인 오빠들… 아니, 형님들만이 알고 있던 그 풍경.
이제는 그 풍경이 자신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그려준 건 다름 아닌 옆에 선 작은 동급생.
“넌 나중에 꼭 가신으로 들여야겠어.”
“그게 무슨 당연한 소리야…? 날 이렇게 부려 먹고 안 쓰겠다면 범죄야.”
부당해고. 노동착취. 시스템 착취. 왕 후보의 착취 사건. 기사화 제목에 대한 별의별 상상을 하며 레이먼은 중앙 회랑을 가로질렀다. 몇몇 학생들은 오닉스를 보며 에글린턴, 에글린턴- 이라며 수군거리기도 했으나 정작 본인은 별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홍해처럼 갈라진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가장 앞자리에 선 3명은 한가운데 책상에 놓인 시간표를 집어 들었다. 시간표를 챙겨오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배려인 모양이었다.
“근데 이 추리학 수업은 대체 왜 넣은 거래?”
“그거야 모르지. 기프트라서 그런 거 아니야?”
“우리가 뭐.”
“우린 왕실에 잘 안 가니까. 너도 갈 생각 없잖아.”
“…뭐, 그렇긴 한데.”
기프트 학생들 사이에서도 파릭사가 넣은 추리학 수업은 꽤 화제인 모양이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교류회와 추리학 수업 외엔 거의 없었고 종종 ‘피데스 놈들이 과연 이번 학기에는 정신을 차릴까?’라는 대화가 들리곤 했다.
개학식은 학장의 부재로 빠르게 끝이 났다. 개학 당일에는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모두 클럽 하우스나 예배당, 혹은 생활관 클래스로 돌아갔다.
생활관 로비의 통합 휴게실에 모인 학생들 중 서로 다른 클래스의 학생들이 서로의 시간표를 구경했는데 거기서 또 한 번 ‘추리학’ 수업 이야기가 나왔다.
“피데스 클래스에서는 ‘축복 마법의 이해’ 수업 듣는다던데?”
“너네는?”
“우린 ‘악인은 저주받아야 마땅한가’.”
“와 저주 마법? 개부럽네. 아, 왜 우린 추리인데.”
축복 마법은 고학년이 될수록 줄어드는 쉬운 수업에서 꽤 도움이 되는 선택 수업이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퍼지다 보니 기프트 사이에서는 ‘2학년 클래스장들끼리 3개의 수업을 놓고 경쟁을 했고 파릭사 선배가 진 것이 틀림없다!’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레이먼도 그 소문이 그리 틀린 것처럼 생각되진 않았다. 그 경우의 수가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이유였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었는지 그날 오후 4시, 파릭사가 기프트 클래스의 휴게실에 나타났다. 1학년 아이들은 양 떼처럼 그 혹은 그녀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추리학 수업을 왜 넣었냐고?”
파릭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하하 웃으며 휴게실 가운데 소파에 앉았다.
“난 너희들을 정말 좋아할 줄 알았어. 추리학 수업은 인기 있는 수업은 아니지만 모든 진로에 필요한 기초 상식을 가르쳐주기도 하거든.”
“하지만 피데스는 축복 마법을 배웁니다. 저희도 그런 실용적인 걸 배우고 싶어요.”
“오, 후배. 뭔가 단단히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녀 혹은 그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엘프 특유의 달콤한 이파리 향기가 파릭사에게서 배어 나왔다.
“예를 들어볼까. 귀족이나 왕실의 암살에 가장 많이 쓰인 마법이 뭔지 아니?”
“저주 마법 아닌가요?”
“맞아.”
파릭사의 답에 1학년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저주 마법 수업을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그런 거라면 단일 수업을 들으면 되잖아요!”
멍청하긴. 그런 뜻이 아니잖아. 레이먼은 그렇게 생각하며 파릭사 쪽으로 고갤 돌렸다. 때마침 파릭사도 그를 보고 있었다. 파릭사가 입꼬릴 올려 웃으며 말했다. 레이먼은 등 뒤로 소름이 죽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그녀는 레이먼의 이름을 불렀다.
“레이먼, 레이먼은 어떻게 생각해? 그럼 저주 마법을 듣는 게 그 암살에 쓰인 마법을 알아내는 데 유리할까?”
파릭사의 질문에 이번엔 모두 레이먼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유타한테 물어보지.’
그럼 유타 미담을 하나라도 늘릴 수 있었을 텐데.
레이먼은 혀를 한 번 끌 차곤 답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이유는?”
“저주 마법의 종류는 너무 많고 암살에 쓰일 수 있는 마법의 수는 정해져 있으니까요.”
“정답이야.”
파릭사가 고갤 끄덕였다.
“마법 추리학 수업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재현해서 그때 사용된 마법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지기도 해. 그리고 그 마법과 비슷하게 응용할 수 있는 다른 마법을 배우기도 하지. 암살뿐만 아니라 마법을 이용한 절도, 살인 등 다양한 범죄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축복 마법도 배울 때도 있어.”
“…뭐야, 좋은 수업이잖아?”
파릭사의 설명대로라면 추리학 수업은 너무나 좋은 수업임에 틀림없었다. 혼란스러워진 기프트 학생들이 저마다 지방방송을 켜기 시작했다. 그때 오닉스가 심드렁한 얼굴로 질문했다.
“그걸 근데 왜 저희들이 들어야 하죠?”
“…응?”
“선배님 말씀대로면 1학년이 듣기에 이 수업은 너무 어렵잖아요. 게다가 겉핥기식으로 배워서 인기가 없는 거라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오닉스, 매우 좋은 질문이야. 그래서 다들 기피하는 과목이지. 1학년 때는 너무 어렵고 3학년 때는 너무 방대한 범위를 배우거든. 하지만 그래서 난 지금의 너희들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파릭사가 상냥하게 웃으며 이어 말했다.
“마법 적성을 찾는 건 빠를수록 좋으니까. 여러 가지 마법을 배워보며 자신에게 더 잘 맞는 마법을 찾을 수 있는 수업 중 가장 실용적인 수업은 마법 추리학이고, 고학년이 되면 다들 선택하지 않는 수업이 바로 이 수업이니까. 이건 내가 선배로서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어.”
파릭사의 말투는 언제나 나긋하고 상냥했으며 피데스의 2학년 클래스장처럼 고압적인 말투는 아니었다. 결정을 채근하는 말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녀가 말하면 말할수록 그녀가 내뱉는 모든 단어가 정론인 것처럼 들렸으니 말이다.
그녀의 말을 듣던 학생들의 눈이 점차 반짝이기 시작했다.
“난 이번 기프트 1학년들의 실력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해. 교류회 결과도 다 들었고, 너희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는지도 알게 되었지. 그래서 더욱 이번 추리학 수업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
파릭사가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얘들아, 포레스튼의 학창 시절은 두 번 돌아오는 게 아니야. 아무 의심 없이 서로를 의지하고 힘을 보탤 수 있는 관계는 지금이 전부란다.”
“……”
“그 수업은 조별 과제도 많으니까 더욱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을 거야. 자, 하나둘셋 하면 화이팅을 외쳐볼까?”
파릭사의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기프트 학생들의 “네!”라는 우렁찬 대답이 휴게실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레이먼은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조별 과제?’
조별 과제가 많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