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4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49화(49/275)
레이먼도 조별 과제에 대해 나쁘지 않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일이 더 빨리 끝나고, 좋은 거 아닌가?’
10개의 일을 한 명이 처리하는 것보단 10명이 나눠서 처리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건 10살짜리 꼬맹이도 알 상식이 아닌가. 헌터 시절 대학을 나오지 않은 그가 굳게 믿었던 상식이었다.
하지만 세상엔 상식 밖의 일이 꽤 많았다는 걸 깨닫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이먼, 그가 유태하 헌터로 활동하던 시절 첫 업무에서 그걸 알아버렸으니 말이다.
***
– 유태하 헌터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상에게도 의뢰를 넣어두었습니다
– 아아, 그래요?
– 워낙 파악해야 할 정보가 많아서요. 각각 어떤 구역의 정보를 맡을지는 서로 연락하셔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B급 정보상인 헌터로 맡게 된 첫 일이었다. 정부에서 맡기는 의뢰는 양이 방대해서 다른 헌터들과 함께 맡는 경우가 많다고 듣긴 했었다.
‘혼자 처리하는 것보단 낫겠지.’
그렇게 유태하는 다른 헌터들의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날 바로 다른 헌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헌터 총 10명 중 답장이 온 건 4명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 4명마저도 정상적이지 않았다는 것이고.
– 아, 네네 저는 A구역에서 C구역을 맡으려고요
…누가 정했는데, 그걸? 구역을 정하라고 연락처를 넘겨준 게 아닌가?
– 네? 그 구역은 제가 하려고 했는데요?
제 말이요. 근데 왜 저한테 짜증을 내시는지.
– 제가 맡겠다고 하긴 했는데 워낙 의뢰가 많이 밀려있어서 이번 건은 이름만 올려두려고 하거든요. 보수는 안 받을 테니까 그냥 이름만 올려주세요.
그럴 거면 받지를 말던가.
‘애초에 10명 기준으로 업무량을 정했을 텐데.’
하지만 유태하는 별말을 덧붙일 수 없었다. 그는 초보 정보상이었고 그 업무가 그의 첫 의뢰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희망적이었던 건, 맡은 구역만 처리하면 어찌어찌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헌터들에 비해 까다로운 구역을 맡기도 했고 그 구역만 마감 기한이 이틀 정도 빨랐고 빡센 업무 강도 대비 다른 헌터들과 비슷한 보수를 받았다는 게 열받긴 했어도 말이다.
물론 그 이후로 유태하는 절대 정부 의뢰를, 그리고 아무리 돈이 되는 의뢰라도 협업 의뢰는 받지 않았고 철저히 홀로 활동했다.
***
“…하아.”
수업 첫날. 레이먼은 기운 쭉 빠지는 한숨으로 첫 수업을 맞이했다. 옆자리에 앉은 유타가 그의 발을 툭 찼다.
“왜 그래?”
레이먼은 유타에게 무어라 말해줄지 고민했다. 마법 추리학 시간 때 우린 무조건 같은 조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 아니면 조별 과제 있는 수업은 앞으로 무조건 빠지라는 조언?
‘아니야. 유타는 조별 수업을 들어둬야지. 얜 인간 군상을 좀 다양하게 겪어봐야 해.’
레이먼은 결국 “됐다. 어린 네가 뭘 알겠냐.”라고 고갤 저었다. 그런 레이먼을 유타와 오닉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너도.’
‘열여섯이잖아.’
‘미친놈이.’
레이먼의 미역 줄기 같은 모습은 점심시간에도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밥을 거르진 않았기에 유타도 그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마법 추리학은 마지막 수업이었는데, 그 과목의 교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말해주지 않아 학생들 모두 추리학 강의의 교수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마법 추리학은 매해 교수가 바뀌는 수업이었으므로 올해는 작년과 다른 교수가 배정이 될 터였다. 어쩌면 정교수가 아닌 임시 교수가 올 수도 있었다. 기프트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강의실로 들어섰다.
아직 강의실에 교수는 없었다. 몇 분 있지 않아 강의실로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 학생들은 ‘대체 누구야?’라는 얼굴로 서로를 번갈아 보았고 몇몇 학생들은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레이먼은 전자였다.
‘대체 누구야…?’
포레스튼의 정교수부터 임시 교수까지 머리에 넣고 있는 레이먼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는 화려한 터번을 머리에 둘러싸고 어깨에는 공작새 깃털을 복슬복슬하게 달고 있었으며 입고 있는 케이프는 일반 케이프와 달리 보석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일단 부유한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다들 안녕하신가!”
그는 거대한 풍채에 우렁찬 목소리를 지닌 남자였다.
“음, 그래! 기프트 학생들! 오늘은 첫 수업이니 출석은 굳이 부르지 않겠다. 첫 수업은 보통 하지 않는 게 관례이기도 하니 말이야.”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아하니 귀족도 아닌 듯했다. 귀족 출신 교수들은 수업을 열정적으로 진행하진 않으니까.
“내가 누군지 모르는 학생들도 많겠지. 그래, 어디 보자아. 날 알만한 놈이 누가 있을까. 오, 그래. 혹시 여기에 레이먼 반 스플린이라는 학생이 있나?”
나? 나를 왜 부르는 거지?
“레이먼 학생?”
“예, 제가 레이먼입니다.”
레이먼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교수는 레이먼을 발견하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왔다. 두 계단 높은 위치에 자리했던 레이먼의 바로 옆에 그가 섰다. 어찌나 몸집이 큰지 그림자만으로 레이먼의 몸을 덮어버릴 정도였다.
“우리 딸자식의 말대로 머리가 아주 불타는구만. 하하하하, 실제로 보니 더 그렇구나. 네 머리로 꼬치를 구워 먹어도 되겠어!”
“…농담이시죠?”
“그렇지! 내 말투를 보면 내가 누군지 대강 알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말투?
이 정도로 호탕한 말투를 가진 사람이 있었나? 크리스 선배는 아니고. 어라, 잠깐만. 저 곱슬머리에 이런 말투, 이런 옷차림이면.
“…블랭킷 선배님?”
“으하하하! 그래, 그 애가 내 딸이다! 자, 다들 나를 소개하도록 하지.”
그는 거대한 몸으로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 내려가 다시 칠판 앞에 섰다.
“아그닐 상회의 주인, 지프 아그닐이다. 이번 학기만 임시 교수로 마법 추리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모두 잘 부탁한다.”
“…아그닐 상회?”
“그럼 마법사가 아닌 거야?”
“임시 교수가 추리학을 가르친다고?”
“심지어 이번 학기만 가르친다잖아.”
기프트 클래스는 다른 클래스에 비해 귀족이 적었으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평민 출신에 마법사도 아닌 상회의 주인에게 교육을 받는 게 어색했다.
‘특이하네.’
레이먼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건 유타나 오닉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특히 오닉스는 평민 출신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데에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소란스러워진 강의실 앞 단상을 지프 아그닐이 쾅쾅 쳤다. 그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자연스레 다음 말을 이었다.
“당황스럽겠지. 나는 포레스튼을 졸업한 사람도 아니니 말이야. 불행 중 다행히 아그닐 상회에는 훌륭한 마법사들을 많이 고용했으니 수업 중간중간 마법이 필요할 때는 그들을 불러올 거다. 그럼 여기서 왜 내가 이번 마법 추리학의 교수가 되었는지 말해주도록 하지.”
그는 손가락으로 창문 밖을 가리켰다.
“포레스튼을 졸업하면 너희들은 이 하늘 위가 아니라 다시 지상으로 떨어질 거다. 지상에는 완드 소지법을 어기는 불법 마법사들도 많고, 마법을 이용한 범죄나 사건도 자주 일어나지. 그런 사건을 가장 많이 마주하는 이들은 바로 상회다.”
상회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길거리 프랜차이즈 치킨집보다 많다고 생각하면 편하려나. 상회 연락처 모음에 나열된 수만 해도 3만 개가 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많은 숫자의 연락처 중 대규모 상회의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대규모 상회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상회가 바로 수도를 장악한 아그닐 상회였다. 골목 상권과 왕성에 납품하는 마력석이나 마법 아이템을 꽉 쥐고 있는 그들이 마법사의 그림자와 관련되지 않는 게 더욱 이상했다.
“암살에 쓰이는 마법 물약이나 재료도 우리가 납품하는 경우가 있다.”
지프 아그닐에 말해 모두가 깜짝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그가 말했다.
“그 재료들은 따로따로 구매했을 땐 아무런 위험이 없는 것들이야. 그래서 보통 범죄자들은 각자 다른 명의로 재료들을 구매해 조합하여 마법을 완성하기도 하지. 우리 상회에선 그러한 구매처나 기록, 유통 경로들을 파악해 왕실에 알려주기도 하고 사전에 그런 위험을 차단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해당 재료들을 구입한다면 신원 조사를 추가로 더 한다거나 그들을 몰래 미행하기도 하지.”
지프 아그닐은 호탕한 말투와 달리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나 역시 마법 관련 지식을 웬만한 교수들만큼 가지고 있을 거다. 실전에서 마법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말해줄 수 있겠지. 내가 말하는 실전은 연구나 왕성에서 쓰이는 ‘그런’ 실전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알 거다.”
그가 하는 설명은 놀랄 만큼 논리적이었고 오닉스도 어떤 반박을 하지 않았다.
“다음 수업부터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통해 마법을 배워보도록 하겠다. 자, 다음 시간에 보도록 하지. 나는 바빠서 이만.”
그렇게 말한 지프 아그닐은 서류 한 뭉치를 들고선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가는 길에 레이먼에게만 슬쩍 인사를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나가고 난 뒤 학생들은 반으로 갈라졌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도 아닌데 수업을 가르치는 건 아니지 않냐 파와 실전 마법을 알고 있고 마법사 고문도 불러준다는데 뭐가 문제냐 파였다.
물론 레이먼은 그런 쓸데없는 분쟁에 끼지 않았다. 유타는 끼려다 레이먼에게 끌려 클럽 하우스의 밀리포레 사무실로 향했다.
“왜 끼면 안 돼?”
“왕족이니까.”
“그게 왜?”
“네가 지프 아그닐한테 힘을 실어주면 아그닐 상회가 네 쪽에 붙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 거니까.”
오. 그 말에 짧은 감탄사를 뱉은 유타가 재차 질문했다.
“그게 왜? 좋은 거 아니야?”
“우린 좋지. 블랭킷 선배도 일단은 우리 클럽의 클럽장이니 사실상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데?”
“지프 아그닐은 아그닐을 이끄는 사람이야. 그 딸이랑 아빠의 노선이 같다고 보장할 순 없잖아. 물론 그분을 우리 쪽에 끌어들이긴 할 거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사람에게 우린 잡을만한 물고기가 아니거든.”
“덜 컸다는 소리지.”
소파에 누워있던 오닉스가 답했다. 오닉스는 레이먼이 쓴 기사를 한 번 쓰윽 훑고는 오케이 사인을 내렸다.
“네 기사도 다 읽었지?”
“그거 읽어보라고 준 거 아니야? 어, 괜찮음. 그냥 실어. 근데 하나만 묻자.”
“뭐?”
오닉스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긁었다. 그가 고민할 때 자주 하는 제스처였다. 오닉스는 잠깐 망설이다 결국 입을 뗐다.
“너희들은 그… 숨길 생각이 없지?”
“어떤 걸?”
레이먼이 물었다. 오닉스는 이번엔 유타 쪽을 가만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한 번 더 끄응 앓는 소릴 냈다.
“뭔데. 말을 해야 알지.”
이번엔 유타가 답답했는지 오닉스의 어깨를 퍽 쳤다. 앞으로 통통통 밀려난 오닉스가 알았다는 식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너 진짜 왕 되려고 그러냐?”
“….”
“….”
“아니, 왜 너희들이 그런 표정을 지어. 너희가 티 다 냈잖아, 내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