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5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59화(59/275)
[ 선별된 왕 후보에 변경이 있습니다. ] [ 변경 사항을 확인하세요. ] [ 왕 후보 친밀도 하락으로 매너스 스테디움 스턴이 왕 후보에서 제외됩니다. ] [ 친밀도가 올라가면 다시 추가됩니다. ]‘망할 시스템이. 뭔 소리야?’
레이먼은 다시 상태창을 살폈다. 그러나 시스템 창에 적힌 대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왕 후보에 등록되어 있던 매너스가 빠져있었다.
“레이먼?”
블랭킷이 레이먼의 볼을 쿡 질렀다. 그녀는 레이먼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최근 자신의 아버지가 영상구로 대화를 나눌 때마다 매번 레이먼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번에 ‘레이먼이 뭘 했네.’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 있어?”
그러나 길게 이야길 나누기엔 레이먼의 정신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레이먼은 잠시 멍을 때리다 화가 난 듯 ‘이 미친-!’이라며 낮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빠르게 복도를 가로질러 쌩하니 자리를 떠 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블랭킷이 레이먼의 등 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레이먼이 방금 네 말을 쌩 깐 거야?”
“어, 아마?”
***
한참을 종종걸음으로 앞서가던 레이먼은 예배당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이제야 꽃길이 드리우나 싶었는데…!’
매너스만 왕 후보로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다면 레이먼의 평화로운 생활은 보장된 셈이었다. 서열이 낮은 유타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쓸데없는 쿠데타를 벌이지 않아도 됐고, 졸업 후 왕실에 들어가 귀찮은 뒷공작을 목숨 걸고 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 그런 기회는 물 건너갔다.
‘잠깐.’
아니지. 친밀도가 올라가면 다시 왕 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는 거 아니야? 턱에 손가락을 건 레이먼이 입술을 비죽 내민 채, 생각했다.
어차피 한 번 등록된 후보라면 재등록도 그리 어렵진 않을 터였다. 잠깐의 대화만으로 매너스는 쉽게 등록이 되었고, 앞으로는 에글린턴 개교나 교류회 일로 매너스가 자주 포레스튼을 방문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좋게 생각해야지. 좋게.”
오히려 매너스가 쭉 왕 후보에 남아있었다면 레이먼의 속은 더 시끄러웠을 것이다.
그동안 유타에게 했던 말들이 많지 않은가. 왕이 되고 싶냐느니, 왕이 되는 걸 도와주겠다느니. 게다가 이미 유타의 비밀까지 알고 있다! 이런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매너스가 왕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꽤 힘든 일이었을 거다.
레이먼은 신에게 모든 일을 맡기기로 했다. 문득 자신이 예배당 앞에 있다는 걸 깨달은 레이먼은 예배당을 향해 짧게 기도했다. 그리고 고갤 휙 돌려 앞으로 가려는데 익숙한 뒤통수 보였다.
‘오닉스?’
오닉스는 다른 애들이랑 나간 거 아니었나?
마침 추리학 수업이 마치는 시간이긴 했다. 하지만 저녁 늦게 돌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었는데. 호기심을 참지 못한 레이먼은 벽 너머로 사라진 오닉스를 찾아 나섰다. 누군가를 들키지 않고 쫓는 데에는 꽤 일가견이 있었다.
‘키가… 오닉스보다 큰 거 같은데?’
포레스튼 기프트 클래스의 1학년 중 레이먼과 그나마 비슷한 체격을 찾으라면 바로 오닉스였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체격이 오닉스와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어깨는 넓었고 키는 크리스보단 작았지만 적어도 오닉스보다는 컸다. 게다가 뽀글머리가 아니었다. 오닉스는 뽀글머리인데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오닉스가 가발을 쓴 건가?
‘당연히 아니겠지.’
그 빌미로 머리를 잡아당겨 볼까, 생각하던 레이먼은 잡생각을 얼른 지우기로 했다.
지금 제 눈앞의 남자는 오닉스가 아님이 분명했다. 그는 복도를 따라 이젠 학습관으로 향했다. 거침없는 발걸음이 그가 이곳에 익숙한 사람, 고학년이나 졸업생이라는 걸 말해주는 듯했다. 어두운 케이프로 옷가지를 가려, 입은 옷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케이프 아래에 태양보다 훤히 빛나는 보석으로 치장된 왕실 마법사나 왕실 마법 기사단 제복을 입고 있을 수도 있었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학습관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그들은 오닉스의 머리 색을 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선 잠깐 저들끼리 쑥덕대다 깜짝 놀라 90도로 인사했다.
그 바람에 레이먼도 그의 등 뒤에서 인사할 뻔했다. 레이먼도 얼른 그 남자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결국 참지 못한 레이먼은 몰래 쫓는 걸 포기하고 학생들 틈으로 섞여 들어가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누군데?’
하지만 얼굴을 봐도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레이먼은 걸어가던 오디트 클래스 1학년의 목덜미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너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지금, 저분이 누군지 여쭤본 거야? 잠깐, 너 레이먼이지?”
“어.”
“우리 학교의 최고 유명 인사가, 그것도 신문을 쓴다는 녀석이 저분을 모른단 말이야?”
“어. 그래서 누군데.”
“마탑주시잖아. 현존하는 최고의 마탑주! 뭐, 마탑주는 저분 빼고 다 돌아가셨으니까 저분이 최고인 건 당연하긴 한데. 어찌 됐든!”
아, 그래? 저 사람이 마탑주라고? 레이먼이 작게 중얼거리며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탑주에 관해 글로는 많이 접했지만 얼굴을 보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 포레스튼 설명회나 다른 귀족들의 파티에 얼굴을 비췄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자신도, 전 레이먼도 그런 곳엔 잘 참석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모를 만도 했다.
레이먼은 천천히 마탑주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같은 보라색 머리인데도 오닉스의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아무래도 오닉스는 제 어머니 쪽을 많이 닮은 모양이었다.
그제야 레이먼은 왜 오닉스가 왜 오늘 기어코 밖으로 나가겠다며 꿍얼댔는지 알 수 있었다.
“마탑주님, 포레스튼엔 어쩐 일이세요?‘
4학년처럼 보이는 당돌한 학생 하나가 마탑주를 향해 질문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처리할 게 있어서 왔단다. 에글린턴 건으로 말이야.”
“에글린턴!”
“우리한테 깨진 에글린턴 말이야?”
“에글린턴은 포레스튼보다 못한 학교예요!”
“걔넨 우리한테 완전 깨졌거든요. 낄낄낄.”
학생들은 에글린턴에게 승리한 사실을 자랑하듯 늘어놓았다.
‘이렇게 생각이 짧은 애들이 있나.’
레이먼은 그런 아이들을 심드렁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생각을 해봐라. 에글린턴에서 교수로 세울 게 마탑의 마법사들이라면 마탑주가 에글린턴의 학장이 될 게 뻔한데. 그런 얘길 미래의 에글린턴 학장에게 해서 좋은 게 뭐가 있겠는가! 레이먼은 당장이라도 그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박아 한 명씩 뚝배기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제 역할도 못 하는 뚝배기는 깨져야 마땅했다.
그런 학생들을 가만 내려다보던 마탑주는 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렇군. 노력하지. 다음에는 너희들을 꼭 이길 수 있도록.”
“예? 아!!”
학생들은 그 대답에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걸 이제 알았냐, 이 멍청이들아.’
“이만 가지.”
마탑주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 교무실 쪽으로 향했다. 이번엔 레이먼도 뒤따르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는 어느새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닉스는 언제 올까?’
아마 그 녀석이면.
‘더 늦게 오려고 뻗대고 있겠네. 이거 때문이었나.’
“네가 레이먼이지?”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 레이먼의 이름을 부른 거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마탑주가 우두커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는 물끄러미 레이먼의 붉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 그리고 길거리 조약돌처럼 치이기 좋은 체격을 한참 바라보았다.
에글린턴의 학장 자리는 마탑주 자신도 원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하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뿐이었다. 마탑주가 왕실에 설설 기는 직책은 아니었으나 밉보여서 좋은 건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나름대로 제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었는데, 제 자식이 포레스튼에 입학했으니 어디 한 번 구경이라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만한 명분이 없었다.
그 와중에 들어온 에글린턴의 학장 자리는 나쁘지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서 잡았다. 교류회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제 아들놈이 에글린턴과의 대결에서 진 건 알고 있었다.
그럴 애가 아닌데. 덜떨어진 놈들이랑 놀다 그렇게 된 건가? 그래서 조사해보니 나름 이름 있는 가문의 실력 좋은 놈들이랑 제일 친한 게 아닌가.
그래서 그는 제 아들의 친구와 한 번 얼굴을 마주하고 싶었다. 이야기도 나눠 보고 싶었고. 못난 아버지의 위치를 이해받기 위해선 주변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말이 있으니까.
막상 포레스튼에 도착하니 아들놈은커녕 친하다던 5왕자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까부터 제 뒤를 졸졸 따라오는 붉은 머리가 한 명. 쟤도 분명 우리 아들이랑 친구였지?
마탑주는 최대한 온화한 얼굴로 교무실을 등진 채 레이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네?”
레이먼이 되묻자 마탑주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최대한 상냥하게, 상냥한 얼굴로.
“레이먼이 아닌가?”
“레이먼은 맞습니다. 근데 절 아십니까?”
마탑주의 온화한 목소리와 상냥한 표정을 올려다보며 레이먼은 생각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존나 무섭게 생겼네.’
이러니까 오닉스가 피했나?
오닉스, 얼른 돌아와. 너희 아빠가 나 쳐다봐.
***
“이제 그만 올라가는 게 어때? 너 간식도 다 샀잖아.”
유타가 렌스의 양손에 들린 간식거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오닉스는 단호했다. 그가 고개를 내저으며 대꾸했다.
“저녁까지 먹고 갈 거야.”
“……”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을 거란 레이먼의 예상대로, 오닉스는 소여 스트릿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처음엔 오닉스를 잘 따라다니던 유타도 어느새 지친 얼굴이었다. 수업이 끝날 때쯤엔 돌아가려나 싶었는데 죽어도 다시 올라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유타는 클래스 벌점 규정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다행히 밤 9시까진 벌점을 주지 않았지만 그 이후부턴 1시간마다 10점씩 벌점이 들어갔다.
“그런데 지프 교수님께 마차를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건가? 이미 수업이 끝난 시간인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테디가 물었다. 그는 길목에 세워두고 온 값비싼 마차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위치가 점차 마차가 주차된 곳에서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닉스가 손을 내저었다.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바디랭귀지였다.
“당연하지. 마차가 설마 한 대뿐이겠어? 그 부자 상인이?”
테디는 오닉스의 당찬 모습에 감탄했다.
“역시 감옥에 다녀온 놈은 배포가 남다르군.”
그 반응에 유타가 오닉스 곁에 다가가 슬쩍 속삭였다.
“설마 쟤 아직도 네가 감옥에 다녀온 줄 아는 거야?”
“그냥 둬. 그리고 저녁 늦게 돌아가는 대신 네가 원하는 식당에 가면 되잖아. 어디 가고 싶은데? 길 건너 가재 집? 아니면 스테이크 하우스? 정 싫으면 너희 먼저 올라가든가.”
오닉스는 제 아버지가 오늘 포레스튼에 방문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탑의 연락책이 미리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8시는 넘겨야 해.’
칼 같은 오닉스의 모습에 결국 유타가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됐어. 넌 내가 먼저 올라가 버릴, 그런 의리도 없는 놈으로 보여?”
“있냐?”
“잠깐.”
“뭐야.”
두 사람의 말재간을 지켜보던 테디가 한 곳을 가리켰다. 덩달아 오닉스와 유타, 렌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했다.
어디서 많이 본 금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