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61)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61화(61/275)
웃음이 끊이지 않는 두 사람을 보며 레이먼은 경탄했다. 눈치 스킬이 없었다면 저 두 사람의 사이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단하군.’
레이먼은 결국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 시간 내내 차만 홀짝였다. 중간중간 눈치 특성이 발동할 때마다 레이먼은 특성을 꺼버리고 싶다 생각했다. 물론 그건 불가능했지만. 두 사람은 30분 정도 대화를 했는데, 레이먼은 특성이 발동될 때 빼고는 유타에 대해 생각했다.
예를 들어, 에글린턴이 정식으로 개교한 뒤에 유타가 취해야 할 스탠스라든가. 혹은, 유타가 자리 잡은 이후에 왕실에선 어떤 식으로 입지를 굳혀나갈 건지, 동시에 매너스나 서머셋의 평판을 어떻게 떨어뜨릴 것인지 등을 말이다. 왕 후보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둘 다 제거해야 할 경쟁자니까.
자고로 완벽한 조형물의 입지나 평판을 떨어뜨리는 건 쉽다. 작은 생채기에도 그 가치를 잃어버리니 말이다.
유타는 그런 점에 있어선 유리했다. 처음부터 가진 게 없는 놈이라서.
하지만 대신, 유타를 ‘무엇을 가진’ 놈으로 만들지는 아직 정하기 어려웠다. 훗날 유타가 유리아가 되었을 때도 납득할 만한 업적. 절대 무시 못 할 업적을 만드는 건 난이도가 높았다. 말한 대로 망치는 게 더 쉬운 법이니까.
뭐, 사실 서머셋이나 매너스를 죽이는 선택지가 쉽지.
레이먼은 속이 문드러질 법한 잔인한 상상을 하며 홍차를 홀짝였다. 열심히 혀를 놀리는 학장과 마탑주는 포레스튼 1학년의 속이 이렇게 시커먼 줄은 모르겠지.
“잘 알았습니다. 이 자료는 제가 들고 가도 될까요?”
“물론이죠. 그러려고 가져온 거니까요. 다만, 너무 무거워서.”
“아, 그건 괜찮습니다.”
학장의 걱정을 한 손으로 막은 마탑주가 손가락을 작게 돌리자 허공에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깡총깡총.
‘토끼?’
구멍 안에서 붉은 리본을 목에 단 토끼가 한 마리 튀어나왔다. 밖으로 나온 토끼는 학장과 레이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 인간! 더러워!
‘이게 뭐지?’
이게 대체 무슨 마법이야? 레이먼은 난생처음 보는 마법에 눈을 떼지 못했다.
마탑주가 토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자 토끼의 작고 검은 강낭콩이 킁- 하는 소리를 냈다. 이윽고 토끼의 입이 테이블에 놓인 서류 더미만큼 벌어졌다.
휘유유유유유-
커다란 바람 소리와 함께 서류 더미는 그대로 앞니가 톡 튀어나온 소동물의 입으로 사라졌다. 토끼는 몇 번 우물거리더니 이내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마탑주는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무릎을 털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다 읽고 나면 돌려드리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학장은 전혀 아쉬움 없이 마탑주를 배웅했다. 그는 최소한의 예의만 지킬 뿐, 학장실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레이먼은 그 모습을 보고 ‘대체 왜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은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마탑주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레이먼의 표정을 읽었는지 교무실을 나오는 복도에서 마탑주가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왕실에선 마법에 관한 회의가 매달 열리는데, 보통 마탑과 왕실 마법사 측은 늘 의견이 반대란다. 네 학교의 학장은 왕실 마법사 측이니 나와 매번 말싸움을 심하게 하거든. 불편했나?”
“아뇨.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레이먼은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강하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다만, 제가 조금 전과 같은 자리에 끼는 게 맞나 해서요.”
레이먼은 마탑주가 자신을 사려 깊고 이해심이 넓으며 겸손까지 갖추고 있는 모범생으로 보기를 원했다. 학장실에 갇혀있던 동안 지우개를 200개 정도 삼킨 듯한 답답한 심정이었으나 그걸 티 낼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죽어도 – 죽으면 어차피 아무도 모르겠지만 – 말이다!
그런 레이먼을 마탑주가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보고 있으면 파충류와 마주한 듯한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로봇 같은 얼굴로 로봇 같은 대답을 내뱉었다.
“넌 그만큼 우수해. 그러니 괜찮다.”
“그렇게 봐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졸업하면 어떻게 하고 싶지?”
벌써 캐스팅이야?
이미 정해진 답이 있었지만 레이먼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가 말했다.
“일단은 왕실 마법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너도 권력을 갖고 싶은 건가?”
권력도 돈도 명예도 갖고 싶긴 한데 일단은 살고 싶죠 – 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을 일천만 번 참아낸 레이먼이 열일곱 살다운 청량한 웃음을 한껏 머금으며 답했다.
“신과 가장 가까운 왕실을 바로 곁에서 모실 수 있으니까요. 전 그거면 충분합니다. 권력과 명예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군.”
마탑주는 잠깐 고민하다 물었다.
“마탑의 마법사가 되고 싶진 않은가?”
“마탑의 마법사요?”
“그래. 마탑은 왕궁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법에 관한 최신 지식을 가장 빠르게 얻을 수 있지. 훗날 네 친구와 함께 마탑에서 일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뭐요…? 친구?
레이먼은 마탑주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아는 거라곤 그가 학장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과, 에글린턴의 학장이 될 거라는 것, 그리고 오닉스가 지독히 혐오하는 그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마탑주, 그러니까 오닉스의 아버지인 이 남자 역시 아들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눈앞의 이 남자를 보라. 묘하게 자신의 아들놈이 미래에 일하게 될 취업처와 친구를 엮으려 하다니.
‘내가 오닉스와 친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건데. 교류회에서 같이 있던 걸 본 건가?’
“제 친구 중에 마탑의 마법사가 되고 싶어 하는-.”
“같이 와라.”
“아.”
“같이 와.”
“네에….”
‘아는 모양이네.’
레이먼은 확신했다.
이 아저씨는, 자기가 오닉스랑 친하다는 걸 알고 일부러 학장실까지 데리고 간 거란걸.
‘나랑 친해지고 싶은 건가?’
레이먼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빠르게 두들겼다.
마탑주가 오닉스와는 전혀 친하지 않고, 교류회 결과만으로 레이먼을 좋게 봤을 경우.
마탑주가 오닉스와 친해지고 싶어 하며, 교류회 결과는 사실 안중에도 없는 경우.
마탑주가 오닉스와 친해지고 싶어 하며, 교류회 결과까지 듣고 레이먼을 오닉스와 붙여두고자 하는 경우.
지금까지 그의 행동으로 봤을 땐 아마 가장 마지막 경우의 수가 맞는 듯했다.
오, 신이시여.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이먼은 당장이라도 탭댄스를 추며 회랑을 돌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배당에서 기도를 했더니 곧바로 소원을 들어주시는 건가.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준다면 매일 예배당에 들어가 8시간 내리 기도만 올릴 수도 있었다.
레이먼은 이 기회에 마탑주와 아주 물꼬를 터 둘 생각이었다. 영상구에 주소 등록도 해둘까? 하지만 좀 더 파헤쳐보자.
“마탑주님께서는 에글린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에글린턴에 대해? 글쎄… 시기에 대해선 모르겠으나 그리 나쁜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
마탑주는 에글린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구나.
“그럼 에글린턴의 학생들은 나중에 마탑에 들어가게 되나요?”
레이먼의 질문에 그가 처음으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 아이들의 선택에 맡긴다. 마탑과 왕실은 기회를 넓힌 것이지 그로 인해 선택지를 좁히는 걸 원하진 않으니까.”
마탑주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오닉스만 생각하면 마탑주의 머리통을 한 대 쳐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서도 차마 레이먼은 그러지 못했다. 생각해보라. 사람이 모두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였다면 무법천지가 되지 않겠는가. 레이먼은 이 몸으로 살아가기 전, 유태하였던 시절부터 성악설을 믿었다.
여하튼 레이먼은 마탑주의 대답을 들은 뒤, 활짝 웃었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천진난만한 17세 소년의 미소였다.
“역시! 너무나 맞는 말씀입니다. 마탑주님의 현명한 이야길 들으니 마탑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네요. 제 가장 ‘절친’인 오닉스에게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오닉스가 방학 때 마탑에서 연구를 도왔다고 들었거든요.”
레이먼은 단조로운 억양 가운데 ‘절친’만 유독 크고 강하게 발음했다. 레이먼의 대답에 마탑주의 얼굴에 처음으로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그가 말했다.
“그 아이가, 마탑 이야기를… 해?”
“아. 음.”
실수인가. 레이먼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쓰윽 흘러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갔다. 찰나의 순간 빠르게 셈을 마친 레이먼이 답했다.
“네. 무슨 연구실에서 잠깐 일했다고 하더라구요. 취업에 도움이 되는 듯해서 저도 흥미를 가졌습니다. 왜 그러세요?”
“그 아이가 그렇게 얘기하던가? 그게 전부야?”
“네. 혹시 뭔가 다른 일이 있었나요?”
레이먼은 최대한 둘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척 반응했다. 차라리 이게 나았다. 오닉스는 이 남자를 용서한 게 아니었고, 나중엔 자리를 빼앗을 생각까지 하고 있는데. 마탑주와 친해지고는 싶었지만 그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레이먼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마탑주를 올려다보자 그가 살래살래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 오닉스라는 아이와 네가 절친이었군.”
“네. 기프트 클래스에서도 굉장히 우수한 친구라서요. 아직 같이 보낸 시간은 짧지만 곁에 두었을 때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같이 있을 때 즐거우니 친구로 지내고 있는 거지만요.”
레이먼은 슬그머니 오닉스에 대해 높여 말하자 마탑주의 입꼬리가 찔끔찔끔 올라갔다.
“그, 그래?”
“네네, 물론입니다. 오닉스는 다신 나오지 않을 인재예요. 하하하, 누굴 닮았는지요. 하하하.”
레이먼은 최대한 가식을 떨었고 마탑주는 그에 가볍게 탑승했다.
“그, 그 애가 마탑에서도 꽤 우수하긴 했지. 큼큼.”
“역시. 역시 그랬군요! 제 친구지만 정말 멋진 놈이라니까요, 하하하.”
“너도 좋은 학생인 거 같구나. 그래, 두 사람의 미래를 멀리서 응원하지. 도움이 필요하면 나중에 날 찾도록 해라.”
“정말요?”
레이먼은 주어진 기회를 빠르게 잡았다. 마법사에게 ‘나중에 날 찾아라’라는 말은 ‘찾아오면 정말 도움을 주겠다.’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 말을 할 땐, 상대방에게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징표를 넘겨야 했다.
다행히 마탑주는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고, 그는 케이프 품에서 까마귀 문양이 새겨진 작은 벨벳 주머니를 꺼냈다.
“내게 도움을 요청할 땐, 이 주머니 안에 있는 쪽지를 찢으면 된다.”
“감사합니다!”
뜻밖의 수확을 얻은 레이먼은 마탑주가 갈 때까지 종종걸음으로 그를 따랐다. 마탑주는 나름의 성과를 이룬 것에 기뻐하며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차에 탑승했다, 그가 떠나고 때마침 안쪽에서 나오던 매너스가 한 손을 흔들며 레이먼을 불렀다.
“레이먼,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차라도 한잔할까?”
마침 매너스와 좀 더 얘길 나누고 싶었던 레이먼은 곧장 그에게로 걸어갔다.
“저야 영광입니다, 전하.”
***
“그래, 레이먼 네가 본 유타는 어때. 왕관을 노리고 있는 것 같나?”
“예?”
“유타 말이야. 그 애가 왕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냐는 말이다.”
물론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