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63)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63화(63/275)
“유타 말이야. 그 애가 왕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냔 말이다.”
의자에서 일어나며 매너스는 옷걸이 걸어둔 케이프를 직접 챙겼다.
“답하기 어려운 건가?”
3왕자가 그렇게 말하고 씨익 웃자, 퍼뜩 정신을 차린 레이먼이 아무렇지 않게 빈 찻잔을 쟁반 위로 정리하며 답했다.
“답하기 어렵다기보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릴 수 없을 뿐입니다.”
“이유는?”
“유타… 아니, 유타 5왕자님께서 왕이 되는 게 불가능하시기 때문입니다. 1왕자님과 2왕자님이 왕국을 떠나셨고, 그다음 왕위계승자이신 전하께서 이리 건강히 계신데 어떻게 유타 왕자님께서 왕이 되신단 말입니까. 그래서 제가 어떤 답을 드릴지 몰라 잠시 말을 고른 것입니다.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러자 매너스가 추궁하듯 물었다.
“내가 죽는다면?”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왕실에서 그런 일은 흔해. 말해봐. 내가 죽는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절대로 넘어가면 안 된다. 레이먼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가 ‘죽을 수도 있다.’라는 가정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다. 만약 여기서 레이먼이 ‘3왕자가 죽었을 때의 가정’을 하고 그 가정에서 유타가 유리해질 만한 답변을 한다면?
추후 어떤 식으로 이 말에 대한 대가가 돌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매너스는 계속해서 추궁했고 레이먼은 막았다.
“참 단호하네.”
케이프의 금장 단추를 채우며 매너스가 피식 웃었다.
“1학년답지 않아.”
“정말 그럴 일이 없을 거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레이먼 네가 가는 모든 길이 옳기를 빈다. 주스테의 가호 아래에서.”
“감사합니다.”
“방에서 나올 필욘 없다. 나도 격식을 차리면 피곤하니까.”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매너스가 손을 흔들며 방을 나섰다. 복도로 나온 레이먼은 그의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숙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레이먼이 고개를 들자, 새롭게 들린 발걸음 소리의 주인공들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뭐하냐?”
오닉스였다. 레이먼이 고갤 들며 대충 대꾸했다.
“뭐… 인사?”
“그래, 인사 잘하네.”
“밥은?”
“먹었어. 아, 그리고 유타가 할 말 있단다. 10분 뒤에 네 방에서 모일 거임.”
“왜 매번 내 방이야?”
“니콜의 간식 센스가 죽여줘서. 스트릿에서 사 온 거 들고 감.”
***
약속한 대로 10분이 되자마자 레이먼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저놈들은 이제 인사도 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속으로 삼키며 레이먼이 이불 속에서 눈을 빼꼼 내밀었다.
꽤 피곤한 오후 일정을 보냈기 때문에 짧게라도 휴식이 필요했다.
충혈로 붉게 물든 레이먼의 눈에 더 피곤한 짐들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오닉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타는 그 사이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 물곤 인사했다.
“저게 다 뭐야?”
“오닉스가 산 간식들?”
“저걸 다 여기서 먹는다고?”
“하하하, 그런 거 같은데?”
“넌 왜 안 말렸어?”
“네 방이니까?”
레이먼은 머리 하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마를 탁- 쳤다. 여하튼 오닉스는 가져온 간식 더미를 모두 니콜에게 넘겼다. 접시에 담아 준비 좀 해달라는 뜻이었다. 처음 보는 과자에 흥분한 니콜도 주인 만난 대형견처럼 바닥을 날뛰었다.
“세상에! 이거 신상인가요?”
“내일까지 한정 판매였대.”
“오, 신이시여! 제게 이런 복을 주다니! 준비하며 제가 좀 먹어도 되는 걸까요?”
니콜의 질문에 끄덕인 오닉스가 복도 한편에 널브러진 붉은 주머니를 턱짓했다.
그가 말했다.
“당연하지. 저쪽 꾸러미는 네 거야.”
“제, 제 거요? 와, 도련님. 도련님 친구분은 도련님보다 인성이-!”
“니콜. 얼른 간식이나 가져와.”
“넵!”
니콜이 떠나고 레이먼은 오닉스와 유타의 표정을 살폈다. 마을에서 실컷 놀고 왔을 텐데 낯빛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너무 놀아서 피곤한 건가?’
“소여 스트릿만 들렀다가 온 거야?”
레이먼의 질문에 유타가 먼저 고갤 끄덕였다.
“응, 맞아. 아, 결국 테디도 같이 갔어. 테디한테 은근히 순진한 구석이 있더라.”
“그런 면이 있지. 그래서? 간식 사고 밥 먹고 그게 끝이야?”
“에글린턴 애들도 만났어. 곧 개교하는 모양이더라고.”
“에글린턴 애들 다?”
“아니, 전부는 아니고 교류회에 참가했던 리트리랑 티키, 타일 정도. 영상구에 주소록도 등록했으니 이제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할 수 있을 거야.”
에글린턴 학생들도 이제 마음대로 밖에 나다닐 수 있는 건가? 왕궁에서 봤을 땐 꼭 갇혀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긴 이제 비밀도 아니니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겠지.’
“나도 에글린턴 관련해서 만난 사람이 있어.”
에글린턴에 관한 거라면 레이먼도 할 말이 있었다.
“오닉스.”
“?”
“너 오늘 나가고 싶었던 게 마탑주님 때문이야?”
“…하아, 만났냐?”
의자 팔걸이에 턱을 삐뚜름하게 기댄 오닉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길가다가 우연히.”
“우연히 어떻게.”
“그냥 버틀러 회의가 끝나고 가던 길에 마주친 거지. 학장실에서 잠깐 이야기도 나눴어.”
“네가 학장실에 들어갔다고?”
유타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교무실이면 몰라도 1학년생이 학장실에 들어가다니. 엄청난 처벌을 받을 때가 아니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 상상도 못 할 일을 마탑주는 말 한마디로 간단히 해낸 거다.
“마탑주님이 같이 들어가자고 해서. 너랑 내가 친한 거 알고 있던데?”
레이먼에 오닉스가 물 밖으로 처음 나온 물고기처럼 팔짝 뛰며 소리쳤다.
“그걸 그 작자가 어떻게 알아?!”
“난들 어떻게 알겠어.”
레이먼은 차분한 어조로 대꾸했다.
“일단 앉아.”
“설마 내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아버지가 아들 소식 좀 알 수도 있지 왜 그래.”
“그게 그냥 아버지야? 날 버린 작자지? 됐어. 그 작자 얘긴 그만해. 어차피 포레스튼에 교육 자료 같은 거 얻으러 온 거뿐이잖아.”
“그건 맞아. 에글린턴 얘기가 나와서 한 번 해봤지. 음, 그리고 매너스도 만났네.”
레이먼이 이번엔 유타의 차례라는 듯 유타 쪽으로 고갤 돌렸다.
‘오.’
기대한 대로의 얼굴이다. 유타는 화살에 다리라도 맞은 듯 얼굴을 찌푸렸다. 잘은 모르지만 3왕자 형님을 그리 좋아하는 것 같진 않았다.
“매너스 형님은 왜?”
“버틀러 회의 참석 겸 서머셋을 보러 온 것 같아. 그 후엔 잠깐 차도 마셨는데. 너에 대해 묻더라고. 네가 왕위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레이먼은 유타에게 모든 걸 솔직하게 말했다. 숨길 수야 있었다. 도리어 숨기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괜히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이먼은 상태창에 뜬 신뢰도나 친밀도를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타의 신뢰도는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벤트를 놓칠 수야 없잖아.’
“뭐라고 답했어?”
“3왕자님께서 이리 헌앙하신 데 그럴 기회가 어디 있겠냐고 했지.”
“잘했네.”
유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걸 왜 물어본 거지?”
“나도 그 생각을 해봤는데 네 이름이 갑자기 유명해지니까 그런 거 아니야? 지금까지 네 별명은 기껏해야 버려진 왕자였지만 지금은 포레스튼의 뽀얀 왕자님, 포레스튼의 희망, 은발의 꽃 청-.”
“그만, 그만해!”
“너도 즐기면서 왜 그래. 난 은발의 꽃 청년이 제일 마음에 들어. 그다음엔 포레스튼의 희-”
“우리도 할 말 있어.”
유타는 레이먼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소여 스트릿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어.”
“으브브?”
“아무래도 소여 스트릿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봐.”
“으파-!”
유타의 손을 떨쳐낸 레이먼이 말했다.
“그러니까 무슨 일. 오닉스가 간식을 저만큼 사 온 것보다 놀랄 일이야?”
“네 대가리로 와인을 짜내지 않는 것보다 대단한 일이지.”
니콜이 두고 간 간식 하나를 뜯어 입에 넣던 오닉스가 쿠키 하나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레드 와인이 요새 수요가 좋다더라.”
“나보다 더 와인스러운 머리를 한 놈이 할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뭔데?”
“고스트 타운.”
“고스트 타운?”
“듣자 하니 소여 스트릿의 사람들이 밤마다 좀비처럼 변해서는 어디론가 사라진대.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멀쩡하게 돌아온다는 거야.”
“밤마다 그렇게 변했다가 낮에는 멀쩡해지는 거야?”
레이먼의 질문에 유타가 격하게 고갤 끄덕였다.
“유타. 네 고갯짓에 몸이 날아갈 거 같아.”
날아가지 못한 몸 대신 허공에서 부유 중인 먼지를 손으로 날려 보내며 레이먼이 재차 질문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하긴 하네. 관리국에는? 신고했어?”
“신고를 하긴 했는데 실제로 뭐 실종됐던 사람은 집에 잘 귀가했으니 수사할 게 없는 거지. 문제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거야.”
저주 마법인가?
레이먼은 추리학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읽었던 책들을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저주 마법이 주로 쓰이는 이유는 주로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이다. 상위의 저주 마법으로 갈수록 저주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또한, 저주 마법은 금지된 마법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사용한다고 해서 공식적으로 죗값을 무를 수 있는 법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중략)…때문에 저주 마법은 사람을 쇠약하게 하거나 특정 구역의 농작물을 모두 시들게 만들 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저주 마법일까?”
책 내용을 상기할수록 레이먼은 소여 스트릿에 누군가 저주 마법을 걸었다고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정보는 없어?”
“다른 정보. 오닉스, 너는 뭐 들은 거 없어?”
“나? 아, 그건 있다. 돌아온 사람들의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겼대. 마을 의사가 그 사람에게 알레르기 약을 처방했다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반점.”
마법이 아니라 단순한 전염병일 수도 있는 건가.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았다. 병이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는 그 병에 따라 특색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떡하고 싶어?”
그렇기에 레이먼은 가장 먼저 유타의 의견을 물었다.
여기선 유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가장 중요했다.
레이먼이 모는 배의 키를 쥐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유타였기 때문이다. 붉은 눈이 오묘한 빛을 냈다. 무언가 생각하고 결론을 내릴 때 붉은 사파이어는 저렇게 빛이 난다. 이럴 때 레이먼은 생각한다.
유타가 만약 다른 왕족과 같은 흑발에 붉은 눈을 가졌다면, 좀 더 쉽게 생각하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머리 색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유타이자 유리아가 답했다.
“가장 먼저 지프 교수님께 이 사실을 알릴 거야. 아마 지프 교수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상회를 움직여서 어떻게든 그 원인을 찾아내시겠지.”
“그 사람이 모를까?”
“모를 수밖에. 만약 알았다면 이걸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 아니야.”
유타의 말에 레이먼이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내버려 뒀을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