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65)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65화(65/275)
포레스튼 입학 전, 꼭 자신에게 충성하겠다고 맹세한 기사가 한 명 있었다. 그 과정이 순탄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너. 이름이 뭐였더라?”
“번들입니다, 도련님! 기억해주시고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몸이 경직된 채 번들이 차렷 자세로 섰다. 그러나 눈만큼은 빛났다.
– 레이먼 도련님께서 저, 저를 지명을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 응. 형님이. 그러니까 이쪽으로 가봐.
큽. 번들은 흘러넘칠 뻔한 눈물을 얼른 눈알 뒤로 집어넣었다. 그런 무례를 범했는데도 자신을 기억하고 불러주시다니. 이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건 넘어가도록 하자.
감동한 번들 곁에는 레이먼이 예상하지 못한 소년 하나가 끼어 있었다.
“그런데 너는 왜 따라온 거야?”
“저도 도련님의 기사니까요! 자원했습니다!”
그 소년은 일전에 레이먼이 잠깐 시간을 내 도왔던 평민 견습 기사 소년이었다. 스플린 가문 자선 사업의 일종으로 데려온 평민 고아. 도움이 되지 않으면 내쫓을 작정이었는데.
‘서클 크기가… 왜 이렇게 커?’
서클 크기를 키우는 건 쉽지 않다. 타고난 재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게 전 레이먼이 아무리 공부해도 마법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다. 레이먼은 그 부분을 어떻게든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아마 전생의 자신과 두 사람분의 서클이 합쳐지면서 자연스레 서클의 크기가 확장되는 것 같은데.
이 얘기는 차치하고-.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소년이 마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드리안도 생각 없이 이 애를 보내지 않았을 테지.’
레이먼이 물었다.
“내가 네 이름도 들은 적 있었나?”
감자 머리 소년이 양발을 착 붙이고 번들과 같은 자세를 취하며 힘차게 말했다.
“처음 말씀드립니다. 라오. 제 이름은 라오입니다, 도련님.”
“알겠어. 그래, 라오랑 번들. 너희들이 오늘 할 임무는-.”
레이먼이 번들과 라오에게 오늘 임무에 대해 전하는 사이 유타는 놀란 얼굴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집안의 기사라고 해서 장자를 저 정도로 따르진 않았기 때문이다. 저 기사도 스플린 가주의 부하인 거지 레이먼의 부하는 아닐 테니 말이다.
특히나 마력을 다룰 줄 아는 기사의 경우엔 더더욱 그랬다. 마검사일 경우에는 체력과 마법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마법사인 주인을 깔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레이먼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제 주인의 아들인 레이먼의 말을 듣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저런 식의 충성심은 보기 어려운데.’
압도적인 강자에 대한 충성. 만약 그런 거라면-
‘레이먼은 검술에도 재능이 있는 건가? 나중에 렌스를 통해 확인을 해봐야겠어. 하지만 저 몸을 봐선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유타-.”
“아,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쨌든 우린 오늘 포레스튼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응?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게 가능해? 클래스 점검도 있잖아.”
“지프 교수님이 우리 넷을 우수 학생으로 선정해서 실제 현장 체험을 시킬 거라고 미리 말해뒀어. 잠만 그 사람 별장에서 자면 될 거야.”
유타가 물었다.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밤까지 확인하기 위해서야, 그럼?”
레이먼의 돌발 행동을 예상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레이먼의 행동에는 언제나 얻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문대로라면 그 ‘병’ 같은 것에 걸린 사람들은 밤마다 어디론가 향했다가 사라졌고 적어도 이튿날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에는 온몸에 반점이 생겼다고 했다.
만약 병에 걸린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면 분명 밤중에 나와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다는 소리다. 레이먼은 그들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 건지도.
레이먼의 의견에 오닉스는 별다른 이견을 내비치지 않았다. 납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테디 베어릴은 ‘그렇다면 들르고 싶은 가게가 있다.’라는 의견만 내비칠 뿐, 지프 아그닐의 집으로 가는 것 자체에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럼 나도 나온 김에 할 일이 있으니 각자 원하는 대로 움직이자. 6시에는 이 분수대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지프 아그닐의 별장에서 다시 나오는 시간은 밤 9시야.”
“아싸. 그럼 난 집에 좀 다녀와야겠다.”
오닉스의 말에 유타가 질책했다.
“뭐라도 얻어오는 건 있어야 하는 거 알지?”
“내기라도 하든가.”
“그럼 나도 조금 전 말한 가게에 가보도록 하지.”
뿔뿔이 흩어진 뒤, 레이먼은 손가락 위에 볼펜으로 무언가 그리기 시작했다.
“도련님, 뭐 하시는 거예요?”
“지도.”
그 순간, 레이먼의 손가락 위로 초록색 설계도가 떠올랐다. 라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다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전생의 말로 한다면 홀로그램이겠지. 레이먼 위로 그려진 입체 홀로그램은 전체 소여 스트릿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여 스트릿은 마을의 입구였다.
처음 눈에 띈 건 다른 스트릿으로 이어지는 안쪽 길과 바깥의 뒷산과 이어지는 길이었다. 하지만 레이먼이 찾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주택가는… 이쪽인가.’
레이먼은 주택가와 지프 아그닐의 별장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계산했다.
‘예상했던 정도네.’
계산을 마친 레이먼이번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하며 말했다.
“번들, 아드리안이 준 거.”
“여기 있습니다.
번들이 준 상자를 발로 차자 뚜껑이 틱-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렇게 몇 개의 상자를 레이먼이 발로 걷어찼다. 이제 바쁜 오후의 시작이었다.
***
오후 6시를 조금 넘은 시각, 레이먼은 아슬아슬하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다들 빠르네.”
“네가 늦은 거지.”
비아냥대는 오닉스를 무시하고선 레이먼은 곧장 지프 아그닐의 별장으로 향했다. 조사를 위해 지프 아그닐이 특별히 제 별장을 내주긴 했지만 굳이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상인은 시간에 철저했고, 그중 최정상에 선 지프 아그닐도 당연히 그럴 터였다.
별장에 도착하자 지프 아그닐의 시종인이 그들을 반겼다.
“어서 와, 도련님들! 포레스튼의 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입은 걸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 저녁 식사는 진즉에 준비해뒀으니 먹고들 방으로 가면 돼. 2층 복도 오른쪽 끝의 방이고 방은 총 5개야. 그런데 너희는 왜 여섯이지? 우리는 다섯 명이 올 거라고 들었는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 시종이라기보다는 용병인 듯했다. 한쪽 눈에 자상이 있는 그는 유일하게 보이는 쪽으로 라오를 내려다보았다.
“이 꼬마애는 이쪽 기사와 함께 잘 거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마.”
“그럼 됐고. 자자, 들어와. 소여 스트릿의 밤은 그리 따뜻하지 않아.”
준비된 식사를 마치고 모두 방으로 향했다. 그중 가장 큰 방을 차지한 건 레이먼이었는데 라오가 번들과 자고 싶지 않다고 울먹였기 때문이다. 번들은 레이먼에게 그 사건 이후로는 라오를 괴롭힌 적 없고 최대한 잘 해줬지만 부족했던 것 같다며 열심히 변명했다. 결국 라오는 레이먼과 자게 되었고 레이먼은 작은 침대가 하나 더 있는 가장 넓은 방에서 자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밤 9시가 되기 전, 그들은 모두 레이먼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각자가 조사한 것에 대해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반점이 난 사람들 말이야. 상태가 더 안 좋아졌어. 이젠 눈에서 피가 난대.”
“모두가?”
“그건 아니고, 2명만. 근데 뭐 모르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변할 수 있는 거잖아.”
“가장 어린 환자는 11살이래. 대체 어떻게 옮게 된 걸까?”
“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만졌다거나 먹은 건 없어?”
레이먼이 질문했다. 그러나 오닉스와 유타는 알 수 없었다는 듯 고갤 저었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테디 베어릴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어때?”
“실?”
레이먼이 고갤 돌렸다. 테디가 작게 고갤 끄덕였다.
“소여 스트릿에는 바느질 용품을 파는 가게가 한 군데뿐이다. 바늘이나 실을 사기 위해선 이 가게에 반드시 와야 한다는 뜻이야.”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실. 그러네. 실을 통해 감염된 걸 수도 있겠어. 그래서 5명 중 4명이 다 어른인 거야. 유타, 그 어린애 부모는 있어?”
“어? 아니, 없는 것 같던데.”
“없다, 내가 들었어. 근처 보육원의 아이이고, 그 중에선 가장 연장자다.
“잠깐만. 실을 파는 가게가 하나뿐이라 치자고. 근데 애초에 여기서 실이니 바느질이니, 하는 단어가 왜 나와?”
유타가 물었다.
“사람이 실을 먹지는 않잖아.”
레이먼이 답했다.
“먹지는 않지. 하지만 실 끝을 입에 넣을 때도 있어. 그래야 바늘구멍 끝으로 실이 들어가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조사할 가치는 있겠어.”
“그건 그렇고 이제 거의 9시야. 마법 등도 슬슬 꺼질 시간이고.”
창문틀에 기대앉아 바깥을 살피던 오닉스가 말했다.
“그런데 이 별장에서 그 환자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마을을 뒤지다가 놓칠 수도 있잖아.”
“괜찮아. 미리 설치해둔 게 있어.”
레이먼이 번들의 이름을 부르자, 번들은 챙겨온 짐 속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 안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영상구가 있었다.
웬 영상구? 라는 눈치로 다른 이들이 레이먼을 바라보았다.
“보면 알아.”
레이먼이 영상구를 손가락으로 툭 치자 영상구에 5개의 화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 화면은 마을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감시 마법이야? 이걸 벌써 쓸 줄 안다고?”
“설마. 이렇게 한 번에 다 비추려면 마력 소모가 너무 심해. 인공 눈알을 사용한 거야. 우리 집 창고에 귀신을 보는 인공 눈알이 여러 개 있었거든.”
“그걸 사용했다고?”
“애초에 마법이 걸려 있는 도구니까. 간단한 관찰 마법만 걸어주면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어.”
‘인공 눈알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건 난생처음 들어봐.’
레이먼을 지켜보던 유타의 눈이 영상구에서 나는 끔찍한 소릴 듣자마자 곧장 시선을 틀었다. 테디 베어릴이 더 이상 보기 어렵다는 듯 고갤 돌렸고 오닉스는 영상구에 눈을 거의 붙일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들의 영상구에는 온몸에서 피가 흐르는 이가 보였다. 목이 한 번 꺾인 그가 영상구로 뒤집힌 얼굴을 보였다.
“이거 진짜… 끔찍하네.”
오닉스가 작게 중얼거렸고, 레이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 있던 재킷을 손에 들며 말했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