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6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68화(68/275)
“…오.”
뭐야, 이건.
레이먼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건 꿈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이 신장, 이 근력, 그리고 17살 티를 완전히 벗어 성인이 된 붉은 머리, 푸른 눈의 얼굴.
레이먼은 죽기 전, 헌터 유태하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은 죽기 1주일 전 계약한 새로운 집이었다. 썩은 내 나는 창고에서 벗어나 부자들에게 빌빌거리며 모은 돈으로 마련한 보금자리. 어중간한 헌터가 정보상으로 활동하며 얻을 수 있는 부의 극치. 유태하는 꿈의 끝에서 죽어 레이먼이 된 것이었다.
거울 속 유태하는 생각했다.
‘차라리 이게 현실이고, 그 비실비실한 마법사 몸이 꿈이면 좋겠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게 꿈이라고 생각한 건 레이먼의 몸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의 본능과 달리 이곳이 현실이고 죽은 게 모두 꿈이라면 어떨까.
하지만 알고 있었다. 유태하는 죽었다. 배를 찌른 헌터의 칼과 옥상에서 떨어지며 봤던 옛 동료의 일그러진 얼굴, 바닥에 떨어진 몸에 퍼지기 시작한 끔찍한 고통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레이먼은 망설임 없이 집 밖으로 나섰다. 그는 강남역을 향해 걸었다. 온통 낮은 건물들에 익숙해져 그 주변의 고층 빌딩들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 레이먼! 이쪽이야!
– 너 때문에 수업 지각한다고, 이 새끼야-!
그 꼬맹이들. 잘 있으려나. 저쪽 레이먼의 몸은 지금 어떤 상태인 거지? 유태하가 손톱을 잘근 씹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유태하의 머리에 울렸다.
‘제발. 제발.’
뭐지?
‘동생이 그런 선택을 한 건 모두 제 탓입니다.’
‘노력했어요. 노력했는데도 제 힘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를, 그를 이곳으로 불러와 주세요.’
전 레이먼의 목소리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목소리는 죽기 직전, 원래의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유태하는 천천히 숨을 죽였다. 사람들이 치이는 강남 한복판에서 오직 유태하의 시간만이 멈춘 듯했다.
동생? 선택? 무슨 소리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킹메이커’로서 살아남을 손쉬운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는 분명 원래의 자리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한… 나와 같은 영혼일 테니까.
자리에 멈춰선 유태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 원래의 자리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한 영혼.
이 말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의 감정을 요동치게 했다. 그를 슬프게도 만들었고, 헛웃음 짓게도 했으며 동시에 분노가 치밀게도 만들었다. 이 말에 끌려간 영혼인 자신은, 즉 유태하의 인생은 신이 보았을 때도 자리를 잘못 잡은 영혼이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쪽이 뭔데 남의 인생을 그렇게 생각해?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유태하는 그러지 못했다. 짧은 문장에 담긴 고온의 바늘은 가시처럼 그의 목소리를 틀어막았다.
그 순간, 유태하의 목울대에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다. 그는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정신이 희미해졌고 머리를 울리던 전 레이먼의 목소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만약 그가 이 말을… 들을 수 있… 일기장을… 다시….’
***
번쩍. 어두웠던 시야가 다시금 개방되자 빛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설원을 한눈에 담았을 때보다 더 밝았다. 레이먼이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때, 방 안으로 들어오던 니콜과 눈이 마주쳤다.
“도-련-님!!! 도련님!! 정신을, 정신을 되찾으셨군요. 아, 지금 당장, 지금 당장 의사를 불러야겠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니콜은 소리를 질러대며 방을 떠났다. 레이먼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지막 기억이 별장이었다.
‘지프 아그닐의 손님방.’
시간이 그렇게까지 흐른 건 아닌 모양이었다. 몇 날 며칠 동안 기억을 잃었다면 분명 포레스튼으로 다시 돌아갔을 테니까. 레이먼이 깼다는 사실이 별장에 알려지자마자 포레스튼의 다른 이들도 물밀듯 몰려 들어왔다.
“레이먼!”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너네한테도 미안하다.”
“비실비실한 놈이 무리를 하니까 그렇지.”
“제가 얼마나 쓰러져 있던 건가요?”
“꼬박 하루. 우리는 수업을 다 듣고 다시 내려온 거고. 네 곁을 계속 지킨 건 니콜이랑 너희 가문 기사들이야.”
“도련님, 꺼이꺼이, 돌아가시는 줄, 꺼이꺼이-.”
흉측하게 우는 번들을 미루어보니 자신의 상태가 꽤 안 좋았던 모양이다. 기껏해야 몇 시간일 줄 알았는데. 커튼이 쳐져 있어서 시간을 잘 몰랐던 건가. 밝은 방 탓에 레이먼은 지금이 낮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니콜이 돌아와 커튼을 젖혔을 때, 이미 밖은 주황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깔끔하게 나았어.”
유타가 답했다.
“마법도 병도 모두 몸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지. 모두 네 덕분이야.”
유타는 진심이었다. 레이먼이 이행 마법까지 파훼시키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이 정도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았을 테니까.
“파훼 마법은 어디서 배운 거지?”
문 너머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프 아그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마법은 1학년이 할 수 있을 만한 마법이 아니다.”
“독서가 훌륭한 스승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수업을 받거나 한 것은 없습니다.”
“독서만으로?”
“네.”
지프 아그닐은 레이먼의 대답을 듣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독서는 훌륭한 스승이다. 그러나 훌륭한 스승이 모두 괜찮은 제자를 길러내는 것은 아니다. 레이먼은 천재 중에서도 천재. 때문에 지프 아그닐이 지닌 상인의 영혼은 말해주고 있었다. 레이먼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그러니 잡아야 한다고.
지금의 그를 만들어준 판단이다. 그는 이럴 때 절대 제 판단을 의심하고 불신하지 않았다.
“쉬어라. 의사가 괜찮다고 말하면 밤에 마차를 불러주겠다.”
지프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아직 추리학 수업은 한참 남아있었으니, 그동안 천천히 이 거위를 손에 넣으면 되겠지.
***
“도련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래. 너희들은 이만 가문으로 돌아가라. 돌아가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혹 아버지께서 늦은 연유에 대해 여쭤보시면 나와 검술 대련을 하다 시간이 늦어졌다 하거라. 검술에 대한 내 열정이 대단하다고도 덧붙이고.”
“예. 그리하겠습니다.”
번들과 라오는 그날 밤 다시 가문으로 돌아갔다. 아드리안에게서도 걱정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기에 레이먼 역시 기사들을 통해 답장을 보내두었다.
‘아드리안은 대체 뭘 하게 되는 거지?’
꿈에서 깨어난 레이먼에게 관심의 대상은 왕 후보뿐만 아니라 아드리안까지 늘어났다. 전 레이먼이 죽은 이유와 자신이 이 세상에 온 이유엔 ‘아드리안 반 스플린’이 밀접하게 관계된 듯했기 때문이다.
“레이먼, 마차.”
테디가 구석에 선 흰 마차를 가리켰다. 마차 앞에서 블랭킷은 레이먼의 양 볼때기를 꽉 붙잡아 늘려도 보고 꾹 눌려도 보면서 말했다.
“레이먼, 정말 괜찮은 거지?”
“예, 의아오 앤안아오-.”
“그래도! 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우리 아빠 별장에서 더 자고 가도 되는데.”
가만 보면 블랭킷 선배는 참 정이 많다. 이런 성격은 끝이 좋지 않은데.
“앤안읍이아.”
“블랭킷, 우리도 가야 해.”
디찬이 블랭킷을 재촉하듯 덧붙였다. 이미 밤 8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클래스 소등 시간은 11시. 씻고 다음 날을 준비하기 위해선 얼른 돌아가야 했다.
“딱 봐도 괜찮잖아.”
챈들러가 한 마디를 덧붙이자 그제야 블랭킷은 입을 비죽 내밀고선 마차에 올라탔다. 그녀는 마차가 하늘 위로 날아오를 때까지 창문에 딱 붙어 레이먼의 낯빛을 살폈다.
“우리도 가자.”
남은 1학년들도 모두 테디가 가리켰던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지프가 빌려준 마차였는데 나름 착석감이 나쁘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은 겉모습에 비해 안쪽은 스플린 가의 전용 마차에 비할 정도로 호화스러웠는데 아마 귀족은 아니나 꽤 부를 쌓은 계층이 많이 타고 다니는 마차인 듯했다.
레이먼은 몸속 서클을 확인했다. 혹시 서클이 망가지거나 깨지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했다. 망가진 서클을 회복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서클이, 늘었군.’
서클은 일정 크기 이상 커지면 더 이상 크기를 늘리지 않고 작은 크기의 여러 서클으로 나누어진다. 현재까지 인류가 도달한 가장 많은 서클의 개수는 10개. 마탑주도 아직 10서클은 아닐 것이다. 드래곤이나 대정령처럼 영적인 존재는 되어야 11서클에 도달할 수 있으니까.
레이먼 몸속의 서클은 총 3개. 유태하의 영혼이 합쳐지긴 했지만 타고난 재능이 없던 탓인지 3서클 이상으로 늘리려 하면 몸이 버티질 못했다. 뭐, 3서클로 졸업하는 선배들도 있기야 했다.
하지만 레이먼은 여기서 만족할 순 없었다.
‘만약 이 몸의 재능이 여기까지라면? 왕실에 들어가면 이보다 더 높은 서클을 가진 마법사들이 우글거릴 텐데.’
그 정글 안에서 자신은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왕 후보가 몇 명이 되든 간에 킹메이커는 우수해야 했다. 어쩌면 자신이 왕으로 만들려는 자보다 더.
“레이먼,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네 덕분에 이번 사건이 잘 해결됐어. 고맙다.”
유타가 꾸벅 고갤 숙여 감사를 표했다.
레이먼은 훤히 보이는 유타의 정수리를 바라보다 다시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가 말했다.
“아무한테나 함부로 정수리 보이는 거 아니다.”
“….”
“필요할 때 숙여야 가치가 있는 거야. 내가 많이 굽신대봐서 알아.”
‘함부로 정수리를 보이지 마’라는 그 말에 유타는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고갤 들었다. 피식 웃음을 흘린 유타가 말했다.
“공작가 아들이 굽신댈 일이 뭐가 있었다고.”
“뭐? 네가 뭘 알아.”
그 말에 유타도 작게 입꼬릴 올렸다.
“그것도 그렇네.”
***
“레이먼, 몸은 좀 괜찮아?”
“나쁘지 않아.”
기프트 클래스 학생들은 레이먼이 몸이 매우 좋지 않아, 포레스튼을 벗어나 수도의 의사를 보러 갈 수밖에 없었다- 라는 거짓 소문을 모두 믿고 있었다. 물론 레이먼도 이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몇 마디 말을 덧붙였을 뿐이다.
“정답을 맞히고 소여 스트릿에 놀러 갔는데-.”
“전염병이 번져서 너도 그 병을 앓았던 거야?”
“대체 어떤 병이었던 거야? 이제 괜찮은 건 맞지?”
“사람들은 다 나았어?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수도에 여행을 와 계시는데.”
난리난 학생들을 달래며 레이먼이 말했다.
“다 괜찮아졌어. 병에 관한 건 조만간 밀리포레에 실을 거야. 다들 그때까지만 기다려줘.”
“우린 네가 돌아온 것만으로 충분해.”
“밀리포레도 기대되지만 말이야, 일단 네 건강부터 신경 써.”
그들은 레이먼이 들고 온 병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나 스트릿에서 벌어진 일의 진상보다는 정말로 그의 몸 상태가 더 중요했다.
“그래, 레이먼. 하지만 가끔은 몸보다 글이 중요하니 아파도 그쪽을 우선시해.”
– 라는 말은 잘못 들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