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71)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71화(71/275)
“왜 아드리안이 피데스 클래스야?”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레이먼은 아드리안이 보낸 편지를 꼼꼼히 다시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몇십 번을 다시 읽어도 ‘피데스 클래스’라고 적힌 글자는 바뀌지 않았다. 혹시 레몬즙을 떨어뜨리고 편지 밑으로 촛불을 가져다 대면 다른 비밀문자가 떠오르는 건 아닐까?
터무니없는 상상도 해 보았지만 편지의 글자가 바뀌지 않고 불쏘시개가 될 뻔했을 때야 레이먼은 인정해야만 했다.
“네 동생이 피데스야! 세상에, 왕실 마법사에 관심이 있나 봐.”
와중에 함박웃음을 지은 유타는 레이먼의 어깨를 붙들어 흔들었다.
“형제 모두 왕실로 오면 너무 좋겠다. 든든할 거 같은데?”
“훌륭한 동생을 뒀군. 분명 피데스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다.”
테디 베어릴도 양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의 인사를 남겼다.
“아니, 근데 형제 둘 다 왕실 마법사가 되면 가주는 누가 해? 작위를 이어받는 애들은 보통 포레스튼 졸업 후에 바로 영지 교육에 들어가잖아. 레이먼, 이렇게 되면 레이먼이 기프트니까… 너 가주 할 거야?”
“절대 안 해.”
오닉스가 고갤 끄덕였다. 예상한 반응이라는 뜻이었다.
“나도 너 안 할 거 같아서 물어본 거야.”
“하지만 왕실 마법사 출신 가주도 있지 않은가?”
테디 베어릴이 물었다. 실제로 베어릴 가문의 현 가주는 왕실 서기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있기야 하지. 그런데 힘들어. 진짜 힘들다고. 애초부터 영지 교육을 미리 받으셨겠지. 너희 아버지 외동이셨지?”
“아.”
“외동은 어릴 때부터 미리 받는단 말이야. 음… 뭐, 피데스에 들어간다고 무조건 왕실 마법사가 되는 건 아니니까. 나중에 한 번 물어는 봐. 진로 희망에 뭘 적었는지.”
***
오닉스의 조언을 들은 레이먼은 곧장 실행에 옮겼다.
친구들이 모두 떠난 뒤, 레이먼은 곧장 영상구를 켰다. 오랜만에 본 아드리안은 표정은 훨씬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보였다.
– 형님!
“아드리안, 편지 받았다.”
– 네, 저 형님이랑 같은 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다행이에요! 정말!
아드리안은 신난 강아지처럼 2차 시험에서 자신이 어떻게 했고, 3차 면접 때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는 레이먼을 말했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그 말을 끊고 본론에 들어가고 싶은 레이먼이었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다. 결국 아드리안의 시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에야 레이먼은 하고 싶던 질문을 던졌다.
“아드리안, 혹시 서류 제출할 때 희망 진로를 쓰는 칸이 있었나?”
– 아, 네.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레이먼도 입학 전에는 클래스 배정 기준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아드리안 역시 별다른 생각 없이 희망 진로를 썼을 가능성이 컸다.
“뭐라고 썼지?”
– 저야 당연히…
당연히?
– 왕실 마법사를 썼습니다.
“왜?”
– 예? 형님께서 가주가 되고 나면 저도 제 앞가림을 해야 하니까요. 제가 영지에 있으면 형님께 방해만 될 것 같아… 최대한 형님께 도움이 될 만한 직업으로 택했습니다.
레이먼의 되묻는 말에 아드리안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어두워졌다.
‘듣다 보니 다 맞는 말이야.’
레이먼은 자신의 미래 계획에 대해 아드리안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 가주가 되지 않을 거라든가, 유타를 돕고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말이다.
아드리안의 입장에서, 스플린 가의 다음 가주는 당연히 자신의 형님 ‘레이먼 반 스플린‘이었다. 그는 포레스튼에서 매우 우수한 학업 성취를 기록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아버지의 인정도 결국 노력으로 따냈기 때문이다. 그저 타고난 재능을 활용하는 자신과 격이 달랐다.
아드리안에게 있어 이미 차기 스플린 가의 가주는 레이먼이었다. 그러니 차남으로서 그의 그는 영지에서 형님을 돕거나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했다. 형님을 돕는다면 왕실에 인맥을 쌓아두는 것도 좋을 테니, 아드리안은 ‘왕실 마법사’라는 선택지를 고른 거다.
– 혹시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형님이 원하신다면 다른 직업을 택하겠습니다.
아드리안은 정말 억울해 보였다. 레이먼도 괜히 미안해졌다.
“…희망 진로를 적을 때 다른 이유가 있던 건 아니지?”
– 모두 형님을 위하는 마음에서 선택했습니다.
“…하아. 그래, 그럼 됐다. 나는 네가 나와 같은 클래스에 올 줄 알았거든. 아버지와는 상의해서 내린 결정이고?”
–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알지 못하십니다. 아버지는 왕실 마법사보단 감사국을 추천하실 거 같았거든요. 제가 아직 감사국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 입학 후에 알아보려 했습니다.
대화 중 알게 된 건, 아드리안이 아직 클래스 배정 기준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전후 사정을 알고 나니 레이먼은 아드리안에게 미안했다. 시험 합격 축하는 못 할망정 왜 왕실 마법사를 썼는지 추궁하는 못난 형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수고 많았어. 고생했다.”
레이먼의 짧은 격려에 아드리안은 금세 생기를 되찾았다. 15살의 눈동자를 밝게 빛내며 아드리안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 …감사합니다!
***
신선한 고기의 날이 끝나고 아카데미에는 다시 지루한 일상이 찾아왔다. 니콜이 아드리안의 포레스튼 입학 준비를 돕기 위해 본가로 떠나니 일상은 더욱 단조로워졌다.
포레스튼의 학생들은 매일 같은 수업을 들었고, 한 달에 두 번 밀리포레를 읽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이는 레이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른 아침, 레이먼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생활관 1층에서 나와 쭉 걸어 나가면 학생 식당이 있는 건물이 보였다. 아침을 먹는 학생들은 많지 않아서 지금 식당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교수들이었다.
레이먼은 익숙하게 앞으로 걸어가 오늘 메뉴를 확인했다.
“…미트파이다.”
레이먼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다. 미트파이, 미트파이. 노래를 부르며 미트파이가 있는 곳을 찾아 헤맸다. 뷔페식인 학생 식당에선 인기 있는 메뉴를 먼저 차지하는 쪽이 승자였다. 아침 일찍 오면 사람은 적었지만 그만큼 메뉴의 가짓수도 적었기 때문에 인기 있는 메뉴는 금방 동이 나곤 했다.
마지막 남은 미트파이를 접시에 담으며 레이먼은 빈자리를 찾아 구석에 앉았다. 신선한 샐러드와 방울토마토, 갓 구운 호두 식빵과 미트파이.
최근에 고추장 비빔밥 같은 한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으니 가끔 한 번씩은 이런 브런치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각사각. 미트파이를 열심히 반으로 자르는데 저 멀리 처음 보는 학생이 보였다. 아침 일찍 오는 학생들의 얼굴은 거의 외우고 있는 레이먼이었다.
‘1학년은 아니네.’
포레스튼에선 1~2학년은 파란색, 3~5학년은 노란색 교복 조끼를 입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그녀가 고학년이라는 것밖에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뒤로 파릭사가 따라 들어왔다.
“오, 레이먼!”
그때, 레이먼을 발견한 파릭사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고 레이먼도 자연스레 고갤 숙였다. 파릭사와 처음 보는 선배는 자연스레 레이먼 앞에 합석했다.
‘다 먹었는데.’
레이먼은 당장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일부러 방울토마토를 하나씩 나이프로 잘라 먹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지금을 예정했던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 파릭사와는 꼭 한 번 길게 이야길 나눠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 이쪽은…”
파릭사는 함께 앉은 학생을 소개해줬는데, 그녀는 2학년 나탈리 컬쳐 폴만으로 오디트에서 정령학을 공부 중인 학생이라고 했다. 레이먼은 그녀에게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었다.
“그래서? 요즘 학교생활은 어때?”
파릭사는 레이먼의 학교생활이 궁금했다. 신입생 중 가장 화려한 전적을 남긴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반대로 레이먼은 심드렁히 답했다.
“조금 지루해요.”
킹메이커로서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고 밀리포레로 활동하기에는 구린 냄새가 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말 그대로 비수기였다.
레이먼의 답을 들은 파릭사가 온화한 미소로 답했다.
“1학년은 기초 수업이 많으니까 지루할 만하지. 하지만 조금 있으면 ‘그’ 시즌이잖아. 나도 그것 때문에 오랜만에 나탈리를 만난 거거든. 나탈리가 정령학이랑 빛 계열 수업을 많이 들어서.”
“그 시즌이요?”
“1학년은 모르려나?”
“알 거야. 벌써부터 물 밑 작업을 한다는 사실만 모르겠지.”
“…혹시 ‘라 디밀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봐, 알잖아.”
나탈리가 말했다.
나탈리의 목소리는 고저가 거의 없고 로봇 같았는데,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과 잘 어울렸다. 갈색 눈동자에 콕콕 박힌 주근깨가 매력적인 나탈리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어쩌면 정령학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정령학에 능숙해질수록 자신이 다루는 정령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파릭사가 손뼉을 치며 답했다.
“응, 라 디밀레야.”
‘라 디밀레’는 포레스튼의 여름 축제를 말했다. 포레스튼에 있는 각양각색의 클럽들이 자신들의 장기를 뽐내고 축제에 참석한 타 가문이나 왕실, 혹은 상회의 유력 인물들에게 연구의 결과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축제였다.
그 규모나 인지도, 주목도가 모두 상당해서 라 디밀레에서 우수한 결과를 낸 선배들은 졸업 후 곧바로 마탑에 취직하기도 했다.
“하지만 라 디밀레는 7월이니, 거의 2개월 반이 남았어요.”
“보통 2학년이 많이 준비하니까 1학년한테는 시간이 좀 지나야 알려주거든. 하지만 이번에는 다 같이 준비하면 좋겠다. 다들 지루해할 타이밍이고 말이야. 넌 학생회니까 다른 애들보다 먼저 알 텐데. 네 담당 선배가 알려주지 않았어?”
“아직 들은 바는 없어요.”
“그럼 곧 알게 될 거야.”
“라 디밀레에서 제가 할 일이 있을까요?”
레이먼이 봤을 때, 라 디밀레는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지 즐기는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파릭사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라 디밀레는 할 일이 있는 축제가 아니라 원하면 할 수 있는 축제니까.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인 거지.”
“그럼 선배님들은 정령 관련 마법을 보여주시나요?”
파릭사가 환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나는 고향에 돌아가면 정령 미술학 교사가 되고 싶거든. 그래서 정령 가루로 만든 물감을 이용한 페인팅 공연과 전시회를 나탈리와 열려고 해.”
나탈리가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레이먼이 놀란 건 다른 지점이었다.
“파란색도 포함인가요?“
파란 정령 가루는 독성이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가루를 잘못 들이마시면 그대로 정신을 잃어 사지가 마비되곤 한다.
그런 가루로 물감을 만든다고? 어떻게?
“맞아. 독성을 모두 뺀 정령 가루 물감을 최근에 만들어냈거든. 아주 예쁠 거야. 기대해도 좋아.”
“그렇군요.”
“너도 한 번 생각해봐. 밀리포레 클럽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아? 나탈리도 밀리포레를 매주 읽을 정도로 좋아해. 요즘은 프리미엄 호가 나오지 않는다고 슬퍼하더라.”
그녀가 말이 없는 나탈리를 대신해 슬픈 시늉을 하며 말했다. 레이먼은 다 먹은 접시를 챙겨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아. 실을 만한 내용이 없어서요. 좋은 정보가 들어오면 새로 나올 겁니다. 그리고……라 디밀레에서 할 만한 것도 생각해볼게요.”
***
아침 9시. 첫 수업<기초 정령학 1>을 듣기 위해 레이먼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전부 아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수업 내내 책장 끝을 끄적였다.
“마법에서 ‘이 세상’은 속성을 나누는 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먼저 발견한 마법은 ‘물, 불, 바람, 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포레스튼의 클래스도 불, 물, 바람, 대지로 총 4개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그 기준을 바꾸었죠. 왜일까요? 유타, 대답해봐요.”
낙서를 끄덕이던 유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능숙하게 답을 해냈다.
“마법사가 ‘세상’을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법은 무한한 세상을 연구하는 학문이지 세상을 통달한 학문이 아니니까요.”
“맞아요, 유타 학생. 이 세상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한 정령조차 자연의 모든 속성을 파악하지 못하는데 일개 마법사가 속성을 모두 파악하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죠. 속성은 커녕, 우린 정령이 얼마나 많은 종류가 있는지도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이 수업에서는 정령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을 겁니다. 2, 3학년 때는 그걸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몇몇 학생들은 정령과 계약하게 되겠죠. 혹시 정령학을 배우고 싶은 학생이 이 자리에 있나요?”
그러자 몇몇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녀는 만족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런 학생들은 이 수업을 보다 집중해서 들어야 할 겁니다. 저기 보이는 레이먼처럼 딴생각이나 하는 게 아니고.”
“…아, 죄송합니다.”
들켰네. 레이먼은 끄적이던 펜을 책장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녀는 강단에서 내려와 레이먼이 앉은 맨 뒷자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레이먼 학생은 1학년 중에 가장 유명 인사라고 하던데, 정령학은 미리 공부하고 왔나요?”
“…아, 네.”
“나중에 정령과 계약할 생각도 있고요?”
“…계약이요?”
“네. 계약이요.”
레이먼은 그녀의 물음에 함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사실, 어제부터 대정령 하나가 레이먼에게 붙어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