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72)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72화(72/275)
세상과 함께 탄생한 정령이 처음 마법사들에게 알려진 것은 마력에 취한 한 정령이 마법사 앞으로 떨어졌을 때다. 마법사는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정령을 치료해주었고 그 일을 계기로 정령을 다루는 계약을 하게 되어, 정령사라는 직업이 탄생한다. 정령사라는 직업이 생긴 이후 활발해진 정령에 대한 연구는 정령학이라는 학문으로 정립된다.
포레스튼에서 배우는 게 바로 이 정령학이다.
그러나 수정 전 정령학은 불, 물, 바람, 대지의 정령이 전부였는데 정령학 개정 18판에서 등장하는 정령은 총 189가지로 나뉜다. 인간이 계약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정령은 4개의 종류에 국한되어 있으나 정령은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사물이나 자연에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마법사가 정령과 계약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정령과의 계약을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에 드는 게 최우선 조건이었으니까.
그래서 마법사들은 자연과 정령을 이해하고 그들과 친밀해지는 과정을 거친 이후에야 처음으로 정령을 계약하게 되는데.
레이먼은 그 과정을 모두 건너뛰었다.
그건 바로 어젯밤에 일어날 일 때문이었다.
***
밤마다 할 일이 없던 레이먼은 최근 시스템창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시스템에 말을 걸곤 했다. 욕을 하는 날도 있었고 ‘보상’을 주지 않으면 매달아버리겠다고 상냥히 달래는 날도 있었다.
대부분 시스템은 무응답이었는데 그날 밤은 달랐다.
[ 보상 측정이 끝났습니다. ]“뭐야, 반응할 줄 알잖아?”
그건 그렇고 보상 측정? 어떤 보상을 말하는 거지?
[ 당신은 3왕자라는 새로운 이를 왕 후보에 추가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 [ 친밀도 하락으로 현재는 왕 후보에서 제외되었으나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 [ 따라서, 시스템은 새로운 업적은 쌓은 당신에게 두 가지 보상을 지급합니다. ] [ 보상은 각각 메이커 포인트, 새로운 마법입니다. ] [ 이 둘은 모두 왕을 만드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 [ 즐기시길. ]레이먼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시스템이 ‘즐겨라-’ 라는 말을 했을 때, 좋은 일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생을 떠올려 보자.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정보를 구하기 위해 갔던 성이 갑작스레 무너지는 날도 있었고, 시스템이 강제로 지정해준 의뢰인은 대부분 의뢰 성공 후 비밀을 아는 레이먼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하.”
하지만 그렇다고 보상을 거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짧게 숨을 뱉은 레이먼이 새로운 보상을 확인했다. 메이커 포인트는 5포인트가 쌓여, 10포인트가 되었다.
[ 킹메이커로서의 삶 중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그 순간이 세이브 포인트로 자동 저장됩니다. 이는 본인이 직접 정할 수 없으며, 언제로 정해졌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 [ 메이커 포인트는 50포인트에 1회 사용 가능합니다. ]‘50포인트라.’
그럼 한 번 사용하기 위해서 왕 후보를 8명은 더 추가해야 하는 건가?
이딴 걸 왜 주는 거야? 매너스 한 명 추가하는 것도 운이었는데. 아니, 애초에 왕자들을 다 해도 8명이 안 되잖아?
‘아냐, 아무리 그래도 시스템이 바보도 아니고 분명 다른 방식으로 쌓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다음으로 레이먼은 보상 ‘새로운 마법’을 확인했다.
[ 보상 ‘새로운 마법’은 정령학입니다. ] [ 이는, 해당 세상에서 줄곧 따르던 대정령이 있었기에 측정된 보상입니다. ] [ 당신은 정령학을 배우지 않았기에 계급이 높은 해당 대정령을 볼 수 없었습니다. 시스템은 당신에게 ‘정령을 보는 눈’ 기본 패시브 특성을 선물합니다. ] [ 당신이 원하는 순간, 정령을 보여드립니다. ]‘정령을 보는 눈…!’
레이먼은 이 마법을 알고 있었다.
정령학을 처음 완성한 사람이 갖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눈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마법. 그 주문이 너무 길고 복잡해 그 눈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레이먼이 시스템의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시스템 창이 오색찬란하게 빛나더니 방 안을 흰 빛으로 가득 채웠다. 레이먼이 다시 눈을 뜨자 시스템 창은 사라진 채였다. 하지만 정령은 보이지 않았다.
[ 당신이 원하는 순간, 정령을 보여드립니다. ]‘난 지금 보고 싶은 건데.’
그때였다. 눈앞에 어떤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응?’
레이먼이 순간 헛것을 본 사람처럼 눈을 비볐다. 시스템이 정령을 보여준다고 했으니 눈앞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정령이 분명할 것이다.
그러니까… 분명 저게 정령이라는 소리였다.
레이먼이 정령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것은 아니었다. 빙의한 후 닥치는 대로 읽었던 서적 가운데 정령학이 수십 권이었다.
정령은 존재의 탄생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불의 정령이라면 화염을 닮은 드레스를 입었거나, 태어난 화염과 비슷한 색을 둘렀고 빛의 정령이라면 눈밭처럼 새하얀 모습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정령은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을 때가 많은데 이는 타 종족을 따라 하는 습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정령이 인간을 닮았다는 것이지, 실제 사람의 크기에 그 모습이란 뜻은 아니었다.
그 혹은 그녀는 녹색 장발 머리에 저무는 해와 분홍빛이 섞인 오묘한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가을의 하늘을 담은 푸른색 헐렁한 옷 때문인지 다른 정령들보단 크고, 동시에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자세로 테이블 옆 의자에 턱을 괸 채 앉아 주변 정령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얘들아, 저 치가 그렇게 좋니?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구나. 차라리 쟤 옆의 은발 머리 여자애가 더 똑똑해 보이던데. ]은발 머리 여자애?
‘유타의 비밀을 알고 있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요?”
[ …뭐야. ]레이먼의 질문에 정령들을 바라보던 세로 동공이 이젠 그를 향했다.
딱.
정령이 짧게 손가락을 튕기자 그 주변을 날아다니던 작은 정령들이 모습을 감추었다.
[ 너, 내가 보여? ]“예.”
[ 여태 못 보더니 어쩌다 볼 수 있게 된 거지? 아, 아까 특이한 힘이 준 선물이 정말이었나 보구나. 거짓말일 줄 알았는데 말이야. ]“……당신이 절 쫓아다니던 대정령입니까?”
[ 내 아이들이 너를 편애해서 말이야. 이 아이들은 특이한 걸 좋아하거든. 특이한 것에는 사람들의 사랑이 많이 몰리니까. ]‘저런 걸 대체 왜 좋아하는지.’
대정령은 레이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훑어도 취향이 아니었다. 비상함으로 따지자면 은발 머리 쪽이 더 나았고, 재능으로 따지자면 보라색 머리가 더 뛰어났다. 정신력으로 따져도 이놈이 아닌 다른 놈을 더 좋아해야 맞는 건데.
이상하게 자신의 아이들은 이 아이를 따르는 것이다.
‘하긴 특이한 걸로 따지면 이치가 가장 특이하지. 본래 이곳의 영혼이면서 다른 세상의 기운을 한껏 품고 있으니.’
[ 그래. 이제 날 보게 되었으니 뭔가 원하는 거라도 있는가? ]“….”
[ 말해보거라. 내 뭐든 들어는 주겠다. 어리석은 치들의 소원을 듣는 건 정령의 특권이지 ]“애초에.”
[ 애초에? ]“제가 보여달라고 한 적은 없는데요. 근데 무슨 정령이십니까? 당신 같은 정령은 처음 보는데요.”
***
“레이먼 학생?”
“아. 예. 기회가 된다면 정령과 계약하고 싶습니다.”
[ 붉은 치야, 얼른 말하지 않고 뭐해. 정령을 보는 눈도 갖고 있고, 사랑의 대정령 아모르가 네 곁에 있다고 말이야. ]‘그걸 쪽팔려서 어떻게 말합니까.’
그래, 어젯밤의 정령은 저 자신을 사랑의 대정령 아모르라고 소개했다. 레이먼이 읽은 정령학에도 감정의 정령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때론 강렬한 감정으로 태어나는 정령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는 분노이며, 이외 사랑이나 슬픔, 즐거움의 정령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정령들은 보는 눈이 상당히 까다로워 보통 그 사람 개개인의 성향을 중요시한다고 한다.’
[ 사랑의 대정령이 이렇게 누군가를 따라다니는 건 처음이니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레이먼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일평생 사랑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남의 정보를 훔쳐 다른 이에게 가져다 주거나 타인의 정보를 남에게 팔아넘기는 일을 하는 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같은 직업군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은커녕 도리어 서로를 의심하기 바빴다.
그런 자신에게 흥미를 표한 정령이 ‘사랑의 대정령’?
뭔가의 착오가 틀림없었다.
[ 난 네 가능성을 본 거지. 아이들이 말해주더구나. 네가 유타라는 아이를 왕으로 올리려 한다던데. 네가 내 마음에 든다면 그 일을 도와줄 수도 있지. 이제 날 볼 수 있으니 나도 네 일을 더욱 즐겁게 구경하도록 하겠다. ]입단속은 철저히 시킬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정령은 인간의 정치사에 간섭하진 않으니 말이야.
어젯밤 그렇게 말한 대정령은 그 뒤로 레이먼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머리 색을 닮은 초록 완두콩이 레이먼의 어깨에 붙어 다녔다.
크기는 작아졌어도 대정령은 대정령이었으니 ‘정령을 보는 눈’을 소유한 이나 시스템처럼 특별한 힘이 발휘되기 전까진 누구도 아모르의 모습을 볼 순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제는 계약자가 된 레이먼이 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거나.
그건 식당에서 파릭사와 나탈리를 봤을 때 확실히 증명됐다. 심지어는 정령학 교수도 못 볼 정도니 말이다.
“그렇다면 레이먼 학생도 최대한 열심히 강의를 따라오도록 하세요. 알겠나요?”
“예. 죄송합니다.”
“좋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정령학의 기초를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학년 진도까지는 실기 없는 필기시험이니 책과 함께 수업을 주의 깊게 들으세요.”
“네에-.”
수업을 마친 쉬는 시간, 학생들은 오늘자 밀리포레에 실린 기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 밀리포레 봤어?”
“아니, 오늘 건 건너뜀.”
“야야, 오늘 밀리포레에 뭐 실렸는지 알아? 식당 베스트 메뉴 10이야. 저번엔 5였는데.”
“오, 그건 좀 궁금.”
“시금치 스프가 9위인데도?”
“그 설문은 누가 참여한 거냐?
레이먼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했다.
‘확실히, 보는 사람이 줄긴 했어.’
사실 최근 밀리포레는 꽤 난항을 겪고 있었다.
놀랍도록 평화롭고 지겨운 학교생활이 그 이유였다. 밀리포레에도 실을 만한 내용이 거의 바닥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밀리포레를 만들어준 컨닝 사건과 같은 일을 터뜨리기엔 들어오는 정보나 증거들이 하잘것없었고 자극적인 사건만 추구하다가는 밀리포레의 이미지가 추락하기 때문이다.
밀리포레는 절대 길바닥 싸구려 가십지같은 이미지를 차지해선 안 됐다. 클럽 소속 유타의 이미지는 고귀하고 정의로워야 했다. 밀리포레는 그걸 위한 신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실을 만한 내용이 마법약학 수업에 대한 내용이나 교수님의 인터뷰, 식당 베스트 메뉴5 등이 전부였다.
이런 사정들로 평화로운 시기에는 학생들의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이 없었던 거다.
톡, 톡, 톡. 레이먼은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했다.
[ 사랑. 사랑이지. 붉은 치야. ]‘사랑이요?’
[ 그래, 모든 이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건 불이나 물을 다루는 훌륭한 마법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도 아닌 사랑이니 말이야. ]‘완두콩이 그런 말을 하니 꽤 설득력이 있네요.’
[ 날 놀리는 거냐? 네가 원하면 당장이라도 인간 모습을- ]‘아뇨, 진심으로요.’
사랑. 그래,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연예인의 스캔들. 공개 고백. 친구들과의 우정. 친구나 연인에 대한 기대와 실망. 이 모두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비롯된 것이다. 레이먼의 머리에선 라 디밀레에서 할 만한 기발한 이벤트가 떠올랐고, 때마침 식당에서 단백질 호밀빵을 사 온 유타와 함께 식당에 갔던 오닉스가 돌아왔다.
“유타, 오닉스.”
“?”
“이리 와봐. 할 얘기가 있어.”
“뭔데?”
오닉스는 레이먼에게 가는 발걸음이 어쩐지 불안했다. 저놈이 또 이상한 걸 생각해낸 건 아니겠지?
“뭐야?”
“우리 그걸 하자.”
“그러니까 뭘.”
“사랑.”
“뭐?”
“사랑을 하자.”
“그…… 이렇게 셋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