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84)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84화(84/275)
엘프국의 국왕, 르바우 4세는 전 국왕과 달리 인간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는 술을 좋아했고, 젊은 시절 그는 훌륭한 술을 찾기 위해 엘프국을 떠나 다양한 국가를 다녔는데 그중 인간들이 주조한 술이 최고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르바우 4세는 소탈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국민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렸는데 종종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지만 르바우 4세를 찾으려면 그 길에서 가장 얼큰하게 취한 엘프를 찾으면 된다는 소리도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바로 연회장으로 가면 될 거 같아. 식사를 준비해두신 모양이야. 내 나이 또래 인간을 데려오는 건 처음이라 분명 긴장하셨을 거야. 너무 놀라지는 마.”
파릭사는 ‘놀라지 마’라는 말을 대여섯 번은 더 덧붙였다.
‘…왜 그런 말을 하나 했더니 이건 놀랄 만하네.’
“다들 잘 왔네.”
‘…작다.’
‘작네?’
‘너무 작은데?’
르바우 4세의 얼굴은 엘프국의 엘프가 저술한 책에서 묘사된 적이 있었다. 묵직하지만 부드럽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인상…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짧았다. 레이먼의 키인 5피트 6인치, 현대식으로 말하면 167센티미터 정도보다 살짝 작은 정도였는데, 엘프 중에선 꽤나 작은 편에 속했다.
“안녕하세요. 유타 스테디움 스턴입니다.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엘프국 국왕 르바우 4세다. 우리야말로 정의로운 새싹들을 엘프국에서 맞이할 수 있어 기쁘다네. 좋은 교류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군.”
엘프국에서 준비한 식사는 다행히 엘프가 아닌 인간에게 맞춘 식사였다. 나뭇잎에 싸인 뻑뻑하지만 향긋한 통밀빵, 근처 고블린이 아니라 기름기가 흐르는 돼지를 구운 통고기 바비큐,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붉은 열대 열매 스튜 등. 이름 모를 음식도 많았으나 대부분 맛이 좋았다.
르바우 4세는 그 명성답게 술이 가득 든 항아리를 연회장 옆에 쌓아두고 있었는데 그는 레이먼 일행에게 적극적으로 술을 권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같은 말이 반복되고 술맛이 나는 음료까지 등장하자 결국 유타가 먼저 그 음료를 한 입 마셨고, 그다음으로는 레이먼이, 그다음으로는 오닉스가 한 잔씩 받았다.
‘…좋다.’
레이먼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그의 나이가 17살. 스턴 왕국에서 술이 허용되는 나이는 19살. 하지만 3년이나 남았는데도 그리운 맛은 역시 잊을 수 없는 법이었다.
‘진짜 술이면 더욱 좋았을 텐데… 쩝.’
악마의 유혹이 레이먼을 덮쳤으나 그는 유타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 걸 보고 결국 참아냈다. 여기서 추태를 보인다면 분명 친밀도가 신뢰도가 하락할 게 분명했다.
식사가 끝이 나고 파릭사의 인도 아래에 모두 준비된 손님방으로 향했다. 모두가 다른 방이었고 시종인인 니콜까지도 개인 방을 받았다.
덕분에 레이먼은 쉽게 계획을 짤 수 있었다.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지금쯤일 텐데….’
레이먼은 집에서 가져온 <엘프국의 역사>을 펼쳤다.
<엘프국의 역사>를 지은 엘프는 엘프국을 떠나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돌던 엘프가 쓴 책이었다. 이 책에는 엘프국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레이먼은 눈앞에서 깜빡이는 시스템 창을 바라보았다.
[ 예견 : 엘프국의 가장 소중한 보물이 사라지고 이를 찾는 걸 도왔을 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단, 요구하지는 말 것. ]‘요구하지는 말 것… 이라.’
뭘 요구하지 말한 거지?
<엘프국의 역사>에서 보물에 대한 이야기는 한 챕터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하지만 보물이 무엇인지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엘프들이 ‘그걸’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만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 엘프들은 마력을 몸에 담아두지 않는다. 하지만 우릴 이 내용을 수정해야만 한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상식으로 엘프들은 마력을 몸에 담아두지 않은 게 아니라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자연 그 자체인 육체엔 마력을 담아둘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응축된 마력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응축된 마력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딱 한 곳이 있다. 하지만 ‘그 장소’, 엘프들은 보물인 ‘그 장소’가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레이먼은 이 글을 읽자마자 확신했었다.
‘…되겠는데?’
***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해가 중천에 뜨기 전, 나지막하게 일어난 레이먼이 문을 열자 아드리안이 그를 반겼다.
“…아드리안, 너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던 거야?”
“얼마 안 됐습니다. 식사 시간에 딱 맞춰 일어나셨어요.”
“아, 그래? 그럼 가자.”
“네. 그런데 형님…”
“응?”
“어제 늦게까지 방에 불이 켜져 있던데 무슨 일 있으셨나요?”
아드리안이 걱정스러운 듯 제 형님을 올려다보았다. 레이먼은 별거 아니라는 듯 쩌억 하품하며 답했다.
“아하니? 그냥 책 좀 읽었지. 아, 오늘은 엘프국을 구경한다고 했나?”
“네. 원하는 곳을 한 군데씩 말하면 파릭사 선배님과 다른 엘프분들이 저희를 안내해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 답한 레이먼은 자연스레 아드리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만두처럼 뽕실하게 차오른 아드리안의 볼이 오늘따라 더욱 빵실하게 차올랐다.
***
“광장 나무에?”
“네.”
아침 식사 시간, 가고 싶은 장소에 대해 논의하던 파릭사가 놀란 듯 재차 질문했다.
“광장 나무는 엘프국의 보물은 맞지만, 마을을 돌다 보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건데 정말 그걸 보러 따로 가고 싶다는 뜻이야?”
“네. 엘프국에 오기 전에 <엘프국의 역사>라는 책을 읽었는데 보물이라길래 궁금해서요.”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럼 다들 준비해서 나가자. 오늘은 그럼 중심지 위주로 보여줄게.”
아침 식사는 전날 저녁에 비해 매우 간단히 끝났다. 퍽퍽하지만 건강한 통밀빵과 우유처럼 부드러운 스프, 그리고 나뭇잎으로 만든 샐러드까지. 건강한 식사를 마친 이들은 저마다 짐을 챙기고 다시 방을 나섰다.
유타는 엘프국의 도서관을, 오닉스는 엘프국의 마법사들의 연구실에 가장 가고 싶어 했으므로 광장에는 파릭사와 레이먼, 그리고 아드리안, 니콜만이 가게 되었다.
“유타.”
레이먼이 도서관으로 향하던 유타를 불러세웠다.
“응?”
“난 광장에 가서 사고를 칠 거야.”
“응?”
“그러니까 네가 해결해야 해.”
“…무슨 소리야, 레이먼.”
“네가 알아채지 못하면 내가 알려줄 테지만 가급적 네가 알아내야 해. 알았어?”
난 간다. 지나치게 쿨한 마지막 말과 함께 레이먼은 유타의 어깨를 툭툭 치고 떠났다. 유타는 레이먼이 치고 간 어깨를 멍하니 바라보다 툭툭 털었다.
“…뭐라는 거야, 저 새끼.”
알아듣게 말하고 떠나… 미친놈아….
***
엘프국의 성에서 광장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엘프국 자체가 별로 크지 않았고 그 수도는 스턴 왕국 수도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마차에서 내린 레이먼은 처음 보는 엘프국 문명을 열심히 눈에 담았다.
오두막이라고 지은 집은 대부분 오래된 거목의 아래를 변형시켜 지은 집이었다. 대부분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엘프들은 쉬운 일에도 모두 마법을 사용해 해결했다. 예를 들어,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집 앞을 빗자루질할 때도 말이다.
한편 아드리안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꽤 놀라고 있었다.
‘일상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수가 이렇게 많을 수가 있나?’
스턴 왕국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최근에 마법사들의 수가 많이 늘어나는 추세이기는 해도 여전히 마법사의 수는 일반인보다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완드 소지가 금지됐던 거고. 하지만 엘프국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엘프국이 전쟁에 적극적이지 않아서 다행이네.’
말 그대로 엘프국은 중립지대다. 다른 국가에 유학을 가거나, 여행을 하러 가기도 하고, 물건을 팔고 사기도 하지만 이게 전부다. 어떤 곳을 위해 싸워주거나 인력을 동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에 무어라 하지 않는다.
엘프국은 작고, 그 수가 적다고는 하나 그 수 전부가 마법사였다. 그렇다면 그중에 6서클 이상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엘프는? 5서클 이상은? 아니, 다들 3서클 이상의 마법만 쓸 수 있어도?
그리고 그들을 전쟁에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섣부른 생각은 금물이다.’
레이먼이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길 것이 분명하다’라는 확신이 없는 전쟁은 해선 안 된다. 하물며 다른 종족을 끌어들일 때는 말이다. 혹시 모를 오판이나 자만으로 그런 전쟁을 했을 때 입게 될 피해는 상당하기 때문이다.
레이먼은 엘프국을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지금의 엘프국은 중립국이니 아무런 쓸모가 없다. 쓸모가 없는 곳과는 친해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작은 행동 하나로 쓸모를 가질 수도 있다면… 작은 행동을 실시하면 된다.
엘프국과 스턴 왕국은 쌓아온 악연이 없는 관계이니 이제부터라도 좋은 관계를 쌓기만 하면 된다. 그러한 관계는 어떻게 쌓는가. 그건 쉽다. 무슨 짓, 예를 들어 자작극을 벌여서라도 호의를 베풀면 된다. 설령 그 자작극이 나쁜 짓이라도 안 들키면 장땡이다- 이 소리다.
척.
“자, 여기가 바로 엘프국의 보물, 광장 나무야. 특별한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데 말이야, 음…결국 고민만 하다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거든.”
파릭사가 안타까운 듯 웃었다. 그녀는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에 특별한 별명이라고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크네요.”
광장 나무는 레이먼이 살면서 본 나무 중 가장 컸다. 엘프국으로 들어오는 길에 봤던 거목도 분명 컸었는데, 이 나무는 몇 배는 커 보였다. 레이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파릭사가 설명을 이어갔다.
“책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이 나무는 <마력을 담아두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나무야. 우리와 전혀 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나무를 보물로 삼는 이유는-.”
“갖고 있지 않아서 그런 거죠?”
레이먼이 나무 가까이 다가갔다. 파릭사가 답했다.
“응. 맞아. 우리가 인간의 마법을 배우는 것도 그 원리가 신기해서야. 물론 마법을 쓸 때, 서클이 없는 편이 편하기는 하지만… 공부와 실천은 다른 거니까. 하지만 최근엔 나무가 망가지고 있어서 걱정이야. 엘프들의 마력은 늘 자연의 흐름대로 흐르기 때문에 상관은 없지만 자연 속 마력을 쌓아두는 것도 이젠 힘든 모양이야.”
파릭사가 나무의 표면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쓸었다.
“그렇군요. 이 나무는 엘프분들에게 매우 소중한 나무겠네요.”
“응. 옮길 수도 없어서 골치지만 그건 우리가 감내해야지.”
파릭사가 쓰게 웃었다. 아드리안은 레이먼의 눈빛이 묘하게 빛나는 걸 눈치챘다.
‘형님…?’
그 순간, 레이먼은 시스템 창을 켰다. 잘은 모르지만 시스템이 준 특성의 힘은 마력이 아니다. 이 나무가 마력과 같은 힘을 담아두는 나무라면, 특성이 그 흐름을 망가뜨린다면 어떨까?
[ 일반 특성을 사용합니다. ]“이 나무가 얼마나 소중한 지 저도 깨달았습니다.”
[ 당신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립니다. ] [ 일반 특성을 사용합니다. ]“꼭 보호해야겠네요.”
[ 당신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립니다. ] [ 일반 특성을 사용합니다. ]“제가 뭐 도울 건 없을까요?
[ 당신의 거짓말이 진실처럼 들립니다. ]“레이먼, 넌 정말 좋은 아이구나?”
파릭사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레이먼이 활짝 웃었다. 그 순간, 아드리안은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광장 나무의 뒷면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