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85)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85화(85/275)
레이먼이 ‘이’ 방법에 확신을 가진 건 아모르가 시스템 창을 보고 던졌던 몇 마디의 짧은 대화 덕분이었다.
[ 붉은 치야. 그런데 네 앞의 그 창은 뭐냐? ]– 이게 보이세요?
[ 보이지. 그 이상한 것 때문에 흐름이 뚝뚝 끊기는데. 마력도 아니고, 애초에 이 세상 힘의 것이 아닌데 너한테 탁 달라붙어 기생해 살아있구나. 오호라, 네 몸에 마력이 아닌 다른 힘이 느껴지는 것도 이것 때문이구나. ]– …그럼 이 시스템 창은 마력이랑 완전히 다른 힘이란 소리죠?
[ 그래. 다르니까 섞이질 않지. 쯧쯧. 그 힘이 다른 마법사의 서클에 깃들었다가는 그 마법사의 몸은 아주 산산이 조각날 거다. 너니까 맞는 거야. ]마법사의 몸은 자연과 다르다. 그리고 그 중간 과정이야 어찌 된 영문이든 억지로 만들어낸 작은 자연이 바로 서클이다. 그 작은 서클에 마력을 욱여넣어 저장하는 거고.
만약 그렇다면 엘프국의 보물, ‘광장 나무’에 마력이 아니라 시스템의 힘을 흘려보낸다면 나무는 어떻게 될까? 버틸까?
아마… 버티지 못할 거다. 레이먼의 예상대로라면 새로운 힘에 버티지 못한 나무는 껍질부터 갈라져 내려앉거나 밑동부터 악취를 풍기며 썩거나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엘프국의 상징이자 몇백 년간 내려온 보물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엘프들은 분명 이성을 잃고 슬퍼하겠지.
하지만 반대로, 그런 상황을 누군가 해결해준다면?
무엇이든 해주려 들 거다. 무엇이든.
그래서 레이먼은 시험해보기로 했다.
– 이 나무가 얼마나 소중한지 저도 깨달았습니다.
– 꼭 보호해야겠네요.
– 제가 뭐 도울 건 없을까요?
예상대로 나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마 오늘 밤, 아니면 내일 아침 이상함을 느낀 엘프들이 나무에 관한 소문을 낼 거고 그 소문은 왕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한편 파릭사는 그런 레이먼의 마음의 소리를 전혀 읽지 못했다. 그녀는 엘프국의 나무를 자기 것처럼 소중히 여기며 쓰다듬어주는 레이먼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했다.
‘레이먼은 참으로 훌륭한 아이구나.’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다. 보통 입학식 날, 클래스장의 설명이라면 무시하는 애들이 태반이다. 애초에 포레스튼에 모이는 아이들은 자기 잘난 맛에 오는 애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레이먼은 달랐다.
‘우리 보물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다니.’
초롱초롱한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휴게실에서 마주치는 날에는 꼬박꼬박 인사를 했고, 라 디밀레에서는 자신에게 물어봤던 정령학에 흥미를 붙여 진짜 정령을 계약까지 했다.
이보다 사랑스러운 후배가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 아이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흥미가 생겼다.
특히 5왕자.
중립국을 대표하는 엘프들은 타 국가의 왕족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혹여 원래 의도와는 다른 시선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릭사 역시 그랬다. 하지만 유타는 알면 알수록 괜찮은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먼 덕분에 눈길이 갔지만 다른 의미로도 눈길이 갔다.
혼자 있을 땐 동떨어져 있는 다른 학생들을 도왔고 시험 기간 중엔 다른 친구들에게 공부에 대해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파릭사?”
순간 다른 생각에 빠진 파릭사에게 레이먼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 레이먼. 음, 저걸 도울 방법은 아마 없을 거야.”
“그렇군요.”
“응.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광장 나무가 쓰러질 때까지 걸릴 시간을 늦추는 정도겠다. 그 방법도 아직 모르지만 말이야.”
파릭사가 쓰게 웃었다.
“그럼 갈까? 엘프국엔 구경할 거리가 아주 많아.”
“좋아요. 아드리안?”
“아, 네. 형님! 갈게요!”
광장 나무에서 떨어진 껍질을 주머니에 숨긴 아드리안이 서둘러 레이먼을 쫓아갔다.
***
파릭사의 말대로 엘프국엔 구경할 거리가 잔뜩이었다.
‘외국… 미국도 가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레이먼은 전생의 자신이 가장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떠올렸다. 그는 언제나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로 ‘미국’을 꼽았다. 각성하기 전에도, 후에도 그는 미국을 떠올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모두가 기회의 땅이라며 떠들어댔고 그가 아는 한 가장 화려한 여행지가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게 그럴 여유는 없었을뿐더러, 이윽고 그럴 여유가 생겼을 땐 죽었다.
그러니 이건 그의 첫 해외여행이었다. 스턴 왕국이야 이 몸의 고향이었으니 해외여행으로 보기 좀 그랬고. 어쩌면 이곳이야말로 미국보다 훨씬 희소성 높은 여행지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엘프국은 책에서 봤던 것보다 작지만 거대했으며, 각각의 집에는 나무나 수풀의 역사가 담겨 있었다.
“여기는 우리 엘프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상실이야. 원래는 나뭇잎으로만 옷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인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천을 배워온 거야. 우리도 그들에게 바람의 정령과 소통하는 법을 알려줬고.”
“여기는 도서관이야. 들어가면 벽면이 두 가지 색깔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은 엘프국에서 출판된 책, 한쪽은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책들을 모아둔 곳이야. 원한다면 마음껏 빌려도 된단다.”
“여기는-.”
“도련님! 엘프국에서도 케이크를 팝니다!”
“니콜, 진정해. 그러다 근손실이 올 수도 있어.”
“도련님! 도련님!”
“하하하, 레이먼의 시종인은 재밌는 사람이구나.”
“…예, 그런 편이죠.”
파릭사의 친절한 안내는 엘프국 여행기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들었고 레이먼의 눈에서도 점차 빛이 돌았다. 그건 아드리안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엘프국 수도 투어를 마쳤다. 돌아가는 길에서 아드리안은 레이먼에게 다가와 몰래 속삭였다.
“형님, 이게 조금 전 광장 나무에서 떨어졌어요.”
“…?”
아드리안이 내민 건 나무껍질이었다.
‘…봤나? 아니, 그럴 리 없지. 아드리안의 눈에 시스템 창은 보이지 않으니까.’
“파릭사 선배님께 말씀드려야 할까요?”
“떨어진 이유는 알고 있어?”
아드리안이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었다.
“아뇨, 잘 모르겠어요. 모래처럼 후두둑 떨어져서 위를 올려다봤는데 다른 껍질들도 그런 식으로 벗겨지고 있어서요.”
“…일단 있어 봐. 확실해지면 선배가 먼저 말해줄 거야.”
“알겠어요. 그럼 일단 형님께 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아드리안은 떨어진 껍질 한쪽을 레이먼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럼 얘들아, 우린 저녁 시간 때 다시 보자. 유타는 아직 도서관에 있고, 오닉스는 우리 연구원이 데리고 있다고 들었어. 찾아가고 싶으면 그쪽으로 가면 될 거야.”
“네. 감사합니다.”
성에 도착한 뒤, 파릭사는 간단히 설명을 끝내고 아버지를 보러 돌아갔다.
아드리안은 피곤했는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레이먼은 곧바로 지하에 위치한 왕성의 도서관으로 향했는데, 도서관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새어 나오는 우울한 기운이 온몸을 덮쳤다. 문을 열자마자 반나절 만에 눈이 퀭해진 유타가 레이먼을 흘겨보았다.
‘세상에. 내가 너무 힌트를 안 주고 갔나?’
굽은 허리에 눈 밑에 드리운 다크서클이 마치 거대한 바퀴벌레를 보는 것 같았다.
레이먼은 ‘너 바퀴벌레처럼 생겼어, 지금.’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삼키고 유타에게 다가갔다.
“유타.”
“…아, 레이먼 이 개새끼야.”
“응?”
“미안. 그만 본심이 나왔어.”
“아냐, 이럴 만해.”
“그래, 맞아. 이럴 만해. 왜 그런 말을 남기고 가서 날 괴롭게 한 거야?”
“책 보면 주인공들이 다들 그러길래.”
“네가 주인공이야?”
“아니. 아니지. 현실에 그런 게 어딨겠어.”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채, 책에 둘러싸여 있는 유타 곁에 레이먼도 함께 자리했다.
곁눈질로 책들의 제목을 살피니 엘프국의 역사와 엘프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법식 혹은 주문에 대한 설명이 담긴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유타는 레이먼이 예고한 ‘사고’와 ‘사고를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런 책들을 고른 모양이었다.
“…….”
“…….”
“뭐야, 말을 해.”
유타는 옆에 앉은 레이먼을 계속 흘끔댔는데 묻지 않아도 대충 무슨 질문을 할지 알 것 같았다.
“사고 쳤냐고?”
유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먼이 답했다.
“응, 성공한 듯?”
“……와. 그걸 진짜 하네.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말을 해봐.”
“음. 보물을 망가뜨렸어.”
“보물? 설마 그 나무?”
엘프국의 광장 나무는 매우 매우 유명했다. 아주… 아주 많이.
어느 정도냐면, 그 보물을 망가뜨리는 순간 엘프국은 중립국이 아니라 망가뜨린 놈의 나라를 찾아가 그놈들을 아주 족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유타의 얼굴이 점차 사색으로 변했고 레이먼은 활짝 웃었다.
“하하.”
그 미소를 본 유타는 레이먼을 처음으로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크게 쓸어내린 유타가 후- 크게 숨을 내쉬었다.
‘쭉 믿고 가기로 했어. 그래서 비밀을 알려준 거고. 이번 여행에서 렌스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것도 그것 때문이야. 믿을 사람은 완벽히 믿어야 하니까. 계기가 필요했다고.’
그리고.
‘얘가 나한테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어. 이유가 있을 거야.’
유타는 레이먼에게 욕지거리를 더 지껄이는 대신, 읽었던 책 중에서 무언가의 방법을 찾기로 했다. 광장 나무, 그 나무의 특성, 엘프들의 마법 특성, 마법 주문, 마법식. 유타는 그날 저녁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 상황까지 레이먼이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유타는 결국 해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말이다.
***
다음 날 아침, 엘프국은 뒤집혔다.
“흐아아암-.”
망가진 나무를 발견한 건, 아침 조깅을 하기 위해 나온 평범한 엘프국 청년1이었다. 크게 하품하며 나온 그의 얼굴 위로 검은 나뭇잎 하나가 파랑이며 떨어진 것이다.
‘…검은 나뭇잎?’
투둑. 생각과 이성의 끈이 동시에 끊어지고 그는 광장 나무 주위를 10바퀴를 돌았다. 그는 현실을 자각하자마자 동네방네 소리를 질러댔다.
“나무가! 나무가! 나무가!”
“왜? 무슨 일이야?”
“나무가! 나무가?! 나무가 왜?”
“나, 나, 나무! 모래! 가루! 나뭇잎! 검다!”
“이거 독에 중독이라도 된 거 아니… 나무, 나무, 나무가!”
“나무가! 나무가! 나무가!”
온 마을 엘프들이 나무가! 나무가! 라는 말만 되풀이할 때쯤, 왕성에도 광장 나무의 소식이 전해졌다. 파릭사의 얼굴이 사색이 된 데에 더불어 왕성도 뒤집혔다. 몇몇 엘프들은 레이먼 일행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도 했다. 그들의 마을에 외부인이 침입한 때에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보물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외부인의 의심하는 건 엘프든 사람이든 똑같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도 파릭사는 레이먼을 믿었다.
“미안해, 레이먼. 다들 나무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래.”
“아뇨,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저희가 외부인이니까요. 나무는 좀 어떤가요?”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 봐. 나뭇잎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라고. 걱정이네…….”
양심이 아플 법도 한데 레이먼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군요. 저도 많이 슬프네요.”
그때, 복도 끝 방에서 유타가 등장했다.
“파릭사 선배.”
“아, 유타.”
“나무는 괜찮나요? 안 좋은 소식이 성 곳곳에서 들리더라고요.”
“응, 괜찮아. 어떻게든 될 거야.”
“그런데 저희가 나무를 살릴 방법을 찾아낸 것 같은데… 알려드려도 되나요?
“당연히 그럴 수…….”
잠깐, 뭐라고……?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