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8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87화(87/275)
오닉스가 무언의 위화감을 느낀 건 그 순간이었다.
‘…레이먼?’
마력을 흡수하는 마법은 애초에 간단한 마법이 아니다.
이 자리에 모인 1학년들이 한 명은 왕족이라 예습을 끝냈고, 다른 한 명은 마탑 연구실에서 썩어나느라 그 마법을 알아야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둘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레이먼은 둘보다 마력이 적었고 배경지식이 있었기에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흡수 마법이 어려운 이유는 ‘마력의 역류’ 때문이다.
본래 마법사가 마력을 사용하는 방식은 의식적으로 마력을 ‘방출’하는 것이다. 흡수는 서클의 크기에 따라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지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데 그 원칙을 무시하고 자연의 마력을 흡수한다면?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지 않는 이상 마력은 역류할 것이다. 역류한 마력은 혈관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선 서클을 영구적으로 망가뜨릴 가능성까지 있다.
그래서 신중해야 했다. 오닉스는 흡수 단계를 차근차근 이행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레이먼은 뭔가 틀렸다.
‘이봐, 뭐 하는 거야.’
오닉스가 속으로 고함을 질러댔으나, 이게 들릴 리가 없었다. 그러나 손을 뗄 수도 없었다.
퍼석거리던 광장 나무의 껍질이 서서히 생기를 찾아갔다. 바닥으로 떨어졌던 검은 낙엽들은 시간을 역행하듯 그들이 엘프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푸르게 변하며 원래 자리를 찾아갔다. 반대편에 선 유타는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으나 오닉스는 달랐다.
만약 이대로… 이대로 계속 흡수를 진행하다간 레이먼의 서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벌어졌을지도.
당황한 오닉스가 입을 뻐끔대자 그제야 레이먼이 고갤 돌렸다.
‘괜찮아.’
‘야… 너 그러다 서클이….’
‘앞에 봐.’
광장 나무는 생기를 잃어가는 레이먼과 정반대였다.
“세상에.”
한편 나무의 변화를 지켜보는 파릭사는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광장 나무에 꽃이 피고 있었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전설처럼 읽었던 한 구절.
[ 맨 처음, 광장 나무가 초대 왕의 키를 넘어섰을 때 순백의 눈보다 하얀 꽃이 광장 나무의 나뭇가지를 꽉 채웠다. 감히 신이 존재한다면 엘프들은 기꺼이 그 순백의 꽃이 신의 강림이라 부르리라. ]순백의 꽃. 여름 사이에 피어난 겨울. 하지만 절대로 보지 못한 그 계절이 지금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 겨우 17살이 된 인간들의 손에 의해서.
꽃잎이 하늘에 휘날렸다. 오두막 안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한 어린 엘프가 손을 뻗었다. 그 위에 안착한 꽃잎은 환한 빛을 머금고 어린 엘프를 비추었다.
“…예쁘다.”
“죽었던 나무가 되살아났어.”
“기적이야, 이건 기적이라고!”
“마을에 놀러 온 인간이 기적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으로 피어난 외부인이 대한 불완전한 의심은 꽃잎과 함께 눈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한여름의 생기처럼 사람들의 눈엔 환희와 희망이 가득했으며 그 끝엔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제 한계야.’
그리고 더 이상 마력을 흡수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유타가 다른 쪽에 선 오닉스와 레이먼을 향해 소리쳤다.
“이제 손 뗀다!”
“얼른 떼…!”
그리고 들려온 오닉스의 다급한 목소리에 유타는 서둘러 손을 떼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오닉스는 멀쩡했다. 정순한 마력을 온전히 머금은 2서클의 마법사는 도리어 피부에 윤기가 흐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레이먼은 달랐다.
그는 가슴께의 옷자락을 꽉 쥔 채 흐트러진 모습을 하고 있었고, 급박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노란 물을 토했다.
“레이먼!”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애초에 이 방법을 듣고 정답이라며 제일 기뻐했던 건 레이먼이었다. 이 일을 계획한 것도 레이먼이었다.
– 왜 굳이 사고를 치냐고?
– 내 말은 왜 굳이 위험 부담을 지냐 이 말이야
–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는데?
– 사용할 만한 정보를 얻었고, 그 정보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그게 너와 내 앞길에도움이 된다면 더더욱.
– …….
– 유타,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잘 들어둬. 정보는 가지고 있는다고 의미가 있는 게 아니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거지.
그렇게 말한 레이먼이… 왜.
“얘 왜 이래?”
“서클이 망가졌어. 아까부터 마력이 계속 흘러내리잖아.”
“…!”
서클에 마력을 보존한 유타나 오닉스와 달리 레이먼은 흡수한 마력이 온몸의 구멍을 통해 빠져나오고 있었다. 엘프에겐 당연한 현상이었지만 인간은 달랐다. 서클이 없는 인간이 몸에 마력을 담을 일은 애초에 없었고, 서클이 있는 인간이라면 마력이 넘치는 경우는 있어도 흘러내리는 일은 없었으니까.
“잠시만-.”
당황한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파릭사가 레이먼의 상태를 살폈다.
‘이대로 가다가는….’
파릭사가 고갤 내저었다.
최악의 상황은 생각하지 말자. 그녀가 곧바로 레이먼을 업으며 입을 열었다.
“아빠한테 데려가야 해.”
“르바우 국왕님께요?”
“그래, 가서… 엘프의 가호를 받게 할 거야.”
광장 나무를 살린 영웅을 업고 달리는 파릭사를 위해 엘프들은 홀린 듯 길을 터주었다. 그들 모두 정신을 잃은 레이먼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신들을 위해 몸을 희생시킨 한 소년을 엘프들은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
[ 이 미련한 것! ]‘왜요.’
[ 서클을 망가뜨리는 방법이 뭐가 그리 무식해! ]‘…하라면서 부추길 때는 언제고.’
[ …진짜 실행에 옮길 줄은 몰랐지. ]대정령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니야?
육체의 피로가 절정에 달한 레이먼은 눈을 뜰 순 없었지만 의식으로 대화를 나눌 순 있었다. 대정령 아모르가 레이먼의 머릿속을 쾅쾅 밟아댔으며 소리까지 왱왱 질러대는 것 또한 레이먼이 일찍 눈을 뜨지 못하는 데에 한몫했다.
‘괜찮은데.’
하지만 이상하게 아프진 않았다. 쓰러지기 직전 명치부터 시작해 식도를 태우는 것 같던 열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도리어 시원하기까지 했다. 영혼은 당장이라도 일어나 달릴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 되찾았으나 아직 몸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 뭐 가호는 잘 받았으니 해결은 됐다만. ]아모르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 네가 원하는 걸 다 이루니 좋더냐? ]‘예, 좋습니다.’
레이먼은 계획한 모든 것을 이루었다.
첫 번째로, 예견대로 사라질 뻔한 보물을 구해내 엘프국에 빚을 지울 수 있었다. 혹 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유타와 그들이 엘프국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지켜냈다는 사실만큼은 엘프들은 쉽게 잊지는 않으리라.
두 번째로, 레이먼은 그토록 염원하던 엘프의 가호를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엘프의 가호 덕분에 앞으로 있을 모든 수업의 마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레이먼은 엘프국에 오기 전에 계획했던 모든 일을 이뤄낸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수월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 쯧. 더 잔소리해서 뭘 하겠어. 덕분에 내가 인간형으로 현현할 수 있는 시간이 늘었으니 그건 좋아해야겠구나. ]‘그래요, 좀 더 감사하세요.’
아모르가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이번엔 인간형으로 변한 아모르가 레이먼의 얼굴을 맨발로 밟으며 말했다.
[ 어서 일어나거나 해. 이 멍청한 것이! ]아니, 이게 무슨…!
“…으, 더러워.”
“레이먼, 일어났구나! 의사, 의사를 불러와! 기다려, 레이먼. 우리 아빠의 주치의가 금방 오실 거야.”
끄응. 눈을 뜬 건가. 확실히 아모르의 발은 더 이상 안 보이네.
눈꺼풀 위로 내리쬐는 것이 아모르의 후광이 아닌 걸 눈치챈 이후에야 레이먼은 자신이 드디어 눈을 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다음으로 아모르의 발이 아니라 오닉스와 유타, 그리고 아드리안, 니콜의 얼굴이 레이먼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네 명의 얼굴이 한 번에 들이닥치니 어느 쪽으로 눈길을 돌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멍청아.”
“레이먼, 너 진짜 돌았어?”
“도련니이이임, 도련니이이임, 왜 자꾸 걱정을 시키세효오오-.”
“형… 형… 돌아가시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아드리안은 훌쩍였고 니콜은 오열하고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섞여 얼굴로 떨어지는데 어쩌면 이게 아모르의 발바닥보다 더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릭사가 부른 의사가 찾아왔다.
의사는 레이먼의 가슴께를 중심으로 무언가 진찰하더니 다행이라며 미소 지었다.
“다행히 엘프의 가호가 몸에 잘 맞으시는 듯합니다. 영혼과 육체가 자연의 흐름처럼 잘 어우러져 이룰 수 있었던 성과인 듯합니다.”
“그럼 레이먼은 마법을 계속 배울 수 있는 거죠? 마력을 못 쓰거나 그런 건 아니죠?”
유타의 질문에 의사는 명쾌하게 답했다.
“물론이죠. 이제 서클의 제한도 없으니 엘프와 마찬가지로 방대한 자연의 마력을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기존에 가지고 계셨던 서클의 크기는 알 수 없으나 그 크기가 얼마나 되었든 ‘무한한 공간’보다 클 수는 없겠지요. 다만, 혹시 모르니 마법을 사용할 때 좀 더 조심하도록 하세요. 처음엔 다루기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파릭사 님께서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이시죠?”
파릭사가 급히 고갤 끄덕였다.
“응.”
“그럼 파릭사 님께 마법 사용법을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어쨌든, 이제 목숨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 곧 침대에서도 일어나실 수 있으실 테고요.”
쿠션 의자에 앉아있던 의사가 덤덤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흰 가운을 한 번 정리하고서 한쪽 손을 왼쪽 가슴께에 얹으며 말했다.
“그리고.”
“…….”
“저희의 보물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엘프는 이 마음을 잊지 않을 겁니다.”
“아니에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제가 제일 약했을 뿐입니다.”
레이먼의 답에 의사의 눈에는 다양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어린 영웅. 난생처음 보는 인간의 모습에 의사는 잠시 상념에 젖은 얼굴로 서 있다가 이내 한 번 더 고갤 숙이고선 방을 나섰다.
“그나저나 엘프의 가호가… 정확히 뭐죠?”
그 모습을 확인한 레이먼이 이번에는 ‘엘프의 가호’라는 걸 난생처음 들은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엘프의 가호가 뭐냐면-.”
파릭사는 레이먼의 물음에 성실히 답해주었다. 그가 쓰러진 동안 르바우 4세가 그에게 엘프의 가호를 내렸다는 것, 엘프의 가호란 서클이 없어도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과 비슷하다는 것 등등- 파릭사의 답은 굉장히 모범적이었다.
“다행이네요. 마법을 계속 쓸 수 있다니.”
레이먼은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순수해 ‘보이는’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파릭사는 그런 레이먼을 보며 다시 감동했다.
‘정말이지… 이렇게 착한 아이는 처음 본다니까.’
“그럼 레이먼, 나는 아빠한테 네가 깨어났다는 걸 알리러 가볼게. 쉬고 있어.”
“네, 감사합니다.”
탁- 그렇게 파릭사가 방을 나서자마자 오닉스와 유타가 의자에 탁 주저앉았다. 사건의 내막을 모두 알고 있는 둘이었다.
“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 네가 쓰러질 거라는 것도!”
“그 정도는 아니야.”
레이먼이 손을 내젓자 오닉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몰랐기는.”
“알았다 해도 제발 이제 위험한 짓 좀 그만해. 그렇게 무리하다가 2학년까지 살아남지도 못하겠다. 네 동생 눈 좀 봐. 이 어린애가 얼마나 울었으면 눈이 퉁퉁 부었잖아.”
유타가 아드리안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아드리안의 눈두덩이는 방울토마토처럼 빨갛게 팅팅 부어있었다.
“네 근육 시종도.”
니콜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보니 레이먼도 좀 미안하긴 했다. 그가 답했다.
“미안, 내가 잘못했어.”
‘그래. 이 방법이 최선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 다음부턴 더 많은 정보를 모아야겠어.’
***
레이먼이 정신을 차린 건, 광장 나무를 살린 지 꼬박 일주일은 흐른 뒤였다. 레이먼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마을은 드디어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르바우 4세 역시 이를 기뻐하며 드디어 축하 연회를 열 수 있다며 환호했다.
그 소식에 레이먼은 당황했다. 보물을 되살려주긴 했어도, 사실상 보물을 죽인 것도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살리긴 했으니 엘프들이 손해 본 건 없나. 그렇게 합리화를 한 레이먼이 순진해 보일 법한 눈동자를 밝히며 물었다.
“축하 연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