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88)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88화(88/275)
“응, 축하 연회.”
그 소식을 전한 파릭사가 환히 웃었다.
“네가 깨어난 이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줬잖아.”
“음… 그거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레이먼은 깨어난 바로 다음 날, 르바우 4세에게 찾아가 앞으로 광장 나무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도 알려줬다. 그도 그럴 게 나무에 마력이 차오를 때마다 매번 이들이 와서 도와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이다.
– 엘프는 흡수 마법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건 저장할 공간이 없어서 그러니, 해결할 방법도 간단합니다. 마도구 중에 마력을 많이 저장하는 마도구를 구입해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 마도구가 넘치는 물잔이 될 때쯤, 새로운 마도구를 구입해 다시 저장하시면 될 겁니다.
막상 들으니 간단한 방법이었다. 여태껏 왜 한 번도 그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기에 ‘혁명’이었다. 영원히 광장 나무를 보존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주는 그 방법에 르바우 4세는 매우 기뻐했다.
‘그때 축하 연회는 없어도 괜찮다고 해야 했는데… 뭐, 연회를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레이먼, 혹시 부담스러워?”
레이먼이 한참 답이 없자 파릭사가 걱정스러운 듯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의 초록빛 긴 머리가 어깨 위에서 스르륵 떨어졌다. 긴 속눈썹이 눈동자 아래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레이먼은 왜 엘프들이 사람을 홀린다는 헛소문 같은 소문이 났는지 대충 이해할 것 같았다. 음, 아마 내가 영혼까지 10대였다면 한 번은 가슴이 떨렸겠지. 레이먼은 별거 아니라는 듯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했다.
“부담스럽다기보단 저희가 그럴 만한 일을 했나 싶어서요. 연회는 언제인가요?”
“내일 저녁이야! 내일모레 아침엔 떠나는 일정이니까.”
“그렇군요. 준비할 건 없나요?”
“응, 없어. 즐길 준비만 해! 엘프국의 연회는 엄청 즐겁거든!”
연회에 대한 설명을 마지막으로 파릭사는 레이먼의 방을 나섰다.
***
파릭사의 말대로 엘프국의 연회는 예상했던 것보다 화려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왕성 등에서 진행되는 무도회나 사교회와는 달랐다. 마을 전체에 작은 등불 수십 개가 달렸고 오두막에선 저마다 좋아하거나 잘하는 요리를 한 가지씩 들고 나와 광장 중앙에 위치한 테이블 위에 올렸다.
‘포트럭 파티 같은 건가?’
하나씩 모이기 시작한 요리들, 공중에서 춤을 추는 투명한 비눗방울, 그리고 그사이를 뛰어노는 어린아이들. 노란 석회암으로 이뤄진 벽돌집과 자연을 그대로 담은 오두막집이 합쳐져 엘프 마을의 연회는 동화 같은 독특한 풍경을 자아냈다.
어디선가 들리는 악기 연주에 동그랗게 퍼지는 엘프 전통 의상을 입은 엘프들이 레이먼 일행에 다가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환상적인 광경에 아드리안은 입을 쩍 벌렸다. 레이먼은 테이블에 턱을 괸 채, 그런 동생을 가만 바라보았다.
‘뭐든 신기할 나이긴 하지.’
몸집은 크지만 눈은 여전히 순수했다. 레이먼은 동생의 그런 시선을 지켜주고 싶다 생각하며 테이블에 앉아 무알코올 포도주, 사실상 포도 주스와 다를 것이 없는 음료를 홀짝였다.
연회가 마무리될 즈음, 국민들과 섞여 놀던 르바우 4세가 잔을 높게 들며 소리쳤다.
“우리 엘프국은 언제나 중립의 자리를 지켜왔다. 적을 만들지 않고, 동료 역시 만들지 않는 우리의 결심은 언제나 옳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오오!”
“동료가 아닌 친구라면 우린 언제나 환영이야! 크하하하!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린 이 세 꼬맹이를 우리 친구로 인정한다!”
“와아아아-!”
“너희들 정말 대단했다고!”
“정말 고마워!”
“나무는 우리들의 보물이었다고!”
르바우 4세가 높이 치켜든 잔을 따라 엘프들이 함께 잔을 위로 들어 올렸다.
작은 몸집의 사내, 르바우 4세가 지닌 묘한 박력과 흡입력은 주위 엘프들을 공감시키는 데에 효과적이었다. 연회의 마지막은 르바우 4세가 한 마지막 말로 끝났다.
“친구들이여-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나 부르게! 동료가 아닌 친구라면 득실을 따지지 않고 나설 준비가 된 종족이 바로 우리 엘프들이니까.”
***
스턴 왕국으로 돌아가는 공중선. 함께 배에 탄 파릭사가 선미 난간에 기대어 선 레이먼 옆으로 다가왔다.
“레이먼.”
“아, 선배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별건 아니고… 음. 원래 엘프가 그런 분위기인가요?”
“응?”
파릭사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책에서 엘프는 열정적이기보단 냉정한 느낌이었는데, 어제 연회에선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서… 뭐랄까, 오히려 다른 종족 생각이 나는….”
“아, 오크족?”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냐, 괜찮아.”
레이먼은 이 찝찝한 기분을 짚고 넘어가야 했다. 만약 르바우가 연회에서 한 말이 단순히 말뿐이라면 그것 역시 앞으로의 계획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빠가 한 말은 진짜야. 분위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실 분은 아니니까. 엘프들의 인상이 언제나 차갑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남’에겐 감정을 보이길 꺼려서 그래. 내가 늘 웃는 이유도 비슷해. 난 웃는 편이 감정을 숨기기 쉽거든.”
파릭사가 말했다.
“하지만 너희들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릴 도왔고 손익을 계산하지 않았어. 거기서부턴 ‘남’이 아니라 ‘친구’인 거지. 그리고 엘프들은 친구를 절대 버리지 않아. 포레스튼에 나 개인의 친구는 많이 있지만 엘프국 전체가 생각하는 타 종족의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어. 너희들을 제외하고선.”
긴 손가락이 레이먼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 알았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엘프의 가호도 처음엔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힘들면 꼭 말하고. 개학하기 전까지 연습해보는 것도 좋겠다.”
“네.”
“그래. 마침… 도착했네!”
구름으로 가려졌던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 아래에 깔린 푸른 육지가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파릭사가 상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들 수고 많았어!”
***
“레-이-먼-! 아-드-리-안-!”
“…어머니.”
오랜만에 듣는 사샤의 밝고 경쾌하고 높은 목소리. 레이먼은 그 목소리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어.’
“수고 많았다. 엘프국에서 있었던 일은 나중에 식사 자리에서 듣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사샤와 함께 두 사람을 마중 나온 테리안은 헛기침과 짧은 말과 함께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아드리안과 레이먼을 품 안에 꼭 끌어안은 사샤가 ‘너희 아버지가 걱정 많이 했단다.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라고 작게 속삭여 주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드리안은 형과 형 친구들이 이번 여행에서 펼친 영웅담을 신나게 조잘거렸다.
“엘프국에는 광장 나무라는 엄청난 보물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게-.”
“껍질이-.”
“하지만 형님과 형님의 친구분들께서 보물을 되살릴 방법을 찾아내셨고-.”
아드리안의 말에 사샤는 매우 놀라며 기뻐했다.
“어머, 세상에! 우리 레이먼이 이렇게 잘 커 주다니-! 너무 잘했어, 레이먼. 누군가를 돕는 건 훌륭한 일이란다. 그렇죠, 여보?”
반면, 테리안은 ‘그래, 정말 잘했구나.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짧은 칭찬만을 남겼다.
그리고 그날 밤, 방으로 돌아간 테리안은 영상구를 통해 스웨인 가문과 1시간 내내 연락하며 제 아들을 자랑했다.
***
똑똑-.
“형님, 아드리안입니다.”
“응? 들어와.”
저녁 식사를 마친 아드리안은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곧장 레이먼의 방으로 놀러 왔다. 레이먼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둘째 도련님 오셨군요!”
니콜 역시 아드리안을 반갑게 맞이했다. 엘프국에서 신나게 먹어서 그런지 니콜의 피부엔 전에 없던 윤기까지 흘렀다.
“자자, 도련님들. 저녁 식사 시간 이후에는 역시 즐거운 디저트 시간이지요. 오늘은 엘프국에서 얻어온 달콤한 나뭇잎 모양 버터 쿠키입니다.”
“니콜, 넌 이런 걸 먹는데 용케 그 몸을 유지한다?”
“도련님, 먹은 만큼 운동하는 겁니다! 먹기 위해 운동을 하는 거라고요!”
“그 열정만큼은 높게 산다. 그래서? 아드리안, 너는 무슨 일이지?”
레이먼이 의자에 앉아 꾸물대던 아드리안 쪽으로 고갤 돌렸다.
아드리안은 한참 눈치를 살피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바, 방학이 아직 남았습니다…!”
“응, 알아.”
“개학을 하게 되면 저도 형님과 함께 포레스튼에 가게 될 거고….”
“응. 그것도 알아.”
다 아는 정보를 왜 굳이 다시 전달하지? 놓치지 말아야 할 정보라도 더 있나? 숨겨진 의미? 아니, 그런 건 없을 텐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 레이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그건가?
“아드리안, 혹시 이번 방학도 나랑 공부를 하고 싶은 거야?”
“역시…!”
레이먼의 물음에 드디어 아드리안의 핏기 없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아드리안은 대답 대신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하지만 넌 이미 2학년 진도까지 끝냈어, 아드리안. 여기서 더 예습하는 것도 힘들 텐데.”
“그렇다면 형님이랑 검술 대련도, 마법 대련도 함께 하고 싶어요. 그건 학년 구분이 없잖아요.”
“왜?”
“네?”
“왜냐고.”
레이먼이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게, 레이먼은 아드리안이 무리해서 공부를 하거나 엘리트가 되기를 원한 적이 없었다. 자신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굳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가주가 될 조건들을 다 갖추고 태어난 아이라면 신나게 놀면서 지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는 그저… 형님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물론 귀찮으시다면 저 혼자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 괜찮아요.”
…근데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이런 말을 하면 내가 거절할 수가 없잖아.
한숨을 푹 내쉰 레이먼은 결국 고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어.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하자. 마침 나도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
“……네! 내일, 그러면 시간 되실 때 저를 찾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쾅- 하고 힘차게 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지자 니콜이 쿡쿡 웃으며 레이먼의 팔을 툭툭 쳤다.
“도-련-님-. 아드리안 도련님을 엄청 잘 챙겨주시네요? 이 니콜, 드디어 이런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작은 도련님은 늘 큰 도련님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셨으니-.”
니콜이 눈물을 훔치는 척 눈가를 손가락으로 가렸다. 저, 저 영악한 놈.
그 꼴을 보다 못한 레이먼이 니콜의 정강이를 툭 차며 말했다.
“닥쳐.”
하지만 니콜의 단단한 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활짝 웃으며 해맑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도련님은 뭘 시험해보시려고요?”
“엘프의 가호.”
“역시! 저는 그 가호에 대해 잘 모르지만 엄청나게 강력해지셨겠지요?”
“글세… 그거야 잘 썼을 때 이야기지.”
레이먼이 읽고 있던 책을 탁 덮으며 말했다.
“뭐든 쓸 줄 알아야 의미가 있는 거니까.”
그리고 나도 몰라서 미리 말해주지 못했던 건데,
“혀, 형님-!”
“도련님-!?!?!”
엘프의 가호는 생각보다 강력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