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8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89화(89/275)
스턴 왕국의 왕성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귀족 출신의 메이드부터 평민 출신 시종인들까지 성의 복도나 연회장 같은 공간에서 잡담을 거의 나누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메이드, 집사, 청소부까지 모두가 차별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 두 곳. 바로 성 구석 별관에 자리한 창고와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이 그곳이었다.
즉, 조용한 스턴 왕국에서 가장 소문이 요란하게 휩쓰는 곳이 그 두 곳이라는 뜻이겠다. 그리고 방학 때마다 그 부엌에 매일같이 발도장을 찍는 왕족이 딱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유리페 스테디움 스턴이었다.
이제 질려버린 곱슬머리를 직선으로 쫙 편 유리페가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부엌 앞에서 멈춰 섰다. 주머니 속 고무줄로 머리를 질끈 묶은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부엌의 메이드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얘들아!”
“유리페 님! 오셨어요?”
“응! 어머, 오늘은 미트파이야?”
“오늘 점심 식사 메뉴가 바뀌어서 고기가 남았거든요.”
“너무 좋다.”
떠들기를 좋아하는 유리페는 아카데미 방학이면 정해진 요일과 시간에 부엌에 들르곤 했다.
“이렇게 대화를 좋아하시는데 아카데미에서는 어떻게 그리 조용히 있으세요?”
상대는 왕족. 곡해해 들으면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도 유리페는 언제나 부드럽게 넘겼다.
“그거야 왕족인 거 티 내기 싫으니까 그렇지. 왕성에 있으면 티를 안 내도 어차피 왕녀니까 상관없잖아?”
“그렇긴 하죠.”
유리페는 준비된 갓 구운 파이를 한 입 베어 물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재밌는 소문은 없어? 곧 개학이잖아. 재미없는 아카데미로 넘어가야 한단 말이야.”
“몇 개나 있죠. 제가 성 밖에 친구들이 많거든요.”
평민 출신에 발이 넓은 막내 메이드가 고개를 푹 숙이며 속삭였다.
“엘프국 얘기랑 바텔바흐 얘기가 있어요. 뭐부터 들어보실래요?”
“엘프국? 바텔바흐야 그렇다 치더라도 엘프국이 갑자기 왜 나와?”
바텔바흐 공국은 2왕자가 있는 나라였고, 소규모지만 전쟁도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들려오는 소문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엘프국?
“그게 말이죠, 5왕자님이 이번에 엘프국에 가셔서 그 나라의 망가진 보물을 고치셨대요.”
“어머, 정말?”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엘프국에서 왕자님을 위한 연회도 해줬다고 그러더라고요. 마을 친구가 엘프국에 옷감을 납품하거든요. 그러면서 알게 된 거예요.”
“…그렇구나. 유타는 혼자 갔대?”
“음, 아뇨. 친구분들이랑 가신 것 같았어요. 이름은 모르겠지만요. 엘프국 일이면 소문도 빨리 퍼질 테니 그땐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 네 말이 맞을 거 같다.”
친구. 유리페는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날, 영법을 쓰던 마법사들을 동생과 함께 쫓았던 그 아이들.
그 아이들을 데려간 건가?
‘…유타 걔는 얌전히 지낼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유리페의 눈이 뱀처럼 가늘어졌다. 올라간 입꼬리에 묻은 파이 가루를 손가락으로 슬쩍 떼어내는 그녀가 질문했다.
“바텔바흐는 무슨 소식이야?”
“근데 이건 왕녀님도 아실 것 같아요.”
“뭔데 그래~”
“최근 저희 쪽에서 철수했다는 이야기요. 2왕자 전하께서 바텔바흐는 자기가 설득해보겠다고 한 모양이에요.”
“아, 그거. 그건 알고 있지.”
애초에 스턴이 바텔바흐를 공격한 이유는 별것 없었다. 마법 자원이 풍부한 스턴과 달리 기후가 좋아 식량이 풍부한 바텔바흐.
스턴은 바텔바흐 공국에서 다양한 식자재를 수입하는데 최근 바텔바흐에서 그 세금을 올리겠다는 이야기가 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고성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이건 유리페도 매너스도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므로 그녀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종인들 간의 연애사나 다양한 싸움 이야기들. 대강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유리페가 먼저 드레스를 털며 일어났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
“저희도요.”
“네가 말한 그 메이드는 내 쪽에서 자를게. 걘, 좀 문제가 많다.”
그 말에 메이드의 눈동자가 환하게 반짝였다. 유리페는 어떻게 하면 시종인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물어다 줄지 아는 사람이었다.
메이드가 큰 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며 고갤 숙였다.
“어머, 감사해요! 왕녀님!”
“다음에도 즐거운 이야길 나누자. 다들 수고해~.”
“네, 왕녀님! 또 오세요!”
“…내가 말했잖아, 유리페 왕녀님은 우리 얘길 잘 들어주신다니까?”
“왕녀님이 왕자님이었다면 좋았을….”
부엌의 메이드들을 뒤로한 채 유리페는 흥겨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거닐었다.
‘유타가 잠시 어딜 갔나 했더니 재밌는 곳을 갔잖아?’
유리페는 왕성 구석에 머무는 유타에게 단 한 번도 먼저 찾아가지 않았고, 먼저 찾아갈 생각도 없었다. 왕성에서 그런 행동을 해봤자 좋을 게 없으니까.
‘개학이 기대되네.’
개학이 되자마자 유타를 찾아갈 생각에, 유리페에게서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
아드리안이 찾아왔던 다음 날. 레이먼은 오후가 되어서야 느지막이 일어났다.
‘…좋다.’
방학인데 킹메이커도 좀 쉴 수 있지. 그렇지, 왕도 업무 휴식이 있을 거잖아. 왕 만드는 사람도 쉴 수 있는 거 아니겠어?
폭신한 이불에 돌돌 말린 레이먼은 애벌레처럼 침대 위를 기어 다녔다. 슬슬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그다음엔 아드리안과 만나야 하나.
[ 레이먼, 좋은 아침이다. ]“깜짝이야.”
니콜도 아직 들어오기 전이었다. 레이먼의 방에 누군가 있을 리가 없는데 누군가 레이먼 방의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모르 님. 어… 오늘은 완두콩이 아니시네요?”
[ 네가 엘프의 가호를 받은 기념으로 인간형으로 현현해봤지. 어때, 나의 이 아름다운 모습. 빛이 나고 화려하지 않느냐. ]아모르가 긴 머리를 휘릭 뒤로 넘겼다. 확실히 머리 윤기 하나는 끝내준다고 생각하며 레이먼은 침대 위에서 가볍게 감탄해줬다.
“오.”
[ 네 이놈, 가짜로 감탄하는 것은 다 티가 나느니라. ]“하하, 그래요? 그런데 엘프의 가호가 확실히 효과가 있나 봐요. 제 마력은 지금 어느 정도인가요?”
[ 너도 느끼고 있지 않느냐. 컨디션이 좋고 몸이 아주 가벼울 텐데. ]“계속 잠이 오고 누워있고만 싶다면요?”
[ 그건 그냥 네가 게으른 거다. 게으른 놈. ]“…가슴이 아프네요.”
레이먼은 심장을 아픈 척 연기를 했고, 그런 레이먼을 아모르가 한심하게 바라보다 고갤 돌렸다. 여하튼 레이먼은 그렇게 한참을 뭉그적거리다 1시간 후에야 니콜을 불러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나선 니콜에게 아드리안을 불러주길 부탁한 뒤, 기사단원들이 연습 중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레이먼이 엘프국에 간 동안, 스플린 가문은 대대적인 증축 공사를 했는데 그중엔 가문 기사단의 훈련장도 포함되었다. 훈련장은 1개에서 4개로 늘었는데 그중 하나는 오로지 마법 훈련을 위한 장소였다.
집안에서 마법 훈련에 집중하는 이들은 스플린 가의 두 아들뿐이었으므로 사실 이는 테리안이 그들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탁 트인 훈련장의 전경은 매우 훌륭했다. 배산임수를 정확히 지키고 있었는데, 돌아서면 보이는 높은 산의 정상은 사시사철 눈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여름방학인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훈련장에 서서 아드리안을 기다리던 레이먼의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이 환하게 웃으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생각해보면 저렇게 밝게 웃을 수 있는 동생을 방치했던 전 레이먼도 썩 훌륭한 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레이먼이 고갤 가로저었다.
‘아니지. 그놈도 힘들었을 거야. 재능도 없는 데다가 바로 옆에 비교할 대상이 정말이지 최악이니까.’
이것은 전생의 레이먼, 유태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밀어낸다 느꼈을 정도로 힘들었었으니까.
‘그런 내가 이전 레이먼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려주지 못하는 것도 웃긴 일이야.’
“형님.”
“…어, 그래.”
“엘프국에 다녀온 뒤로 마법은 한 번도 써본 적 없으시죠?”
아드리안의 순수한 질문에 레이먼은 고갤 끄덕였다.
“분명 몸 상태나 마력의 양은 그 전보다 좋아졌을 거라 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사실… 전 아직 잘 못 믿겠어요. 막상 엘프국을 벗어나니 의심이 자꾸 생겨서요. 그 이후로는 마법도 안 쓰시고….”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길 하는 아드리안의 머리를 레이먼이 슬쩍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느끼고 있으니까.”
[ 그래, 내가 이렇게 둥둥 떠다닐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지. ]‘계속 그렇게 계실 거면 제 동생한테 모습을 드러내시든가요. 근데, 아모르 님. 언제 사라지세요?’
하늘 위에서 턱을 괸 채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아모르가 한쪽 코를 파며 답했다.
[ 네가 마법 쓰는 것까지 보고 돌아갈 거다. 어차피 돌아가봤자 심심해. 요새 사람들이 삭막해서 사랑을 안 한다, 사랑을. ]‘…아, 예. 그러세요.’
레이먼은 아드리안을 훈련장 원 밖으로 밀어냈다.
“아드리안, 훈련 전에 내가 잠깐 연습을 해봐도 되겠니? 아무래도 서클 없이 마력을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물론이죠. 저도 보고 싶었어요.”
“드디어! 도련님이! 마법을!”
잔뜩 흥분한 니콜의 콧구멍에서 콧바람이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기다려.”
레이먼은 어떤 마법을 쓸지부터 먼저 생각해봐야 했다. 마력의 질이 높거나 가진 양이 많다면 1서클을 쓰더라도 마법의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1서클 마법을 써볼까? 아니면 3서클?’
서클이 올라갈수록 필요한 마력의 양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마력이 부족하면 애초에 마법을 시도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니까.
3서클 마법을 시도해볼 순 있었다. 이미 레이먼은 7서클 마법까진 이론적으로 학습이 끝난 상태였다. 다만 시도해본 적이 없을 뿐이다. 서클이 올라갈수록 마법식이나 주문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안다고 해서 완벽히 성공할 수 없다는 걸 레이먼도 알고 있었다.
‘그래, 1서클.’
간단한 마법이 마력의 양과 질을 파악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슈우우-
레이먼 팔목의 팔찌가 환하게 빛났다. 빛으로 변한 팔찌는 레이먼의 손안으로 들어와 직선 형태의 완드가 되었다. 완드 끝이 붉게 빛났다. 혹시나 벌어질지 모를 인재를 대비해서 레이먼은 완드의 끝을 저 멀리 산으로 고정했다.
‘설마 가호 하나 받았다고 산에 구멍이 뚫리거나 하겠어? 소설도 아니고.’
레이먼이 나지막이 짧은 주문을 외웠다.
1학년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아주 간단한 1서클 마법.
[파이어볼]완드 끝이 주홍빛으로 빛났다. 거기까진 예상한 대로였다.
‘응? 이건…’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완드 끝이 푸르게 변했다. 푸르게 변한 완드 끝에서 푸른 원이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레이먼의 머리카락이 뒤로 휘날렸다.
“형, 형님-!”
“도련님!”
하지만 완드 끝의 불꽃은 한계를 모르고 점차 커졌다. 시전자인 레이먼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레이먼이 이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할 때쯤, 불꽃은 마치 스프링처럼 튀어 나가듯 레이먼의 완드를 벗어났다.
불꽃은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소설처럼 산에 쌓인 눈을 모두 녹이고 산을 반쯤 터뜨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불꽃은 산 정상을 스치듯 날아갔다.
그 와중에도 먼 산에 쌓인 눈이 반쯤 녹았다. 하늘 위로 뻗어나간 불덩이는 불꽃놀이처럼 펑 터졌다. 터진 불을 따라 번진 불씨들이 별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세상에.”
“도련님, 가호가… 가호가…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 장난 아니네.
[ 붉은 치가 이제 아주 훌륭해졌구나. 하지만… 양은 좀 조절해라. ]…예, 그것도 맞는 말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