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9)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9화(9/275)
“개인실이네.”
– 신입생은 기본적으로 2인 1실이야. 개인실이 배정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럼 클래스 중에서도 입학 성적이 아주 우수한 학생이라고 생각하면 돼. 만약 다른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다면 다음 배정 때 새로 신청하면 된단다.
조금 전 파릭사의 설명대로라면 레이먼이 바로 그 ‘아주 우수한’ 학생인 듯했다.
“뭐, 예상은 했지만.”
레이먼은 준비된 푹신한 침대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니콜은 짐을 옮겨 오겠다며 방을 나섰다.
혼자 남은 레이먼은 옆으로 맨 가방에서 낡은 일기장을 꺼냈다. 집에 두고 오긴 꺼림칙해서 가지고 나왔는데.
‘시스템이 준 보상.’
시스템이 준 일기장에 적힌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으나 여러모로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읽을 수 있는 날짜는 죄다 오지 않은 날짜들이었다.
가장 특이했던 건. 포레스튼에 절대 입학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이전 레이먼의 포레스튼 입학 후 일들이 조각조각 쓰여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는 없던 것 같지만.
레이먼은 혹여 놓쳤던 부분이 있었을까 싶어 일기장을 첫 페이지부터 재독했다. 뭉개진 페이지가 너무 많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여전히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상 교수에 대한 욕, 공부 잘하는 동생에 대한 자랑과 포레스튼에서 배우는 학문은 이해하기 쉬웠으나 마력이 없어 힘들다는 징징거림뿐이었다.
‘보상이면 쓸모라도 있던가. 이따위 글로 뭘 알아내란 거야?’
레이먼은 일기장을 집어던지려다 참았다.
아니, 사실 참을 수 없어서 그냥 집어던져 버렸다. 벽에서 튕긴 일기장은 탁 소릴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읽을 수 있는 내용 중에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주 미미했다. 왕을 만들어야 하는 레이먼에게 사춘기 소년의 징징거림 따위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마 이제 이 일기장을 찾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레이먼은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자.
시스템이 보상으로 준 건 이전 레이먼이 쓴 일기장 몇 쪼가리다. 이걸로 알 수 있는 건 그 시기, 그때의 레이먼이 느낀 단편적인 감정이나 그 주변 인물 굵직굵직한 사건들 정도.
레이먼이 허공을 향해 질문했다.
“시스템. 이거 진짜 레이먼이 쓴 거야? 썼다면 서클도 없었다는 놈이 어떻게 포레스튼에 입학한 거지? 아니면… 네가 써서 나한테 던져준 건가?”
[ …… ]“….그래, 기대도 안 했다.”
굵직한 욕지거리를 몇 마디 내뱉었다. 할 수 있는 게 욕밖에 없었다.
“-쯧.”
한참이나 상스러운 말을 냅다 내뱉은 레이먼의 미간에 주름 세 가닥이 잡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혀를 짧게 차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찌 됐든 왕족에 대한 힌트라도 담겨있을 줄 알았는데.’
얼마 있지 않아 아주 아주 커다란 목소리가 생활관에 퍼졌다.
– 아아, 신입생들에게 알립니다. 지금 바로 본관 1층의 중앙홀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중앙 홀에서 클래스별로 모인 후, 회장에서 입학식과 개학식을 동시에 시작합니다. 아아, 다시 한번 알립니다.
끙끙거리며 짐가방을 들고 돌아온 니콜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도련님! 입학식이 시작되나 봐요. 이 소리는 어디서 들리는 걸까요?”
“나도 몰라.”
마법인가 보지. 레이먼이 침대에서 가볍게 뛰어내리며 대꾸했다.
주책맞은 심장이 제멋대로 뛰는 것도 말려야 했다. 16살짜리 몸이라 그런가 자주 흥분하는 듯하다. 하여튼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구시렁거리며 방문을 여는데 옆방의 문도 함께 열렸다.
“아.”
“뭐야.”
“재수 없는 평민이잖아.”
“너는 재수 없는 귀족이고.”
“내 이름은 레이먼이야. 이 머저리야.”
“뭐, 머저리?”
“머머리보단 낫지.”
“머머리가 뭔데?”
“아튼 교수처럼 대머리라는 뜻이야.”
아튼 교수는 포레스튼에서도 꽤 유명 인사였다. 입학시험 준비를 했다면 한 번쯤은 그의 사진을 보게 되는데, 그 교수의 이름을 듣자마자 오닉스는 머저리가 더 낫다는 말에 동의했다.
두 소년은 짧은 만담을 나눈 뒤, 서로 모르는 척 콧방귀를 뀌며 고갤 돌렸다. 니콜은 그런 두 소년을 바라보곤 쿡쿡 웃었다.
이번엔 니콜이 먼저, 손을 뻗어 복도 끝을 가리켰다.
“일단 홀로 갈까요?”
“그래.”
***
중앙홀까지 가는 복도는 신입생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시끄러웠다. 레이먼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다 좀 닥치자.’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쳐있었다. 게다가, 입학식이 기대감으로 부푸는 건 10대에게 당연한 일이니 어른으로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 했다.
‘피곤해.’
결국 피곤한 레이먼은 오닉스와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묘한 정적 속에서 홀에 도착했다. 홀에는 조금 전에 길 안내를 해줬던 파릭사와 같이 클래스장 배지를 단 학생들이 교단 위에 서 있었다.
임시 교단처럼 보이는 떡갈나무 상자들 위에 올라선 선배들이 일제히 발을 굴렀다.
쿵!
그 소리에 학생들이 놀라 시선을 집중했다.
“다들 반갑다.”
파릭사보다 키가 살짝 큰 단발머리 학생이 허리춤에 양손을 올린 채 말했다.
“이번 연도 신입생들의 교육을 맡았다. 내 이름은 아멜 튜토라고 한다.”
‘튜토면…’
튜토 가문이면 상당히 좋은 가문이었다. 작위를 따지면 후작으로, 귀족 계급 중 두 번째로 높은 위치였다. 물론 첫 번째인 공작가보다는 아래지만.
다만, 튜토 가문은 기사들 위주로 더 유명한 편이라 마법 위주로 돌아가는 포레스튼에서는 그리 권위가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가 함부로 대할만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이곳이 포레스튼이기에 그 위치마저 어느 정도 중화되긴 했다.
아멜은 쭉 뻗은 몸매에 교복 너머로 잔근육이 드러날 정도로 완벽한 몸을 지니고 있었다. 교복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채 단상 위에 선 그녀는 기사 가문 특유의 당당한 자세로 팔을 뻗어 자신의 앞을 가리켰다.
“피데스 클래스 애들은 내 앞으로 서면 돼. 오디트는 저쪽. 기프트는.”
“이쪽이야.”
파릭사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상냥한 파릭사. 역시 나는 이쪽이 더 맞는 것 같아.
신입생들이 모두 열 맞춰 서자 파릭사는 “그럼 이동한다.”라고 말하고선 걸음을 재촉했다. 레이먼은 이동하는 내내 기프트에 몇 명의 학생이 있으며 혹시나, 정말 혹시나 자신과 같은 클래스에 귀찮은 애들이 섞이지 않았는지 살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버려진 왕자’였다.
‘만약 버려진 왕자가 피데스 클래스라면 먼저 다가가서 친해질 필요가 있을까. 왕 후보는 다수 등록할 수 있지만 그 수가 정확하진 않아. 만약 3명이 한계라면 1, 3, 4왕자를 넣어두는 게 현명하지. 하지만 수가 5명이라면? 일단은 넣어두는 게 이득이다. 경우의 수를 많이 생각해둘수록 내가 죽을 확률이 줄어드니까.’
그때, 한 소년이 레이먼의 시야에 들어왔고 그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야, 저건?’
놈은 또래보다 다부진 체격에 평균 키보다 10cm 이상 컸으며 반대로 얼굴은 고왔다. 자세에서 나오는 당당함과 기품이 일반적인 귀족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비록 흑발이 아닌 은발이긴 했지만 뒤따라온 기사의 복식이 왕실 기사단인 걸 보았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슬로우 모션으로 옆을 지나치는 그에게서 레이먼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놈이다.’
저놈이 분명 소문의 왕자다.
사람들은 어떻게 저걸 보고 버려진 왕자라던가, 숨겨진 자식이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는 거지?
‘여태까지 성에만 숨어 살다가 세상에 나온 건가? 다들 정말 몰라서 모르는 척하는 거야?’
그는 당장 아무나 붙잡고 “야! 말해봐! 쟤가 정말 버려진 왕자 같냐고!”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레이먼은 가장 가까이 있던 오닉스의 멱살을 붙들고 속삭였다. 오닉스는 그 거리가 매우 매우 매우 불쾌해 인상을 잔뜩 찌푸리곤 레이먼을 흘겨보았다.
“-너 뭐 하냐?”
“야, 너 저 애 보여?”
“어, 보여. 그러니까 이거 좀 놓지?”
“그럼 그 소문은 알고?”
“뭐. 아, 버려진 왕자? 그건 다 알지, 그게 딱 봐도 저놈인 것도 알고.”
“그런데 왜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 거야? 오히려-.”
– 무시하는 분위기인데, 라는 말이 무심코 튀어나올 뻔했지만 레이먼은 입술을 꾹 닫는 걸로 대화를 갈무리했다.
오닉스는 레이먼이 억지로 문을 닫아버린 대화의 창을 열어젖히며 고개를 까딱했다.
“저놈이랑 친해져서 뭐 하게. 특히 우리 클래스는 왕실 마법사를 노리는 애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뭐, 피데스 클래스였다면 대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
오닉스는 제 관자놀이를 톡톡 치며 레이먼이 한심하다는 듯 비아냥댔다.
“게다가 소문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야. 머리 좀 돌아가는 기프트 애들이라면 다들 피할걸? 이득이 되지 않고, 취할 이득도 없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리고 저게 바로 그 ‘위험’이고.”
“너는?”
“난 뭐.”
“너는 친해질 생각 없냐고.”
“…너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더욱이 저놈은 황금 똥이야. 멀리서 보면 다들 황금인 줄 알고 죽일 듯 달려들 테지만.”
오닉스가 말했다.
“실상은 그저 똥에 불과한 거라고. 최악의 패잖아. 뭐… 지내다 보면 또 모르겠다. 친해질 수도 있지. 너 같은 얼간이랑도 친해졌는데.”
“…허어.”
“이제 놓지?”
그렇게 말한 오닉스는 레이먼의 손길을 툭 쳐내고선 앞장서 걸었다. 레이먼은 파릭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걸어가는 버려진 왕자를 슬쩍 훔쳐보았다.
물론, 오닉스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최악의 패’는 모두에게 기피의 대상인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했다. 다들 알게 모르게 그놈을 은근슬쩍 훔쳐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왜 저런 얼굴을 본 기억이 없지? 시험장에서도 저런 놈은 없었는데. 은발, 붉은 눈……’
불현듯 레이먼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이 있었다.
오닉스 다음으로 강의실을 탈출한 그 꽁꽁 싸맨 놈.
맞는 것 같다. 시험장에서 마주친 학생들 대부분은 조금 전 홀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기프트 클래스면 일이 쉬워져. 수업이 대부분 겹칠 테고, 자연스레 친해질 수 있겠지. 만약 저놈이 왕에 욕심이 없다면 후보에 끼워 넣지 않아도 돼. 만약 왕 후보가 자동으로 등록되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다시 계산해봐야겠지만 손해 볼 건 없다. 3왕자, 4왕자를 포레스튼에서 만날 확률보단 이쪽과 친해지는 쪽이 빠르고 확률도 높았으니까.’
왕을 만드는 데에 제한 시간은 없었다.
즉, 다음 왕. 그다음 왕좌에 누가 오를 지만이 중요하다.
포레스튼을 졸업하고 5왕자의 연줄을 타고 왕실 마법사가 된다면 3왕자를 알현할 기회도 생기겠지.
레이먼이 잠시 딴생각에 빠진 사이, 파릭사와 다른 학생들은 거대한 반원의 문에 멈춰 섰다. 아치형도 아니었고 정말로 원을 반으로 자른 것 같은 반원 형태였다.
“우와!”
“짱 멋져!”
신입생들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진풍경에 입을 쩌억 벌렸다.
“…허.”
물론 레이먼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간에서부터 느껴지는 웅장함에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광장처럼 거대한 홀 안, 단상 위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올해를 빛낸 마법사 100’에 들어간 대마법사 대부분이 포레스튼을 졸업한 이들이었고, 그들 중 몇몇이 남아 포레스튼의 교수가 되어 자신을 이어 대마법사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레이먼은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1서클도 할 수 있다는 기초, ‘경청 마법’을 시전했다. 교단 위에 선 이들이 어떤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 오늘 점심 메뉴 뭐래요?
– 최악이에요. 그 이상한 고기 스프가 나온다잖아요. 해장하려고 했는데, 우욱-.
– 뭐라고요? 오늘 식단표는 분명 콘 스튜였다고요.
– 그러니까요! 우우욱-
– 마력을 쓰지 왜 굳이 전기를 써서 이 사달을 내는 겁니까? 운영비… 아이고, 내 돈.
– 정신 차리세요! 입학식이에요!
그래, 뭐.
대마법사들도 사람이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