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91)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91화(91/275)
“너무 착해서 안 된다는 건가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지.”
챈들러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그는 너스레를 늘어놓으며 레이먼의 방 앞에서 시간을 죽쳤다.
“여하튼 이제 학생회는 아니지만 잘 부탁해. 기프트 클래스에서 친한 후배는 너뿐이니까.”
유타는 그 농담이 반쯤은 진짜라는 걸 알면서도 담담히 답했다.
“유타랑 오닉스도 같은 클래스예요.”
“그 애들보다는 네가 친하니까.”
“…제발 인간관계 좀 늘리세요. 그러다 진짜 고독사하십니다.”
마지막 말은 진심이었다.
‘내가 그랬으니까.’
레이먼의 말에 챈들러가 유쾌하게 웃었다.
“설마 그러겠어? 죽더라도 시종인이 발견하겠지.”
“선배는 졸업하면 본가로 돌아갈 거라고 하셨죠?”
“어.”
“가문을 이으실 건가요?”
레이먼이 알기로 챈들러는 장남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작 가문에서 눈에 띄는 인재가 챈들러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마법에 있어서는.
굳이 따지자면 아이작 가문은 마법보다는 행정이나 법 쪽으로 유명했다. 전전대 가주가 궁정 업무를 총괄하는 직책까지 올라가기도 했고, 챈들러의 형제 중 한 명은 이미 일반 재판소의 재판관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법에 출중한 자가 가문을 잇는다-라는 말은 아이작 가문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즉, 챈들러 아이작에게 가문을 이을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챈들러 선배는 집으로 돌아가려 할까?
“연구하시는 걸 좋아하시잖아요. 마탑이나 왕실에 들어가 연구를 더 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연구를 좋아하지. 하지만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게 즐거운 거야. 나도 이제 짐 정리를 좀 해야겠다. 잘 있어, 레이먼. 또 보자.”
“네.”
레이먼은 짐을 마저 정리한 뒤,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입학식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개학과 입학식은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레이먼도 처음 입학했을 때 갔던 홀로 가야 했다.
마침 익숙한 소리가 방에 울렸다. 신입생들에게 집합을 알리는 소리였다.
레이먼도 자연스레 홀로 향했다. 오랜만에 교복을 입어서 때문일까.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잠깐만. 아니, 진짜로 이상한데?
‘바지가 짧잖아.’
발목이 보일 정도면 키가 꽤 많이 큰 거 아닌가? 나중에 니콜… 아니지, 테디한테 부탁해야겠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때마침 레이먼의 눈에 계단을 내려가는 테디가 눈에 띄었다.
“테디-!”
“아, 레이먼. 근데 너… 옷 꼴이 그게 뭐지?”
“맞아. 그래서 말인데 나중에 수선 좀 부탁할 수 있을까? 니콜 실력은 너도 알잖아.”
“그래, 그래야겠군. 길이가 거슬려서 참을 수 없어.”
“고마워.”
레이먼은 테디와 함께 홀로 걸어갔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자꾸만 느껴지는 시선. 이건 명백히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시선의 주인들은 재학생이 아니라. 홀로 향하는 신입생들… 쪽인가.
뭐, 대충 느낌은 오지만.
‘저분이 그 스플린 가문의?’
‘분명 입학 전에는 머저리로 소문이 났었는데.’
‘포레스튼에 입학하자마자 변했다.’
‘너 밀리포레 가입할 거야?’
‘영법에 당했는데도 멀쩡했다며? 게다가 저학년이 정령이랑 계약까지 해서 라 디밀레에서도 인기가 제일 많았다잖아.’
‘1학년 때 벌써 버틀러를 달았대.’
‘옆에 항상 붙어 있는 녀석도… 왕족이잖아.’
어떻게 이렇게 다 들리게 이야기를 하지?
저 대화가 안 들리는 척하는 것도 꽤 고역이다. 레이먼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테디 베어릴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송골송골 새어 나왔다. 실제로 테디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기 때문이다. 아마 포레스튼 침입 사건 당시, 테디도 함께 있었던 탓이리라.
“미안. 괜히 말려들게 했네.”
“…아니, 괜찮아. 좀 부끄러울 뿐이다.”
조금이 아닌데? 이마에서 홍수가… 아니다, 됐다.
“레이먼-! 얼른 와!”
학습관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유타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옆엔 팔짱을 낀 채 뚱한 얼굴을 한 오닉스도 함께였다. 유타 옆의 신입생들도 레이먼을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타에 대해 열심히 쑥덕대던 모양이었다.
레이먼과 합류하자마자 작은 탄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박. 역시 5왕자랑 스플린 가문이 친한 거 맞았나 봐.”
“실제론 왕자가 밀리포레에서 컨닝 사건을 고발한 거라며?”
“저 세 명이 나란히 1학년의 1, 2, 3등이래.”
얼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레이먼과 달리 유타는 이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즐겁게 손을 흔드는 꼴을 보다 못한 오닉스가 유타의 멱살을 잡고 안쪽으로 끌었다.
중앙 홀에는 신입생과 재학생이 섞여 아직 어린 학생들로 우글거렸다.
“자, 기프트 클래스는 이쪽이야. 다 모이면 무도회장으로 이동할 거야.”
기프트 클래스장 파릭사의 목소리였다. 원래 포레스튼의 교칙대로라면 방학 전이나 중에 성적순으로 클래스장이 결정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방학은 영법 사건의 마무리나 에글린턴 개교 문제로 클래스장을 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때문에 3학년에 올라간 2학년 클래스장들이 임시로 신입들의 안내를 맡고 있었다.
“저기 네 동생이다.”
오닉스가 손가락으로 피데스 클래스의 가장 앞줄에 선 아드리안을 가리켰다.
“눈에 딱 띤다. 키도 제일 크네.”
“그러게.”
“형이랑 딴 판이야, 하하하.”
유타가 활짝 웃으며 레이먼의 등을 팡팡 쳤다. 방학 중 키가 훌쩍 큰 레이먼이었지만 아직 유타의 키를 따라잡지 못했다. 조금만 더 크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오닉스를 넘은 것만으로 만족할까.’
입학과 개학식이 동시에 시작되었다. 학장의 짧고 굵고 지루한 인사말이 끝나고 신입생들은 시간표를 받기 위해 회장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레이먼도 마찬가지였다.
2학년이 되었으니 이제 직접 수업을 선택할 수 있었다. 선택할 수 있다 해도 보통 진로가 정해진 놈들은 비슷한 수업을 듣기 마련이다.
“뭐 들을 거야?”
기숙사 방에 옹기종기 모인 4명이 서로의 임시 시간표를 공유했다. 인기가 많은 선택 수업의 경우 성적순으로 인원수를 채웠지만, 이 테디까지 포함한 네 명은 그런 교칙을 신경 쓰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왕실 마법 역사랑 심화 마법진은 어때?”
“심화 마법진은 나도 들어. 그리고 마법 연구 실습.”
“테디, 너는?”
“마법 실용 법학을 들을 거다.”
응?
테디 베어릴의 대답이 의외였던지 유타도 한 번 더 질문했다.
“……너 법 쪽이야? 그런데 왜 기프트에 있어?”
“1학년 때는 흥미가 없었는데 지금은 생겼다. 성적만 좋으면 어느 클래스든지 상관없겠지.”
사실 테디 베어릴은 3학년이 되면 클래스를 바꿀 예정이었다. 딱히 친해진 동급생도 없었으며 괜히 저 3인방에 끼었다간 이상한 주목이나 받을 게 염려되었다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유명한 3인방’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인정했으며 그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그들에게 말할 계획은 없지만.
“그렇구나. 우리야 좋지. 너랑 좀 더 친해질 거 같은 기분이 들어.”
유타의 개구쟁이 같은 미소에도 테디 베어릴은 초연한 얼굴로 일관했으나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저놈….’ ‘좋아하네.’ ‘쑥스럽나?’ ‘귀엽게.’ ‘그치?’
그들은 니콜이 가져다준 다과를 먹으며 마지막 시간표를 정리했다.
필수 수업을 제외한 선택 수업은 총 3개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 결정된 시간표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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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타 : 왕실 마법 역사, 심화 마법진, 정치와 마법
– 오닉스 : 심화 마법진, 심화 마법 주문, 마법 연구 실습1
– 테디 : 심화 마법진, 마법 실용 법학, 마법 법학 입문
– 레이먼 : 왕실 마법 역사, 심화 마법진, 정령학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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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학과 다양한 계열의 마법을 시험해보는 수업은 이미 필수 시간표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굳이 정령학 입문을 듣지 않기로 했다.
완성된 시간표를 슬쩍 훔쳐보던 아모르가 레이먼의 귓가에 속삭였다.
[ 이봐, 레이먼. 나 말고 다른 정령을 계약할 셈은 아니겠지? ] [ 네 눈은 정령들이 아주 좋아할 눈이란 말이다. ]‘그럴 생각은 없어요. 기왕 대정령이랑 계약했으니 좀 더 공부해두면 좋겠다 싶어서요.’
정치 수업도 들으면 좋겠지만… 책으로 배우나 수업으로 들으나 비슷할 거 같고. 들으려면 3학년 수업부터 듣는 편이 좋겠지.
“그럼 난 방으로 돌아갈게. 수업은 내일부터니까.”
“아, 나도.”
“같이 가지.”
학생들로 꽉꽉 차 있던 레이먼의 방에 다시 레이먼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니콜은 아드리안에게 갔으니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고.
‘나는 뭘 하면 좋지?’
도서관에 새 책이라도 들어왔는지 보러 갈까.
똑똑-
“레이먼? 있어?”
파릭사 선배?
“네, 들어오세요.”
역시 파릭사 선배잖아.
“안녕, 레이먼. 몸은 좀 어때?”
파릭사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대신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가호’라면 괜찮아요.”
“다행이다. 몸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했어. 그리고 미안. 아마 엘프국에서 있었던 일이 다 새어나간 모양이야.”
“아뇨. 괜찮아요. 선배님 잘못도 아니고.”
새어 나오는 편이 좋지. 굳이 서클에 대해 설명할 필요도 없어지고, 유타에 대한 평판도 올라가니까. 게다가, 타인을 비방해서 위치를 점하는 것보단 이러는 편이 적을 훨씬 덜 만들 수 있으니.
‘여러모로 상황이 좋아졌기.’
그런 레이먼의 배려에 파릭사는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다.
“만약 힘든 게 있으면 또 연락해주고. 아, 그리고 이거.”
“이게 그럼-.”
“응, 기프트 클래스의 2학년 장! 너야, 레이먼. 네가 1학년 수석이잖아.”
“그랬죠, 참.”
“걱정하지 마. 클래스장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별거 없어. 학기에 한 번 클래스 회의가 있고, 2학기에 1학년들의 선택 수업을 결정해주는 정도? 학생회 일보다는 편할 거야. 버틀러로 일할 때는 선배가 시키는 심부름도 해야 하잖아?”
그랬나? 디찬 선배는 딱히 시키는 게 없었던 거 같은데.
“잘은 모르지만 크리스라는 사람이 엄청 유명했거든. 그 사람의 버틀러가 된 애들은 다 도망갔대.”
파릭사가 활짝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아침마다 나와서 함께 교육 봉사를 해야 하고 주말에는 기숙사에서도 가만 내버려 두지 않고 매번 밖으로 끌고-.”
들으면 들을수록 레이먼은 그날, 크리스의 버틀러가 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파릭사는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서 서류를 넘겨주고 자리를 떠났다.
첫날이면 그래도 여유로운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전보다 더 바빠진 것 같다.
덜컥-!
그리고 또 한 번 문이 열렸다. 노크도 안 하고 들어올 사람은 두 명, 아니 세 명 정도뿐인데. 아니, 네 명인가?
“레이먼!”
“…크리스 선배?”
“하하하, 오랜만이구나! 네 활약은 아주 잘 전해 들었다!”
“그러시군요. 선배는 첫날부터 어쩐 일이세요?”
“학생회 일로 찾아왔다! 회장 선거 준비다!”
……회장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