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92)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92화(92/275)
“회장 선거 준비를 벌써 하나요?”
포레스튼에서는 학기 초에 회장 선거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개학했잖아?
벌써부터 회장 선거를 준비한다고?
크리스는 클럽 하우스에 향하며 선거 준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회장 선거는 1년이나 2년에 한 번 있어. 임기는 2년이지만 4학년이 회장이 된 경우엔 당장 그다음 해엔 회장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서머셋이 5학년에 올라가니 이번에 회장 선거를 하게 된 거다.”
“부회장은 없는 거죠?”
“없다. 학생회 임원 선거도 없어. 회장이 임의대로 뽑기 때문이지. 여하튼, 이번에 서머셋이 회장에서 물러나게 됐으니 선거를 치러야 해. 캠페인은 10월 중순에 시작하고 실제 선거는 11월 초에 있어.”
겨울방학 전에는 회장을 뽑는다는 소린가.
“너도 나갈 거냐?”
“아니요.”
챈들러 선배도 그렇고 크리스 선배도 왜 자꾸 물어보는 거지?
…아마 이름값이겠지. 1학년 중에 유명한 사람을 따지자면 나나 유타, 아니면 오닉스니까.
“…그래? 너 정도면 당연히 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아니면… 5왕자가 나가겠군. 왕녀님은 회장직에 영 흥미가 없어 보여서 말이야.”
“네. 아마도요.”
지금 상황에서 유타가 후보로 나선다면 유타를 이길 만한 학생은 없다. 손쉽게 회장직을 차지하겠지.
‘회장이 안 되면 치명타겠지.’
***
오랜만에 들리는 클럽 하우스는 놀라울 정도로 잘 정돈이 되어 있었다. 방학 중에도 관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어지럽게 자라있는 잡초는 없었고, 가로수길처럼 줄지어 서 있는 나무들도 모두 가지치기를 마친 깔끔한 상태였다.
“크리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레이먼, 네 얘기 다 들었다고. 방학 때는 좀 쉬어.”
“엘프국에서도 대단하던데!?”
클럽 하우스는 청춘으로 가득 들어찬 공간이었다. ‘구름 위 아카데미’라는 존재 자체도 낭만적이었으나 클럽 하우스는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열기로 가득했다. 레이먼은 그 열기를 지나 묘한 긴장이 뒤섞인 학생회 건물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늘한 냉기가 그를 처음으로 맞이했고 머리카락이 한 번 흩날린 뒤에야 레이먼은 풍경 속 사람들이 보였다. 레이먼이 기억하고 있는 선배들은 대강 정해져 있었다. 안쪽에 서서 명단을 정리 중인 블랭킷과 구석에 서서 멍을 때리는 디찬, 그리고 왜 있는지 모를 해석에서 잠을 자고 있는 챈들러까지.
크리스는 레이먼은 데려오자마자 곧장 디찬에게 달려갔다. 아마 디찬 선배 대신 크리스 선배가 온 거겠지.
“디찬-! 네가 시킨 대로 레이먼을 데려왔다!”
“응, 수고 많았어.”
“안녕하세요, 선배.”
“안녕.”
디찬의 멍한 눈이 레이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었다.
남들보다 마력의 양이 많고 민감한 그녀였기에 레이먼이 방학 동안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을 저지르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마력에 끝이 안 보여.’
엘프나 늑대 인간, 오크 등 종족 특례 입학을 한 학생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징.
인간처럼 서클을 만들지 않고 자연에 넘실대는 마력을 사용하는 종족에게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이런 사람에겐 서클이 의미가 없다.
7서클, 8서클 같은 분류도 서클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거니까.
애초에 엘프들에겐 대마법사와 같은 칭호도 따로 없다. 그 이유는 마력에 제한이 없는 만큼 마법에 대한 숙련도가 오르기만 한다면 8서클, 9서클의 마법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다만, 엘프도 할 수 없는 마법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축복, 저주, 그리고 정령 마법이었다.
저주 마법은 자연의 흐름에 거스르기 때문이다. 영법과 달리 저주 마법은 말 그대로 악의를 담은 마법. 타인을 비방하거나 타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한 마법이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축복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인생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축복 마법은 엘프도 사용 불가능하다.
정령 마법은 전자와는 전혀 다른 단순한 이유다.
‘정령들이 엘프를 싫어하니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레이먼은 다 할 수 있는 애가 되었네.’
레이먼은 엘프도, 늑대 인간도, 오크도 아니었고 심지어 이미 ‘감정의 정령’과도 계약한 상태였으니까.
“디찬 선배?”
“…넌 진짜 이상한 애야.”
“갑자기요?”
“디찬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레이먼.”
“뭐, 그럴게요.”
그때였다. 여느 때처럼 건물 정문의 문이 열렸으나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그건 문 너머로 보인 얼굴이 평범한 이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들 모여 있었구나?”
그는 로비에 모인 학생들을 보자마자 한눈에 모든 학생회 멤버들이 모였다는 걸 눈치챘다. 임원을 제외하고서 학생회의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일반 학생들, 그리고 버틀러들까지 포함해서 전부.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서머셋뿐이었다.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와 목소리로 학생들을 반겼다.
‘너무 착해서…’
그 모습을 보며 레이먼은 챈들러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별로 안 착해 보이는데.’
***
서머셋은 몇몇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며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다음 말을 이었다.
“오늘 이렇게 다 모인 이유는 앞으로 2개월 뒤에 있을 회장 선거 때문이야. 알다시피 난 올해 5학년이 되었고 5학년은 학생회장이 될 수 없어.”
나머지는 크리스 선배가 말해줬던 그대로였다. 레이먼은 그의 설명을 한 귀로 흘리며 유타를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뭘 해야 할지 생각했다. 사실상 그다지 할 것도 없었다. 유타가 왕족인 것과는 별개로 1학년 때 세운 업적만 해도 다른 3학년, 4학년에 비할 바가 안 됐다.
다른 클래스의 컨닝 사건을 까발렸고, 포레스튼과 에글린턴의 교류회에선 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아카데미에 침입한 죄인들을 구속하는 데에 일조했다. 이번 여름방학 때는 엘프국으로 가 엘프를 돕기까지.
이미 충분한 실적이 쌓였다. 나머지는 밀리포레로 유타를 밀어주면 될 일.
“보통 원래 학생회였던 학생 중 한 명이 주로 입후보하거든. 나도 회장 후보가 되기 전엔 버틀러로 있었던 적이 있으니까. 자… 그럼 레이먼?”
“…네?”
그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레이먼은 등줄기에 쫙 소름이 돋았다. 그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대충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마… 또?
흰 장갑을 낀 양손을 맞잡은 서머셋이 레이먼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누구보다 해맑은 미소로 다가온 서머셋의 양손이 레이먼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네가 입후보해보는 건 어때?”
“……예???”
“아니, 보통은 학생회에서 한 명은 나가니까.”
“아뇨. 그런 인원수 맞추기에 낄 생각은 없습니다.”
“흠, 그래? 정말 아무 흥미도 없어?”
“네.”
“으음. 그래, 네 의견은 잘 들었어. 그럼 입후보를 희망하는 학생은 있어? 있다면 블랭킷에게 말해줘. 그런 학생은 우리 학생회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니까.”
“네!!”
로비 구석 어딘가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 보니 저번 버틀러 회의 때 봤던 그 2학년인 듯했다. 이제 3학년이겠군. 보통 학생회장에 입후보하는 학년은 4학년, 그다음으로는 3학년이니까.
‘학생회에서 밀어준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지.’
입후보에 대한 이야기 끝난 이후에는 캠페인 진행 방식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뇌물을 주거나 금품을 나누는 것으로 표를 획득하는 것은 금지. 또한 아카데미 도서관이나 학습관 강의실들 공공장소에서 연설하거나 포스터를 나눠주기 위해선 미리 학생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 등등.
생각보다 지킬 게 많은 선거였다.
레이먼은 서머셋의 설명을 머릿속에 빠르게 욱여넣었다.
회의가 끝나니 점심이 지난 늦은 오후였다.
“오늘 점심 메뉴 뭐였어?”
“오늘… 스테이크랑 빵.”
“헐, 남았으려나?”
“빨리 가보자.”
우르르 떠나는 학생들 틈에서 오직 레이먼만 미적대며 느리게 걸었다.
‘밥은 니콜이 따로 챙겨뒀을 테고, 아드리안은 점심 먹었으려나.’
별생각 없이 걷고 있던 레이먼의 곁에 높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레이먼.”
“회장님.”
“이제 회장도 아니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
난처한 듯 손을 내저은 서머셋의 눈길이 레이먼의 얼굴, 그다음으로는 가슴께로 향했다.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야. 엘프의 가호는 몸에 좀 맞아?”
“네. 괜찮은 거 같아요.”
“회장 선거는? 네가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걸로 봐선 유타를 내보낼 생각인 거 같은데, 맞아?”
“…뭐, 제가 나가라고 해서 나가겠어요. 본인이 원해서 하는 거죠.”
“유타는 잘할 거야.”
서머셋의 눈꼬리가 아래로 휘어졌다.
“내 동생이잖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럼 나도 할 일이 있어서 가볼게. 회장직은 벗어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네.”
“안녕히 가세요.”
“응, 다음에 밥이나 같이 먹자.”
작게 손을 흔들며 서머셋이 자리를 떴다. 레이먼은 남은 시간 동안 클럽 하우스들을 하나씩 둘러보기로 했다.
아드리안이 들어갈 만한 클럽이 있는지 물색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클럽 대부분은 전년도와 다를 바 없었다. 마격 클럽은 여전히 전통을 지키기 위한 경기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레이먼은 아드리안이 마격 클럽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과 달리 체격도 좋았고, 검술에도 재능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된 첫날 클럽 하우스를 둘러본 뒤, 레이먼의 학교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바빠졌다.
***
밀리포레는 신입을 모집하지 않았기에 클럽 홍보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클럽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신입생들의 문의가 하루가 다르게 몰려들었다.
휴게실 소파에 미역 줄기처럼 축 늘어진 레이먼 옆에 유타도 함께 늘어졌다.
개학한 지 이제야 겨우 2주가 지났다. 이제 회장 선거를 위한 입후보를 받는 시점. 레이먼도 슬슬 유타에게 다시 한번 입후보 의사를 물을 때였다.
전에 물었을 땐,
– 나갈 거 같은데?
라는 식으로 애매하게 답했었으니까.
“유타. 곧 학생회에서 회장 후보 지원받는단다.”
“벌써? 시간 빠르네~.”
“할 거지?”
“으음….”
“장난치지 말고. 너 말고 누가 나가?”
“하하하, 넌 정말 매번 네게 자신감을 주는구나? 응, 나갈 거야.”
유타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밀리포레로 쌓은 명예나, 노력으로 쌓은 성적 외에 다른 걸 갖고 싶었다.
권력. 학생회장으로서의 권력이 지금 그녀가 가장 갖고 싶은 장난감이었으며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져야만 하는 끈이었다.
천천히 감기는 눈꺼풀과 함께 유타가 말했다.
“그리고 무조건 될 거야.”
“어. 그렇게 만들 거고.”
“얘-들-아!”
뭐야?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밝고 경쾌한, 어딘가 사샤를 닮은 종달새 같은 목소리.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유리페와 마리아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제 4학년이 된 두 사람은 반대편 생활관 건물을 쓰고 있을 터였다.
‘아, 휴게실은 같으니까.’
생각을 마친 레이먼이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응, 안녕. 너희들 학생회장 선거 얘기하고 있었지!”
“네.”
“유타 네가 나가려고?”
“네, 아직 2학년이지만 나갈 수는 있으니까요.”
“그렇구나. 음…… 좋아! 마리아!”
“왜.”
유리페가 활짝 웃으며 외쳤다.
“나도 선거 나갈래. 회장 선거!”
“…뭐어어어어?!?”
물론, 마리아 스웨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