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96)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96화(96/275)
유-리-아.
‘언제? 어떻게?’
왕성에서 들킬만한 행동을 했나?
아니, 아니야. 목욕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시종을 들이지도 않았고, 애초에 별궁에 시종이 많지도 않았다. 어머니를 따르는 시종들조차도 자신이 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타인의 손길을 극도로 싫어하는 쓸데없이 까다로운 5왕자.
그게 자신의 입지였다. 아니, 였었다.
결투가 시작되고 몇 초가 흘렀는데도 양쪽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생글생글 웃고 있다 유리페는 허리춤에 찬 벨트에서 작은 완드를 꺼내 들었다.
유리페의 손 정도 되는 길이의 짧은 완드였는데, 짧은 주문을 자주 사용하는 그녀에게는 잘 맞는 듯했다. 모두 이상하다고 하는 완드였지만 유리페는 자신의 완드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완드는 그녀가 직접 만든 게 아니었으니까.
– 마리아, 이 완드는 뭐야?
– 네 거야. 너 완드 만드는 데에 흥미 없잖아. 받아.
– 엄청 짧은데?
– 네 마법은 크게 그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짧은 편이 좋아. 마법을 걸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니까.
“마리아는 참 똑똑해.”
유리페가 말했다.
“이 완드 말이야, 마리아가 만들어줬거든. 난 완드 수업 시간 때 대부분 잤거든. 흥미가 없어서.”
“……”
“나는 흥미가 없는 일엔 나서지 않아. 왕위에 오르는 것도, 회장직을 가지는 것에도 난 흥미가 없어. 근데 왜 내가 너랑 결투를 신청했을까?”
빙그르르. 유리페 손 위의 완드가 가볍게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쥔 완드로 유리페가 유타를 가리켰다.
“네가 흥미로워서. 왜 가질 수 없는 걸 탐내?”
“누님.”
“왜 포기하지 않지? 이 결투만 해도 그래. 넌 날 못 이겨. 지금도 너는 내가 저주 마법을 걸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잖아.”
“…….”
유리페의 말이 맞았다.
결투장 밖에서 냉정히 상황을 살피던 몇몇 학생들은 이미 이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 학생 중엔 레이먼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거, 어떡해?”
오닉스가 턱을 들어 결투장 위 두 사람을 가리켰다.
“이미 마법에 걸렸잖아. 양손, 양발 모두 움직일 수 없을 거야. 저 상태에서 마법 하나 맞으면 부앙-”
“….”
“하고 끝나겠는데?”
옆자리에 선 테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먼은 침음한 뒤, 제 뒤에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렌스를 향해 물었다.
“이봐, 렌스. 네 주인은 질 거 같아?”
“야, 그런 어려운 질문을 하면 어떡해? 쟤는 진다는 말 못하지.”
“응? 질 거 같아?”
모두가 답을 추궁하는 가운데 렌스는 미동 없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뇨. 유타 님께선 분명 이기실 겁니다.”
“……”
“그런 분이십니다.”
***
당했어.
‘몸이 움직이질 않아.’
땅에서 뻗어 나온 사슬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저주 마법은 다른 마법과 달리 힘 조절이 어려운 마법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누군가를 죽일 수 있었고, 그렇다고 힘을 너무 뺐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되는 마법이었으니까.
그래서 결투 시에 마법사들은 저주 마법을 선호하지 않았다. 주문이 짧고 몰래 마법을 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상대방에게 들키거나 통하지 않았을 때의 부작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페에겐 그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녀의 저주 마법은 강력했다. 마력을 완벽히 제어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수준의 구속 마법.
그것도 상대방에 들키지 않게 조용히.
이건 완드의 가동 범위를 적게 설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휘릭. 그녀의 완드가 허공에 작은 문자를 그렸다. 휘릭. 휘릭. 휘릭.
동그란 문자와 함께 유리페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태어나지 않은 밤.”
유리아의 입 모양을 읽은 레이먼을 팔에 힘이 들어갔다. 팔짱을 낀 손 역시 팔뚝을 끊어지리라는 것처럼 꽉 쥐었다.
‘저 마법은….’
<태어나지 않은 밤>, 5서클의 저주 마법.
발목이나 손가락에 건다면 그 육체는 천천히 마비되어 감각이 사라지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고 힘이 들어가지 않은 발목 때문에 몸의 균형이 무너져 내린다.
만약 심장에 사용하게 된다면 두근대는 심장의 속도는 천천히 느려지고 온몸을 순환하던 피의 흐름은 멈추게 된다.
‘태어나지 않은 밤’은 그만큼 위험한 저주 마법이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심판, 클레임 역시 고민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결투를 멈춰야 하는 건가.’
유리페는 그런 현장의 분위기를 읽었다. 그녀는 유타 바로 앞까지 가볍게 다가가 속삭였다.
“기권할래? 겨우 이 정도야? 유-리-아.”
“…….”
“아, 너 지금 대답 못 하는구나.”
유리페가 쿡쿡 웃으며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때였다.
“……해.”
“뭐야.”
아직 말할 줄 아는구나?
유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부들부들 떨리며 올라가는 얼굴은 힘겨워 보였으며, 실제로 힘겹기도 했다.
숨은 제대로 휘어지지 않았으며, 다리에 힘을 잘못 줬다간 그대로 균형을 잃고 무너져내릴 것 같았으며 완드를 쥘 수 있을 정도의 악력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허억- 허억-
이대로 숨을 몰아쉬는 것 외엔 유타에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지만 시선이 느껴졌다. 등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유타는, 그녀는 증명해내야 했다. 자신을 왕으로 만들려는 이들에게 자신이 그에 적합한 그릇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왕은 뛰어나야 한다. 자신을 왕으로 만들려는 이보다. 자신의 우수함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잡아먹히는 것이 바로 왕성이었다. 한데 고작 이 작은 아카데미에서, 기껏해야 4학년이 된 선배에게 진다면 앞으로 어떻게 그들에게 당당히 선언할 수 있겠는가.
나는, 왕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유타는 홀로 정상에 서고 싶지 않았다. 홀로 하는 싸움은 왕성에서 지겹도록 해왔으니까.
그녀가 이 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가장 원했던 건, 자신과 대등한 친구.
자신의 비밀을 모두 밝혀도 믿을 수 있는 그런 동료.
그리고 만약 그런 동료를 이미 손에 넣었다면.
그녀가 한 발을 앞으로 뻗었다. 웃느라 반쯤 접혔던 유리페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지킬 수 있어야….”
“……너, 억지로 밀어붙이고.”
유리페가 황급히 완드를 들었다. 저주 마법이 풀리고 있었다. 구속 마법을 해제한 것도 아니며 파훼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은 밤>은 5서클 저주 마법. 그 마법에는 파훼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눈앞의 유타는 순전히 정신력과 몸 안에 저장된 마력만으로 마법을 밀어내고 있는 거다.
‘서클에 마력을 집중시켰어.’
저주 마법을 튕겨내는 방법 중 가장 무식하고 효과적인 방법.
체내 마력을 모두 끌어내 타인이 몸에 쑤셔 넣은 마력을 밀어내는 거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마력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컸다. 만약 마력이 부족해 중간부터 실패하게 된다면 밀어냈던 저주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몇 배는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상대보다 더 마력의 양이 방대할 거한 자신이 있을 때만 사용 가능한 방법이라는 말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유타가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지키기 위해선….”
“…….”
“지면 안 됩니다.”
크윽. 어금니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금니를 제외한 다른 이 역시 흔들렸다. 마력을 급속도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유타는 멈추지 않았다. 부글거리는 마력이 저주 마법을 억지로 밀어낸다. 양손이 서서히 자유로워지는 게 느껴지고 느리지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내 양발마저 자유로워졌을 때, 유타는 순식간에 앞으로 뛰어들었다.
유리페가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아마 한두 개가 아닐 거다. 저주 마법을 먼저 사용한 건 단순한 흥미. 그리고 그녀는 흥미가 없는 마법을 결투에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유타를 앞으로 달려들도록 만들었다.
자유로워진 한 손으로는 완드를, 입으로는 마법 주문을 읊는다. 원거리 마법이 아니다.
[ 파이어 소드 ]화르륵- 간단한 2서클 마법. 유타의 완드가 불로 이루어진 붉은 단검으로 변한다. 남은 한쪽 팔뚝은 유리페의 목을 가볍게 누르고 중심을 무너뜨린다. 유리페의 검은 머리카락이 공중에 흩뿌려지고 그녀의 시야가 순식간에 뒤바뀐다.
보이는 건 푸른 하늘. 무너진 유리페의 몸 위에 번개같이 달려든 유타가 올라탔다. 눈 깜짝할 새에 유타의 붉은 단검이 유리페의 목 위에 겨눠졌다.
“찌르면 끝입니다, 누님.”
툭. 조금만 더 다가가면 화상이다. 그대로 푹 찌르면 죽을 테고.
유타의 눈빛을 읽은 유리페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응! 그러네!”
“….”
“죽여!”
“……예?”
“하하, 농담이야. 교수님! 기권이에요! 제가 졌어요!”
…우, 우와아아아아-!
유리페의 패배 선언과 동시에 1, 2학년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내가 이길 거라고 했잖아!”
“2학년이 4학년을 이겼어!”
“이건 인정해야지! 무조건 유타 찍을 거야!”
클레임 교수도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이 하늘을 향해 솟았다.
“승자, 유타 스테디움 스턴!”
“와아아아아아-!”
“수고했어, 동생.”
유리페가 웃으며 유타의 어깨를 두드렸다. 뒷짐을 진 채, 요정처럼 가볍게 빙글 돌아선 유리페의 손목을 유타가 붙들었다.
“저, 잠시만요.”
“응?”
“저…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나중에! 저녁에 네 방에서 하자! 지금은!”
유리페가 유타의 등 뒤로 고개를 쭉 내밀었다.
“네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제가 이러는 이유를 누님이 가장 잘 아시잖아요.”
“걱정하지 마. 나만 아니까. 자자, 나중에 봐, 유타.”
가볍게 결투장을 총총거리며 뛰어내린 유리페의 곁에도 마리아 스웨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은 활기찬 클럽 하우스를 뒤로한 채, 예배당과 생활관 쪽으로 걸어갔다.
“수고 많았어.”
“고마워, 마리아. 네가 준 완드를 썼는데도 저버려서 미안해.”
“…됐어. 그 애가 대단했지. 너무 무식한 방법 아니야? 그걸 마력으로 밀어낼 생각을 하다니.”
“재밌지 않아? 재밌어. 매너스나 서머셋보다 유타 쪽이 훨씬 더 재밌는 거 같아.”
“걔가 그렇게 웃긴 애였나?”
잔뜩 상기된 얼굴로 유리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런 듯?”
여전히 함성이 가득한 클럽 하우스를 뒤로한 채, 두 사람은 생활관으로 요정처럼 사라졌다.
.
.
.
똑똑. 그리고 그날 밤. 약속대로 유리페는 유타의 방에 찾아갔다. 문을 열자마자 유리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가 입을 가린 채, 말했다.
“어머, 한 사람이 아니네?”
“안녕하세요.”
“네, 레이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 자리엔 당연히, 레이먼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