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Make You a King as a Possessor RAW novel - Chapter (97)
빙의자가 왕으로 만들어 드립니다-97화(97/275)
“내 이름을 말했어.”
“유리페 왕… 아니, 선배가?”
“응. 다 아는 모양이야.”
대결을 마친 직후, 유타는 레이먼을 자신의 방으로 따로 불러냈다. 자신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직 렌스와 레이먼, 둘뿐이었기 때문이다. 유타는 슬쩍 레이먼의 표정을 살폈으나, 그도 꽤 놀란 눈치였기 때문에 올라오는 의심을 얼른 거두었다.
‘유리페 왕녀가 다 알고 있다고?’
비밀을 알았다면 언제부터지? 만약 최근이라면… 어딘가에 그 비밀을 말할 수도 있어. 아니, 이미 말했을 수도 있겠군.
제기랄.
“그래서? 어떡할 거야?”
“저녁에 내 방으로 오기로 했어. 아마 혼자 오겠지. 일단 만나서 얘기를 나눠 볼 생각이야.”
“네가 ‘그걸’ 노리고 있다는 것도 말할 거야?”
잠깐 고민하던 유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기까진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럼 네가 원래 이름과 성별을 숨긴 이유를 물으면?”
“모두의 착각을 정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라고 한다면….”
“그걸 유리페 왕녀가 납득하겠어?”
“아니, 안 하겠지.”
고민하는 유타에게 레이먼은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무시해.”
“뭐?”
“침묵하라고. 그게 답이다.”
침묵이 답이다- 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듣고 싶고, 원하는 정보를 믿게 되어 있으니까. 그에 반대되는 답변을 했다가는 도리어 거짓말이라며 의심받기가 쉽고, 그렇다고 불리한 진실을 말했다간 앞으로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정말 침묵하라고?”
유타가 되묻자 레이먼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레이먼의 의견은 변하지 않았다.
“침묵은 어떤 대답도 될 수 있어. 긍정이든 부정이든 뭐든.”
이게 진짜 마법이지.
***
“어머, 한 사람이 아니네?”
“안녕하세요.”
“네, 레이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다행이다. 간식이라도 들고 올까 했는데 가져오지 않았거든! 한 사람만 먹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 널 외롭게 할 뻔했어, 레이먼.”
저 말은… 내가 안 먹는 게 확정이었단 소리잖아.
“그럼 들어갈게!”
유리페가 방싯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편한 생활복으로 갈아입은 유리페는 긴 검은 머리를 위로 질끈 묶고 있었다.
유타의 방 한가운데에는 원형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었고 의자 4개가 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유리페가 왼쪽 의자에 앉자, 바로 맞은편에 유타가, 그 옆에 레이먼이 자리했다. 렌스는 유타의 뒤였다. 앉지 않는 렌스에게 유리페가 남은 자리를 권유했지만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유리페가 다섯 손가락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어머, 거절당하는 것도 상처다.”
레이먼이 말했다.
“렌스는 기사니까요. 그나저나 유리페 선배는 시종인을 정말 데리고 다니지 않으시네요.”
“응. 1학년 때, 어떤 애가 내 음식에 독을 넣으려고 했거든. 그 뒤로 믿을 수가 있어야지.”
볼에 손을 댄 채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평범한 말투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상황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문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냈지. 아마 다신 말을 할 수 없을 거야.”
“그렇군요.”
“응!”
유리페가 활짝 웃었다.
“그래서 나는 내 동생 유타에겐 이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야. 왕족들의 삶은 너무 퍽퍽하거든. 그럼 너도 알고 있겠구나?”
“뭘-.”
“유타의 비밀 말이야! 여긴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다른 이름을 불러도 되겠네. 그렇지, 유-리-아?”
유타는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조금 전에도 그렇고 왜 저를 유리아-라는 이름으로 부르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응? 어…… 아! 아아아! 너희 설마 모른 척하기로 한 거야?”
유리페가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뚝-멈춰선 표정이 날카롭게 변한다.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니 처져 있던 눈꼬리는 고양이처럼 솟아오른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유리아, 난 널 언제나 여동생으로 생각했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말이야. 물론 너는 아주 잘 숨겼지만.”
유리페는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나는 말이야 어렸을 때도 호기심이 넘쳤거든. 하루는 별궁에 머무르는 5왕자가 있다기에 너무 궁금한 거야. 그 애의 얼굴이. 그래서 너를 훔쳐보러 몰래 별궁에 갔었는데 마침 네가 옷을 갈아입고 있더라고.”
분명 5왕자를 보러 갔을 텐데 말이지.
“여자애던데? 너?”
“….”
빼박이네. 잡아떼지도 못해.
레이먼은 혹시나- 하는 희망을 버리기로 했다. 유리페는 유타의 정체를 확실히 인지하고, 숨겨줬던 거다. 그 옛날부터 말이다.
“너희 어머니는 너를 아들이라고 떠들고 다녔고 너는 늘 짧은 머리를 유지했으니 다들 네 정체를 의심하지 않더라고. 우리 둘의 체격 차이 좀 봐. 너는 키가 크고, 나는 이렇게 작고 왜소하잖니?”
“누님.”
“그래, 계속 누나라고 불러. 이젠 뭐라고 하지 않을게.”
유리페는 유타가 왕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버려진 5왕자는 혼자 마법을 공부했고, 혼자 검술을 공부했고, 혼자 암살 공작에 익숙해졌다. 연약했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자신보다 더 성숙한 얼굴로 변해있었다.
다른 건 없었다. 자신이 타국과의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도 쓸모가 없다던 5왕자의 결혼은 거론되지 않았다. 왕위 계승권을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자신은 여전히 논외였다.
유타와 자신은 다를 게 없는데.
그래서 유리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 대해 고민했다.
유리페는 왕위에 관심을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상황이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럴 때마다 그녀는 자문자답을 해야 했다. 몇백 번이나 같은 질문으로.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가 낸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아니다’였다. 그녀는 그 무거운 왕관을 쓰고 그에 따라오는 귀찮은 책임들을 지고 싶지 않았다. 아카데미 졸업 후엔 마리아와 함께 스턴 왕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고문 도구를 사 모으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저 동생은, 본래라면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5왕자’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까? 설령 원치 않더라도 왕위 다툼에 말려들어 어느 순간 죽지 않을까?
이유 모를 연민이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유타… 아니, 유리아에게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너는 강해? 얼마나? 네 몸을 지킬 힘은 있어? 있다면 왜 굳이 그런 연기를 하고 있는 거야?
묻고 싶은 게 많았다. 하지만 물을 수 없었기에 유리페는 결투를 신청했다. 때론 대화보단 마법이 의문을 풀어주는 하나의 열쇠가 되곤 하니까.
유타가 마법을 쓰는 방식은 엉망진창이었다. 스승 한 명 없이 혼자 마법을 배웠기 때문이겠지. 그 와중에 검술은 괜찮은 건 뒤에 있는 저 기사가 알려준 덕분일 테고.
“있잖아, 유리아. 네 신분은 지금 당장이라도 왕녀가 될 수 있어. 내가 아버지나 매너스, 혹은 서머셋에게 네 정체에 대해 말하면 끝이겠지. 아니면 소문을 낼 수도 있어. 겉으로 보이는 머리 길이나 네 체격, 그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야. 사실이 그렇잖아?”
“……설령 사실이 그렇다고 해도 저는 지금 이 신분이 필요합니다.”
“계속 거짓말을 하겠다는 거야? 앞으로 나 같이 진실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너를 의심하는 사람이 더 나타날지 모르는데도?”
“의심스러웠다면 이미 누군가 확인하려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어요. 단지 제 겉모습만을 보고 말입니다.”
“…그래?”
그래, 유타. 사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는 이미 이해했어.
유리페는 생각했다.
머리가 짧다고 남자는 아니고, 길다고 해서 여자는 아니지.
체격이 좋다고 남자인 것도 아니고 왜소하다 해서 여자인 것도 아니야.
네가 입 다물고 있으면 모두 남자라고 착각하는 것도 모두의 편견에서 비롯된 걸 거야.
하지만 그 편견이 너에겐, 우리에겐 기회를 주지.
순간 유리페의 눈썹이 꿈틀댔다.
그녀는 자신이 유타에게, 유리아에게 갖는 감정이 대체 어떤 감정인지 도통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싫은 건 아닌가?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진 않아.
‘뭐지. 이건 무슨 느낌이지?’
어쨌든, 나는 지금.
‘유타를 돕고 싶어.’
짧은 한숨을 폭 내쉰 그녀가 재차 입을 열었다.
“있잖아, 유리아.”
“네, 말씀하세요.”
유리페는 눈앞의 두 사람이 아니라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녀가 질문했다.
“너는 왕이 되고 싶은 거야? 그래서 그 신분이 필요한 건가? 너 자신은 같다고 해도 그 ‘왕자’라는 신분이 없으면 넌 왕에 오를 수 없으니까.”
드디어!
스슥- 준비됐다는 듯 유타와 레이먼의 시선이 맞닿았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며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지금인가? 레이먼?’
‘지금이다- 가라.’
‘응!’
“…….”
“…유리아?”
“……….”
침묵한다. 침묵은 마법. 마법은 침묵. 어쨌든 레이먼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살짝 불안해진 유타가 옆자리에 앉은 레이먼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레이먼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유타 역시 그 훌륭한 자세를 배우기 위해 노력했다.
침묵의 시간은 더더욱 길어졌다. 결국 졌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 건 유리페 쪽이었다.
“그래. 네 말뜻은 잘 알겠어.”
“…….”
그들은 몇 분 더 대화를 이어 나갔다. 30분쯤 지났을까. 드르륵 –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유리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그녀가 하고 싶던 대화는 대충 마무리 지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날 이긴 건 축하해. 아마 회장이 되는 것도 쉬워졌겠지. 나도 네가 이겨서 기뻐, 유타.”
유리아에서 다시 유타로. 이건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그녀 나름의 신호였다.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나는 오빠들보다 네 쪽이 더 재밌으니까 도와줄게. 알겠지?”
“네, 누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대답해주는구나. 일어나진 마. 마리아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 아, 우리 대화는 새어 나가지 않았을 거야. 그렇지, 레이먼?”
방음 마법이 걸려 있다는 걸 눈치챘었나.
“네. 그랬을 겁니다.”
“응. 오늘 대화 즐거웠어, 얘들아. 다음에는 더 오래 얘기 나누자!”
***
탁.
“얘기는 잘하고 왔어?”
“응, 즐거웠어.”
잠옷을 입은 마리아가 그녀를 반겼다. 두 사람의 기숙사는 이들보다 2층은 더 높은 곳이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마리아는 그녀가 어떤 대화를 나눴는진 묻지 않았다. 마리아에게 유리페는 소중한 친구였기 때문에 무거운 대화 뒤에 또다시 무거운 주제를 나누기 싫었다.
유리페도 그런 마리아의 마음을 읽었다. 방에 도착한 뒤 침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며 그녀가 말했다.
“마리아, 네가 말한 대로 레이먼은 재밌는 애더라. 방음 마법도 할 줄 알던데?”
“아, 그래서 너희 대화가 전혀 들리지 않았구나. 걘 진짜 이상하다니까.”
“응, 다행이야. 그런 애가 유타랑 친구라서.”
“…넌 유타를 좋아하는 거야, 싫어하는 거야?”
“글쎄~ 그래도 서머셋보단 좋아하는 거 같아.”
“그래. 그럼 됐다. 난 신경 끌 거야, 이제. 너도 내일 숙제부터 해! 알았어?”
“네에, 네에. 마리아 엄마.”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유리페와 마리아는 잠이 들었다.
한편, 유리페가 떠난 뒤 레이먼도 제 방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도와줘서 고맙다는 유타의 말에 레이먼은 대강 알겠다고 답하고서 복도로 나갔다.
돌아가는 길에서 레이먼은 시스템 창을 켰다. 왕 후보 목록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시스템 창을 켠 레이먼이 작게 중얼댔다.
“뭐야…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