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250)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52화(250/576)
제252화
“성국, 눈을 떠봐요.”
누군가 나를 불렀다.
얼마나 깊은 잠에 빠졌던 걸까.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
아까 진료를 봤던 노아 브라운의 친구 의사였던 리암이었다.
“노아가 부탁하고 갔어요. 병실이 준비됐다고 하네요. 간호사들이 옮길 테니, 걱정 말고요. 상태는 좀 어때요?”
“…졸려요.”
“아마 약 때문일 거예요. 열은 조금 내려갔는데…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병실로 이동할게요.”
“네에….”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동 침대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리고 어느 병실에 도착했고, 곧 문이 닫히는 소리. 간호사들이 서로 사인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옆에서 누군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병실을 같이 쓰게 된 크리스토퍼 놀랜이란 사람이군….]나는 살짝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네에.”
하지만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졌다.
남자는 얼른 내게 물을 내밀었다.
“물 좀 마셔요.”
나는 남자가 건넨 물을 마시면서 몸을 일으켰다.
꿀꺽.
목으로 넘어가는 물소리도 요란했다.
생수병을 놓고 부은 눈을 비비며 자리에 앉자, 맞은편 침대에 앉은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저… 그거 알아요?”
[지금 일어난 사람한테 뭘 아냐는 거지?]“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우리 이 병실에 갇혔어요.”
“진짜요?”
“네. 우리가 무슨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라고 하더라고요. 병원에서요. 그러더니 당분간 이 병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고 하네요.”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봉쇄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이마를 만졌다. 토미플루의 효과인지 열은 많이 내려간 상태였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얼굴도 비행기에서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그나저나 저 남자 이름이….
열이 끓고 났더니, 기억마저 몽롱해졌다.
남자는 먼저 내게 손을 내밀다가 머쓱한 표정으로 손을 다시 거뒀다.
“우리 둘 다 전염병 환자인데… 악수는 하면 안 되겠죠. 같은 병으로 같은 병실에서 지내게 됐으니 자기소개 정도는 할게요. 전 크리스토퍼 놀랜이에요.”
[크리스토퍼 놀랜… 크리스토퍼 놀랜….]익숙한 이름인데, 누군지 선명하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쨌든 나보다 나이는 많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전…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랜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당신이 그 유명한 성국이군요! 그리고… 비행기에서 나한테 토미플루를 먹이라고 조언해준 그 성국 맞죠? 날 구해준 의사가 당신 이름을 말해 줬거든요.
그리고 ‘페이스 노트’의 대표라고도 했고요. 당신이 급하게 독감일지 모른다고, 토미플루를 먹여서 열을 내리게 하라고 조언해줬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만나고 싶다고 연락까지 했는데… 이렇게 병실에서 만나게 되다니….”
남자는 아마 나와 같은 병실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얼굴이었다.
나 역시 신종 인플루엔자에 걸려서 같은 병실에서 이 남자와 같이 감금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네, 제가 그 전성국이 맞습니다.”
“와우, 이렇게 당신을 만나다니… 나도 ‘페이스 노트’의 열렬한 사용자예요.”
남자는 언제 그렇게 아팠냐는 듯 호들갑스럽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요. ‘페이스 노트’는 정말 혁명이에요! 그거 하나로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 수 있잖아요. 물론 표면적인 거지만요. 그래도 세상을 연결하는 하나의 통로가 된 거잖아요.”
[수다쟁이랑 한방에 갇히다니… 여기가 지옥이잖아.]나는 크리스토퍼 놀랜의 수다를 인내심을 다 해서 듣고 있었다.
“성국, 정말 이런 멋진 우연이. 이건 완전 운명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만날 확률이 대체 얼마나 될 것 같아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난 그저 어서 이 방을 탈출하고픈 마음뿐이었다.
이때, 크리스토퍼 놀랜의 침대 옆 테이블에 놓인 책이 한 권 눈에 들어왔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그 순간, 나는 크리스토퍼 놀랜의 정체를 깨달았다.
“크리스토퍼….”
나는 그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수다를 떨던 크리스토퍼가 나를 쳐다봤다.
“성국… 내가 말이 좀 많죠?”
“크리스토퍼, 혹시 영화감독이에요?”
“성국, 난 당신의 이름을 듣자마자 당신을 알아봤는데… 당신은 나를 너무 늦게 알아본 거 아니에요?”
“…….”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토퍼 놀랜… 이렇게 만나다니 반가워!]* * *
똑. 똑.
병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밖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지금부터 문을 열고 식사를 바닥에 둘 거예요. 환자분들 상태는 괜찮나요?”
“네에!”
“네!”
나와 크리스토퍼는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두 분 모두 마스크 써주세요.”
나와 크리스토퍼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마스크를 썼고, 간호사는 밖에서 숫자를 세더니 문을 열었다.
“자, 식사 맛있게 하시고 약 드세요. 토미플루예요. 이상 있으면 언제든지 응급 벨 눌러주시고요.”
“저희는 언제쯤 이 병실에서 나갈 수 있나요?”
“지금 신종 인플루엔자가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어요. 두 분은 이상이 없다면 3, 4일 후에 퇴원 가능하십니다.”
내 물음에 형식적인 답을 남긴 간호사는 얼른 문을 닫고 사라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판을 두 개를 들고 하나를 크리스토퍼 놀랜에게 내밀었다.
“크리스토퍼, 드세요.”
“성국, 고마워요.”
크리스토퍼는 아직 나보다는 열이 덜 내린 모양이었다. 열이 오르자마자 병원으로 향한 나보다야 응급처치가 늦어지긴 했을 것이다.
“크리스토퍼, 그럼 실리콘밸리에 과학 자문을 얻기 위해서 오신 거네요?”
“네. 동생이 쓰던 시나리오가 있는데… 영 풀리지가 않아서요.”
“내용 여쭤봐도 돼요?”
“물론이죠.”
하버드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감독 지망생인 데니스를 겪어본 나로서는 영화 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작품에 대해서 물어보면 된다.
크리스토퍼 놀랜은 병원의 맛없는 빵을 뜯으면서 열심히 작품에 대해서 설명했다.
“인류의 실패로 지구는 황폐화되고, 식량 위기마저 겪는 상황이 오는 거예요. 마치 이 빵처럼 맛없는 것만 먹고 사는 인류가 오는 거죠.”
“미국 옥수수처럼요?”
“맞아요! 맞아! 옥수수가 좋네요. 온통 세상에 남은 것은 옥수수밭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인류는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주로 탐사대를 보내는데, 일종의 블랙홀에 이 사람들이 빠지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에요.”
[흠… <인터스타> 내용이군.]<인터스타>는 나도 흥미롭게 본 영화였다.
크리스토퍼 놀랜은 갑자기 빵을 놓고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솔직히 어려움이 많네요. 과학적인 지식을 영화에 어떻게 접목할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되고요. 동생이 스탠포드에서 이것 때문에 과학 강의까지 들으면서 시나리오에 매달렸는데… 영 결과가 나오지를 않네요.”
“너무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풀려고 그래서 그러는 거 아닐까요?”
“흠… 과학적이라….”
크리스토퍼 놀랜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얼른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성국, 병실에 갇혀서 3, 4일은 지내야 하는데 내 시나리오 좀 봐줄래요? 당신 같은 천재라면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잖아요.”
“저야 영광이죠. 전 박쥐맨 시리즈의 광팬이거든요.”
“이 시나리오 읽으면 박쥐맨 시리즈 찍을 때 뒷이야기 실컷 해줄게요.”
“좋죠.”
나는 크리스토퍼 놀랜이 건넨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이게 <인터스타>의 시작이군….]* * *
병실에 있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병실 창문을 통해서 밤이 왔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고, 뉴스에서 연신 신종 인플루엔자 소식이 흘러나왔다.
휴대폰으로 마크를 비롯해서 내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걸린 것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안부 문자를 해댔고, 나는 모든 문자를 씹고 사진 한 장을 ‘페이스 노트’에 올렸다.
그 사진에는 크리스토퍼 놀랜도 등장했다.
– 지금 저는 현재 신종 인플루엔자로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토미플루를 먹고 많이 진정된 상태이고, 저의 룸메이트는 크리스토퍼 놀랜 감독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주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있어요. 재미있겠죠?
물론 댓글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 헐, 천재 둘이 모여서 우주라니? 성국, 이제 진짜 우주에도 가는 거야?
– 크리스토퍼 놀랜한테 박쥐맨 다음 시리즈 언제 나오냐고 물어봐 줘, 성국!
“크리스토퍼, 박쥐맨 다음 시리즈는 언제 나오나요?”
“아직 각본 작업 중이라서 2, 3년은 걸릴 거예요.”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댓글로 달았다.
다들 조커가 죽은 이후의 박쥐맨 내용을 궁금해했지만, 크리스토퍼는 그 내용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크리스토퍼, 나한테만 다음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물론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지금 시나리오가 나오는 중인데, 아마… 조커가 죽고 박쥐맨이 죄책감으로 세상과 등진 채 지내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뭐, 누구나 예상할 만한 이야기이네.]나는 얼른 크리스토퍼가 건넨 <인터스타> 시나리오로 눈을 돌렸다.
아직 <인터스타>는 기초적인 토대도 제대로 쌓이지 않은 이야기였다.
근미래의 지구. 황폐화된 지구. 인류는 식량 문제와 이상 기후로 위기에 처해있다.
주인공은 사라진 NASA(미합중국 항공우주국) 소속 파일럿이었지만, NASA가 사라진 후 농부가 된 남자였다.
그가 다시 지구 인류의 희망을 찾기 위해 우주로 향하는 내용 정도가 다였다.
나는 시나리오를 다 읽고, 옆에서 ‘페이스 노트’에 집중한 크리스토퍼 놀랜을 쳐다봤다.
“크리스토퍼, 이 이야기는 아직 너무 빈약한데요. 과학적인 지식이나 상황은 잘 나와 있지만, 그것들을 감정적으로 연결할 무언가가 약해 보여요.”
“성국, 지금 엄청나게 정곡을 찌른 거 알아요?”
[물론이지, 나 전성국이야. 그리고 이 영화 열 번도 넘게 봐서 캐릭터와 대사 모두 대충 기억한다고, 크리스토퍼.]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편하게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해줘요.”
“흠… 제 생각에는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가족의 이야기요?”
“지금 우주로 향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가족이 있는 거죠. 그는 블랙홀에 빠지고, 그를 기다리던 딸은 아버지의 신호를 기다리는 거예요. 블랙홀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시공간이 뒤엉킨 곳. 시공간이 뒤엉킨 세상에서 실종된 아버지. 그 아버지를 기다리며 성장한 딸의 이야기를 좀 넣어보면 어떨까요?”
“성국! 이건 너무 구체적인 아이디어인데요…”
크리스토퍼 놀랜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생각지 못한 스토리 같았다.
“크리스토퍼, 그냥 이건 생각이에요. 저는 대한민국 출신이잖아요. 대한민국은 가족이라는 것을 정말 중시하거든요. 사실 남자가 우주로 목숨을 걸고 향하는 것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전 좀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랜의 눈이 커졌다.
“좋은 아이디어긴 한데…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전 아이디어를 던진 거예요. 별로면 잊어요, 크리스토퍼.”
[아마 잊지 못할 거야, 크리스토퍼.]나는 생각에 빠진 크리스토퍼를 두고 TV를 켰다.
TV에서는 계속해서 신종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그걸 본 크리스토퍼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성국, 이 대유행이 끝날 수 있을까요?”
“크리스토퍼, 우리는 답을 찾을 거예요. 늘 그랬듯이요.”
내 말에 크리스토퍼는 빙긋 웃었다.
“성국, 그 말 멋있네요. 맞아요, 인류는 항상 답을 찾았죠.”
[당연하지, 당신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잖아.]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크리스토퍼는 아주 깊게 생각을 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성국, 당신이 준 아이디어 쓰고 싶은데요… 이건 정말 중요한 거라서요. 혹시 내가 얼마나 지불하면 될까요?”
“크리스토퍼, 제 아이디어는 그냥 쓰시고, 대신 당신 다음 영화에 투자 좀 하고 싶은데요.”
“다음 영화요?”
“네. 지금 준비 중인 영화 있지 않아요?”
“있죠. <개시>라고 내년 개봉이 목표에요.”
[흠… <개시>라… 영어로 inception!]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영화에 투자하고 싶어요, 크리스토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