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269)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74화(269/576)
제274화
2010년 1월 1일.
나는 다 식은 피자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체크 셔츠에 안경을 끼고 덥수룩한 머리에 수염이 거뭇거뭇한 솔로 열댓 명이 모두 모여서 서로를 얼싸안으며 새해를 만끽하고 있었다.
[하아… 내가 말이야… 저번 생에서는 스무 살 되는 새해에는 여자 친구였던 정희와 함께 하와이의 호텔 스위트룸에 있었던 것 같은데…. 이번 생에서는 체크 부대라니….]나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띠링. 띠링. 띠링….
순간, ‘페이스 노트’와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수없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내 핸드폰 알림에 놀라서 쳐다봤다.
“성국, 핸드폰 알림이 왜 이렇게 오는 거예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나는 우선 핸드폰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나를 아는 여자들의 환호가 섞인 새해 축하 메시지가 가득했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페이스 노트’ 친구들일 뿐이었다.
– 성국, 20살 된 거 축하해!
이건 뭐 기본이었다.
[다들 왜 이렇게 내 스무 살을 축하하는 거야?]메시지를 내려 보니 나는 그녀들이 환호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 성국, 이제 공식적으로 연애할 수 있는 나이 아닌가? 내가 새해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해도 돼?
– 2010년 0시 1분. 성국, 데이트할래요?
– 우리 성국이, 이 누나랑 데이트할까? 누나가 우리 성국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줄게!
미성년자라 그동안 철벽을 쳐온 나에 대한 진심 어린 데이트 신청과 짓궂은 장난으로 ‘페이스 노트’는 도배 중이었다.
내 ‘페이스 노트’를 보던 애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성국, 성국이 스무 살 된 기념으로 데이트 신청이 폭주하고 있어요. 이제 미성년자라서 연애 안 한다는 변명은 안 통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난 일이랑 연애 중이잖아요.”
나는 피자를 우걱우걱 입에 밀어 넣었다.
사실 스무 살이 되면 이번 생의 인생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저번 생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고급 호텔에서 아름다운 여자 친구와 새해 정도는 맞이할 줄 알았다.
아니, 그러려고 기저귀 찬 순간부터 악착같이 달려왔다.
그런데… 막상 스무 살이 되고 보니 그냥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여자도 귀찮았고, 화려한 파티도 싫었다.
그냥… 회사에 나와서 체크 부대와 피자를 먹고 싶었을 뿐이었다.
[안 돼!!! 내가 왜 샘이나 애덤처럼 되고 있는 거야!!! 마크도 여자 친구와 보내는데!!!]애덤이 절망에 빠진 내 어깨를 토닥였다.
“성국, 스무 살 된 거 축하해요.”
“고, 고마워요. 애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직원 한 명이 소리쳤다.
“성국, 스무 살 된 거 맞죠?”
“네….”
“와, 축하해요!”
“고마워요, 다들.”
그때, 사무실의 불이 한꺼번에 꺼졌다.
[정전인가?]그 순간, 샘이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더니 작은 케이크 위에 숫자 20이 꽂힌 케이크를 내밀었다.
“샘….”
“사실 아까 우리끼리 남아서 성국이 혹시 밤에 오지 않을까 내기했거든요. 오해는 말고요. 성국이 우리 같은 너드라는 말이 아니라, 성국은 워낙 워커홀릭이니까요… 그래서 혹시 오면 해주려고 급히 샀어요. 안 오면 다음 날 해주면 되니까요.”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들 감동스럽게 왜 이러는데!]“성국, 어서 초 불어요!”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촛불을 있는 힘껏 불었다.
그러자 동시에 환호가 터졌다.
“성국, 스무 살도 됐으니 앞으로 더 행복할 거예요!!!”
“어른 된 거 축하해요!”
* * *
“남조선에는 새해 아침에 떡국 먹는다고 해서 끓여봤어요, 사장님. 근데… 사장님, 어제 외박하신 거 맞죠?”
“성국아, 너 나 몰래 여자랑 보낸 거야? 어디서 보낸 거야? 아니지… 대체 만나는 여자가 누구야?”
“사장님, 혹시 어젯밤에 그냥 외롭다고 클럽 같은 데 가서 엉덩이에 뿔 난 미국놈들처럼 여자들이랑 춤춘 건 아니죠?”
마크와 리미미가 새해부터 나를 추궁했다.
[하아… 이들에게 어떻게 진실을 말하지.]어제 난 체크 셔츠 부대와 오붓하게 새해를 맞이하고 스무 살이 된 축하까지 받고, 회사 소파에서 졸다가 아침에야 눈을 비비며 들어왔다.
즉,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보다 더 말할 수 없는 밤이었다.
“성국, 왜 말이 없어? 미미 말처럼 정말 클럽이라도 다녀온 거야?”
그렇다고 이런 오해를 그냥 둘 순 없었다.
“마크, 리미미 씨… 나… 회사 갔었어.”
“회사에? 성국, 너 또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 닦달하러 간 거야?”
“나 악덕 기업주 아니거든.”
“아니긴! 난 샘과 애덤이 집에 들어가는 꼴을 못 봤어.”
“그거야 샘과 애덤도 워커홀릭이고… 집에 가봤자 할 일이 없으니 안 가는 거지! 우리 회사에는 안락한 소파와 줄지 않은 과자와 커피가 있잖아. 냉장고에는 맥주도 있고!”
마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크, 너도 리미미 씨가 구원해주지 않았으면 샘이나 애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잖아.”
“하긴….”
이때, 현관문이 열리면서 전태국이 들어왔다.
전태국의 얼굴에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올라와 있었고, 꽤 초췌해 보였다.
마크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전태국의 어깨를 토닥였다.
“태국, 데이트 잘했어?”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명해진의 대시를 받은 전태국의 얼굴은 어젯밤과 사뭇 달랐다.
“데이트 못 했어.”
“무슨 소리야? 어제 명해진 씨랑 같이 나갔잖아.”
“그게…. 나 물 좀 마시고….”
태국은 속이 타는 듯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나도 데이트 가는 줄 알고 신나서 차를 몰았거든. 새해 첫 일출이나 보러 갈까… 아니면 스위트룸이나 잡아서 아침을 맞을까… 나 혼자 막 지껄였는데… 해진 씨가 갑자기 자기 호텔로 가재.”
“좋은 거 아니야?”
“마크, 내 이야기 끝까지 들어봐.”
전태국은 다시 물을 마셨다.
“나도 올 게 왔구나 싶어서… 미친 듯이 호텔로 액셀을 밟았지. 근데… 해진 씨가 그냥 호텔 앞에 세워주고 집에 가라는 거야.”
“그거야. 사귄 첫날이니까… 근데, 밤을 같이는 안 보내도 술이라도 한잔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니까… 그래서 내가 호텔 라운지에 가서 그러자고 했더니, 자기 피곤하대. 시차 적응 못 해서. 그러곤 호텔로 들어가 버렸어.”
“형, 그럼… 왜 지금 들어오는 거예요?”
“그냥 이대로 들어가면 쪽팔리잖아. 근처 호텔 잡아서 혼자 술 마시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떠보니 리미미 씨가 왠지 떡국 끓일 것 같아서 왔지.”
마크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태국, 떡국 촉은 잘 맞는데 말이야… 그래도 사귀기로 한 거니까, 오늘부터 잘해보면 되지.”
“근데 마크… 리미미 씨랑 사귀기로 하고 뭐했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생 모쏠로 살다가 북조선 출신 리미미에게 구원받다시피 한 마크에게 데이트에 대해서 물어보다니….
그런데 더 웃긴 건 마크가 세상 심각하게 조언을 해주는 상황이었다.
“태국, 첫 데이트는 내 생각에는 네가 먼저 신청해야 하는 것 같아. 어제 해진 씨가 그냥 휭하니 가버린 건 내 생각이지만, 네가 먼저 사귀자고 고백한 게 아니라 자기가 먼저 그래서였던 것 같아.”
“아,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해진 씨가 먼저 고백해서 창피했던 거야. 근데 나란 놈은 제대로 된 데이트 신청도 안 하고… 아, 나 완전 바보였네!”
“그렇지, 태국. 오늘이라도 데이트 코스 짜서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알았어, 마크!”
이런 것을 바보들의 대화라는 건가.
[명해진이 어제 그렇게 가버린 건, 다 나 때문이라고. 전태국.]리미미가 옆으로 와서는 혀를 찼다.
“사장님, 둘 다 정말 가소롭네요.”
“리미미 씨, 근데 왜 저런 마크 데이트 신청 받아준 거예요?”
“흠… 귀엽잖아요.”
리미미는 싱긋 웃었다.
[역시 사랑은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군. 하면 안 될 것이야….]* * *
명해진은 전성국의 ‘페이스 노트’를 살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국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성국의 ‘페이스 노트’는 여자들의 데이트 신청으로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이제 전성국의 미성년자 봉인도 해제된 것이었다.
명해진은 노트북을 탁- 소리 나게 덮고는 아침부터 맥주를 한 캔 꺼내 들었다. 그리고 전성국을 떠올렸다.
자신이 직접 고른 필립카텍을 전태국에게 졸업 선물로 줘버린 남자.
하지만 ‘페이스 노트’와 너튜브의 대표.
어쩌면 삼전 그룹의 후계자인 전태국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질 사람일 지도 몰랐다.
거기다 잘생긴 외모에 유아독존적인 성격까지.
‘딱 내 스타일인데….’
명해진은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똑. 똑. 똑.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개인 비서인 서세정이 들어섰다.
“아가씨, 기상하셨어요?”
“응.”
서세정은 명해진의 대학 후배로 똑똑하지만, 적당히 가난해서 부려 먹기 좋았다.
“아가씨, 돌아가는 날짜 잡으려고 하는데요. 항공권 예매할까요?”
“아직 하지 마.”
“그럼, 호텔 연장하겠습니다. 그리고… 핸드폰 꺼져 있다고 전태국 씨께서 호텔로 몇 번 연락하셨습니다. 답 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흠… 알았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참, 너… 나 대신 누구 좀 만나고 올래?”
“누구요?”
“전성국이라고. 알지?”
“네, 유명한 분이시잖아요.”
“그 사람한테 가서 내가 따로 좀 보자고 전해.”
서세정은 동그란 눈으로 명해진을 쳐다봤다.
“저… 그런 건 직접 연락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직접 연락하면 답이 없으니까, 그렇지!’
명해진은 다시 맥주를 마셨다.
“세정아, 난 네가 내 후배로 있을 때는 가난하지만 똑똑해서 좋았거든. 하지만 내 직원으로 있을 때는 대꾸하지 말고 내 말만 들어. 내가 네 물주잖아.”
“네….”
서세정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안 나오면 곤란한 일이 생길 거라고 해.”
“그 곤란한 일을 말해주셔야 상대방이 좀 더 겁먹지 않을까요?”
명해진은 서세정의 저런 면이 좋았다.
가난한데, 똑똑하고… 상황에 따라서 현명하게 남을 겁줄 줄 알았다.
“안 나오면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한국의 가족 사업에 불이익을 줄 거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 * *
“샘, 너튜브가 내년이면 흑자 전환으로 돌아설 거예요. 완벽하게….”
“정말요?”
샘은 감동에 겨운 얼굴이었다.
적자만 주구장창 내던 구굴의 골칫덩어리였던 너튜브가 흑자 전환을 하다니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스트리밍에 문제없게 더 철저히 대비해야겠죠?”
“성국… 그 말은 2010년에도 더 열심히 일하는 거죠?”
“열심히 정도도 안 될 거예요. 죽어라 일하라는 말이죠.”
“걱정 말아요, 성국.”
“샘, 그래도 시간 남으면 연애도 하고 그래요. 나 악덕 기업주 되긴 싫거든요.”
“성국은 언제나 불가능한 미션을 주네요.”
“또 그걸 해내는 게 샘이잖아요.”
“그, 그렇죠. 암튼 노력해볼게요.”
샘은 멋쩍게 웃으면서 사무실을 떠났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문이 살짝 열리고는 어떤 낯선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동그란 눈매에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인 게 분명해 보였지만, 나는 영어로 물었다.
“누구세요?”
“서세정이라고 합니다. 명해진 씨 개인 비서입니다. 전성국 씨 맞으시죠?”
[영어도 꽤 잘하는군.]나는 계속 영어로 질문했다.
“무슨 일이시죠?”
“명해진 씨가 전해달라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들어와서 이야기하시죠.”
서세정은 회의실로 들어와 내 앞에 앉았다.
그리고 서세정의 얼굴이 드디어 기억났다.
명해진의 대학 후배!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사시 준비를 포기하고 명해진 밑에서 몇 년 간 개인 비서 생활을 한다. 그 후에 모은 돈으로 1년 만에 사시를 패스하고 검사가 된다.
내가 왜 이걸 기억하냐고?
[서세정, 오랜만이야. 나 삼전 그룹 부회장 할 때 대통령 측근의 딸한테 말 좀 몇 마리 사줬다고 특검에서 기소했잖아. 그때 우리 만나서 참 오래 이야기했는데… 아마 기억 못 하겠지. 이건 미래의 일이니까.]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저번 생에서는 악연이었지만, 이번 생에서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페이스 노트’와 너튜브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