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5)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80화(275/576)
제280화
집으로 가는 차 안, 나는 전태국을 다시 봤다.
나를 포섭하기 어려우니까, 우리 부모를 포섭했다고?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까진 아니어도 천자문은 외우는 건가….]곧 차가 익숙한 동네에 들어섰다.
바로 내가 모델료로 받은 그 아파트가 있는 동네!
서울은 그사이에 또 많이도 변했다.
사방에 아파트가 펼쳐졌고, 주변으로 상가들도 빼곡하게 들어섰다.
이때, 박성희 비서가 뒤를 돌아보고는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자료는 오늘 밤 안으로 준비해서 보내놓겠습니다.”
“매번 제 부탁까지 들어주시고,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도련님 비서로 들어온 것도 다 성국 군의 조언 덕분이었잖아요.”
“후회하시진 않죠?”
내가 빙긋 웃으며 묻자 전태국이 쫑긋 귀를 세웠다.
“박 비서, 대답 잘해.”
“후회 안 하죠. 삼전 그룹의 후계자한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는데요. 안 그래요, 도련님?”
“나한테 없어선 안 될 존재라고? 하아… 우리 양 비서가 그립네. 양 비서는 공부 잘하고 있나 몰라.”
“양 비서님 공부 잘하고 있어요.”
“성국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둘이 따로 막 연락하고 그래?”
“가끔 안부 전화하는 사이고요. 양 비서님도 ‘페이스 노트’ 있는데, 들어가서 보면 어찌 지내는지 알 수 있잖아요.”
“아… 귀찮아.”
“귀찮은 게 아니라 그냥 그동안 관심 없었던 거죠.”
“난 원래 떠난 사람한테 미련 두는 그런 스타일 아니거든.”
나와 박성희 비서의 눈이 마주쳤다.
명해진과 쿨하게 헤어지는 줄 알았더니, 전태국은 한국으로 오는 내내 명해진의 각종 SNS를 염탐했다.
“박 비서님도 저희 집 가서 저녁 먹고 가지죠?”
“저는 선약이 있습니다.”
“박 비서, 선약? 무슨 선약이야?”
그 순간, 박 비서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정희와 관련된 일인 것 같았다.
박성희 비서의 SNS를 보면 두 사람 사이에 분명 또다시 불꽃이 튀고 있었다.
“박 비서님도 자유시간이 필요하죠. 태국이 형, 오늘 저녁은 저희끼리 행복하게 먹죠.”
“그래… 수육 먹을 입 하나 더는 게 어디야….”
전태국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집 앞에 차가 멈춰 섰다.
* * *
“오빠아아아!!!”
이제 한 살 더 먹은 지희가 다다다다 달려와 안겼다.
“지희야, 잘 있었어?”
“어… 오빠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어.”
뒤에서 민국이가 지희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전지희,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 너 방금 전까지 TV에 나오는 동방주니어 보고 침 흘리고 있었잖아.”
“내가 언제! 그러는 오빠는 원더소녀 보고 정신 놓고 있었잖아!”
민국이와 지희는 여전히 으르렁거렸다.
나는 얼른 두 사람을 말렸다.
“알았어. 둘 다 누굴 보고 정신을 놓든, 침을 흘리든 상관없지. 민국아, 형아 보고 싶었지?”
“뭐, 아주 쪼금.”
이 녀석은 아직도 사춘기였다.
“지희는?”
“오빠, 나는 많이. 그것도 아주 많이!”
[역시 여동생이 최고야.]나는 지희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이때, 부엌에서 엄마가 앞치마를 입고 나왔다.
“성국아, 이제 지희 무거워. 내려놔.”
“지희 하나도 안 무거워. 그치, 오빠?”
[지희야, 사실 오빠… 팔 빠지겠어.]하지만 오빠로서 나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지희 하나도 안 무겁지.”
“봐, 엄마. 오빠가 하나도 안 무겁다잖아.”
[장남의 삶이란….]엄마는 배시시 웃으며 전태국도 반겼다.
“태국 군도 오랜만이에요.”
“네, 어머님. 아버님은 언제 들어오세요?”
“성국이도 오고 해서 좀 일찍 들어온다고 했어요.”
“아버님이 성국이 술을 가르쳐주신다고 해서 제가 아주 좋은 거 하나 사 가지고 왔거든요.”
“남편이 좋아하겠네요.”
다들 날 빼고 뭔가 작당한 분위기였다.
“엄마, 난 일이 많아서… 저녁 먹고 일 좀 봐야 할 것 같아.”
“맨날 바쁜 우리 아들.”
엄마는 내 엉덩이를 애기 때처럼 통통 때렸다.
“엄마, 나 이제 스무 살이라고.”
“우쭈쭈. 그랬어요? 우리 아들 이제 스무 살이에요? 그래서 엄마가 엉덩이도 못 때리게 하는 거야?”
엄마는 정말 못 말렸다.
“참, 우리 아들 이번에는 며칠 있다 갈 거야?”
“모레 저녁에 김여나 씨랑 저녁 약속 있거든.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저녁 비행기.”
“겨우 세 밤 자고 가는 거야?”
“바쁜데 시간 쪼개서 나온 거야.”
“아쉽네. 아빠 얼른 들어오라고 해야겠어. 어서 옷 갈아입고 나와.”
“응.”
“태국 군도요.”
“네, 어머님. 참, 어머님 선물도 빠지면 섭하죠. 이거요.”
“어머, 이게 뭐야?”
“면세에서 요즘 어머니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디요르에서 몇 개 담았습니다. 제가 담은 건 아니고, 박성희 비서가 담고 저는 카드만 줬을 뿐이죠.”
“어머머, 이게 다 뭐야….”
“어머님, 성국이가 다 좋은데 이런 건 참 못 챙겨요.”
“진짜… 우리 아들 미국에서 그렇게 들어와도 이런 선물한 적 없는데….”
[엄마, 무슨 소리야! 내가 명품백도 사줬잖아!]엄마는 전태국이 내민 디요르 가방과 스카프 그리고 각종 화장품을 보면서 함박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이나 해야겠다….]나는 씁쓸히 방문을 열었다.
* * *
그사이 박성희 비서에게서 한 통의 메일이 와있었다.
김여나 선수의 가족관계와 부모님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었다.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어서 감이 잘 오지는 않았지만, 김여나 선수를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한 가족이었다.
마치 우리 가족처럼.
나야 어릴 적부터 이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나의 활동을 위해서 엄마는 매니저가 됐고 아빠는 밤낮없이 수육을 삶았다.
[하아… 왠지 김여나 부모님랑 우리 부모님… 같은 코드가 있겠는데….]자료를 볼수록 더 그랬다.
아무래도 내일쯤 김여나 아버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이때, 밖에서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전성국! 아빠 왔다!”
[하아… 아빠는 내가 초딩도 아니고….]하지만 이미 나는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있었다.
“아빠!”
“아이고, 우리 아들! 스무 살 된 거 축하한다!”
아빠는 차가운 두 손으로 내 볼을 마구 비벼댔다.
“아빠… 차가워.”
“알았다. 알았어. 스무 살 된 기념으로 아빠랑 술 한잔해야지.”
아빠는 감격에 겨운 눈으로 엄마를 바라봤다.
“소영아, 우리 성국이가 다 커서 이제 나랑 술 한잔할 나이라니… 믿겨져?”
“자기야, 성국이 술 마신 적 없으니까 살살해.”
“알았어. 소주로 할까? 맥주로 할까?”
이때, 전태국이 양주 박스를 들고 나타났다.
“아버님, 무슨 소리세요. 이렇게 좋은 날 이 정도는 마셔줘야죠.”
“양주잖아요.”
아빠는 술이라면 소주, 맥주, 막걸리밖에 몰랐다.
지금 전태국이 들고 있는 저 술이 한 병에 50만 원 정도 하는 발렌타인스 30년 산이라고는 생각도 못 할 것이다.
“아버님, 그렇게 비싼 거 아니에요. 처음이니까 너무 비싼 것보다는 딱 이 정도가 좋을 것 같아서요.”
“태국 군, 아들 첫 술은 아버지가 사는 건데… 내가 사야지. 태국 군, 얼마에요?”
[아빠 알면 뒤로 넘어갈 텐데….]나는 얼른 술병을 집었다.
“아빠, 가격은 모르고 먹어야 제맛이죠. 알고 먹으면 입맛에 안 맞아도 이게 비싼 거니까 맛있지… 그렇게 생각한다니까요. 아빠, 그냥 마시죠. 형이 사 온 성의도 있잖아요.”
“우리 성국이는 진짜 항상 생각이 아빠보다 깊어.”
“형, 잘 마실게요.”
이때, 엄마가 부엌에서 우리를 불렀다.
“자, 다들 밥 먹을 준비 됐어요?”
그리고 우리는 모두 동시에 칼같이 대답했다.
“네에!”
* * *
아빠는 엄마가 내온 소주잔에 양주를 따랐다. 가득.
“태국 군, 이렇게 따르면 돼요?”
“아버님, 훌륭하십니다. 저도 원래 스트레이트로 먹는 거 좋아하거든요. 얼음 타 먹는 건 술맛을 버리는 행위에요.”
“태국 군이 맞다니 맞는 거겠죠. 삼전 그룹의 후계자인데….”
그리고 나는 얼른 병을 잡아서 아빠의 소주잔에 따랐다.
“아빠, 아들 잔도 받으세요.”
“그래, 성국아….”
아빠의 눈가는 아까부터 촉촉하다 못해 축축했다.
[아빠, 나 다 기억해. 나 기어 다닐 때, 아빠 일 마치고 유통기한 간당간당한 골뱅이를 가게에서 가져와서 엄마랑 소주 한 잔씩 했잖아.]“엄마도 한 잔 받아.”
“그래, 나도 우리 아들이 주는 잔 받아야지.”
[우리 엄마 소주 참 좋아했는데….]나도 감회가 새로웠다.
벌써 한국 나이로 스무 살.
20년 전 엄마, 아빠 나이로 내가 자란 것이었다.
“성국아, 나도 한 잔 줘야지.”
“아하… 형, 미안요.”
나는 마지막으로 우리 집 서당 개인 게 분명한 전태국에게도 술을 한 잔 따랐다.
술이 다 돌아가자 아빠는 술잔을 들고는 축축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성국아, 스무 살 된 거 축하하고… 지금처럼만 잘해다오. 그리고… 이건 정말 아빠, 엄마 소원인데.”
[아빠, 엄마. 집이라도 사줄까? 아니면 자동차 바꿔줄까? 삼전 주식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지. 나 그 정도 재력은 된다고.]아빠는 빙긋 웃더니 말을 이었다.
“제발 올해는 연애 좀 해라!”
“아버님, 저도 동의합니다!”
전태국도 잔을 높게 올렸다.
[정말 다들 못 말린다니까….]“오빠, 지희도!”
“아빠, 나도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살짝 맛만 보면 안 돼요?”
“전민국!”
“아, 알았어. 아빠. 난 생수나 마실게.”
그렇게 우리 식구 모두는 잔을 부딪쳤다.
스무 살이 된 나를 위해서!
* * *
아빠는 술은 아버지한테 배우는 것이라고 하면서 술잔을 연거푸 기울이다 먼저 쓰러졌다.
전태국도 나와 마지막까지 술 대작을 하다가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일어나더니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복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는 홀로 앉아서 쓸쓸히 양주병을 훑었다.
전태국이 가져온 두 번째 양주도 거의 다 빈 상태였다.
[정말, 다들 이렇게 술 약하기야….]저번 생에서 내 앞에서 술로 이긴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정신력 때문인지, 아직 싱싱한 간 덕분인지… 이번 생에서도 그럴 것만 같았다.
달칵.
이때, 문이 열리면서 지희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방에서 나왔다.
“지희야, 안 자?”
“자다 깼어. 오빠는 안 자?”
“자야지. 이것만 마저 마시고….”
[20년 만에 마셨더니, 술이 달다. 달아, 지희야.]지희는 내 앞에 앉더니 물잔을 들었다.
“오빠, 지희가 오빠 술 상대해줄게.”
“진짜?”
“응.”
나는 지희의 빈 잔에 물을 따랐다.
“자, 오빠랑 짠할까?”
“짜안!”
우리는 잔을 부딪치고 단숨에 술과 물을 들이켰다.
“캬아-”
지희는 어른 흉내까지 냈다.
“지희야,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아빠랑 엄마 소주 마시면 가끔 이러는데….”
“그건 어른 되고 나서 하는 거야.”
“치이… 맨날 어른 되고 나서래.”
“우리 지희, 불만 있어?”
“흠… 아니.”
지희는 고개를 저었다.
“지희는 엄마, 아빠 밑에서 나 같은 오빠, 민국이 같은 오빠 둔 거 어때?”
지희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를 올려다봤다.
“너무 행복해….”
“진짜?”
“응. 오빠는 안 그래?”
“글쎄…. 오빠는 말이야. 맨 처음 이 집에 태어났을 때, 말로만 듣던 원룸에서 태어나서 정말 속상했거든. 어린 부모는 철없고, 돈도 없고… 그래서 오빠가 이 집안 일으켜 세우려고 엄청나게 고생했어.”
지희가 내 어깨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도닥였다.
“우리 오빠, 고생 많았구나.”
잠깐!
지금 내가 뭐라고 한 거지?
속으로 중얼거리던 말이 술 때문에 입 밖을 나오고 말았다.
그 순간, 술이 확 달아났다.
“지희야, 오빠가 한 말 말이야….”
“오빠, 지희는 다 알아.”
뭐를?
“오빠가 하는 말 아빠가 맨날 하는 말이잖아! 오빠는 자랄수록 꼭 아빠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