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2)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87화(282/576)
제287화
민국이는 ‘페이스 노트’에 내가 데려온 하얀 강아지 사진을 올리고는 투표를 붙였다.
– 저희 집에 드디어 막내가 생겼습니다. 저희 셋째 지희가 이름 세 개를 가족회의에 올렸는데요. 가족들 의견이 팽팽합니다. 제발 투표 부탁드려요!
1. 구름이. 2. 사랑이. 3.흰둥이.
곧 득달같이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 하얀 강아지는 흰둥이가 진리.
– 어머, 막내 강아지도 너무 이쁘다. 이뻐! 이 집안 유전자는 어쩜 강아지도 타고나는 건지. 난 뭐든 좋아.
– 의견을 말하라고! 난 구름이.
– 왜 남의 집 강아지 이름이 이렇게 고민되는 거지 ㅋ
그리고 민국이는 누군가의 댓글을 숨죽이고 기다렸다.
수진이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에 댓글을 달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원래 기대가 클수록 기다리는 시간은 피가 마르는 법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진이의 댓글이 달렸다.
– 어머, 하얀 강아지. 완전 사랑스럽잖아. 난 흰둥이에 한 표! 둥이, 둥이. 이름만 불러도 행복해질 것 같은 기분이야.
이제 투표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민국이의 마음은 이미 결정된 터였다.
민국이는 후다닥 거실로 뛰어오더니 하얀 강아지를 안고는 소리쳤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흰둥이야! 흰둥아!”
* * *
그날 밤은 모든 게 평화로웠다.
첫사랑의 상처로 좌절해있던 민국이는 수진이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흰둥이로 결정됐단 사실을 알리면서 흰둥이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계속해서 핸드폰을 붙잡고 시시덕거리는 게 어쨌든 현재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 같았다.
그리고 거실 한쪽에서는 지희의 동생 돌보기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흰둥아, 손!”
아직 새끼인 흰둥이가 지희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었지만, 지희는 흰둥이 교육에 들어갔다.
[역시 내 동생답네. 사람도 개도 조기교육이 중요한 거지, 그럼!]나는 흰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으로 말했다.
[흰둥아, 우리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장남인 내가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둘째와 셋째 모두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단련된 아주 뼈대가 깊진 않지만 두꺼운 집안이란다. 그러니까… 네가 혹여 강아지라고 하여 집안의 식량만 축낼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말거라.]흰둥이는 까만 두 눈을 끔뻑거렸다.
[녀석, 말귀를 잘 알아듣는구만.]띵동.
이때, 초인종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물론 이 시간에 올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전태국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서운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형, 오늘도 저희 집에서 잘 거예요?”
“당연하지.”
[그거 당연한 거 아니거든!]전태국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들어오더니 흰둥이에게 홀린 듯이 다가왔다.
“성국아, 나 서운해. 진짜 서운해.”
“형, 뭐가 그렇게 서운해요?”
“흰둥이 이름 정할 때 나도 불렀어야지. 나도 의견 낼 수 있었는데… 내가 그걸 민국이 ‘페이스 노트’를 통해서 봐야겠어?”
“형, 형은 우리 가족이 아니잖아요.”
두둥.
전태국의 두 눈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나, 나는… 내가 여태까지. 이 집안의….”
“객식구죠.”
나는 전태국과 확실하게 거리를 뒀다.
전태국은 우리 집안의 객식구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태국, 미안하지만 여긴 내 구역이야. 내가 완벽하게 꾸민 나의 가정이라고. 어디 발을 들이밀려고 해?!]전태국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나는… 그래도…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모두 가족처럼 생각했는데… 이런 거 정할 때… 나한테 한 마디… 물어주면….”
이때였다.
지희가 훌쩍이는 전태국의 손을 잽싸게 잡았다.
“오빠, 안 그래도 지희가 물어보려고 했어.”
“지희야, 진짜야?”
전태국은 지희의 말 한마디에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응. 오빠. 근데 어디 가서 이제 온 거야?”
“그게… 서울에 오니까 친구들도 만나고 좀 정신이 없었어. 미안, 오빠가 늦게 와서 지희가 못 물어봤구나.”
“응. 더 늦어지면 우리 흰둥이가 이름 없이 너무 오래 지내잖아.”
“아, 맞다! 오빠가 잘못했네. 이 이쁜 흰둥이가 이름도 없이 오래 지내면 안 되지. 진짜 오빠가 그 생각까지는 못했어, 지희야. 오빠가 미안해.”
뭔가 상황이 묘하게 바뀌고 있었다.
“오빠, 흰둥이 이름 이쁘지?”
“당연하지. 나도 흰둥이에 투표했어!”
“오빠, 안아봐. 내 동생이지만 한 번 안게 해줄게.”
“진짜?”
“응.”
지희는 흰둥이를 안아서 전태국에게 내밀었다.
전태국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흰둥이를 안아 들더니 뽀뽀까지 했다.
“흰둥아, 너 이제부터 돈 많은 형아도 생긴 거야. 우리 흰둥이 데리고 내일 당장 쇼핑 가야겠네. 지희야, 우리 흰둥이 사료랑 유모차랑… 맞다, 옷도 좀 필요하고. 내일 당장 이 돈 많은 형아랑 백화점 쇼핑가자. 오빠가 최고급으로 싹 다 마련해줄게.”
이때, 지희가 나에게 와서 조용히 속삭였다.
“오빠… 오빠는 왜 태국이 오빠한테 자꾸 선 긋는 거야?”
“그거야 태국이 형은 말 그대로 객식구일 뿐이야, 지희야.”
“근데… 그 객식구가 돈이 많잖아. 봐. 지금도 우리 흰둥이 완전 호강하게 생겼잖아.”
순간, 나는 지희를 다시 쳐다봤다.
[지희야,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지희는 팔짱을 낀 채 흐뭇한 얼굴로 전태국이 흰둥이를 안고 기뻐하는 장면을 쳐다봤다.
나도 지희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객식구가 돈이 많으면 어쨌든 써먹을 데가 있군.]* * *
“성국아, 우리 흰둥이 조기 교육을 위해서 유명한 반려견 훈련사가 하는 유치원에 보내야겠어.”
전태국은 밤까지 흰둥이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박성희 비서 시켜서 알아보니까 강형웅이라고 되게 유명한 반려견 훈련사가 있대. 그 사람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면서 개차반인 개들도 다 사람 돼서 나오게 만든대.”
“사람이 되면 그건 개가 아니죠.”
“말이 그렇다고. 암튼 내가 알아봐서 등록할게.”
나는 지희의 말대로 입을 꾹 닫았다.
어쨌든 돈 많은 형인 전태국이 알아서 나서서 돈 쓰는 일에 시비를 걸 일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형, 저 할 말이 있어요.”
“뭔데?”
“저… 앞으로 6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본격적으로 ‘페이스 노트’와 너튜브 아시아 진출 발판 마련하려고요.”
“뭐어?”
털썩-.
전태국은 나라를 잃은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성국아,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걸 지금 말해주면 어떡해?!”
“데이비드 오 만나봤는데, 영 신뢰가 안 가요. 마크도 같은 생각이고요. 저희 ‘페이스 노트’ 이번 해가 정말 중요하거든요. 아시아에 성공적으로 진출해야 가입자 수도 늘 거고, 상장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나올 것 같아서요. 그런데 아무래도 추천받는 인물들은 영 믿음이 안 가서요. 제가 직접 세팅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그럼, 나 혼자 샌프란시스코에 있으란 말이야?”
“앞집에 바로 마크와 리미미 씨도 있잖아요.”
“그들은 커플이고.”
“박성희 비서가 항상 형이랑 함께 하잖아요.”
“박성희 비서와 나는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잖아. 난 너 같은 친구가 필요하단 말이야.”
[흠… 나는 한 번도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전생의 업보이자 서당 개 정도라면 모를까….]어쨌든 이 기회에 전태국이랑도 떨어져 지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형, 어쩔 수 없죠. 형은 삼전 샌프란시스코 지사에 출근 해야 하잖아요. 지금 한국 오는 일로 출근도 미뤘는데, 이러면 회사 내 평판만 안 좋아져요.”
“그래도… 난 너랑 같이 있으려고 샌프란시스코 지사에 남은 거란 말이야!”
[누가 보면 우리가 사귀는 줄 알겠어, 전태국.]“형, 이제 형도 홀로서기를 해야죠.”
“치이… 몰라. 암튼 오늘 전성국, 너한테 나 무지 서운해. 그것만 알아둬.”
그리곤 전태국은 내 침대 위에 벌러덩 드러눕더니 이불을 이마까지 올려버렸다.
순간, 나는 전태국을 이용할 다른 방법이 떠올랐다.
“형… 그럼, 저 좀 도와주실래요?”
전태국은 얼른 이불을 걷어차더니, 발딱 일어나 앉았다.
“성국아, 뭐?”
“‘페이스 노트’가 외국 기업이잖아요. 아무리 제가 회사의 대표이긴 해도요. 한국에서 사업하고, 여러 가지 도움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삼전의 도움이?”
“흠… 그게 곧 형의 도움이겠죠?”
“그렇지! 내가 곧 삼전이고, 삼전이 곧 나지!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형, 6개월 동안 저희 ‘페이스 노트’ 아시아 지부에서 일하는 거 어떠세요? 물론 정당한 월급도 주고, 직책도 줄 거고요.”
그 순간, 전태국은 내 허리를 와락 안았다.
“성국아, 좋아! 무조건 좋아!”
나는 전태국의 손을 하나하나 뗐다.
“형, 제발 스킨십은….”
“성국아, 걱정하지 마. 내가 ‘페이스 노트’와 너튜브의 앞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게!”
* * *
전재형 회장은 전태국을 지그시 쳐다봤다.
전태국은 그 앞에서 마치 벌서는 어린아이처럼 잔뜩 기죽은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삼전의 샌프란시스코 출근을 마다하고… 성국이가 하는 ‘페이스 노트’ 아시아 지사에 출근하겠다고?”
“네, 아빠. 제가 생각해보니까요. 외부 경험을 쌓고 삼전에 출근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심지어 성국이가 제게 제시한 자리가 아시아 총괄 매니저거든요.”
전재형 회장은 이미 전성국의 수를 읽고 있었다.
“전태국, 너 지금… 성국이가 왜 너에게 그 자리를 준지 알고 있니?”
“아빠…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한국에서 그리고 아시아에서 사업 넓히려는데… 삼전이 뒤에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근데요, 아빠. 저 예전에 ‘페이스 노트’ 면접에 처절하게 떨어졌잖아요.”
전재형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이제는 성국이가 오히려 제게 먼저 손을 내민 거잖아요. 아빠, 제가 그래도 그렇게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이번 일 꼭 해보고 싶어요.”
전재형 회장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다른 회사를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게 하거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태국은 해맑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한국에서는 어디서 지낼 거니?”
“집도 오늘 알아보려고요.”
“양 비서 보내마.”
“네, 아빠. 참, 저… 차도 좀 한 대 부탁드려요.”
“그것도 양 비서가 알아서 해줄 거야.”
“네! 아빠, 제가 인사 자주 드리러 올게요!”
전태국은 어느 때보다 밝게 자리를 떴다.
옆에 선 양 비서가 흐뭇한 얼굴로 전재형 회장을 쳐다봤다.
“회장님, 도련님이 많이 밝아지셨습니다. 성국 군이 곁에 있는 게 많이 힘이 되시는 모양입니다.”
“양 비서, 전성국이 왜 우리 태국이랑 가까이 지내겠나.”
“그거야….”
양 비서가 말하기도 전에 전재형이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가져갈 게 아직은 많아서이지. 하지만 앞으로는 반대가 될지도 모르네. 그때 전성국이 우리 태국이를 버리지 못하게 자네가 옆에서 잘 챙기게.”
“네, 회장님.”
* * *
삼전팰리스의 펜트하우스.
나는 그 꼭대기에서 서울을 내려다봤다.
양 비서가 나와 전태국에게 집을 설명했다.
“저희 삼전 측에서 가지고 있던 매물입니다. 조금 리모델링하면 두 분이서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을 것입니다. 성국 군의 집이랑도 가깝고요.”
전태국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방을 훑었다.
“샌프란시스코 집보다 크기도 크고… 뷰도 좋고… 성국아, 친구들 만나서 들어보니까 요즘은 서울도 살기 좋대.”
[원래 돈만 있으면 제일 살기 좋은 데가 서울이야.]“다음 주부터 리모델링 시작하면 두 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인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빨리 끝내려고요.”
“양 비서님.”
나는 양 비서를 조용히 불렀다.
“네, 성국 군.”
“이 라인에 다른 집 하나 더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그건 왜요?”
“저희 집도 이사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좋은 곳에 살아도, 좋은 것을 먹어도 가족이 먼저 생각나는 것. 그게 바로 K-장남의 숙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