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7)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92화(287/576)
제292화
전태국의 선언에 당황한 건 당연히 가족들이었다.
자신이 김여나 선수에게 고백하는 것을 우리 가족회의에 부치다니?
나뿐만 아니라 다들 어이없는 시선으로 전태국을 바라봤다. 분명!
이때, 민국이가 나섰다.
“태국이 형!”
[그래, 전민국. 너 요즘 사춘기라 엄청나게 시니컬하던데, 뭐든 힘껏 말해봐!]“그런 걸 왜 가족회의에 부쳐요?”
[그렇지, 전태국은 우리 가족 아니잖아.]민국이의 말에 전태국은 의기소침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다들 내가 가족도 아닌데, 가족회의 하자고 해서 그러는 거죠?”
[당연하지!]전태국은 잔뜩 주눅 든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나… 사실… 가족회의 하는 거 너무 부러웠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뿐이거든요.”
순간 발끈한 민국이도, 지켜보던 가족들도 모두 조용해졌다.
“그날 제사에 참석하는 것은 언론사에서도 나와서 사진을 찍어대니 안 모일 수가 없어서요. 사실…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래도 할아버지 집 방문을 핑계로 가끔 다 모였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그런 것도 없어요.”
전태국은 눈시울이 붉어지기까지 했다.
나도 너무 잘 아는 집안 사정이었다.
전주신 회장이 돌아가신 이후로 전재형 회장과 철의 여인은 만날 일이 없었다. 제사 때 빼고는. 한마디로 남보다도 못한 사이였다.
저번 생에서 난 당연히 모든 가정이 그런 줄 알았다.
집안의 일보다는 회사의 일이 우선이고, 모든 것은 경제적인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삶. 저번 생이 나에게 그랬다.
이때, 뭔가 기시감이 들었다.
[전태국 지금 설마… 사연팔이하는 거야? 그건 우리같이 가난한 집안 출신이나 하는 거라고!]이때, 전태국이 좀 더 주눅 든 말투로 말을 이었다.
“그냥… 난 그런 거 있잖아요. 드라마에 나오는 가족… 그런 집안의 일원이 되어보고 싶었어요. 드라마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잖아요. 조언도 해주고… 그런 거 나도 해보고 싶었어요.”
그 말 한마디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전태국을 불쌍한 얼굴로 쳐다봤다.
[다들 정신 차려! 저 사람 삼전 그룹의 후계자고 재벌이라고! 가족 좀 안 보면 어때? 평생 써도 못 쓸 돈으로 여태 편안하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건데!]그때, 전태국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성국아, 태국이가 그동안 우리 가족한테 엄청 잘했잖아. 태국이가 저렇게 진심인데, 가족회의 한 번 하자.”
“엄마, 남녀 사이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진심은 상대에게는 부담일 수도 있어요. 그런 걸 가족회의에 부친다는 게 우선 말이 안 돼요. 가족회의에서 결정됐다고, 태국이 형이 고백한다고요? 그건 김여나 선수의 감정을 무시하는 일방적인 처사죠.”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동시에 민국이가 물었다.
“형아가 그걸 어떻게 잘 알아? 모쏠이? 심지어 좋아한 여자도 없잖아!”
“어머, 성국아… 너 설마… 좋아하던 여자 있었니? 고백도 해본 거야?”
엄마는 반색까지 했다.
[다들 왜 이래, 나 전성국이야. 저번 생에서 연애 많이 했다고! 저번 생에서….]이때, 전태국이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다들 성국이의 저 말이 놀랐나 본데요. 제가 미국에서 성국이를 쭉 지켜본 이상! 성국이는 완벽하게 여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추궁하지 마세요. 성국이 저거 다 책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글 보고 배운 거예요.”
전태국까지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 등을 도닥였다.
“성국아, 태국 군은 좋아하는 여자라도 있지… 너도 제발 좀 좋은 사람 만나라….”
“내 말이.”
옆에서 민국이도 종알거렸다.
[아, 정말 논점이 흐려졌잖아.]나는 얼른 다시 논점을 다잡았다.
“다들 다시 정신을 차리세요. 지금 문제는 제 연애가 아니라 태국이 형이 김여나 선수한테 고백한다는 것을 가족회의에 부치자는 거잖아요. 태국이 형이 아무리 삼전 그룹의 후계자라고 해도 우리 가족은 아니잖아요.”
내가 다시 단호하게 나가자 전태국이 잔뜩 구부정한 어깨로 나에게 손짓을 했다.
“성국아, 나 좀 따로 보자.”
* * *
달칵.
방문이 닫혔다.
동시에 전태국은 내 어깨를 탁 잡았다.
“성국아…. 가족회의를 끝까지 반대할 작정이야?”
“형, 가족회의는 가족끼리 하는 거죠. 형은 우리 가족이 아니잖아요.”
“성국아, 네가 줄 정보가 하나 있는데 말이야…. 그거 들어보고 결정하면 안 될까?”
뭐지?
[전태국, 지금 나랑 협상하겠다는 거야?]“형, 지금 저랑 거래하자는 거예요?”
“일종의 거래라면 거래지. 내가 정보를 주는 대신 너는 가족회의를 여는 거야. 어때?”
“어떤 정보인가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은데요.”
“흠… 아마 만족할 만한 정보일 거야.”
“우선 들어볼까요?”
나는 팔짱을 끼고 전태국을 바라봤다.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짹짹이의 잭 더치가 아직 한국에 남아있대.”
“남아는 있을 수 있죠. 잭 더치는 좀 자유로운 영혼이거든요.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말이 맞을 거예요.”
“당연히 남아있는 이유가 중요하지. 안 그래?”
“그 이유를 형이 안다는 거예요?”
전태국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잭 더치가 짹짹이 아시아 지사장으로 일할 거래. 네가 ‘페이스 노트’ 아시아지부 세팅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리고… 짹짹이의 새 모델을 물색 중이라고 하거든. 그게 누군지 상상이 돼?”
“글쎄요…. 형이 알고 있는 게 그 모델인가요?”
“그렇지!”
이게 정말 중요한 정보일 것 같았다.
“그 모델이 누군데요?”
“아직 협상 중이기는 한데…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의….”
“저스트요?”
“응. 추억의 저스트를 소환할 모양이야.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에서 아기였던 네가 커서 ‘페이스 노트’를 운영하니, 저스트를 이용해서 짹짹이 광고를 할 모양이야. 내 정보 어때?”
놀라운 정보였지만,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형, 아직 부족해요.”
“뭐어? 내가 이거 알아내느라 얼마나 삼전 정보팀을 쪼았는데….”
전태국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잭 더치가 저스트와 접촉 중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아직 부족했다.
“이것까지 알아주시면 오늘 밤에 당장 가족회의 열죠.”
“그게 뭔데?”
“잭 더치가 저스트에게 내민 조건이요. 해체된 그룹의 멤버들을 다 모으려면 꽤나 힘든 일일 텐데요. 그 조건이 궁금하네요.”
“그거면 되겠어?”
“네, 그거면 가족회의 바로 열게요!”
전태국은 손을 내밀었다.
“성국아, 한 입으로 두 말하기 없기야.”
“형이야말로 정확한 정보나 주세요.”
“내가 얻는 정보는 곧 삼전의 정보 아니겠어? 정확하지 않을 리가 없지. 내일 중으로 정확한 정보 입수해서 건넬게.”
전태국의 대답은 만족스러웠다.
나는 얼른 전태국의 손을 잡았다.
“가족회의 열죠, 형.”
* * *
아빠까지 퇴근한 밤.
지희와 흰둥이까지 모두 참석한 가족회의가 시작됐다.
아빠는 가족회의의 안건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태국 군, 김여나 선수에게 고백하는 것을 가족회의를 열어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좀 어려운 문제 같은데….”
“아버님, 그냥 객관적으로 조언을 좀 해주세요. 아버님 입장에서요. 만약 성국이가 김여나 선수에게 고백하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리고 전태국은 가족들 한 명 한 명을 애원하는 눈빛으로 훑었다.
“김여나 선수 너무 대단하잖아요.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고요. 제가 김여나 선수를 좋아하는 게,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한번 확인받고 싶어서 그래요.”
이제야 난 전태국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전태국은 평소에는 이런 사소한 문제로는 듣지 못하는 아버지와 가족의 조언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아빠는 잠시 고민하더니 가족들을 둘러봤다.
“솔직히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고백하는 문제를 다수결로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태국 군. 만약 우리가 고백하지 말라고 하면 진짜 포기할 거예요? 만약 포기한다면, 그게 진짜 좋아했던 마음이에요?”
[아빠, 내 말이!]역시 아빠와 나는 생각이 통했다.
전태국은 갑작스러운 아빠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했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아빠는 의기소침해진 전태국을 쳐다봤다.
“내 생각에는 이 자리를 빌려서 태국 군의 말처럼 우리 가족들이 각자 조언을 한마디씩 해주는 게 어떨까… 싶은데. 다들 생각 어때?”
모두들 동의했고, 나 역시 손을 들었다.
“난 찬성!”
[전태국, 긴장해. 내 조언은 아마 뼈 때리게 될 거야.]동시에 지희도 흰둥이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찬성! 태국이 오빠, 우리 반에서 저번 주에 희성이가 나한테 고백했는데, 내가 거절했어. 난 아무렇지 않은데, 희성이는 그 이후로 내 얼굴을 바로 못 보는 것 같아. 그래서 난 오빠가 여나 언니한테 고백을 하지 않았으면 해.”
“지희야, 너는 왜 내가 차이는 것으로 결론짓고 말하는 거야?”
“오빠, 지희는 국어를 좋아하거든. 국어가 좋은 이유가 글을 읽고 주제를 파악하고, 글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좋아해서거든.”
우리는 모두 지희의 말에 귀 기울였다.
“태국이 오빠가 오늘 한 행동을 하루 동안의 소설이라고 보면 말이야. 오빠는 지금 전 국민이 사랑하는 김여나 선수에게 고백을 하고 싶단 마음을 우리 가족들에게 말하고, 가족회의에 부쳤잖아.”
“응….”
전태국은 지희의 말에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국이 오빠나 민국이 오빠는 태국이 오빠가 우리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음에 반대를 했지만, 결국 아빠까지 이 자리에 모이게 됐고… 우리는 고백은 다수결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서 조언을 해주기로 한 거잖아.”
지희의 요점 정리는 정확했다.
[역시 내 동생이군….]지희는 목이 타는지, 물을 한 모금 벌컥 들이켜곤 말을 이었다.
“그래서 지희는 오후 내내 태국이 오빠가 왜 갑자기 고백을 가족회의에 부치자고 했을까를 고민했어.”
“그래서 결론을 얻었어?”
“응!”
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뭔데, 지희야?”
전태국은 아주 조심스레 물었다.
“오빠는 고백할 자신이 없는 거야.”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자기가 진짜 좋아하고, 진심을 전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되는 거잖아. 그런데 오빠는 그 마음에 확신도 없고, 결정적으로 오빠 역시 김여나 선수가 오빠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와 민국이 모두 놀란 눈으로 지희를 바라봤다.
지희가 천재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정확하게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
전태국은 너무 놀라서 물잔을 들었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얼른 지희를 재촉했다.
“지희야, 더 이야기해 봐.”
“응! 태국이 오빠는 가족회의에서 어쩌면 고백을 말릴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왜냐면 성국이 오빠가 허락할 리가 없잖아. 태국이 오빠는 지금 김여나 선수랑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에게 고백하고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희성이가 태국이 오빠가 돼버리는 거잖아. 같은 반에서 그러는 것도 껄끄러운데, 회사도 마찬가지일 거잖아.”
전태국은 물잔을 놓고 지희를 쳐다봤다.
“지희야, 그럼… 이 오빠는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떻게 하긴. 오빠, 그냥 고백하지 마.”
“진짜?”
“어차피 김여나 선수는 오빠한테 관심 없고, 오빠만 상처받을 거니까.”
지희가 완벽한 결론을 내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