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10)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10화(310/576)
제310화
전태국의 얼굴은 한마디로 말해서 멍했다.
너무 놀라서 어떤 생각도 읽히지 않는 얼굴.
지금 전태국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임진서를 쳐다봤다.
[임진서, 생각보다 야망 있는데? 지금, 삼전 그룹의 후계자에게 데이트 신청한 거야? 하아… 이러려고 주식도 마다하고, 롤아이도 마다하고. 금전적인 가치 하나 없는 소원이라고 말한 거야? 나… 전직 재벌이라고.]재벌가에서 살다 보면 단순한 호감도 색안경을 끼지 않고 보기 어려웠다.
그때, 김여나가 박수를 치며 임진서의 제안을 반겼다.
“어머! 언니! 드디어 데이트하시는 거예요?”
[이 반응은 뭐지?]김여나가 눈을 반짝이며 임지선의 손을 잡았다.
“언니, 제가 언니 데이트하면 예쁜 옷 사드린다고 했잖아요.”
“여나 씨, 아직 윌리엄이 내 소원 들어준다고 말 안 했어요.”
“아, 그런가….”
김여나와 임진서는 동시에 얼어있는 전태국을 바라봤다.
[전태국, 원하던 거니까 데이트는 해 봐. 어차피 전재형 회장이 임선미의 조카인 임진서랑 데이트한 거 알게 되면 독방에 끌려 들어갈 테니까.]전태국은 망설이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진서 씨. 데이트 신청, 받아줄게요! 데이트해요!”
“대박! 언니 축하해요!”
나는 얼른 김여나를 말렸다.
“여나 씨, 우리도 내기에서 이겼잖아요. 윌리엄한테 소원을 빌어야죠.”
“아차… 제 소원은 윌리엄이랑 언니랑 데이트 잘하는 거예요. 우리 언니 맛있는 거 많이 사주세요, 윌리엄.”
[그게 무슨 소원이야!]나는 어이가 잠시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여나 씨, 걱정 말아요. 제가 누굽니까. 삼전 그룹의 후계자인데… 맛있고 좋은 데 많이 알지 않겠습니까. 정말 멋진 데이트 코스 짜보겠습니다!”
전태국은 어느새 능글맞은 원래의 전태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윌리엄, 난 아직 소원 안 말했는데….”
“성국아, 뭐든 말해봐. 나 진짜 뭐든지 들어줄 수 있어!”
전태국은 한껏 들떠 있었다.
“성국아. 뭐든 진짜 다 들어줄게.”
그렇다면 내 소원을 말해주지.
“윌리엄, 한국 ‘페이스 노트’에서 6개월 더 연장 근무해주세요.”
“어?”
순간 전태국의 얼굴이 벙쪘다.
원래 전태국은 양 비서의 아들인 양철수가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들어오기 전까지 나와 함께 ‘페이스 노트’에서 일할 계획이었다.
그러고는 원래 계획대로 삼전 그룹의 샌프란시스코 법인에서 일하려고 했다.
“성국아… 그건.”
“소원 뭐든 말하라면서요. 내 소원은 윌리엄이 한국 ‘페이스 노트’에서 6개월 더 일하는 거예요.”
나는 다시 한번 확실하게 못 박았다.
물론 이 문제는 전태국에게는 어려운 일인 게 분명했다.
전태국의 비서였던 젊은 양 비서가 자신의 상사로 오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비서가 자신의 상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모든 직장인들에게 최악이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을 봐서는 데이트만 잘 성사된다면 임진서와 6개월 더 같은 직장에 다니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반대로 데이트가 별로라면 남은 6개월은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성국아… 그건… 아버지에게 약속한 일도 있고….”
“윌리엄, 전재형 회장님은 아마 윌리엄이 ‘페이스 노트’에서 업무를 인정받아서 계약 연장한 것을 더 기특하게 여기실 거예요.”
전재형 회장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전태국이 후계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나마 요즘 ‘페이스 노트’에서 일한 덕분에 그동안 깎아 먹은 이미지는 전태국은 조금씩 극복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페이스 노트’의 안착을 위해서 전태국과 삼전 그룹이 조금 더 서포트를 해주는 것이었다.
“성국아… 이건 좀 더 생각해보고 답해주면 안 될까?”
“그래요, 윌리엄. 저 그렇게 악덕 업주 아니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 * *
아침이 되어서야 나와 전태국은 집에 들어섰다.
둘 다 한숨도 못 잔 상태라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전태국이 무거운 얼굴로 내 어깨를 잡았다.
“성국아,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와인 한잔할래?”
“오늘은 와인보다는 위스키가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래… 내가 준비할게.”
전태국은 평소와 달리 진지했다.
[내 소원 때문인가….]곧 전태국이 위스키가 담긴 잔을 내밀었다.
나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셨다. 빈속이라 그런지 위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형, 내가 말한 소원이요….”
순간, 전태국이 간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나 좀 도와줘.”
뭘 도와달라는 거지?
소원 취소해달라는 건가.
“성국아, 나 이번 주말에 임진서 씨랑 어떻게 데이트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형, 아까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해놓고는 이제 와서 이러면 어떡해요!”
[아까 분명 삼전 그룹 후계자답게 다 준비한다며?]전태국은 위스키를 물처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성국아, 너도 알다시피 내가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잖아. 사기꾼 연예인 지망생한테 걸려서 이상한 사진이나 찍히고….”
“형, 미국에서 <인턴> 찍은 후에 빌런으로 인기 많아져서 여자들이랑 많이 데이트 했잖아요!”
“그거야… 미국 여자들은 나보다 자기들이 더 리드를 잘하니까. 난 쫓아만 다녔지. 카드만 들고….”
전태국은 빈 잔에 위스키를 다시 따랐다.
“형, 그만 마셔요.”
“성국아, 나 좀 도와줘라. 제발….”
전태국은 애처로운 눈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도 저번 생에서 연애한 게 다라고.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야….]그리고 그 시절 나도 전태국과 같이 갑의 연애만 해서 연애의 스킬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내가 찍어서 안 넘어오는 여자도 없었고, 어딜 가나 나와 한번 이어져 보려는 수많은 여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성국아… 넌 똑똑하잖아.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고….”
“형, 형이 간혹 잊는 게 있는데요.”
“뭔데?”
“저 모쏠이에요!”
정말 내 입으로 하기 싫은 말을 뱉고 말았다.
[전태국, 이번 생에서 엄마와 지희 손만 잡아본 나에게 이걸 지금 묻는 거냐고!]“하아… 그렇지…. 그래도 넌 똑똑하니 다를 줄 알았지. 내 주변에는 다들 재벌 친구들뿐이라. 다들 나랑 비슷하거든. 맨날 돈으로 바르는 연애나 하고….”
이때, 불현듯 돈으로 바르지 않은 연애를 한 사람이 떠올랐다.
“형, 이 문제는 물어볼 사람이 있어요.”
“누구?”
“저희 아빠요!”
* * *
그날 저녁, 전태국은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렵다는 위스키를 들고 부모님 댁에 들어섰다.
막 퇴근한 아빠가 놀란 눈으로 전태국과 나를 쳐다봤다.
“무슨 부탁이 있어서 이 시간에 보자는 거야, 성국아?”
“제 부탁은 아니고요. 정확히는 형 부탁이에요.”
“태국 군 부탁이요?”
“네, 아버님. 우선 이 술 마시면서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 좀 해주세요.”
아빠는 영문도 모른 채 술을 받아들었다.
“근데… 남자 대 남자로 할 이야기가 뭐예요, 태국 군?”
“아버님, 아버님은 어떻게 성국이 어머님 같은 미인을 얻으신 거예요? 성국이 어머님한테 어떻게 대시하시고, 어떤 데이트 하셨는지 제발 좀 알려주세요.”
“그, 그게…. 너무 오래된 일이라….”
아빠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나도 엄마, 아빠의 연애담을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같은 보육원에서 자라서 오빠, 동생으로 지내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아주 불이 붙어서 나를 낳았다는 것밖에는.
“아버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한평생 재벌로 태어나 재벌로 살아와서 평범한 연애는 듣도 보도 못했거든요.”
전태국은 지금 누구보다도 간절했고, 그 진심이 아빠에게도 통했다.
아빠는 다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별거 없지만, 그냥 편하게 들어봐요.”
“아버님, 진짜 감사드립니다!”
전태국은 거의 절까지 할 기세였다.
* * *
늦은 밤, 남자 셋이 테이블에 앉아서 위스키를 마셨다.
안주는 아빠의 <원아저씨 보쌈>이었다.
아빠는 천천히 위스키를 마시면서 전태국의 질문을 기다렸다.
“아버님, 성국이 어머님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우리는 만났다기 보다는… 원래 한집에 살았어요.”
“한집이요?”
“같은 보육원 출신이잖아요.”
아빠는 빙긋 웃더니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보육원 출신이라고 말하는 게 참 어려웠는데, 이제 그 상처가 제법 많이 없어졌나 봐요. 성국이 엄마랑은 보육원에서 만났어요.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그때도 예뻐서 남자애들이 몰래 많이 좋아했어요.”
“그렇죠. 성국이 어머님 미모야 말해 뭐합니까. 그럼, 아버님이 먼저 데이트 신청이나 이런 거 하신 거예요?”
“흠… 보육원에 있을 때는 그냥 친한 오빠, 동생으로 지냈어요.”
[아빠, 선수인데…. 인기 있는 여자 곁에서 친한 오빠로 있는 수법은 너무 고전이잖아.]전태국은 얼른 아빠의 빈 잔을 채웠다.
“그럼, 아버님. 어머님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데이트 신청하신 거예요?”
“우리 때는 그런 건 없었고…. 소영이가 그때 작은 회사에서 경리를 했었는데, 내가 일하는 식당이랑 가까워서 끝나는 시간에 매번 데리러 갔어요.”
아빠는 과거를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처음으로 듣는 엄마, 아빠의 풋풋한 연애 스토리였다.
전태국이 애가 탄 듯 물었다.
“아버님, 저도 지금 아버님 상황이랑 많이 비슷하거든요. 저희도 같은 회사 다니거든요. 같은 보육원에서 서로를 보고 지낸 사이. 저희는 같은 회사에서 서로를 보고 지낸 사이. 정말 이건 마치 운명 같은 거네요.”
[제발 아무 데나 갖다 붙이지 좀 마, 전태국.]아빠는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나도 소영이를 많이 좋아는 했는데, 워낙 가진 게 없어서 솔직히 먼저 다가가기가 어려웠어요. 소영이야 야무지고 예쁘니까, 아무리 고아라고 해도 괜찮은 남자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아… 아버님, 저는 워낙 가진 게 많아서 다가가기 힘든데… 어쩜 저희는 이런 것까지 비슷하죠.”
난 이제 더는 전태국을 말릴 수가 없었다.
“아버님, 그럼 데이트 신청이랄까 그런 건 진짜 어떻게 하신 거예요?”
“집에 데려다주다가 어느 날 문득 그냥 나 쉬는 날 영화 볼래, 뭐…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아요. 보고 싶은 영화 있는데, 혼자 보기 뭐하다고요. 그랬더니 소영이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도 마음에 있었네….]아빠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머지 연애담을 풀었다.
다행히 쉬는 날이 월급 다음 날이라 영화표도 직접 끊고, 소영이가 평소에 좋아하던 돈까스도 먹은 후에 소영이가 사는 원룸 집 앞에서 고백했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아버님, 영화 보고 밥 먹고… 집에 데려다주면서 고백하신 거 맞죠?”
“네, 태국 군.”
“일반인들은 그런 데이트를 하는군요. 아버님, 완전 로맨틱하네요.”
“태국 군…. 나야 돈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나 따라 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한테 진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아버님, 명심하겠습니다!”
* * *
전태국은 황홀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성국아, 나 이번 데이트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제발 잘하길 바랄게요.”
“아버님 말씀대로 영화 보고 밥 먹는 그런 소박한 데이트를 나도 한번 해봐야겠어.”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그 순간, 전태국이 핸드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임진서한테 거는 건가?
하지만 박성희 비서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렸다.
“박 비서, 나야… 이번 주말에 청담 CGJ에서 영화 뭐 하는지 알아보고, 거기 VIP관 통째로 빌려! 그리고… 삼전 호텔에 프렌치 레스토랑 통째로 그날 저녁 비우라고 해. 내가 데이트해야 하거든.”
나는 어이없는 얼굴로 전태국을 쳐다봤다.
“형, 영화 보고 밥 먹는 평범한 데이트 한다면서요?”
“영화관 잡고, 식당 잡았잖아. 원래대로라면 프랑스 요리 먹으러 프랑스에 갔을 텐데… 이 정도면 거의 서민 수준이지.”
전태국은 입꼬리를 쓰윽 올렸다.
[전태국, 우리 아빠의 조언을 도대체 어디로 들은 거야!]나는 이 데이트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