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51)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51화(351/576)
제351화
나는 들뜬 임진서를 쳐다봤다.
어쨌든 공과 사는 구분되어야 하는 문제였다.
“전 임진서 씨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고마워요, 성국….”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윌리엄이랑 상의 한번 하세요.”
“물론 태국 씨랑도 이야기해야죠.”
임진서는 홀가분한 얼굴로 사무실을 둘러봤다.
앞으로 자신이 일하게 될 사무실이라는 사실에 감동한 얼굴이었다.
“오늘 저녁은 마크네 집에서 먹을 건데요. 리미미 씨가 게스트룸 하나 빌려준다고 하네요. 임진서 씨는 거기서 머무르면 될 것 같습니다.”
“호텔에서 머물러도 되는데요.”
“리미미 씨가 여자 혼자 그렇게 둘 수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럼, 감사히 머물게요. 근데 사장님은 어디서 주무실 거예요?”
“마크 앞집이 윌리엄이랑 같이 살던 집이에요. 전 거기서 머물려고요.”
드디어 완벽히 혼자인 순간을 오늘 밤에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집 저도 구경해도 돼요? 태국 씨가 살았다고 하니까 궁금해서요.”
“저녁 먹기 전에 구경시켜 드릴게요.”
마크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면서 다가왔다.
“미미가 오늘 밤은 무조건 배달이래. 요리할 힘이 없대. 피자 어때?”
“좋지. 그럼, ‘페이스 노트’에 글 올리고 오랜만에 집에 가자.”
나는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서 손가락을 풀었다.
– 안녕하세요. ‘페이스 노트’ 대표 전성국입니다.
최근 ‘페이스 노트’에서 불미스러운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 피해자와 가해자는 분리 조치했고, 조사 위원회를 꾸려서 그날의 상황에 대해서 다각도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해자의 성추행 사실이 인정되어 즉시 해고 조치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페이스 노트’ 회사 내규에 젠더 이슈에 대한 부분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성추행 사건의 경우 남녀를 떠나서 가해자는 가해 사실이 증명되는 즉시 해고 조치하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이 일을 계기로 ‘페이스 노트’에 젠더 이슈에 대한 복지 부분 역시 취약하다고 느꼈습니다.
‘페이스 노트’는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젠더 문제에 대한 위원회를 따로 만들 것이며, 결혼한 여자 직원들을 위한 보육 시설을 새로 설립하고, 수유실을 개설하는 것을 올해 안으로 완성할 것입니다.
동시에 남자 직원들에 대한 육아 휴직을 권고할 것이며 남녀를 떠나 모든 직원들은 출산 축하 선물과 자녀 교육비 지원에 대해서 회사 사규를 정리하고 빠르게 진행할 것을 알려드립니다.
이 글을 보시고 회사 내 젠더 평등에 대한 좋은 의견 있으면 언제든지 댓글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주신 의견 소중히 잘 보겠습니다.
* * *
“여기가 저랑 태국이 형이 함께 지냈던 집이에요. 구조는 마크네랑 똑같아요.”
임진서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집 안을 둘러봤다.
“생각보다 소박하네요.”
“그 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마크랑 저 집에서 지낼 때, 전재형 회장이 억지로 앞집 얻어서 붙여놓은 거거든요. 그러니 소박할 수밖에요.”
“그땐 안 친했나 봐요, 태국 씨랑요?”
“지금도 안 친해요.”
나는 솔직히 이야기했다.
전태국은 나에게 전생의 업보, 서당 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태국 씨는 저랑 같이 있으면 성국 대표님 이야기 엄청 많이 해요.”
임진서는 빙긋 웃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처음에는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가난한 집 출신에 머리만 좋은 그저 그런 재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데요. 근데 알아갈수록 참 속정도 깊고….”
[전태국이 그런 말을 했다고?]임진서는 나를 쳐다봤다.
“정말 전성국 대표님을 많이 신뢰한다고요.”
“임진서 씨, 이 모든 말이 저보다 앞으로 윌리엄을 더 잘 봐달라고 하는 말이라면, 저 그런 말에 넘어가는 사람 아닙니다.”
임진서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물론 대표님 성격 잘 알죠. 그냥 전 대표님이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뒤통수 때리는 일은 안 했으면 해서요.”
“제가 보기에는 임진서 씨가 미국 본사 근무 원하는 게 더 뒤통수 때리는 일인 것 같은데요.”
“그건 제가 잘 풀어보겠습니다.”
이때, 마크에게서 피자가 도착했단 메시지가 왔다.
“피자 왔다고 하네요. 가시죠.”
* * *
피곤한 하루는 보낸 마크와 리미미 그리고 나와 임진서는 소파에 널브러졌다.
소파에 아무렇게 널브러져서 피자를 먹으면서 TV를 보는 것, 참 오랜만이었다.
이때, TV에서 ‘페이스 노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 오늘 ‘페이스 노트’의 전성국 대표는 이례적으로 본인의 ‘페이스 노트’에 사내 성추행 사건을 밝히고, 가해자를 퇴사시킨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올렸습니다.
이 일로 ‘페이스 노트’는 앞으로 사내 젠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을 알렸는데요. IT 기업이 몰려있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회사 내 젠더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뉴스는 보더니 마크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마이클이 소송 걸진 않겠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안 하겠지만, 소송은 자유잖아. 하지만 이길 수는 없을 거야. 피터한테도 다 이야기해뒀어….”
마이클이 소송을 걸어봤자 얻는 것은 그저 성추행 가해자라는 불명예뿐일 것이다.
“성국아, 근데 너 군 복무 언제 끝나는 거야?”
“산업기사 군대 복무 기간이 2년 10개월이니까….”
나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있는 거겠지?]마크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너 없으니까, 내가 너무 힘이 들어서 그래….”
“참, 마크. 임진서 씨 말이야.”
내 말에 임진서가 피자를 먹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임진서 씨는 왜?”
“본사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해서. 한국 지사 일 정리하는 대로 본사로 보내려고 하는데, 자리 하나 마련해줘. 마케팅 쪽에.”
“아시아 쪽 마케팅 좀 강화하려는 참에 잘됐네.”
마크는 임진서를 쳐다봤다.
“임진서 씨, 성국이가 칭찬 많이 했어요. 앞으로 기대할게요.”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하지만 왠지 내 마음은 계속해서 편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전태국의 내년 이별수는 거의 확정인데….
[근데 내가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하지? 설마 내가 전태국을 걱정하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그냥 나는 전태국이 이별하고 옆에서 찡찡거리는 게 너무 보여서 그런 거야…. 서당 개가 찡찡거리면 피곤하다고!]나는 피자를 우걱우걱 먹었다.
* * *
드디어 완벽히 혼자가 됐다.
어둑한 실리콘밸리의 전경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꺼냈다.
양철수가 한국 지사로 옮겨가기 전에 쓰던 아파트라 아직 냉장고에 맥주가 남아 있는 것 같다.
띵동.
[하아… 간만에 혼자였는데….]인터폰에 마크의 얼굴이 보였다.
문을 열자 마크는 맥주병을 흔들면서 들어왔다.
“마크, 밤에 무슨 일이야?”
“벌써 마시고 있던 거야?”
“철수 형이 두고 간 게 많더라고.”
“그게 아니라 내가 너 온다기에 넣어둔 거야.”
마크는 아주 가끔 이렇게 세심할 때가 있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미미가 아무래도 임진서 씨 불편하다고 나보고 오늘은 너랑 같이 자래.”
[이렇게 또 혼자만의 시간을 침해받는 건가…]나는 속으로 낮은 한숨을 쉬었다.
“성국아….”
마크는 차분한 목소리를 나를 불렀다.
[마크가 이렇게 진지하게 부를 때는 무슨 문제가 있을 때인데….]“성국아, 그냥 네가 이렇게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든든해서….”
마크는 수줍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마크, 넌 이제 내년이면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될 거야! 근데 이렇게 약한 소리 해대면 어떻게 해!]나는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애써 생각한 말을 꺼냈다.
“마크, 많이 힘들었어?”
세상에는 사회화라는 말이 있다.
저번 생의 나라면. 혹은 이번 생의 속마음이라면 당연히 마크를 질책하고 몰아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바닥에서부터 데굴데굴 굴러서 이곳까지 오다 보니 사회적으로 가면을 써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지금 마크는 내게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내 예측에 한 치도 빗나감 없이 마크는 내 말 한마디에 벌써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성국아… 나 네가 너무 그리웠어.”
“마크,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
“뭔 소리야.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이것도 오해할 소리 같은데, 마크?]마크는 나를 얼싸안더니 어깨에 기대 눈물을 흘렸다.
“고등학교 기숙사서부터 우리 함께한 사이잖아. 근데 군대가 뭐기에 우리를 이렇게 떨어뜨려 놓냐는 말이야….”
[갈수록 태산이군….]나는 마크의 등을 도닥였다.
“마크, 좀 진정해.”
“성국아, 정말 나는 너 없이는 안 될 것 같아.”
“리미미 씨가 있잖아.”
“미미도 마찬가지야. 이번 일 일어나고 미미도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 성국아, 그냥 지금이라도 미국 시민권자 돼서 미국에서 나랑 이렇게 같이 살면 안 돼?”
“마크, 넌 리미미 씨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같이 살아야지. 무슨 소리야….”
“난 너도 필요하다고. 성국아, 영원히 한국에서 사는 거 아니지?”
마크는 내 어깨에 이제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나는 마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슬적 밀었지만, 마크는 이내 내 어깨에 다시 얼굴을 비벼댔다.
“마크, 군 복무 끝나면 다시 돌아올 거야.”
“진짜지?”
그제야 얼굴을 덜더니 눈물 글썽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내년에 민국이도 데뷔시키고, 지희 고등학교 들어가는 것도 보고…. 그리고 올게.”
“약속한 거다!”
마크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하아… 이건 좀 아니지 않아?]그 순간 마크가 내 손을 잡아끌더니, 새끼손가락을 걸어버렸다.
“성국아, 내가 여기서 기다릴게. 꼭 오는 거야.”
“마크, 내년에 상장할 때도 올 거니까 제발 정신 차리고 일이나 똑바로 해!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해결 못 하면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한단 말이야!”
나는 어쩔 수 없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근데 이상하게 마크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전성국 같네. 성국아, 군 복무 마치고 얼른 들어와야 해.”
[대체 한국이나 미국이나 내가 케어 해야 할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 불길한 느낌은 뭐지….]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저 멀리서 전태국이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게 보였다.
나와 임진서가 게이트를 나서자 전태국은 임진서를 향해서 꽃다발을 흔들더니 급기야는 달려오기 시작했다.
[비행시간까지 합쳐서 3박 4일 미국 다녀왔는데, 누가 보면 일 년 만에 귀국하는 줄 알겠어. 전태국.]전태국은 임진서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진서 씨, 피곤했지? 성국이가 일 너무 많이 시키거나 하지 않았어?”
“내가 피곤할 일이 뭐가 있어. 본사 견학한 정도인데. 성국 대표님이 일 처리하는 거 지켜만 봤어.”
전태국은 나를 대견한 눈으로 쳐다봤다.
“성국아, 이번 일 정말 멋지게 해결했더라. 그렇게 발 빠르게 대처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형, 저는 많이 피곤한데요. 두 분 데이트하실 거면 전 택시 타고 갈게요.”
나는 임진서가 전태국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아서 최대한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무슨 소리야. 너 데려다주고, 우리 진서 씨 데려다주면 되지. 박 비서, 기다리고 있어.”
전태국은 어느새 임진서의 손을 잡고 앞서갔다.
설마 가는 길에 전태국한테 미국 지사 간단 이야기는 안 하겠지?
* * *
“박 비서, 성국이가 많이 피곤한 모양이야. 먼저 압구정으로 가자.”
“성국 군, 먼저 내려드릴게요.”
드디어 차가 출발했다.
그리고 우리는 영종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그 말은 공항을 벗어난 지 채 몇 분도 안 된 상황이었고, 임진서가 꽃다발을 받은 지도 십여 분 정도 지난 시간이었다.
그 순간, 임진서가 전태국에게 폭탄 발언을 했다.
“태국 씨, 나 한국에서 일 정리하고 미국 본사에서 일하기로 했어.”
“뭐어?”
당황한 전태국은 작은 두 눈만 깜빡거렸다.
“성국 대표님이랑 미국 쪽 마크 대표님이랑도 다 이야기 끝났어.”
“진서 씨… 지금 이 말은…”
“태국 씨, 남자도 군대 가면 여자가 기다리잖아. 나 미국에서 제대로 일 배우고 올 동안 나 기다려줄 수 있어?”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감히 삼전 그룹 후계자에게 기다려달라니!
전태국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서 씨, 난 진서 씨가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 가서 10년 후에 나온다고 해도 기다릴 거야!”
나와 박성희 비서는 입술을 꾹 누르며 동시에 웃음을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