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60)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60화(360/576)
제360화
전미진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어쨌든 나는 전미진의 약점을 잡았고, 전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태국이 어깨를 으쓱했다.
“성국아, 미진이 떼어낸 거 축하해.”
“원래 남매끼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성국아, 재벌들의 삶이 이래. 형제, 자매… 이런 거 다 소용없어. 다들 유산 쪼개 갖는 경쟁자일 뿐이야.”
[내가 그걸 왜 모르겠어, 전태국.]나는 샴페인을 천천히 마셨다.
* * *
“성국… 나 아무래도 이 집에서 사는 건 힘들 것 같아요.”
샘이 우울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태국은 팔짱을 꼈고, 애덤의 얼굴도 어두웠다.
나 역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성국… 나도 내가 이렇게 예민한 사람인 줄 몰랐어요. 물갈이하는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여기 아파트가 오래돼서 녹물이 많이 나오나 봐요.”
사실 지금 샘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야기하는 중간중간 몸을 벅벅 긁기도 했다.
압구정 한성을 살 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단 하나의 문제. 그건 바로 아파트의 낙후였다.
70년대 후반에 지어진 아파트. 올해로 벌써 30년이 넘었으니, 아무리 집 안 곳곳을 리모델링한다고 해도 배관까지는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저번 생에서 재벌로 주구장창 살다 보니 오래된 아파트의 단점 같은 것은 알 리가 없었다.
그건 전태국도 마찬가지였고, 미국에서 살다 온 애덤도 마찬가지였다.
샘은 앉은 채로 몸을 벅벅 긁었다.
“성국… 난 우리가 다 같이 살았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제가 아직 한국말도 거의 못 하고. 애덤이랑 윌리엄 없으면 맨날 헤매잖아요.”
전태국이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나도 이 문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샘의 피부 상태를 보니, 이거 보통 심각한 문제야 아니야. 우리가 아무리 정수기랑 연수기를 쓴다고 해도 몸에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
“흠… 그러게요.”
“사실 주차도 문제야. 샘이랑 애덤이야 걸어 다니지만, 너랑 나랑은 차가 있잖아. 야근하고 들어오면 주차할 자리 찾기도 힘들잖아.”
“형, 형 보고 야근하라고 한 적 없거든요.”
“진서 씨도 미국 가 있는데, 내가 일찍 퇴근해서 뭐 하니.”
전태국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럼, 지금 이 집의 문제는 오래된 배관에서 나오는 오염된 물과 주차네요.”
이때, 애덤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성국, 그리고 벌레요. 하수구에서 벌레가 막 날아올라요.”
이것도 오래된 배관 때문이었다.
“성국아, 이 기회에 이 집은 세를 놓고 집을 옮기는 게 어때?”
“형이야 삼전팰리스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아, 맞지…. 내가 집이 있었지.”
전태국은 손바닥을 딱 쳤다.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근데 말이야. 내가 미국에서 와서 네가 하도 뭐라고 해서 삼전팰리스 가서 잠 좀 잤잖아.”
“그래봤자 일주일도 안 돼요.”
“근데, 거기서 자면 잠이 푹 오지 않아. 뭐랄까, 터가 안 좋은 느낌이라고 할까. 가위도 막 눌리고….”
전태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성국아, 한남동에 이번에 새로 입주한 아파트 하나 있는데… 거기 어떨까 싶어. 주변에 재벌 친구들도 요즘 거기로 이사 많이 가더라고.”
[<한남 더 언덕>을 말하는 건가….]한남동에 있던 대학이 없어지고, 새로 생긴 아파트였다.
터도 좋고, 단독주택만 있던 한남동에 고급화 전략으로 세워진 아파트라 재벌가와 유명인사들이 주로 이주한 곳이었다.
“형, 거기로 덜컥 이사 갔다가 또 터가 안 좋으면 어떡해요.”
“그건 걱정 마. 한태진이 거기로 이사 가서 내가 거기에서 술 먹고 자봤지. 완전 꿀잠 잤잖아. 뒤로 산이 있고… 앞으로 저 멀리 한강이 보이는 배산임수 지역이야. 한성 자동차도 풍수 엄청 따지잖아. 한태진이 이사 간 거 보면 거기 터 완전 최상 중에 최상이야.”
그건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삼전이나 한성 자동차나 풍수에 굉장히 민감한 그룹들이었다.
“아… 그리고 한태진네 집이 방이 네 개였어. 거긴 테라스도 있고….”
전태국이 이렇게 열성적이자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형, 형이 이렇게 집 구하는데 열정적이었어요?”
그 순간, 전태국이 배시시 웃었다.
“성국아, 사실은 저번 주에 한태진네 옆 동의 펜트하우스 계약하고 왔어. 빈집이라 바로 입주 가능하고. 방 네 개에 욕실 세 개. 우리 넷이 살기에 딱 좋잖아. 물론 안방은 네가 써.”
“전 삼전 팰리스 들어갈게요. 가족들이랑 너무 오래 떨어져 살았는데, 이제 가까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전태국은 팔짱을 끼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성국아, 네가 그럴 줄 알고… 삼전팰리스 그 집은 내가 뺐어.”
“형!”
이쯤 되자 샘과 애덤도 수상했다.
나는 샘과 애덤을 쳐다봤다.
“설마… 두 사람, 윌리엄이랑 짠 거예요?”
“성국, 내 피부는 진실이에요.”
샘이 손사래를 쳤다.
“나머지는 거짓이란 말이죠?”
“그게 아니고요. 윌리엄이 다 같이 살면 좋지 않겠냐고 하도 그래서요. 그리고 <한남 더 언덕> 실제로 보니까 새집이라 그런지 너무 좋아요. 바닥도 모두 대리석이고요. 화장실도 세 개나 되고, 방도 네 개니까 더는 싸울 이유도 없잖아요.”
“성국, 나도 그 집 엄청 마음에 들어요.”
애덤도 가세했다.
[그럼, 지금… 나 말고 그 집을 다 봤단 말이야?]전태국이 내 어깨를 꽉 잡았다.
“성국아,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새집이라 크게 인테리어 할 건 없고. 가구만 들어가면 돼. 내가 최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부탁해 놨으니까, 성국아 넌 몸만 들어가면 돼.”
“전 이 집에 남을게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녹물이 나오고, 주차가 어렵지만… 혼자 산다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이때, 전태국이 또다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이것도 예상한 건가. 서당 개가?]“성국아, 내가 이 집의 노후화 문제를 너희 부모님에게 말씀드렸어. 그랬더니 당장 이사 가라고 하시더라고. 성국아, 네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너희 부모님 아니야?”
“하아….”
나는 낮은 한숨을 뱉었다.
이사를 가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한남 더 언덕>의 구조는 나도 잘 알았다.
여러 가지 부대시설도 잘되어 있고, 주차 공간도 넉넉했다.
공간 분리도 잘되어 있어서 같은 집에 있어도 사생활을 크게 터치 받을 일도 없었다.
문제는 서당 개가 날 너무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점점 두려워질 뿐이었다.
전태국이 나를 내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성국아, 고마워할 필요 없어. 전미진 약점 잡게 해준 게 고마워서 내가 다 서비스한 거야.”
나는 전태국을 흘깃 쳐다봤다.
[서당 개가 점점 성장하는 느낌인데? 지켜보겠어, 전태국.]* * *
<한남 더 언덕>으로 이사를 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사이 대한민국의 습하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있었고, 2011년 9월이 됐다.
아침 6시 모닝콜이 왔다.
김미소였다.
삼전의 김미소는 전태국의 2주 휴가 이후에 나에게 배정되었다. 물론 소속은 여전히 삼전이었다.
내가 전화를 받자 김미소의 목소리가 들렸다.
– 대표님, 일어나셨죠?
“네….”
– 대표님, 30분 후에 모시러 가겠습니다. 오늘 삼전 그룹의 전재형 회장님과 효진 그룹의 구수영 회장님의 조찬 모임이 인근 남산 호텔에서 있습니다. 조찬 모임 이후 회사로 이동하셔서 9시부터 띡똑 관련 회의 시작입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알파는 그사이 직원을 더 뽑아서 이제 50명이 넘는 직원들이 회사에 근무 중이었다.
띡똑의 출시는 내가 제대하기 전에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더 바빠졌다.
‘페이스 노트’는 상장을 앞두고 공격적으로 아시아 지역 마케팅을 시작했고, 너튜브는 계속 상승 중이었다. 하지만 각종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바쁜 일정을 정리하려면 어쩔 수 없이 비서가 필요했고, 김미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김미소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빈틈없는 비서였다.
나는 얼른 씻고 주방으로 가서 사과를 집어 들었다.
전태국이 부스스한 얼굴로 나오는 게 보였다.
“성국아, 벌써 일어났어?”
“오늘 전재형 회장님과 구수영 회장님이랑 같이 오찬 모임 있어서요. 띡똑 관련해서 보고드려야 하거든요.”
“아하…. 아빠한테 안부 전해드려.”
“그건 형이 직접 해요.”
나는 얼른 사과를 깨물면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 *
차에 타자 김미소가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커피는 오늘 조찬 모임에서 드실 것 같아서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조찬 모임 끝나고 가는 길에 문벅스 라떼 준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차가 조심스럽게 <한남 더 언덕>의 주차장을 벗어났다.
저 멀리 남산 호텔의 모습이 보였다.
“대표님, 이건 어제 부탁하신 자료입니다. 이미 삼전과 효진 측에 전달했지만, 혹시나 해서 준비했습니다.”
“김미소 씨, 이제 앞으로 종이 낭비는 하지 말죠.”
“회장님들은 연세가 있으시잖아요. 비서로 지내다 보면 그런 점들도 고려할 때가 있거든요.”
[흠… 틀린 말은 아니네.]“알았어요.”
나는 전재형 회장과 구수영 회장에게 건넬 자료를 챙겼다.
이때, 김미소가 뒤를 다시 돌아봤다.
“대표님, 9월 12일이 생신이시더라고요.”
“생일이라고 말해주세요. 생신이라고 하니, 나이가 엄청 많은 느낌이네요.”
“알겠습니다. 근데, 생일날이 추석이랑 겹쳐서요. 그전에 전태국 도련님께서 직원들과 함께 생일 파티를 여셨으면 하시던데요.”
“제 생일 파티를 직원들과 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표님 의사, 도련님께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김미소 비서님도 추석 연휴는 쉬세요. 저도 추석 연휴는 푹 쉴 예정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미국 ‘페이스 노트’ 대표님과 리미미 씨가 추석 전에 입국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삼전 호텔에 방 두 개 부탁드려요.”
“두 개나요? 두 분 커플 아니신가요?”
김미소가 의아해했다.
“아마 리미미 씨 부모님께 인사드릴 겸 오는 걸 거예요. 부모님 방까지 부탁드리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마크와 리미미까지 서울에 모이다니… 이번 추석 연휴는 조금 복잡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때, 김미소의 전화가 울렸다.
김미소는 전화를 받더니 다시 뒤를 돌아봤다.
“대표님, 효진의 구수영 회장님이 십 분 먼저 좀 보시자고 하십니다.”
넉넉하게 출발한 상황이라 10분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 같았다.
“알았다고 전하세요.”
“네, 대표님.”
* * *
“성국아.”
구수영 회장은 늘 그렇듯 인자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아직 전재형 회장은 도착 전이었다.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는 전재형 회장은 거의 제시간에 맞춰서 도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갑자기 조금 일찍 보자고 해서 놀랐지?”
“아니에요. 여유 있게 출발해서 괜찮았습니다.”
“나이 드니 아침잠이 없어져. 오랜만에 사우나도 하고… 사실은 모임 끝나고 잠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입이 근질근질해서 말이야. 나이 드니 잠도 없어지고, 참을성도 없어지고 그래. 살날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가 봐.”
“회장님, 그런 말씀 마세요.”
“허허허.”
구수영 회장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회장님, 하실 말씀이 뭐세요?”
“그래, 전재형 회장 오기 전에 어서 말해야지.”
구수영 회장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내가 요즘 잠을 통 못 자는 이유가 하나 있는데 말이다….”
구수영 회장은 잠시 뜸을 들였다.
이때, 뒤에 선 구수영 회장의 비서가 전재형 회장의 도착을 알렸다.
“전재형 회장님, 로비에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곳까지 오는 데 길어야 5분이다.
구수영 회장은 나를 다시 쳐다봤다.
“시간이 없구나. 성국아, 내 고민은 효진 그룹의 후계자가 없다는 사실이구나.”
설마?
“성국아, 네가 내 자리를 물려받으면 안 되겠니?”
“…….”
너무 몰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전재형 회장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