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65)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65화(365/576)
제365화
아빠는 잠시 말이 없었다.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를 찾다니!
내가 다 흥분이 되는 상황이었다.
전태국은 옆에서 애덤과 샘에게 영어로 이 상황을 전달했다.
애덤과 샘도 덩달아 기대감에 들뜬 얼굴이었다.
하지만 흥분한 우리 모두와 달리 아빠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침착하게 전화기에 대고 말을 이었다.
“진짜 제 아버지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아빠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더니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번 만나 뵙겠습니다. 연휴 끝나고요. 일요일 저녁이 좋을 것 같은데요. 네… 일요일 저녁 삼전 호텔에서 뵙겠습니다.”
근데 아빠의 목소리는 어딘가 이상했다. 놀라움과 반가움보다는 다소 무거웠다. 마치 이미 영화의 엔딩을 아는 사람처럼.
아빠는 전화를 끊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아빠, 진짜 우리 할아버지야?”
민국이가 재빨리 물어봤다.
아빠는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아빠는 씁쓸한 미소를 거두고 엄마를 쳐다봤다.
“여보, 나 소주 한잔해도 될까?”
“알았어. 골뱅이도 좀 무쳐올게.”
평소 같으면 낮부터 무슨 술이냐고 뭐라고 할 엄마가 골뱅이까지 무치다니….
나는 엄마를 따라서 일어났다. 그리고 애써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엄마, 소주잔 어디 있어? 샘과 애덤 그리고 태국이 형도 소주라는 말에 지금 침을 흘리고 있거든.”
“샘이랑 애덤도 소주 잘 마셔?”
“응. 두 사람 취미가 저녁에 삼겹살이랑 소주 마시는 거야.”
“한국 사람 다 됐네. 오랜만에 우리 아들이랑 엄마도 소주 한잔하게 엄마 잔도 챙겨. 맨 끝 싱크대 열면 소주잔 나올 거야.”
“응, 엄마.”
나는 엄마가 알려준 맨 끝 싱크대를 열어서 소주잔을 챙겨서 자리에 앉았다.
아빠는 곧 소주잔을 애덤과 샘에게 내밀었다.
“미국에서 오신 분들인데, 소주 괜찮아요?”
내가 아빠의 말을 전하자, 애덤과 샘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없어서 못 마십니다, 아버님!”
아빠는 그 말에 빙긋 웃으며 차가운 소주를 애덤과 샘의 잔에 따랐다.
“아빠, 아까 아버지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은근히 아빠에게 물었다.
“성국아, 너도 한잔해.”
“나 차 가지고 와서….”
“우리 아들, 오늘은 추석이잖아. 집에서도 좀 자고 가.”
“알았어.”
나는 얼른 아빠의 잔을 받았다.
오늘은 왠지 거절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나는 아빠와 함께 소주를 쭉 들이켰다.
“아빠… 아까 그 전화 뭐야? 진짜 아빠 아버지일 수도 있잖아.”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사실은 말이야…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야.”
아빠의 목소리는 조금 슬펐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고? 그럼, 자주 있었단 말인데….
전태국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샘과 애덤에게 이 상황을 영어로 설명해주며 종알거렸다.
“샘, 애덤… 지금 성국이 아버님이 많이 상심하신 것 같아.”
[전태국, 다 들린다고!]이럴 때는 아빠가 영어를 잘 몰라서 참 다행이었다.
“아빠,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면 전에도 있었던 거야?”
“…….”
아빠는 말 대신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민국이와 지희 그리고 흰둥이를 쳐다봤다. 그러곤 지갑에서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서 민국이에게 건넸다.
“민국아, 지희랑 흰둥이 산책 시키고 와. 오는 길에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아빠….”
민국이는 말끝을 흐리더니 흰둥이를 안고 일어났다.
오늘 우리는 왠지 모두 아빠의 말을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 * *
아빠는 말없이 소주만 세 잔을 마시고 나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성국이 네가 좀 유명해지고 나서 이런 전화가 걸려왔었어.”
“그게 언제야?”
“한 10년 됐나…. 너 한창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우리나라 신문에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찍은 아역 모델이 효진 그룹 장학생 돼서 미국에서 공부한다고 기사 실리고. <원아저씨 보쌈>이 편의점에서 간편식으로 인기 많다는 기사 나가고. 뭐, 우리 가족 사연들이 조금씩 나갈 때….”
아빠는 다시 천천히 소주를 한 잔 마셨다.
“조금 유명세가 생겼을 때 이런 일을 겪어서 어쩌면 다행인 것 같아.”
아빠 말대로 10년 전에는 지금보다 내가 덜 유명했고, 돈도 없었다.
“솔직히 아버지가 살아있고, 내 기사를 보고 나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기뻤거든. 나도 부모님이 계시다니! 그리고 이런 기사를 보고 연락하실 정도면 그동안 나를 찾고 계셨다는 거 아닌가. 그럼, 난 버려진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고아원에서 자란 거 아닌가… 막, 그런 생각이 들었어.”
“여보, 안주도 좀 먹어.”
“응.”
엄마의 말에 아빠는 겨우 전 하나를 입에 넣었다.
“성국아, 그때 네 아빠 정말 좋아했어. 엄마도 얼마나 기뻤는데. 우리 애들한테도 이제 할아버지가 생겼다는 게 정말 너무 감사하기도 했어. 근데….”
엄마는 말을 멈추고는 아빠를 쳐다봤다.
뒷말은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엄마 말대로 우리 아이들한테도 할아버지도 생기고, 할머니도 생기겠구나. 그런 생각에 들떠서 직접 우리 가게에 초대까지 했어.
그런데… 그날 오신 분은 아무리 봐도 나랑 닮은 데가 한 군데도 없는 거야. 나는 엄마를 닮았나… 막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에 대해 물어봤는데, 엄마는 예전에 죽었다고 그러시면서 말을 돌리시더라고. 그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분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구나….”
엄마는 아빠의 등을 토닥였다.
“아빠, 그럼 그 사람 사기꾼이었던 거야?”
“결국은 그렇지. 내가 태어난 연도도 모르고, 어디 보육원에 맡긴 지도 모르고… 그래도 믿고 싶은 마음이 커서 마음 한편에는 끝까지 저 사람이 내 아버지였으면 했어. 근데 결정적으로 친자 확인 검사를 했는데, 99.9% 불일치더라고.”
전태국이 이 상황을 애덤과 샘에게 전하자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아빠, 그래서 그 사람 어떻게 했어? 결국, 돈 때문인 거지?”
“응. 그렇지. 경찰에 신고한다고 될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용돈 좀 드리고 사실 다 안다고 말하고는 돌려보냈어. 그랬더니 그 이후에는 연락이 없더라고.”
아빠는 소주를 한 잔 더 들이켰다.
“그때 진짜 니네 아빠 마음고생 많이 했어. 근데 우리 아들이 워낙 잘 나서 아무래도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더라고. 그래서 엄마가 그때 사람 사서 우리 가족 관계 다 조사했어.”
“엄마, 아빠 부모님 찾았어?”
“응. 다 찾았어. 엄마 부모님도 찾아보고.”
엄마는 말을 마치자마자 소주를 들이켰다.
“캬아- 오늘따라 소주가 쓰네. 성국아, 사실은 엄마랑 아빠 부모님 다 돌아가셨더라고.”
“진짜?”
“응. 고아원에 맡겨진 이유도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셔서였던 거야. 엄마도 그렇고. 너희 아빠도 그렇고. 이런 것까지 닮은 거 보면 엄마랑 아빠 천생연분이지?”
[엄마, 농담할 분위기 아닌 거 같은데….]엄마는 애써 웃었다.
“그 일로 엄마나 아빠나 마음고생은 했지만, 언제고 찾을 뿌리는 찾은 거지. 그 덕분에 사실 그 이후에 우리 성국이가 유명해져서 기사 나올 때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좋게 좋게 해결했어. 그래도 너희 아빠는 그런 전화 받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나 봐. 엄마는 이제 괜찮은데….”
나는 아빠의 마음이 이해됐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다 알지만, 그래도 사람에게는 희망 같은 게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아빠, 그럼 이번에 걸려온 전화도 가짜인 게 확실한데 만날 필요 없잖아.”
“그런 사람들 면상도 궁금하고. 괜히 어설프게 정리하면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에 이상한 글 남겨서 너한테 해코지할까 봐 그래. 이제 민국이도 아이돌로 데뷔하면 우리 집에 유명인이 두 명이나 생기는 거잖아.”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내 생각으로는 그냥 칼같이 정리하면 될 일은 아빠는 우리 앞길을 생각해서 일부러 만나고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던 전태국이 소주를 쭉 들이켰다.
“아버님! 저도 그 자리에 나가겠습니다!”
“형, 취했어요? 형이 그 자리에 왜 나가요?”
“성국아, 이런 건 깔끔하게 뿌리 뽑아야 해. 내가 재벌로 자라서 잘 아는데, 저런 사람들 깔끔하게 법적으로 정리하고 겁 안 주면 진짜 계속 따라붙어. 삼전 변호사 좀 동원하지, 뭐.”
나도 이 부분은 생각한 문제였다.
“아빠, 이 기회에 변호사 한 명 제가 선임할게요. 앞으로 이런 문제 생기면 변호사랑 같이 상의해서 정리하세요. 그리고.”
나는 전태국을 쳐다봤다.
“형, 이건 저희 가족 일이에요. 형의 호의는 고맙지만, 이건 제가 처리할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전태국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성국아, 추석도 같이 보내면 가족 아니야? 어? 꼭 피를 나눠야만 가족인 거야? 밥을 같이 먹으니까, 식구라고 하는 거잖아.”
[전태국, 그런 말은 어디서 또 주워들은 거야.]전태국은 울 듯한 얼굴로 울부짖었다.
“나도 이 집, 식구잖아!”
* * *
울부짖는 전태국을 달래느라 아빠와 애덤, 샘은 이후에 소주를 들이부었다.
결국, 아빠는 안방에서. 전태국과 애덤, 샘은 민국이 방에 쓰러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실 창문을 조금 열었다. 이제 제법 쌀쌀한 가을의 바람이 들어왔다.
“성국아, 따뜻한 꿀물 좀 마셔.”
“난 술 별로 안 마셔서 괜찮아. 엄마, 마셔.”
“엄마 것도 있어.”
나는 엄마가 내민 꿀물을 한 모금 마셨다.
명절인데, 오늘은 다른 명절과 달리 조금 마음이 무거웠다.
엄마가 내 얼굴을 얼핏 살피더니 내 등을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엄마 손길이네….]마치 아기 때 토라진 나를 달래던 엄마의 손길이 기억나서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성국아, 오히려 엄마는 우리가 부모가 없는 게 너무 다행 같아.”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이렇게 잘 됐는데, 만약 진짜 엄마, 아빠 부모님들이 이상한 사람이었으면 어떻게 해. 고아원에 아이를 버릴 사람이라면 힘들어서 그런 사람일 수도 있지만, 책임감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잖아.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가 생겨서 네 이름이 팔고 다니면 우리 아들 앞날에 짐인데… 솔직히 엄마는 속이 편하기도 해.”
“엄마랑 아빠가 이렇게 좋은 부모인데… 엄마, 아빠 부모님들도 좋은 분들이셨을 거야.”
“응, 그랬을 거야….”
엄마는 뒷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 이 기회에 엄마, 아빠 이름으로 후원 단체를 만들면 어떨까 싶어.”
“후원 단체?”
“엄마, 아빠처럼 고아가 된 아이들이랑 성인이 돼서 독립하는 사람들 후원하는 단체 말이야.”
“성국아,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이야. 엄마, 아빠 정말 성인이 되고 나서 고아원 울타리 벗어날 때 정말 막막했거든.”
엄마는 내 의견을 반겼다.
[세금 혜택도 좀 받고… 나중에 민국이 아이돌 되면 이래저래 선한 영향력 좀 행사도 하고…]이래저래 기부하거나 후원 단체 하나는 세울 생각이었다.
“엄마, 난 엄마가 그 일을 맡아줬으면 해. 엄마만큼 그 사람들 마음을 잘 아는 사람도 없잖아.”
“대신 성국아, 조건이 있어.”
엄마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엄마가 그 단체 일 하는 대신 우리 아들 언제나 바쁜 건 아는데, 명절은 꼭 집에서 보내는 거다. 알았지?”
“엄마, 그건….”
[엄마, 나 글로벌한 인재라고. 외국에서 일하다가 명절 맞춰서 들어온다고 약속하긴 힘들지.]내가 머뭇거리자 엄마는 갑자기 애처로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엄마, 아빠 고아인 거 잊었어? 너희들마저 명절에 안 찾아오면 엄마, 아빠 얼마나 외롭겠어? 어?”
[하아… 엄마에게서 아빠의 사연팔이 향기가 느껴지네.]그 순간, 엄마는 내 등을 쓰다듬던 손으로 따갑게 등을 내려쳤다.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니까!”
“아, 알았어. 엄마, 최대한 명절에는 한국에 있도록 할게. 됐지?”
“엎드려 절 받기네 정말. 성국아, 엄마는 벌써 우리 성국이가 결혼해서 아들딸 데려올 상상도 해. 그러면 명절 때 진짜 삼 대가 모여서 이 집도 왁자지껄할 거야. 그렇지?”
엄마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흐뭇해했다.
[엄마, 그건 불가능해. 삼청동 이 선생이 민국이랑 지희 자리 잡을 때까지 결혼은 불가래.]하지만 이 말은 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필요한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