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0)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70화(370/576)
제370화
와인을 몇 잔 마신 데니스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신이 나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국, 사실은 너한테 영감받았던 그 뮤지컬 영화 있잖아.”
“꿈을 찾아서 LA에 모여든 젊은이들 이야기?”
“응! 그 영화 시나리오도 거칠지만 초고가 나와서 여기저기 들고 돌아다녔거든. 그런데 다들 입봉도 못한 감독이 뮤지컬 영화가 말이 되냐고 그러는 거야…. LA는 나에게 기회의 땅이 아니더라고.”
데니스는 그동안 영화사에 시나리오를 들고 다니며 받은 멸시와 푸대접을 늘어놨다.
“내가 하버드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면… 그냥 좋은 직장을 잡으라는 말만 하더라고. 난 정말 영화가 하고 싶은데 말이야.”
“데니스, 이 영화 내가 추진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성국…. 혹시 내가 친구라서 재미도 없는 영화에 투자하는 거 아니야? 너는 이제 성공한 사업가니까….”
“데니스, 너는 나를 그렇게 보고도 몰라? 내가 단지 친분으로 움직이는 거 봤어?”
“그렇지. 전성국이 그럴 리가 없지.”
데니스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감동하지 마, 데니스. 나는 돈 될 영화에 투자하는 거야. 특히 이런 저예산 영화가 대박이 나면 수익은 상상 초월이라고….]데니스는 흐르는 코를 훔치고는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넌 정말… 내 평생의 은인이야.”
“그 이야기는 영화 개봉하고 하자.”
“그래!”
“그나저나 데니스, 너 LA로 돌아갈 비행기는 언제야?”
“그게….”
데니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LA에서 시나리오를 팔지 못한 감독 지망생이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오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데니스, 돌아갈 비행기 값도 없는 거지?”
“그게…. 쪽팔리지만, 맞아. 정말 이번에도 안 되면 이대로 여기서 직장 구할 생각이었어.”
데니스는 그만큼 절실한 마음으로 나에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데니스, 내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
“무슨 제안?”
“지금 LA에 돌아갈 이유가 딱히 있어?”
“친구랑 셰어 중인 방세 정도?”
“여자친구는?”
“누가 나같이 돈도 제대로 못 버는 영화감독 지망생이랑 사귀겠어.”
“그럼, 잘됐네. 내일 나랑 한국 같이 가자.”
“…….”
데니스는 잠시 두 눈을 깜빡이더니 놀라서 물었다.
“성국, 이거 투자자로 하는 제안이야?”
“물론이지. 시나리오가 훌륭하긴 하지만, 아직 조금 더 손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원래 시나리오 같은 거 잘 안 나올 때는 여행 가서 쓰기도 하잖아.”
“대박… 그건 내가 완전 꿈꾸는 삶이잖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영감도 받고, 작품 구상도 하고….”
“서울이 칸쿤이나 발리 같은 휴양지는 아니지만, 색다른 곳에서 글을 수정해서 완성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지휘자의 캐릭터를 구상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고.”
“그게 무슨 말이야?”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잖아. 그 안에서 서열이 정해진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학생들은 공부에 매달리면서 친구조차 경쟁자로 생각하거든. 그런 모습들을 보면 <채찍>의 현실감이 더해질 거야.”
“정말… 성국, 대한민국은 내 <채찍>의 모델이 되겠는데!”
데니스는 이미 한국행에 들뜬 상태였다.
* * *
마크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창인 데니스와 나를 배웅하기 위해서 포르샤를 직접 몰고 공항으로 향했다.
“데니스, 정말 성국의 말에 혹해서 한국까지 가는 거야?”
“응. 나 정말 절박하다고. 성국이 투자한다고 안 했으면,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데 가서 사라졌을지도 몰라.”
“데니스, 내가 이미 성국이랑 일해 본 사람으로 조언 한마디 하면… 성국은 친구일 때와 일할 때 완전히 똑같다는 것만 기억해.”
“피도 눈물도 없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구나?”
“당연하지!”
마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두 사람, 나 여기 있거든.”
마크는 괜히 어색하게 웃으면서 조수석에 앉은 나를 쳐다봤다.
“성국… 데니스한테 살살 하란 말이었어. 데니스는 나랑 다르게 예술가잖아. 예술가들 대부분은 예민하고….”
이때 데니스가 끼어들었다.
“마크, 걱정 마. 난 지금 누구보다 채찍이 필요한 상태거든.”
데니스는 단단히 각오한 모양이었다.
[데니스, 채찍이라면 걱정마지 마. 내가 누구보다 잘 휘두르는 거거든.]“참, 성국. 윌리엄은 공항으로 바로 온다는 거지?”
나는 텅 빈 뒷좌석 하나를 쳐다봤다.
원래대로라면 전태국은 저 자리에 앉아서 우리와 같이 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하지만 전태국은 아침 일찍 비장한 얼굴로 임진서 씨를 만나러 나갔다.
“윌리엄이 자기는 언제나 이별 앞에서 지레짐작하고 무서워서 도망쳤는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한 번 더 매달려보고, 아니라면 그때 물러나겠다고.”
“윌리엄이 이번엔 진심이었나 보네.”
“그런 모양이야.”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데니스가 손바닥을 탁! 쳤다.
“나… L.A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모여든 청춘들의 이야기 엔딩이 지금 막 떠올랐어. 뮤지컬 영화라서 해피엔딩을 고민 중이었거든. 근데, 그게 아니어도 될 것 같아. 지금 이 사랑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잖아.”
[흠… 전태국이 데니스의 차기작에 영감을 다 주다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데니스, 그것도 한국 가서 같이 이야기해보자고.”
“어, 그래…. 성국, 네가 <채찍>에 투자한다고 하자마자 그동안 막혀 있던 생각이 막 뚫리는 느낌이야.”
“참, 데니스 이건 한국행 비행기 표. 우리랑 같이 타고 갈 거야.”
나는 데니스에게 비행기표를 내밀었다.
순간 데니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놀라긴….]“성국, 이거… 퍼스트 클래스잖아.”
“나한테 고마워할 건 없어. 원래 윌리엄이랑 같이 다니면 삼전 측에서 다 퍼스트 클래스로 예매해서 줘.”
“대애박….”
“지금부터 너는 내 하버드 동창이기도 하지만, 내가 투자하는 감독이라는 것을 잊지 마.”
“어… 나, 정말 한국 가서 글 열심히 쓸게!”
데니스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비행기표를 꼭 안았다.
[데니스, 원래 뭐든 돈값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 그러니까 너무 감격에 겨워하지 마.]감격한 데니스를 본 마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데니스, 한국에서 돌아올 때도 그런 표정이었으면 좋겠어….”
* * *
전태국은 마지막으로 퍼스트 클래스에 올라탔다.
얼굴을 보니, 보나 마나 차인 게 분명했다.
“형, 괜찮아요?”
“물론 안 괜찮지. 하지만 성국아, 나 정말 이번에는 해볼 만큼 해본 것 같아….”
“잠깐만요!”
데니스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놀란 전태국이 데니스를 쳐다봤다.
“데니스, 왜 그래?”
“태국, 그 이야기 진지하게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그래요.”
[흠… 데니스, 후회할 텐데….]데니스는 임진서에게 대차게 차인 전태국을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은근히 전태국에게 이야기했다.
“형, 데니스가 다음 작품으로 구상 중인 영화가 있어요. 남녀 주인공이 꿈을 찾아 LA에 왔다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 형의 이야기를 해줬더니 엔딩을 이별로 바꾸려고 하거든요.”
순간 전태국의 눈이 반짝거렸다.
“데니스, 지금 그 영화의 모티브를 나로 잡겠다는 거야?”
전태국의 질문에 데니스가 살짝 당황했지만, 나는 얼른 데니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데니스, 눈치 챙겨. 여긴 삼전 그룹이라고. 최대 물주가 될 수도 있어!]“태국, 물론이죠! 실연 이야기 좀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다행히 데니스는 마크처럼 눈치가 없진 않았다.
전태국은 손을 들더니 승무원에게 샴페인을 부탁했다.
“이별 이야기에 술이 빠질 수는 없지.”
“전 빠질게요. 할 일이 많아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태국이 내 어깨를 탁 잡았다.
“성국, 네가 데니스 영화에 투자자라며?”
“이 영화는 아닌데요.”
“첫 영화가 잘되면, 두 번째 영화도 투자해야지. 그러려면 이런 이야기도 같이 들어야 하는 거야.”
[난 이미 영화의 결말을 다 안다고!]나는 한숨을 내뱉고 노트북을 덮었다.
어쩌면 이번 생에서 데니스를 만난 것은 운명과 같은 일인지 모른다.
앞으로 세계적인 감독이 될 이 천재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고 전태국과 데니스를 번갈아 봤다.
“자, 이별 이야기 이제 시작해볼까요?”
전태국은 고개를 살짝 풀더니, 임진서와의 만남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런… 한국 갈 때까지 잠자긴 다 글렀네….]10시간이 넘는 비행 시간 동안 전태국은 임진서 씨와의 만남과 이별을 데니스에게 이야기했고, 심지어 사이사이 몇 번 눈물을 슬쩍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한 후에도 데니스를 붙잡고 계속해서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으며 재벌로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까지 한 후에야 겨우 잠에 든 것 같았다.
* * *
알람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얼른 알람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히 20대는 피로라는 게 없었다.
긴 비행과 샴페인에 떡이 됐는데도, 알람 소리에 번쩍 눈이 떠졌다.
밖에서는 누가 벌써 일어났는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문을 열고 나가자, 애덤이 졸린 얼굴로 서 있었다.
“애덤, 벌써 일어난 거예요?”
“성국… 윌리엄이 밤새 이야기하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서 잠을 설쳤어요.”
“며칠만 이해해줘요.”
“당연히 이해하죠. 이별했으니, 힘들 거예요.”
곧 전태국의 방문이 열리더니 데니스가 하루 사이 반쪽이 된 얼굴로 좀비처럼 걸어 나왔다.
“데니스, 이제 끝났어?”
“어… 대강 끝난 거 같은데. 문제는 그 생각을 내가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했다는 거야.”
나와 애덤은 겨우 웃음을 찾았다.
“데니스, 태국이랑 방 쓰기 힘들면 이야기해. 내가 작업실 겸 숙소 알아볼게.”
“오늘만 참아볼게.”
데니스는 부스스한 얼굴로 물을 들이켜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이때, 박성희 비서가 말끔한 얼굴로 들어왔다.
“성국 군, 찰리 잡스 잘 보내주고 오셨나요?”
“네, 박 비서님.”
“저 찰리 잡스 소식 듣고 마음이 며칠 동안 많이 안 좋았어요.”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참, 도련님은요?”
“방에 있는데, 오늘 출근 어려울 것 같은데요. 비행도 비행이고….”
[아직 술도 안 깼을걸….]박성희 비서의 미간이 구겨졌다.
“성국 군,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도련님이 모르시나요?”
“무슨 날인데요?”
“한국시리즈 첫날이잖아요. 삼전 그룹의 후계자로서 첫 공식 석상에 등장하셔야 하는 날이고요!”
박성희 비서는 다급히 전태국의 방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전태국의 비명이 들렸다.
“안 돼!!!”
* * *
전재형 회장은 굳은 얼굴로 전태국과 나를 번갈아 봤다.
박성희 비서가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술 깨는 수액도 맞히고, 약도 먹였지만, 전태국은 누가 봐도 숙취에 시달리는 몰골이었다.
몸에 걸친 명품도 소용이 없었다.
거기다 전재형 회장에게 맞을 게 두려워서 나까지 동원한 상태였다.
전재형 회장은 VIP 대기실에 있는 야구 방망이를 흘깃 쳐다봤다. 전재형 회장은 단단히 화가 난 상태였다.
삼전에 출근하자마자 출장은 핑계고 임진서 만나러 미국 간 거나, 헤어진 이야기나 모두 전재형 회장의 귀에 들어갔을 건 불 보듯 뻔했다.
“너 도대체 이 꼴이 뭐니?”
“아, 아빠… 그게….”
전태국은 화난 전재형 회장 앞에서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전재형 회장은 야구 방망이를 한 손에 들더니 손바닥으로 치며 다가왔다.
“전태국, 이제 너는 삼전의 얼굴이야. 그런데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다닐래!”
[아무리 그래도 폭력은 아니지, 전재형 회장!]나는 잽싸게 전재형 회장이 휘두르는 야구 방망이를 잡았다.
“전성국 대표는 빠지지. 이건 집안일이네.”
“회장님, 제 이야기 우선 들어보시죠. 이번 한국시리즈를 통해서 형이 경기를 직관하면 삼전이 승리한다, 라는 재미있는 마케팅을 해보면 어떨까요?”
전재형 회장은 어이없단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전 대표, 그게 가능한가?”
[전재형 회장, 내가 있으면 가능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