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5)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75화(375/576)
제375화
마이클 샨델은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마치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있다는 현자의 표정으로.
“성국, 한국에 온 김에 자네를 연구해보고 싶은데. 어떤가?”
“저를요?”
“자네는 ‘페이스 노트’라는 가장 유명한 SNS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닌가. 창립자이기도 하고. 어쩌면 인터넷 세상에서 소통이라는 말을 할 때, 자네는 그 소통 왕국의 국왕쯤 되는 사람이지 않나. 그런 자네가 오프라인에서는 소통이 어렵다니… 신기해서 하는 말이네.”
나를 연구해보겠다는 마이클 샨델의 말에 고민이 됐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날 알고 있다.
내 ‘페이스 노트’는 세상에서 방문자가 가장 많은 ‘페이스 노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내 ‘페이스 노트’에 올라오는 모든 내용은 내가 작성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내가 작성하지 않은 기사들도 있었지만, 그것들도 내가 선택해서 가져오는 것들이니 내 주관이 들어간 건 사실이었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아는 나는 내가 보여주고 싶어 하거나, 내 모습의 일부분이었다.
마이클 샨델은 잠시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었다.
“성국, 고민되나? 누가 자네를 연구한다는 게?”
“물론 그렇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마이클 샨델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성국, 자네는 이제 겨우 20대일세. 그런 자네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통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마이클 샨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유리해 보였다.
“마이클, 오늘 저녁에 저희 회사 회식이 있는데… 거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그러지.”
마이클 샨델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원뿔갈비로 걸어가는 내내 전태국은 이 상황에 대해서 물었다.
“마이클이 너를 관찰한다고 했다고?”
“일정 끝나고 바로 그쪽에서 회식 장소로 올 거예요.”
전태국이 고개를 갸웃했다.
“성국아, 이건 정말 너답지 않은 결정인 것 같아… 넌 누가 널 평가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잖아.”
“그냥 이유를 좀 알고 싶었어요. 제가 정말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요. 그리고 더 나은 CEO가 되려면 소통도 중요하잖아요.”
옆에 있던 김미소 비서가 끼어들었다.
“결국, 대표님이 소통하려는 것은 더 기업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인 거네요?”
[당연하지.]하지만 이렇게 속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나는 최대한 빙긋 웃었다.
“전 그냥 제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고 싶을 따름이에요.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그 순간, 전태국과 김미소 비서는 동시에 표정이 굳더니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설마요….”
“성국아, 소통은 모르겠고… 네가 겸손과 절대 안 어울린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
[알아서들 생각하라고….]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 * *
원뿔갈비에 미리 도착한 직원들은 다소 경직된 얼굴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이때, 마케팅팀의 김성현 팀장이 애덤에게 물었다.
“애덤, 혹시 오늘 성국 대표님 무슨 중대 발표 같은 거 있나요?”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요. 왜요, 김 팀장님?”
“대표님이 원래 목적 없는 일은 잘 안 하시잖아요. 윌리엄마저 삼전으로 가고는 회식한 기억이 없어서요.”
직원들은 갑자기 잡힌 회식 자리에 조금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애덤이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별 뜻 없을 거예요. 어서 고기들이나 많이 먹어요. 요즘 일 때문에 다들 정신없잖아요.”
애덤의 말에도 직원들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직원 한 명이 소리쳤다.
“성국 대표님이다!”
그리고 동시에 모두 일사불란하게 잡담을 멈추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식당 안에는 자욱하게 퍼지는 연기와 치이익- 치이익- 고기 익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 * *
나는 식탁 가운데, 마치 섬처럼 존재하는 내 자리를 봤다.
직원들이 나와 전태국을 위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여기 앉아서는 소통은커녕 전태국 주사나 듣겠는데….]나는 턱을 매만지다가 소주잔을 들었다.
“형, 전 애덤 옆으로 가서 직원들이랑 마실게요.”
“어… 나도 같이 가, 성국아.”
“형은 샘 옆으로 가세요. 회식은 동료들과 그동안 못 마신 술도 마시고, 대화도 나누는 자리잖아요.”
“어… 알았어.”
전태국은 소주잔을 들고 샘 옆으로 가고, 나는 자연스럽게 애덤 옆으로 갔다.
내가 다가가자 애덤이 조용히 속삭였다.
“성국, 직원들이 갑자기 회식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해요.”
“회식한 지 좀 됐잖아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별다른 건 없어요.”
나는 직원들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조금 크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직원들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흠… 다들 아직도 나를 어려워하는군….]애덤은 내 빈 잔에 소주를 채웠다.
“성국, 이거 받아요.”
“고마워요, 애덤.”
이때, 마이클 샨델이 상기된 얼굴로 식당으로 걸어 들어왔다.
“마이클, 여기예요!”
마이클 샨델은 나와 애덤 그리고 김성현 팀장 옆으로 앉았다.
“성국, 내가 많이 늦었나?”
“아니에요. 저도 막 도착했어요. 참, 제가 직원들한테 마이클 소개 좀 할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이클 샨델을 직원들에게 소개했다.
“여기는 하버드에서 정의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시는 정치학과 교수님이세요. 제 스승이기도 하십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강연이 있어서 오셨는데, 한국 회사 문화를 구경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자, 그럼… 그동안 다들 고생 많으셨는데, 편하게 회식 즐기세요!”
“네에!”
마이클 샨델은 흥미롭게 대한민국의 회식 문화까지 살피고 있었다.
“성국,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술을 자주 마시나?”
“자주는 아니에요.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술자리를 가지면서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편하게 나누기는 해요.”
“흠… 흥미롭네. 이런 술자리를 빌려서 서로 못한 말을 한다는 건, 그만큼 한국 조직 문화가 닫혀 있다는 거겠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우리 앞에 앉은 김성현 팀장을 쳐다봤다.
“팀장님, 오늘 자리를 통해서 그동안 하지 못한 말 있으면 편하게 하세요.”
“흠… 그게… 저희 회사는 제가 그동안 다녀본 회사 중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분위기라서요. 직책이 서로 있긴 하지만 누구든 자유롭게 의사소통하는 구조잖아요.”
[흠… 근데 나는 왜 다들 어려워하지?]나는 팔짱을 꼈다.
그러자 김성현 팀장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대표님, 뭐가 마음에 안 드세요?”
“김 팀장님, 여긴 회식 자리에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중요한 일이 없는데요.”
내가 말을 뱉을수록 김성현 팀장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대표님… 제 발언이 마음에 안 드셨나요?”
“아닌데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이 장면을 보고 있던 마이클이 술잔을 들었다.
“제가 영어로 말해도 괜찮으실까요?”
“네에….”
김성현 팀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 샨델은 술잔을 들고 외쳤다.
“자, 오늘은 술이나 마시죠!”
* * *
회식 자리는 점점 무르익어 갔다.
나의 등장에 긴장했던 직원들은 마이클 샨델의 건배사에 술을 마시더니 조금씩 편해지는 것 같았다.
마이클 샨델은 마치 한국 사람처럼 영어가 가능한 직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다녔다.
나 역시 소주잔을 들고 이래저래 다녔지만, 직원들은 내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듯 대답만 할 뿐이었다.
[내가 앵무새도 아니고….]나는 원래의 자리에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소주잔을 쭉 들이켰다.
마이클 샨델이 옆으로 오더니 내 빈 잔에 소주를 따랐다.
“성국, 한국 회식 무척 재미있군. 여기 직원들은 정말 다들 친절하고….”
“마이클, 마이클이 어떻게 저보다 더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 같아요?”
마이클 샨델은 빙긋 웃더니 나를 쳐다봤다.
“성국, 아직도 모르겠나… 자네가 소통을 못 하는 이유를?”
나는 팔짱을 낀 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오늘 정말 열심히 질문했다고!]“성국, 자네의 질문 스타일은 마치 내가 하버드에서 강의할 때랑 비슷하네.”
[강의할 때랑 비슷하다고?]내가 미간을 구기자 마이클 샨델은 소주를 들이켰다.
“성국, 내가 강의할 때 어떻지?”
“계속 질문을 하시잖아요. 학생들의 생각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요.”
“그렇지. 그건 수업이지 않나. 수업은 시간이 정해져 있고, 나눠야 할 명제가 있네.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묻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클 샨델은 강의에서 학생들의 폐부를 찌르는 공격적인 질문을 하기로 유명했다.
“근데 그건 강의에서나 유효한 화법이란 말일세.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내가 강의에서 하듯이 묻고, 답한다면 누가 부담이 돼서 대화를 할 수 있겠나.”
“마이클, 지금 제 대화가 마이클이 강의할 때 하는 화법과 비슷하단 말씀이시죠?”
“그렇지. 자네는 지금 일상 대화에서도 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하고 있지 않나. 보통 사람들은 그런 대화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오늘 뭐 했고, 내일은 뭐 할 거고 같은, 이런 사소한 대화를 더 많이 하지 않나.”
[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듣는 데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마이클.]나는 가만히 소주를 마셨다.
마이클은 나를 힐금 보더니 말을 이었다.
“눈빛 보니 내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눈치 같은데?”
“많이는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 스몰토크는 인생 낭비 같거든요.”
“성국, 이러면 반대로 생각해보게. 자네는 자네가 왜 소통에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고.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싶은 거 아닌가?”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오늘 보니 자네는 평소에 직원들과 그렇게 대화가 활발한 것은 아닌 모양인 것 같은데. 내 추측이 맞나?”
“그것도 맞아요, 마이클.”
“해답이 나온 것 같은데….”
나는 마이클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성국, 사람들은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는 절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네. 자네는 특히나 회사의 대표인데, 그런 대표에게 진실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되겠나?”
“흠… 제가 대표가 아닌 적이 없어서….”
“맙소사!”
마이클 샨델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치더니 웃었다.
“성국, 소통이란 결국,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걸세.”
그때, 전태국이 휘청거리면서 다가왔다.
남의 회사 회식에서 술을 거하게 마신 모양이었다.
“성국아! 회식 자리에서 직원들이랑 이야기를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아… 마이클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야, 다들 네가 그렇게 맨날 심각하니까 어려워하는 거 아니야?”
전태국은 술에 취해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전태국, 아주 광고를 하지 그래?!]“성국아, 그러지 말고 우리 야자타임 해보는 거 어때? 어? 저번에 우리 부서 회식 때도 했는데, 반응 좋았어!”
“하….”
[야자타임이라… 그건 내 취향이 아닌데….]어느 정도 술에 오른 직원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주시했다.
모두들 해보고 싶은 눈치였다.
[그럼, 어쩔 수 없지.]“이제부터 야자타임 해볼까요?”
야자타임이라는 말에 직원들은 처음에는 서로의 눈치만 바라봤다.
[자, 어서 말들 좀 해보라고. 난 아주 관대하다고!]이때, 눈치를 보던 김성현 팀장이 입을 열었다.
“성국아, 이런 자리 좀 자주 만들어라. 맨날 일만 하지 말고. 어?”
“그래. 대신 일은 제대로 하고 회식하자, 성현아.”
내 반응에 직원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러자 곧 여기저기서 속내들이 튀어나왔다.
“전성국, 난 네 얼굴이 제일 부러워!”
“나도 거울 보면서 항상 그 생각해.”
여기저기서 웃음도 터졌다.
“성국아, 우리 워크샵도 좀 가자!”
나는 이 질문에 얼른 전태국을 쳐다봤다.
어쩌면 내가 이번 생에서 전태국에게 반말로 이야기할 유일한 기회인지도 모른다.
“태국아, 삼전에서 워크샵 지원해줄 거지?”
“어… 그래.”
전태국은 얼떨결에 대답했고, 이 분위기를 타고 여기저기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잠시 후, 나에 대한 공격이 끝나자 마이클이 웃으면서 내 어깨를 잡았다.
“성국, 태국이 나보다 나은걸.”
나는 술에 취한 채 테이블에 곯아떨어진 전태국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서당 개,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