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6)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76화(376/576)
제376화
나는 차가운 물을 쭉 들이켰다.
마이클 샨델이 부스스한 얼굴로 내 방에서 나왔다.
“마이클, 물 한잔하실래요?”
“안 그래도 목이 타서 깼다네. 소주는 정말 위대한 술인 것 같아. 내가 언제 어떻게 취하는지 몰랐다니까….”
마이클 샨델도 어제 회식에서 꽤나 술을 마셨다.
“성국, 잠자리는 괜찮았나?”
“전 괜찮았어요. 마이클이야말로 안 불편했어요?”
“불편하긴. 자네가 방을 내줘서 나야 잘 잤지.”
어젯밤 회식이 길어져서 마이클 샨델은 호텔 대신 우리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나는 마이클 샨델에게 침실을 내주고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마이클 샨델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입가의 물을 한 손으로 쓱 닦았다.
“성국,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편하게 말씀하세요, 마이클.”
“난 자네가 어제 한 행동 중에 몇 가지가 의문이 있네. 그중 하나가 바로 전태국에 대한 태도라고 할까. 자네는 전태국을 백 프로 신뢰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챙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거야 전생의 업보니까…. 거기다 부족한 삼전 후계자니까.]이건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마이클, 마이클은 행동 하나하나에 의문을 가지는 것 같아요. 사람의 행동은 어떨 땐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잖아요. 마이클이 하버드에서 하는 강의도 그런 내용을 다루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참, 마이클. 제가 제안 하나 드려도 될까요?”
“무슨 제안인가?”
“전 하버드에서 들은 모든 수업 중에서 마이클의 강의가 제일 흥미로웠어요. 마이클은 항상 도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명제를 놓고 학생들의 의견을 듣잖아요. 그러면서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요.”
“그렇지.”
마이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내용을 책으로 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 좋은 강의를 하버드생들만 듣는 게 언제나 아쉬웠거든요.”
마이클 샨델은 고민이 되는지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흠… 좋은 제안이기는 하지만 내 강의가 거의 문답에 가까운 형식이라 이걸 글로 옮겼을 때, 강의 때만큼 효과적으로 내용이 전달될지 자신이 없기도 하고….”
“그건 우선 출판 결심을 하고 출판사와 같이 걱정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마이클 샨델은 빙긋 웃었다.
“성국, 자네는 정말 못 말리는 지점이 있다니까. 어쩌면 자네의 그런 추진력이 사업을 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네.”
“말 나온 김에 제가 뉴욕에서 투자사를 운영 중인 피터에게 연락해서 출판사를 연결해드릴게요.”
“흠….”
마이클 샨델은 망설였다.
[마이클, 고민하지 마! 당신의 책은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다고!]“마이클, 우선 출판사라도 만나보세요.”
“흠…. 그러지.”
마이클은 고심 끝에 승낙했다.
“하지만 성국, 나도 조건이 있네. 자네가 내 강의 때 와서 한번 강연을 해줬으면 하네.”
“제가요?”
“강연이라기보다는 자네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학생들과 명제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거지. 자네는 요즘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페이스 노트’와 인스타그림 그리고 너튜브의 대표 아닌가. SNS는 분명 나를 드러내는 소통의 장이지만 도덕적인 문제도 피할 수 없는 지점이 있거든.”
“마이클, ‘페이스 노트’가 상장하면 그때 하버드에서 강연해도 될까요?”
“조건에 조건을 붙이는 것도 자네 성격이겠지?”
“이게 사업가 기질이거든요. 뭐든 주고받아야죠.”
“좋네. 상장하면 그때 하버드에서 꼭 같이 강연하자고.”
“네, 마이클. 그럼, 지금 바로 피터에게 연락할게요.”
나는 곧바로 피터에게 연락해서 마이클 샨델의 책 논의를 했고, 피터는 곧바로 출판사 여러 곳을 추천해줬다.
“마이클, 미국 돌아가는 대로 출판사 직원이 찾아갈 거예요.”
“자네의 추진력은 정말… 내가 배우고 싶은 부분이네.”
“마이클, 인생은 길지 않잖아요. 주저하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요.”
마이클 샨델이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자네 말을 종종 노년의 우리 할아버지가 하시는 말씀 같다니까….”
[마이클, 인생 두 번 살다 보면 다 알게 되는 거야….]달칵.
이때, 방문이 열리면서 전태국이 부스스한 얼굴로 나왔다.
“형, 괜찮아요?”
“안 괜찮지. 박 비서한테 해장국 사 오라고 했어.”
전태국은 어제 진짜 개가 돼서 네발로 집에 기어 들어오긴 했다.
“성국아, 근데 말이야. 어제 회식할 때 누가 나한테 서당 개. 서당 개 했거든.”
뜨끔.
설마 내가 그런 거 아는 건가?
나는 곯아떨어진 전태국의 귓가에 서당 개라고 중얼거렸었다.
“글쎄요, 형…. 그냥 꿈 아니에요?”
나는 일부러 무심히 이야기했다.
“그런가… 그래도 서당 개는 뭔가 웃기잖아. 개면 개지. 서당 개는 또 뭐야….”
[서당 개가 귀가 밝군. 앞으로는 말조심해야겠네.]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생수 뚜껑을 열었다.
* * *
똑. 똑.
나는 애덤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애덤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나는 문을 열고 애덤의 사무실에 조용히 들어갔다.
“성국, 평소와 달리 오늘 뭔가 조심스러운데요. 무슨 일이에요?”
“애덤… 개인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성국… 어제 제가 야자타임 때 제발 일 좀 시키지 말라고 한 말 때문에 보복하는 건 아니죠?”
애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야자타임 때 애덤이 일이 너무 많다며 한 말이 떠올랐다.
“서, 성국… 그건 어제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 거예요. 전 일하는 거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딱히 할 일도 없고요.”
“흠… 그럼, 우선 일 시키기 전에 당근을 줄게요.”
“무슨 당근이요?”
“미쓰에잇이 다음 달에 잠실에서 콘서트하는데, 어때요?”
“성국! 무슨 일이든지 다 시켜주세요!”
애덤에게는 미쓰에잇만 한 당근도 없었다.
“애덤, 앱을 하나 개발하고 싶은데요.”
“띡똑 말고 다른 앱을 또 개발한다고요?”
“네. 근데 이건 띡똑 같은 수익성 SNS가 아니고요. 그냥 회사 내부용 앱이라고 할까요.”
애덤은 고개를 갸웃했다.
“성국, 내부용 앱이요?”
“어제 보니까 직원들이 평소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저와의 소통도 그렇지만 다른 직원과의 소통도 잘 안 되는 것 같아서요. 우선은 저희 알파 직원들만 공유하는 블라인드 앱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요.”
“익명게시판을 말하는 거죠, 성국?”
“네. 그걸 알파 직원들하고만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흠… 괜찮은 생각이네요. 근데, 그걸 성국이 만들면 직원들이 나쁜 말 쓰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저희 회사 직원 이제 50여 명이잖아요. 솔직히 누가 썼는지 찾다 보면 다 알지 않을까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꼈다.
“애덤, 그러니까 이 블라인드 앱은 내가 개발한 것을 아무도 몰라야 하죠. 물론 제가 블라인드 앱이라는 존재를 안다는 것도 직원들은 아무도 몰라야 하고요.”
“그러니까… 성국이 말하는 건… 제가 개발해서 뿌리고, 직원들끼리만 공유되는 앱이라고 말까지 하라는 건가요?”
나는 애덤의 어깨를 탁 잡았다.
“애덤, 미쓰에잇의 팬사인회가 콘서트 이후에 있다는 정보를 제가 입수했거든요. 미쓰에잇 팬사인회는 콘서트 티켓 끊는 것보다 더 힘든 거 알죠, 애덤?”
“성국… 이 어려운 부탁을 샘이 아니라 제가 하는 이유는… 당연히 제가… 미쓰에잇에 약하기 때문이죠?”
애덤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애덤, 알면서 왜 물어요.”
“하아… 성국, 제가 이 제안을 거절하면….”
“앞으로 애덤 인생에 한국에서 덕질은 불가능할 거예요. 그 높은 경쟁률을 뚫으려면 아마 회사 생활하면서 하기는 힘들겠죠?”
“성국… 제가 성국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러 개지만, 그중 가장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는데요.”
애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성국은 정말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약점을 정말 잘 이용한다니까요.”
“그게 왜 절 좋아하는 이유죠?”
“보통 사람들은… 못 그러거든요.”
애덤은 배시시 웃었다.
나는 애덤에게 손을 내밀었다.
“애덤, 그럼 우리의 거래를 성립한 거죠?”
“물론이죠!”
애덤은 굳게 내 손을 잡았다.
* * *
블라인드 앱을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애덤은 며칠 밤을 새워서 블라인드 앱을 만들고, 조용히 사내 메신저로 이 앱을 전파했다.
– 익명으로 우리끼리 소통해요. 대표님은 절대 모르는 앱 <당나귀 귀>입니다!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양심의 가책이 조금 느낀 애덤이지만,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앱이라는 생각에 애덤은 과감하게 직원들에게 이 앱을 소개했다.
<당나귀 귀>라는 앱의 이름은 성국이 삼국유사의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었다.
애덤은 조용히 성국에게도 링크를 하나 보냈다.
– 성국, 직원들 대부분 가입했어요. 가입자 수가 직원 수보다 많으면 곤란할 것 같으니 제 아이디와 비번으로 접속하세요. 제 닉네임은 ‘월급노예’입니다.
* * *
“월급노예라고?”
나는 미간이 구겨졌다.
“애덤, 말은 바로 해야지. 월급의 노예가 아니라 미쓰에잇의 노예지.”
나는 애덤이 보내준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당나귀 귀>를 다운받았다.
그리고 애덤의 말대로 애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로 <당나귀 귀>에 접속했다.
이미 많은 직원들이 <당나귀 귀>에 들어온 상태였다. 그리고 글도 몇 개 올라와 있었다.
– 나 탕비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직하고 싶잖아.
이런 제목의 글이 보였다.
내용은 탕비실의 음료와 과자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었다. 밑으로 댓글들도 달렸다.
– 탕비실이 풍요롭다고 좋은 회사는 아니잖아.
– 나도 우리 회사 탕비실 좀 빈약한 거 같아. 우유 정도는 있으면 좋을 듯.
– 탕비실 루팡은 되지 말자.
– 과자 2종 정도는 더 추가해줘도 되지 않을까? 회의할 때 당 딸린다고. 성국의 말이 오죽 많아야지.
[탕비실이 그렇게 빈약한가? 그리고… 내가 말이 많다고?!]나는 잠시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커피를 내리는 척 탕비실로 향했다.
그리고 커피를 내리면서 구비된 음료와 과자를 훑었다.
각종 티와 쿠키 종류가 있었다.
손이 자주 가는 것들은 아니었다.
이때, 애덤이 탕비실에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성국….”
“애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네요.”
“그, 그게… 혹시 <당나귀 귀>에 올라온 글 보고 바로 온 거예요?”
애덤은 아무도 못 듣게 속삭였다.
“애덤, 내가 <당나귀 귀> 본다는 사실은 애덤만 알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나도 커피는 자주 내려 마시잖아요.”
“아하… 네.”
“애덤, 이런 걸 보고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무심하게 행동해요.”
“네… 성국.”
애덤은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았다.
나는 다시 탕비실을 쭉 훑었다.
[쿠키와 우유 정도는 보강해도 좋을 것 같네….]* * *
– 대박, 내가 어제 탕비실 빈약하다고 올렸는데. 오늘 아침에 탕비실 가보니 우유랑 쿠키 추가됐어요!
– 더군다나 김영* 제과점 쿠키. 이집 초코칩 쿠키 내 최애인데.
– 우유도 일반이랑 저지방 두 종류임!!!
– 설마 애덤이나 샘이 이거 보고 성국에게 건의한 건가?
– 설마에 설마를 더해서… 설마… 이거 성국도 보고 있는 거 아니야?
– 그럴 리가 없어. 인원수가 딱 우리 직원 수야.
– 그렇긴 한데… 뭔가 수상하단 말이야.
– 우리 그럼 다음에 갈 워크샵 제주도로 가고 싶다고 해볼까?
– 제주도가 뭐야. 발리 가자. 발리!
나는 퇴근 후에 <당나귀 귀>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을 쭉 훑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내가 너무 빨리 움직인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좀 천천히 반영해야겠군.]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똑. 똑. 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면서 데니스가 들어왔다.
데니스의 두 눈은 퀭했고, 머리는 기름진 상태였다.
그사이 데니스는 시나리오를 쓴다고 방에 박혀서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다.
“데니스, 밤에 무슨 일이야?”
“성국! 내가 드디어 <채찍> 시나리오를 끝냈어!!!”
데니스는 감격에 싸인 얼굴로 나에게 A4 용지 더미를 내밀었다.
[흠…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영화 투자를 시작해 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