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77)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77화(377/576)
제377화
탁- 나는 <채찍>의 마지막 장을 읽고 시나리오를 덮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데니스가 시나리오를 건넨 지 3시간 만이었다.
나는 <채찍>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한 자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 내가 느낀 이 감정을 데니스에게 이야기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데니스 역시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수능 성적표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데니스는 초조하게 앉아 있었다.
“성국… 다 읽었어?”
“어, 방금 다 읽었어.”
“성국… 어땠어?”
“데니스, 내 감정? 아니면 앞으로의 플랜? 어떤 것을 원해?”
“어… 그게… 둘 다 말해줘.”
“우선 <채찍> 시나리오는 끝내주고, 나는 지금 바로 투자사에 연락해서 투자해 줄 곳을 찾을 거야.”
데니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데니스, 뭘 놀래. 내가 본 영화만큼 시나리오도 원래 좋았네.]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성국… 진심이야?”
“당연하지. 자, 이제 난 ‘페이스 노트’ 투자자인 피터에게 연락할 거야.”
“지금?”
“뉴욕은 지금 낮이잖아.”
나는 얼른 피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성국, 요즘 전화를 자주 하네.
전화기 너머로 인자한 피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에는 마이클 샨델의 출판 때문에 연락을 했었다.
“요즘 제가 부쩍 부탁이 많아지네요. 피터, 제가 예전에 영화감독 지망생인 하버드 기숙사 룸메이트 이야기를 드렸었죠?”
– 기억하네. 이름이….
“데니스 샤젤이요. 제가 그 친구 시나리오를 읽어봤는데, 너무 좋아서요. 괜찮다면 제가 직접 투자도 하고 투자자들도 더 모으고 싶은데요.”
– 성국, 자네가 직접 투자까지 할 정도로 시나리오가 좋은가?
“네!”
나는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듣고 있는 데니스의 얼굴도 점점 밝아졌다.
– 성국, 자네 목소리를 들으니 투자할 만한 영화인 모양이네. 우선 자네가 한국에 있으니, 한국 영화 투자사 중 아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 그곳 먼저 만나볼 텐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투자는 국적 상관없이 받는 게 요즘 추세거든.
“전, 좋습니다.”
– 그럼, 내가 연락해놓겠네.
피터와의 전화는 유쾌하게 끝났다.
전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데니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데니스, 피터가 우선 한국 투자 회사를 소개해준대.”
“정말?”
“응. 이제 우린 막 첫발을 내딛은 거야.”
“성국, 나 너무 떨려. 우리 잘될까?”
“데니스, 이 영화 분명 잘될 거야!”
나는 확신했다.
* * *
“안녕하세요. CF 영화팀의 배수빈 팀장입니다.”
단발머리에 작은 키. 하지만 다부진 인상의 배수빈 팀장이 인사를 했다.
피터가 소개해준 곳은 CF 엔터테인먼트로 영화의 투자, 배급을 맡아서 하는 한국 내 가장 큰 투자 회사 중 하나였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까지 소유하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이곳의 투자를 받는 게 무척이나 중요한 일 중에 하나였다.
나는 얼른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제 친구이자 <채찍>의 시나리오를 쓴 데니스 샤젤입니다.”
“안녕하세요, 데니스 샤젤입니다.”
데니스도 나를 따라 인사를 했다.
“두 분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네요. 시나리오는 정말 잘 읽었습니다.”
배수빈 팀장은 형식적인 인사를 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까?]우리는 우선 CF 엔터테인먼트의 회의실에 앉았다.
그리고 서로의 명함을 교환하는 한국식 인사를 했다.
“전성국 대표님같이 유명한 분을 실제로 뵙다니, 전… 너무 영광이네요.”
[내가 좀 유명하지. 세계적으로….]배수빈 팀장은 생각보다 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때부터 팬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 정말 동생으로 삼고 싶은 아기였거든요.”
“그런 말 자주 듣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크시다니. 사실 전성국 대표님 기사 뜰 때마다 저희끼리 그래요. 이런 얼굴로 배우 안 하고 뭐 하냐고….”
데니스에게 이 이야기를 영어로 통역해줬더니, 나를 아주 우습게 쳐다보긴 했다.
“데니스, 넌 너무 옛날부터 나를 봐와서 잘 모르는 거야.”
“성국, 네가 잘생긴 건 잘 알아. 다만 너의 잘난 척은 정말 겪어도 겪어도 적응이 어려울 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배수빈 팀장과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팀장님, 시나리오는 어떠셨어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전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배수빈 팀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근데….”
[근데, 라고? 이 말 뒤에 좋은 말이 나올 리가 없는데….]나는 살짝 긴장됐다.
“저와 팀원들은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데, 윗분들은 모르겠습니다.”
“아직 윗분들까지 다 읽으신 건 아니죠?”
“네…”
배수빈은 말끝을 살짝 흐렸다.
윗선의 누군가 읽고 안 좋은 이야기를 한 모양이긴 했다.
배수빈은 다시 애써 밝은 목소리를 대화를 이었다.
“아직 다 읽으신 것도 아니고요. 저희 팀원들은 모두 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지금 부대표님이랑 출장 중이시라 의견이 취합이 어려워서요.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건 어렵지 않지만… 읽으신 분의 의견 좀 저희에게 미리 귀띔해 주세요. 그래야 저희도 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배수빈 팀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안 봐도 대충 짐작 가는 이유가 있긴 했다.
“여기까지 오셨고 하니 부정적인 의견 몇 개 있었던 거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시나리오에 대한 평가는 모두 좋아요. 하지만 특히 윗분들이 우려하는 것이 이게 돈이 되는 시나리오인지 하는 문제이죠. 우선 음악 영화에다가, 어디를 봐도 볼거리가 없잖아요.”
“한국은 세계적으로 뮤지컬 같은 음악 영화가 잘되는 나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 영화들은 노래가 있잖아요. 솔직히 재즈는 한국 사람들에게 생소하기도 하고요.”
배수빈 팀장은 은근히 회사의 입장을 말하고 있었다.
“저는 이 영화가 음악을 기초로 한 사제지간의 이야기. 직장 상사와 그 아래 직원의 이야기 등. 우리 주변의 여러 관계성을 대변한다고 보거든요. 어떤 사회 안에서 성장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를 이끌어줄 누군가를 만나는 게 중요하지만, 그 사람이 사이코라면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죠.”
“저희도 그 지점을 매우 흥미롭게 봤어요. 하지만… 다른 의견으로는 음악 영화를 신인 감독이 이끌어나갈 수 있냐 하는 문제를 많이들 지적하시더라고요.”
배수빈 팀장과 팀원들이 아무리 좋게 읽었다고 해도, 결국 이런 조직 안에서 결정하는 사람은 내가 오늘 얼굴도 보지 못한 윗사람들이었다.
배수빈 팀장은 윗사람들의 의견이 부정적일 것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건 곧 결과도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배수빈 팀장님, 누구나 신인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신인이라고 우려만 하다 보면 새로운 인재는 나오지 않는 법이잖아요.”
“전성국 대표님, 혹시 제 말이 기분 나쁘셨나요?”
“아닙니다. 그저 CF가 어떤 조직인지 조금 알 것 같아서요.”
데니스는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따라 일어섰다.
이때, 회의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안경을 낀 젊은 남자 직원이 고개를 내밀었다.
“팀장님, 황서혁 감독님 오셨어요.”
“아, 네… 곧 나가볼게요.”
배수빈 팀장이 일어서자, 남자 직원이 우리를 쳐다봤다.
“팀장님이 지금 전성국 대표님이랑 대화 중이라고 하니까 황서혁 감독님이 전성국 대표님 꼭 한번 뵙고 싶었다고 말씀 좀 전해달라고 하시네요.”
[황서혁 감독이라…. 이름이 익은데….]이때, 배수빈 팀장이 나섰다.
“전 대표님, 황서혁 감독님 아시죠?”
“이름은 많은 들어봤는데요.”
“올해 개봉한 <고라니>라는 영화 연출하신 분이에요.”
“<고라니>라고 하면… 그 특수학교에서 일어났던 실화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말씀하시는 거죠?”
“어머, 대표님도 보셨어요?”
“물론이죠.”
<고라니> 감독이라니….
황서혁 감독은 10년 후에 <문어 게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진다.
나는 얼른 배수빈 팀장을 쳐다봤다.
“황서혁 감독님은 저도 뵙고 싶습니다. 데니스랑 함께요.”
“아,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황서혁 감독님이랑 저희가 좀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네.”
배수빈 팀장이 나가고 나는 데니스에게 지금 상황을 알려줬다.
기대에 들떴던 데니스의 어깨가 축 처졌다.
“데니스, 일희일비하지 마.”
“결국, 또… 돈이 안 되는 영화라 투자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기 위한 연막이잖아.”
[이걸 어떻게 설명하나… 내가 살아봐서 결론을 안다고 할 수도 없고….]도대체 데니스를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국… 난 정말 안 되나 봐. 할리우드에서도 그렇게 퇴짜 맞았는데, 한국에서라고 되겠어….”
“데니스, 황서혁 감독을 한번 만나보자.”
“황서혁 감독이 누구야?”
“올해 <고라니>라고 한국에서 꽤 흥행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야.”
[그리고 앞으로 세계적으로 더 유명해질 감독이고!]“이미 작품을 여러 편 하신 분이니,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 거야.”
“어, 그래…. 같은 감독이 어쩌면 제일 정확하게 상황을 이야기해줄 수도 있을지도 모르지.”
데니스는 애써 기운을 차리려고 했다.
* * *
황서혁 감독은 밝은 얼굴로 회의실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데니스랑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참, 여기는 제 하버드 동창이자 영화감독 지망생인 데니스 샤젤입니다.”
데니스도 황서혁 감독이랑 인사를 했다.
“제가 전성국 대표님 팬이거든요.”
“그 반대인 것 같은데요.”
[나, <문어 게임> 완전 좋아했어, 황 감독.]“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다 민망하네요. 전성국 대표님 같은 천재를 다룬 이야기를 한번 꼭 해보고 싶은 게 제 소원이거든요.”
[그건 불가능해, 황 감독. 내 인생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거든.]황서혁 감독과 나는 짧은 인사를 하고 데니스의 영화 <채찍>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황서혁 감독은 자리에서 시나리오 몇 장을 훑어보더니 심각한 얼굴로 나와 데니스를 번갈아 봤다.
“저 혹시… 시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앞에 몇 장만 봤는데도, 제가 이 자리에서 시나리오 읽어보고 싶네요.”
“감독님, 한 시간이면 될까요?”
“네, 충분할 것 같습니다.”
* * *
한 시간 후, 나와 데니스는 떨리는 마음으로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분명 이 영화가 잘될 것을 다 아는데도, 데니스가 하도 긴장해서인지 나까지 떨렸다.
우리가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막 황서혁 감독이 <채찍>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전 대표님, 데니스…. 시나리오 정말 재미있네요.”
[그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다고, 황서혁 감독!]황서혁 감독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마 투자는 어려울 거예요. CF도 그런 입장일 거고요.”
[그 이야기는 벌써 수없이 들었다니까!]“제 생각에는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을 단편으로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신인 감독이 음악 영화를 한다는 것에 아마 많은 우려가 있을 거예요. 저 역시 많은 난관이 있었고요. 하지만 그 난관을 저희가 비난만 할 수는 없거든요. 난관은 뛰어넘어야 하는 법이고요.”
황서혁 감독은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제 말은 단편으로 클라이막스를 찍어서 데니스의 연출력도 증명하고, 이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도 보여준다면 분명 투자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황 감독, 역시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