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83)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83화(383/576)
제383화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전민국은 한 시간 전부터 나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형, 웨이브가 그게 뭐야. 머리, 가슴, 배! 이게 왜 안 돼? 어? 형, 지금 완전 지렁이인 거 알아? 지.렁.이!”
“헉- 헉- 헉- 헉-.”
나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전민국을 매섭게 올려다봤다.
이마에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형, 겨우 한 시간하고 지금 쉬겠다는 거야?”
“…….”
[이 녀석 나에게 복수하는 건가….]그동안 민국이에게 한 수많은 악행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밥값 하라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녀석을 방바닥에 구르게 했고, 어릴 적부터 영어 공부 좀 제대로 하라며 스파르타식 어학연수 학원에 집어넣었다.
[전민국, 그거 다 너 잘되라고 한 거야….]전민국이를 허리에 손을 얹고 헉헉거리는 나를 내려다봤다.
“형, 형 팬클럽 창단식인데 지렁이 기어가듯 춤춰서 되겠어? 내가 소리 지르는 건 다 형 잘되라고 하는 일이야.”
[이젠 내 대사까지 빼앗아가는군….]나는 겨우 허리를 폈다.
“내가 이걸로 지칠 것 같아, 전민국? 다시 해봐!”
“오늘 어디 끝까지 가보자, 형!”
* * *
팬클럽 창단식 D-3.
<세븐즈>의 반지하 연습실.
연습이 모두 끝나고 나와 민국이만이 연습실에 남아 있었다.
민국이는 고민스러운 얼굴로 CD 한 장을 들었다.
“내가 그동안 형의 춤 실력과 노래 실력을 지켜본 결과, 아무래도 고난도의 안무를 요하는 노래는 안 될 것 같아. 이제 앞으로 삼 일인데, 지렁이 수준은 겨우 벗어났으니 이 노래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
“무슨 노래인데?”
“우선 내가 이 노래를 선곡한 이유를 말해줄게.”
전민국은 나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쳐준단 이유로 점점 거만해졌다.
“그래, 어디 들어보자.”
“이 노래를 선곡한 이유는 형의 춤과 노래 실력으로 커버하기에는 남자 아이돌 그룹은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에서고.”
“걸 그룹 노래라는 말이야?”
“키를 조금 낮추면 될 거야. 뭐, 발랄하고 그런 노래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결정적으로 이 노래를 선곡한 이유는 가사가 딱 형 이야기거든.”
“내 이야기라고?”
“무슨 노래인데?”
“바로… 2NE2의 <내가 제일 잘났어>!”
민국이는 바로 음악을 틀었다.
라디오에서 몇 번 흘러나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나는 노래였다.
가사를 새기면서 들어보니, 민국이 말대로 모든 게 내 가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네. 내가 좀 죽여주지. 그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드네.”
민국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쩜 예상이 한 치도 안 빗나가지. 형이 이 노래 완전 마음에 들어 할 줄 알았다니까.”
“다 맞는 말인데, 뭐. 내가 좀 죽여주는 것도 사실이고, 난 이등도 해본 적이 없거든. 중간에 이 가사만 남녀를 바꾸면 되겠네. 여자들은 날 뒤돌아보고, 남자들은 따라 해로.”
민국이는 갑자기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뭐야?”
“오늘부터 레슨 난도가 상승해서 레슨비도 상승했거든.”
[전민국, 아주 날 벗겨 먹을 작정이구나.]“그래서 얼만데?”
민국이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시간당 삼십만 원!”
잠시 고민이 됐다.
전민국에게 삼십만 원을 주고 욕먹으며 과연 춤과 노래를 배우는 게 최선일까?
정우나 재희에게 부탁하면 공짜로도 해줄 수 있을 테지만, 현재 나의 실력을 들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면 조건을 걸어야지.
“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지금부터 지렁이란 말 쓰지 마.”
“흠….”
민국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또 있어.”
“뭔 조건이 이리 많아?”
“시간당 삼십만 원 받으려면 이 정도 각오는 해야지. 세상에 공짜 없다, 민국아.”
“어서 말해봐, 형.”
“레슨은 무조건 존댓말로 할 것.”
민국이의 두 귀가 붉어지는 게 보였다.
민국이는 열 받으면 귀가 붉어졌다.
나는 태연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찾았다.
“싫으면 말든가. 시간당 삼십만 원이면 나에게 레슨해 줄 사람은 사방에 널렸어.”
민국이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노려봤다.
[어쭈, 안 잡아?]나는 겉옷을 입고, 지퍼를 쭉 올리기 시작했다. 평소보다는 조금 느리게.
하지만 민국이는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다.
“정우한테 부탁해야겠네….”
“그건 안 돼!”
“안 돼?”
“안 됩…니다.”
“그럼, 레슨 시작하지. 선생.”
“네… 그러지요, 형아님.”
민국이는 억지로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 * *
팬클럽 창단식 D-2.
“아, 대체 노래를 이렇게 부르면 어쩌자는 거야…겁니까, 형아님?”
“선생, 좀 제대로 가르쳐봐. 선생, 내가 하버드 출신의 천재인데, 이 쉬운 악보를 제대로 파악 못 하는 것은 선생이 능력 부족 아니야?”
“형아님, 제가 지금 악보 설명을 다섯 번 했거든요.”
민국이는 이를 꽉 물고 대꾸했다.
확실히 존댓말을 쓰니 화낼 때도 화내는 느낌이 덜했다.
[평소에도 존댓말 쓰라고 할까?]나는 다시 악보를 쳐다봤다.
“선생, 여기서부터 다시 불러 봐줘. 따라 할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잘 들어요, 형아님.”
“어서 부르기나 해.”
그 이후에도 민국이의 존댓말 레슨은 계속됐다.
“형아님, 지금 엇박이잖아요. 제발 박자 좀 맞추세요. 제발요!!!”
* * *
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드디어 ‘세질미성국’의 창단일이 다가왔다.
똑. 똑. 똑.
[또 전태국이겠지….]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데니스였다.
“성국아, 나 들어가.”
“어.”
데니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데니스는 <세븐즈>의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에 아직 미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데니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민국이가 어제 뮤직비디오 회의하는데, 너 오늘 팬클럽 창단식에서 춤하고 노래 부른다고 그거 촬영 좀 해달라고 부탁했어.”
“민국이가?”
“응. 자기가 일주일 만에 지렁이를 사람으로 환골탈태 시켰다고 엄청 자랑했어.”
[또 지렁이라니! 오늘 제대로 보여주겠어!]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데니스, 이따가 잘 촬영해. 내가 제대로 보여줄게!”
“알았어. 흑역사가 될지 레전드가 될지…. 기대할게.”
[물론 레전드지!]* * *
삼전 아트홀 대기실에서 나는 조금 긴장한 채 몸을 풀고 있었다.
카페장을 하다가 팬클럽 초대 회장을 맡게 된 이현희가 호들갑을 떨면서 들어왔다.
“전 대표님, 지금 삼전 아트홀 대회의장이 꽉 찼어요. 카페에서 신청받을 때만 해도 크리스마스이브라서 안 오는 사람들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빈자리가 없어요.”
그 말에 살짝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늘 준비하신 노래랑 춤. 기대해도 되는 거죠?”
“물론이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지만, 내심 심장이 벌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나는 무대 체질인데.]“대표님, 정말 잘 부탁드려요! 제가 나가서 인사하고, 대표님 부르면 나오셔서 그때 준비한 춤과 노래해 주시고, 대표님에 대해서 낱낱이 알려드리는 시간 가질 거예요. 그리고 끝에는 질의응답 시간도 있으니까 마음의 준비 해주세요!”
“걱정 마세요.”
“역시 전 대표님은 항상 당당하셔서 너무 든든해요!”
이현희는 시계를 보더니 다급히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내 심장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이때,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민국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전민국, 어쩐 일이야?”
“형아한테 레슨비 챙겼는데, 제대로 하는지 끝까지 지켜봐야지.”
“걱정하지 마, 나 전성국이야.”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전민국이 고개를 젓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잘난 척은. 형아, 이거 먹어.”
“이게 뭔데?”
“청심환.”
“나 전성국이야, 이런 거 필요 없어.”
“형이 회사 대표고, 잘나가는 사람인 건 알지만… 가수는 아니잖아. 본업이 아닌 걸로 무대 오르면 엄청 떨릴 거야. 어서 먹어.”
[흠… 역시 동생밖에 없는 건가.]나는 민국이가 내민 청심환을 먹었다.
“형, 부모님이 크리스마스이브는 가족들과 보내야 한다고 팬클럽 창단식 끝나고 학원 간 지희 데리고 집으로 오래.”
“그래, 아버지 보쌈도 오랜만에 먹고 싶네.”
민국이는 괜히 쭈뼛쭈뼛 내 주위를 맴돌았다.
“전민국,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어서 나가.”
“형… 내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데….”
“뭔데?”
그 순간 민국이가 두 손을 불끈 쥐더니 외쳤다.
“형아, 파이팅!”
* * *
청심환 덕분인지, 민국이의 응원 덕분인지 <내가 제일 잘났어> 무대는 환상적이었다.
안무도 한 군데도 틀리지 않았고, 노래도 잘 불렀다.
[역시 실력이 녹슬지 않았어.]민국이에게 일주일 동안 레슨을 받은 게 나의 오래전 연습생 시절 기억을 되돌려준 것만 같았다.
‘세젤미성국’의 팬클럽 창단식도 성황리에 끝이 났다.
언론사까지 취재를 나와서 창단식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에 기사가 속속 올라왔다.
– <내가 제일 잘났어!> 전성국 대표의 완벽한 춤과 노래!
데니스가 찍은 영상은 실시간으로 너튜브로 나갔다.
안타까운 건 놀리는 댓글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었다.
– 우리 아들이 말 안 듣고, 남편이 말 안 들으면 와서 볼 영상이 생김. 나 지금 배꼽 빠지는 중.
– 다시는 춤은 안 추는 것으로 ㅋㅋㅋ
– 노래와 춤은 안습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난 거 인정.
– 전성국에게 대한민국은 좁지, 세계에서 제일 잘났어!
그리고 내가 댓글을 다 읽을 새도 없이 전태국과 애덤, 샘 그리고 데니스까지 쳐들어왔다.
“성국아, 다시 춤추지 마!”
“노래도 하지 마요, 성국.”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들 크리스마스이브에 내 팬클럽 창단식에 오고. 약속 없어요?”
“성국아, 이제 당연한 건 좀 묻지 마. 어차피 이거 끝나고 너도 집에 갈 거잖아. 너희 어머님이 우리도 다 와서 보쌈 먹으래….”
[크리스마스이브도 이들과 지내야 하는 건가….]벌써 한숨이 났다.
“전 민국이랑 같이 지희 데리고 갈 테니까, 먼저 집에 가 있어요.”
* * *
나는 지희가 다니는 학원 앞에 차를 세워놓고 민국이와 함께 지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지희 학원 언제 끝나?”
“토요일이라 6시에는 끝난다고 했는데….”
민국이는 차 안에서 핸드폰으로 계속해서 내 동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진짜 내가 다리 이렇게 각도 맞추라고 몇 번을 말했어, 형! 여기 또 틀렸네.”
“이제 다 끝났거든!”
“형아, 다시는 춤출 생각도 마!”
그때였다.
지희가 웬 키 큰 남자와 함께 걸어 나왔다.
키가 큰 남자와 지희는 손은 안 잡았지만, 서로를 보며 종알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것을 보는 지희는 어느새 남자와 함께 길을 걸어갔다.
“전민국, 저 남자 누구야?”
“형아, 나도 처음 보는 놈인데….”
아마 이 순간만큼은 나와 민국이의 마음이 똑같은 것 같았다.
“민국아, 어서 지희한테 전화 걸어서 어디냐고 물어봐. 우리가 데리러 왔단 말 하지 말고.”
“어, 형.”
민국이는 곧 지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희야, 어디야? 오늘 성국이형도 집에 온다니까, 어서 와서 저녁 먹어.”
– 오빠, 나 오늘 친구랑 영화 보기로 약속했어.
“친구 누구?”
– 어… 미라.
“어, 알았어. 영화 잘 보고 들어와.”
전화를 끊은 민국이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는 이 순간 오빠로서 해야 할 일을 알 것 같았다.
“민국아, 우리도 오늘 영화 보는 거야.”
“응, 형! 저놈, 지희한테 집적거리기만 해봐. 내가 아주 반쯤 죽여놓을 거야!”
나는 액셀을 슬쩍 밟았다.
그리고 나와 민국이는 오빠의 이름으로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보며 걷는 지희와 미라라는 남자 놈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