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390)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90화(390/576)
제390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돌하르방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애덤도 제주 공항에 내리자마자 늘어선 돌하르방 덕분에 이미 돌하르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쯤 되니 기생오라비 같다는 말이 칭찬 같군.]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소주를 마셨다.
전태국은 한숨을 팍 내쉬었다.
“돌하르방 같다는 소리 듣고, 내가 골든벨을 울린 건가….”
“형, 남자답게 생겼다는 소리잖아요.”
사장님은 얼른 전태국의 어깨를 토닥였다.
“사내가 사내답게 생겨야지. 옆에 이런 꽃미남들은 나이 들면 다들 매력 없어져.”
“그래도 단 한 순간이라도 꽃미남으로 살아보고 싶네요, 사장님….”
전태국은 소주를 쭉 들이켰다.
* * *
아버지와 사장님의 대화를 조금씩 무르익었다.
“육지 가면 저도 보쌈이니 삼겹살집이니 많이 가보는데, 제주 흑돼지 못 따라오죠. 보쌈도 제주 흑돼지로 하면 또 다른 감칠맛이 날 거예요.”
“사장님, 제가 오늘만 벌써 다섯 군데 흑돼지 집을 돌아봤는데, 여기 고기가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사실은 염치 불고하고 그 농장 어디인지 부탁을 드리고 싶네요.”
“에휴….”
사장님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전에는 다들 제주도 버리고 동남아 가서 여기 관광업들이 죄다 죽었었소. 요즘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긴 하는데,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보기에만 좋은 식당들을 차리니 우리 같은 돈 없는 토박이들이 견뎌낼 재간이 있나. 나도 이 식당 임자만 나타나면 바로 넘기고픈 마음인데…. 사실, 농장 정보도 같이 넘기려고 하죠.”
그 순간, 나는 소주를 쭉 들이켜고 식당의 위치를 살폈다.
애월 바다가 보이는 환상적인 자리.
거기다가 주변에는 아직 아무것도 들어서지 않아서 주차장 확보도 용이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이다.
외지인, 그것도 돈 많은 외지인이 이 식당을 사려고 들면 분명 사장님도 시세보다 높게 부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은근히 사장님에게 물었다.
“사장님, 저희 아버지가 사업 확장을 하고 싶어 하셔서요. 근데 솔직히 저희 <원아저씨 보쌈>이 워낙 재료에 돈을 아끼지 않다 보니까 돈은 많이 못 벌고 계세요.”
나의 말에 아버지가 살짝 긴장하는 게 보였다.
“이 식당 내놓으셨다면, 얼마에 내놓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주 사람들이야 바닷가 땅은 아주 헐값으로 알지. 여기도 우리 외조부가 가지고 계시던 땅인데, 아무도 물려받지 않으려고 해서 내가 받아 흑돼지 구이집 낸 거요.”
“그럼, 지금 임자만 나타난다면 시세대로 파실 생각은 있으신 거죠?”
“흠… 아쉽지만, 그래야지. 솔직히 여기는 멀어서 도민들은 잘 오지도 않고. 외지인들은 보기만 좋은 다른 가게들로 가고…. 여기 처분하고 막노동 뛰는 게 내 더 나을 것 같긴 합니다.”
고미주는 무척 아쉬운 표정이었다.
“사장님은 고기도 잘 보시지만, 진짜 밑반찬 하나하나 다 맛있는데… 아쉬워요.”
“내가 군대 취사병부터 시작해서 음식 장사만 20년인데, 그 정도 맛은 내야지. 요즘 맛도 모르면서 음식 하는 것들은 식당 할 자격이 없어.”
사장님은 나름의 음식 철학도 있었다.
이것은 아빠가 딱 좋아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소주를 한 잔 쭉 들이켰다.
“저도 예전에 사장님 같은 분한테 음식을 배웠거든요.”
[흠… 아빠, 드디어 사연팔이 시작인가?]아빠는 추억에 잠기듯이 <원아저씨 보쌈> 수유점 사장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 오갈 데 없는 저를 채용해주신 것도 감사한데, 그 집 수육 비법까지 다 알려주셨어요.”
“인생의 은인이네, 그 사장님이.”
“그럼요.”
아빠의 사연팔이가 흑돼지 구이집 사장님에게는 잘 통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아빠의 사연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원래 그 집이 민속주점이었는데, 안주 중에 보쌈이 있었거든요. 근데 보쌈이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사장님한테 여러 가지 만드는 주점 말고 보쌈 전문점으로 바꿔보자고 건의드렸거든요.”
“아이고, 그 사장님도 이런 은인을 만났네….”
“아니에요. 이제 스물 몇 살 먹은 놈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바꾸신 사장님이 대단하신 거죠.”
“그럼, <원아저씨 보쌈>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요?”
“그건 제 아들 덕분이에요.”
“이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아들이요?”
“사장님, 이런 얼굴이 요즘 대세잖아요.”
[아빠, 간만에 옳은 말씀 하시네.]사장님은 기분 좋게 웃더니 소주를 들었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고 해서 미안해요, 아드님. 내 잘생긴 남자만 보면 심사가 틀려서 그래.”
“괜찮습니다.”
[아까는 안 괜찮았어, 사장.]나는 사장님이 내민 술을 기분 좋게 받아들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태국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사장님, 아까는 사내라면 저처럼 생겨야 한다면서요?”
“그 말도 유효하지. 난 여전히 사내라면 자네처럼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 사내가 예뻐서 뭐 해. 여자밖에 더 꼬이나.”
사장님의 말을 듣는 전태국의 얼굴은 더 절망적으로 변했다.
밤은 늦어지고, 이제 슬슬 내일을 기약해야 할 것 같았다.
“사장님, 내일 낮에 다시 한번 아버지랑 찾아봬도 될까요?”
“물론이지. 점심에는 흑돼지 김치찌개도 하니까 와서 먹어봐요.”
“그럴게요.”
그렇게 우리의 흑돼지 구이집 투어는 끝이 났다.
그리고 전태국은 씁쓸한 얼굴로 카드를 내밀었다.
“사장님, 일시불이요.”
“먹은 것만 내요. 골든벨 울린 거 취소해줄게요.”
“아니에요, 사장님. 사장님은 제가 누구인 줄 알면.”
그 순간, 나는 전태국의 옆구리를 찔렀다.
전태국이 삼전 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사장님의 가게 시세가 갑자기 치솟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 그냥 계산해요.”
“하아… 잘난 척도 못 하게 하네. 사장님, 그냥 다 계산해주세요. 제가 이번 달에 보너스를 좀 받았거든요. 근데 여자 친구가 없어서 돈을 쓸 데가 없어요.”
“알았어요. 그럼, 골든벨 울렸으니까 내일 같이 와서 점심 공짜로 먹어요. 또 흑돼지 먹고 싶으면 와요. 제주 있는 동안 내 무료로 드리리라.”
“사장님, 진짜 감사합니다!”
전태국은 흔쾌히 카드를 긁었다.
* * *
호텔에 돌아와서도 아빠와 나는 야외 바에 앉아서 단둘이 맥주를 한잔하면서 사업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국아, 그 가게 어떠니?”
“아빠, 사장님한테 고기 대주는 농장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난 위치가 마음에 들어.”
“너무 외지지 않았어?”
“앞으로 제주도 관광 붐이 일면 관광객들은 대부분 차로 이동해서 주차장만 잘되어 있고, 거기다 바다가 보이는 뷰까지 멋진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올 거야.”
“그럴까….”
[아빠, 나만 믿어!]아빠는 머리를 긁적였다.
“시세는 내일 알아봐야 할 것 같긴 한데….”
“아빠, 그건 걱정 마. 고미주 씨한테 아까 부탁했어.”
“미안하게….”
“시세는 제주 사람이 직접 알아봐야 더 정확하잖아. 미안한 건 떠날 때 돈으로 보상하면 되는 문제고.”
“녀석, 이제 완전히 사업가처럼 말하네.”
[아빠, 아빠가 모르는 게 있는데. 내가 말이야. 저번 생에서부터 쭉 사업만 해온 사람이라고.]나는 씽긋 웃으면서 맥주를 들이켰다.
“성국아, 아빠 생각인데 말이야….”
나는 아빠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빠, 그 사장님한테 <원아저씨 보쌈> 제주점 맡기고 싶은 거지?”
“어떻게 알았어?”
“나도 그 생각 했거든. 그 사장님 요리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철학도 있는데 운만 안 따라주신 분 같아서 아쉽기도 했고.”
“역시 아빠 아들이네. 어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어?”
“아빠가 처음에는 내려와서 식당이나 맛 관리해야겠지만, 계속 제주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런데 그 사장님 보니까 믿고 맡겨도 될 것 같았어.”
“하나 걸리는 게 있는데….”
아빠는 맥주를 쭉 들이켰다.
“자기 사업하던 사람이라 남의 밑에서 일할지 그게 걱정이야.”
“아빠, 그건 걱정하지 마.”
“방법이 있을까?”
“물론이지, 아빠.”
나는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삼전 그룹의 초대 회장인 전주신 회장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 돈 앞에 장사 없다!
* * *
아침 6시 기상.
한 시간 동안 수영을 하고 나오자 고미주 씨가 얼쩡거리는 게 보였다.
“대표님, 여기 계셨네요.”
“이미 알고 오신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하죠. 이른 시간이라 방으로 전화드렸더니, 벌써 수영하러 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시세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요.”
고미주는 생각보다 눈치가 제법 있었다.
“물론 궁금하죠. 근데 어젯밤 늦게 들어가고, 오늘 일찍 나오고. 알아볼 새가 있었어요?”
“저희 작은아버지가 부동산 하세요. 제주는 좁아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알잖아요. 작은아버지께 어젯밤에 전화드렸더니 정확하게 시세를 아시더라고요. 애월 쪽이 요즘 뜨긴 하지만 아직 많이 비싸지는 않다고요. 평당 오십만 원에서 백만 원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고 하세요.”
“흑돼지집 부지는 삼백 평 정도던데….”
“그 인근에 천 평 정도가 다 그 흑돼지집 사장님 땅이에요.”
“그래요?”
“네, 작은아버지한테 제가 중요한 분이 알아달라고 한 거라고 하니까 얼른 전화 돌리셔서 알아주셨어요.”
나는 턱을 매만졌다.
천 평 부지라면 <원아저씨 보쌈> 제주점과 카페까지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사이즈였다.
“고미주 씨, 저희 있는 동안 가이드로 고생 많으신데 이런 부탁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태국이 형한테 특별 휴가랑 보너스 부탁드릴게요.”
“대표님, 전… 그런 거 필요 없고요.”
고미주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봤다.
눈을 반짝이면서 나를 보는 표정이 어딘가 익숙한데?
“그럼… 뭐, 제 사인이라도?”
“네에?”
그 순간 고미주는 웃음을 꾹 참았다.
[또, 내가 너무 앞서나갔나….]“대표님, 듣던 대로 자뻑이 심하시네요.”
“아니, 대부분은 그런 걸 저한테 원하더라고요. 하하하.”
나는 어색하게 괜히 웃어댔다.
“그 비슷한 건데요.”
비슷한 거?
“대표님, 제가 다음 달 휴가 때 서울 가거든요. 그때 저 하루만 서울 가이드해 주시면 안 될까요? 사실은 제가 대표님 팬이에요.”
고미주는 조금은 당돌하게 부탁을 했다.
2박 3일 동안 우리 가족 가이드를 해주고, 거기다 아버지가 눈여겨본 가게와 땅 시세까지 단번에 알아봐 줬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고미주 씨, 저는 시간이 돈인 사람입니다.”
“아, 제 부탁이 너무 무리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하지 않으려면 저와 가족들이 남은 1박 2일 동안은 제주 휴가를 즐길 수 있게 흑돼지집 사장님 가게 매물 바로 계약할 수 있게 준비해줄 수 있겠어요?”
“그거야, 당장 작은아버지께 연락드릴게요. 저희 작은아버지 마당발이시고, 일도 꼼꼼하게 하세요.”
“네, 그럼. 계약서 사인하고, 흑돼지집에서 점심 먹는 걸로 하죠.”
“네, 대표님! 그리고 저랑 약속은….”
“분명히 지킵니다!”
* * *
평당 백만 원.
시세보다 살짝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사장님의 확답을 얻어내려면 이 정도 배팅을 해야 했다.
나는 계약금을 바로 쐈고, 아버지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가게를 살피더니 사장님을 쳐다봤다.
드디어 아빠가 제안할 모양이었다.
“사장님, 제가 제안 하나 드려도 될까요?”
“무슨 제안이요?”
“이 가게 팔면 이제는 음식 장사 안 하고 막노동 다니실 거라고 했잖아요.”
“뭐, 그 수밖에 더 있나. 목돈 생겨도 대출금 갚고, 자식들 돈 좀 쥐여주면 끝이지.”
“그래서 드리는 제안인데요. 저희 <원아저씨 보쌈> 제주점 총매니저로 일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서요.”
그 순간, 사장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 건가요?”
“허허, 이 사람이. 내가 이래 봬도 한중일에 양식까지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인데, 매니저가 말이 되나. 주방을 맡겨줘야지!”
“그럼, 수락해주시는 건가요?”
“좋죠! 내 평생 소원이 홀 관리, 인력 관리 이런 거 신경 안 쓰고 요리만 하는 거요. 그 소원을 우리 젊은 사장님이랑 아드님이 이뤄주네요. 내 올해 진짜 귀인을 만났어요.”
사장님은 돌하르방 같은 함박 미소를 지었다.
“계약도 끝났으니, 점심 드시죠. 참, 어제 골든벨 울린 그 총각은 안 오나?”
“곧 올 거예요.”
“내가 앞에서는 말을 못 했지만, 골든벨 울릴 때 살짝 말린 게 총각 생긴 거로는 돈이 참 없어 보여서… 그 총각, 혹시 어제 호텔가서 울고불고하지 않았나?”
나는 웃음을 꾹 참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사장님,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알 수 없는 거거든요.”
“어디 유지 아들인가? 참, 없게 생겼는데….”
“아버님이 작은 사업하세요.”
“진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곤 모르는 법이네. 이렇게 기생오라비처럼 생겼어도 똑 부러지는 총각이 있듯이 말이야.”
사장님은 너털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