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00)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00화(400/576)
제400화
나는 조용히 테라스에 홀로 나와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아직 2월이라 날이 많이 추웠지만, 오늘은 혼자 고독하게 맥주를 마시고 싶었다.
2012년이 시작한 지도 이제 두 달.
앞으로 다가올 2012년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획기적인 해가 될 것이다.
조만간 내가 100프로 투자하는 데니스 샤젤의 영화 <채찍>이 촬영에 들어갈 것이고, 5월에는 ‘페이스 노트’의 나스닥 상장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제 민국이도 드디어 제대로 밥값을 하게 될 날이 오고 있었다.
6월에는 <세븐즈>의 데뷔까지.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이게 22살이 이룬 인생의 업적이라니….
물론 저번 생까지 하면 60년이 넘게 걸렸지만, 나는 지금 고작 22살이다.
저번 생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이번 생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될 터였다.
나는 저절로 어깨가 솟았다.
[전성국, 그동안 고생 많았어…. 정말 고생 많았다.]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수유의 단칸방에서 태어나서 한남동까지 오다니….
내 자신이 대견했다.
드르륵-
“전성국, 뭐 해?”
나의 자화자찬 시간을 깨버리는 전태국이라는 존재만이 이번 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유일한 일이었다.
“맥주 한잔하고 있었어요.”
“얼어 죽겠어, 안 추워?”
“괜찮아요.”
“성국아, 너 혹시 울었어?”
전태국이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혼자 감동해서 울컥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요.”
“드라마 보면 맨날 하는 식상한 대사일세. 성국아, 설마 혼자 나 오늘도 잘 살았어! 내 인생! 이러면서 감동하고 있었던 거 아니지?”
찌릿.
심장이 뜨끔했다.
“형, 제가 그 정도로 나르시스트는 아니죠.”
“태연하게 말하는 것 보니, 맞네. 맞아. 참, 나 이번에 승진해. 승진해서 한턱낸다고 샘이랑 애덤한테 말해뒀으니, 다음 주말에 시간 비워둬.”
해가 바뀌고 인사이동의 철이 다가온 모양이었다.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어려운 승진이 전태국에게는 참 쉬웠다.
“형, 이제 상무쯤 되는 거예요?”
“응. 경영기획팀 상무.”
[내년에는 전무, 하반기에는 부사장쯤으로 승진할 거야….]삼전이 후계자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연봉도 별 차이 안 나고. 하는 일도 비슷해. 그래도 직함이 바뀐 거니까 우리끼리 자축하자. 삼전 호텔 중식당 잡아놨어.”
[안 가려고 했는데… 삼전 호텔 중식당 짜장면은 참을 수가 없지….]순간, 번뜩 머리에 떠오르는 날짜가 하나 있었다.
내일이 바로 전민국의 졸업식이었다.
“형, 미안한데요… 삼전 호텔 중식당 내일 좀 잡아줄 수 있을까요?”
“왜?”
“생각해보니, 민국이 졸업식이라서요.”
“그걸 이제 생각한 거야?”
[원래 형제는 이런 법이야.]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이라도 챙기니 다행이죠.”
“내가 박 비서한테 방 하나 빼라고 할게. 안 되면 스위트룸으로 올려서 먹고… 그리고 민국이 졸업식인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형도 가만히 있는데, 왜 네가 가만히 안 있는데?]전태국은 고심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민국이 녀석한테 뭘 해주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저번 생의 전태국은 망나니에 가까웠다.
잘난 나와 항상 비교 당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어떻게든 나를 넘어보겠다면 발버둥 쳤지만, 실력도 머리도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약이나 하고 문란한 사생활 때문에 증권가 찌라시에 오르내리다 적당히 사고 쳤을 때, 내가 미국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런데 이번 생의 전태국은 확실히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저번 생의 전태국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존재였지만, 나의 조련으로 배려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머리는 나쁘고 비즈니스 감각도 떨어지지만.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전태국까지 사람 만드느라 고생했어, 전성국!]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중에 자서전에 꼭 써야지… 동생들 키우고, 전태국 사람 만드느라 너무 힘든 10대와 20대였다고… 캬아!]나는 맥주를 벌컥 마셨다.
* * *
“에이취!”
재채기가 연신 나왔다.
전태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날 춥다고 들어와서 맥주 마시라고 했잖아. 괜히 분위기 잡지 말고.”
하필 민국이 졸업식 날에 감기가 제대로 걸리고 말았다.
“감기약 먹고 가면 괜찮을 것 같아요.”
“오늘은 내가 운전할게.”
“형이 왜요?”
“민국이 졸업식인데, 내가 가야지.”
전태국은 자신의 졸업식 때 보다 더 들떠 보였다.
“형, 왜 형이 더 들떠 보이죠?”
“성국아, 넌 고등학교 졸업식 때 가족들 다 왔지?”
“네.”
필립 고등학교 졸업식이 떠올랐다.
가족들이 총출동한 현장이었다. 물론 하버드 입학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념품샵에서 산 하버드 티셔츠를 모두 입고 찍은 촌스러운 사진이 아직도 있었다.
“난 부모님이 내 졸업식에 온 기억이 없어. 초등학교 때는 오셨던 것 같은데… 그때,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최악일 때라서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스케줄 있다며 헤어졌어. 그래서 나는 양 비서 아저씨랑 삼전 호텔 가서 짜장면 먹었거든….”
“형, 형이랑 똑같이 부모님 사이가 나쁜데다가 삼전호텔 짜장면도 못 먹는 사람도 많아요.”
“전성국, 너는 정말 감동 파괴를 야무지게도 한단 말이야. 암튼 그날 이후 나의 졸업식에 부모님이 참석한 적은 없단 말이야.”
[학교도 겨우 졸업해놓고 할 말은 아니지.]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가요, 형. 늦겠어요, 이러다가!”
“어, 그래!”
* * *
민국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일종의 예술고등학교였다.
주로 아이돌 연습생이나 연예인 지망생들이 다니는 그런 고등학교였다. 그래서 졸업식 이전에 이미 데뷔해서 유명한 아이돌도 수두룩하게 보였다.
“성국아, 쟤 <카리>의 승희잖아!!!”
“성국아, 쟤는 <티아>의 지현이잖아!!!”
전태국은 여자 아이돌 이름을 줄줄이 연호했다.
“형, 이러려고 온 거예요?”
“그건 아닌데… 목적이 좀 바뀌는 것도 같고.”
이때, 민국이를 태운 밴이 도착하는 게 보였다.
민국이의 졸업식을 맞아서 <세븐즈> 멤버 전체가 졸업식에 참석하고, 너튜브에 올릴 영상도 찍는다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지희도 도착했다.
“성국아, 태국 군!”
“아버님!!!”
나보다 전태국이 아빠를 더 반겼다.
“형, 어서 강당으로 가요.”
“어, 그래.”
이때였다.
우리 뒤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뒤돌아본 곳에는 유명 기획사의 아이돌인 <파라다이스>의 차준이 들어오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능글맞은 미소가 매력적인 얼굴이기는 했다.
차준을 보기 위해서 뛰어 들어오는 여자들 때문에 강당 입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옆으로 차준의 경호원들이 붙어서 차준을 감싸 안으로 이동했지만, 계속 앞이 막히는 바람에 차준은 나와 전태국 바로 뒤로 붙었다.
경호원 한 명이 거칠게 우리에게 말했다.
“거기, 좀 비켜.”
나는 얼른 상황을 파악하고 경호원을 쳐다봤다.
“우리도 지금 꼼짝달싹 못 하는 상황입니다. 비킬 수 있을 때 비킬 테니, 스타든 누구든 기다리세요.”
“뭐야?”
경호원은 자기가 스타라도 된 듯이 거만하게 굴었다.
그런데 하필, 감기 기운 때문에 재채기가 터져 나왔다.
“에이취!”
이때였다.
뒤에서 저음의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비키지도 않고. 기침이나 해대고. 나 쟤 때문에 감기 걸리는 거 아니야. 진짜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감기 걸려서 나 스케줄 못 하면 지가 배상할 거야, 뭐 할 거야.”
차준이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그걸 들은 경호원이 힘으로 더 우리를 밀어댔다.
“아이씨, 좀 빨리빨리 들어가라고!”
그 바람에 나와 전태국은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거의 넘어질 뻔까지 했다.
[하아… 이런 건 절대 못 참지!]나는 차갑게 뒤를 돌아봤다.
“밀지 마시죠. 그러다 사람들 다쳐요.”
“엄살 피우지 마! 보상받고 싶으면 나중에 회사로 연락해!”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건가….]이때, 또다시 경호원이 육중한 무게로 우리를 밀어붙였다. 그 바람에 앞에 있던 중년의 여자가 바닥에 쓰러졌다.
“형, 우선 저 아주머니 좀 일으켜 세워주세요.”
“응.”
그리고 나는 얼른 뒤를 돌아서 경호원을 쳐다봤다.
“밀지 말라고 경고했는데요.”
“그러게 누가 앞에서 우물쭈물하래?”
“여기 졸업식에 온 노약자들도 있고, 다들 천천히 속도 맞춰서 가는 중입니다. 시간이 그렇게 아까우시면 좀 더 일찍 오셨어야죠. 질서는 지키시죠.”
“내 시간이 얼마나 비싼 줄 아나….”
차준이 옆에서 또 구시렁거렸다.
나는 살짝 팔을 걷었다. 그리고 전태국도 어느새 옆으로 와서 팔을 걷었다.
“저는 전성국 대표라고 합니다. 당신이 하는 ‘페이스 노트’와 너튜브의 대표죠. 그리고 여기는 삼전 그룹의 후계자이자 현재 삼전 그룹의 경영기획팀 상무입니다. 저희도 지금 줄 서서 천천히 졸업식을 보기 위해서 들어가는데, 뒤늦게 도착한 사람이 내 시간이 얼마나 비싼 줄 아냐며 구시렁거리실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전태국이 옆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여기 전성국 대표의 시급이 얼만 줄 알고 말하는 건가… 그리고 <파라다이스>면 우리 회사 핸드폰 광고하지 않나?”
“아, 그게….”
차준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황이 소란스러워지자 주변에서 핸드폰을 들고 이 상황을 찍는 사람들도 보였다. 차준에게 유리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얼른 상황을 정리했다.
“자, 다들 제 말과 전태국 상무님의 말을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주한 현장인 만큼 안전을 위해서 밀지 마시고 차례대로 들어가시죠!”
내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들 쥐 죽은 듯이 차례대로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 * *
“엄마, 아빠, 지희야!!! 형아!!! 태국이 형!!!”
민국이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우리를 향해서 손을 흔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해맑을 수가 있지… 전교에서 뒤에서 몇 번째로 졸업해놓고….”
나는 팔짱을 낀 채 민국이를 차갑게 쳐다봤다.
민국이는 곧 달려오더니, 멤버들과 전태국이 내민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와, 감동이야. 다들 어제 연습 때문에 새벽에 잤는데, 졸업식에 와주고.”
“야, 난 밤새우고 왔어.”
정우가 피식 웃으며 민국이를 도닥였다.
“정우 형, 고마워. 성국이 형이 짜장면 사줄 거야. 다 같이 먹으러 가자.”
<세븐즈> 멤버들이 모두 우르르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또 하필 주차장에서 차준과 차준의 졸업식을 보러온 <파라다이스> 멤버 몇과 마주쳤다.
민국이가 해맑게 차준에게 인사를 했다.
“준! 졸업 축하해!”
“어….”
하지만 차준은 시큰둥한 얼굴로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인사를 받았다.
나는 조용히 전태국에게 속삭였다.
“형, 우리가 준비한 졸업 선물을 줘야 할 것 같은데요.”
“나도 딱 그 생각이었어.”
전태국은 차에서 준비한 쇼핑백을 꺼내더니 <세븐즈> 멤버들에게 돌렸다.
“이번에 우리 삼전 최신폰이야. 내가 아플빠이긴 하지만, <세븐즈> 멤버들은 삼전 써야 해요.”
“태국이 형, 자기는 아플 쓰면서.”
민국이가 핀잔을 주자, 전태국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민국아, 기억 안 나? 나랑 계약한 거?”
“형, 그거….”
“니네 형 때문에 불공정 계약한 거 있잖아.”
“그럼, 저희 데뷔와 동시에 삼전 가전 모델 하는 거예요?”
“내 생각에는 지금 하는 <파라다이스>보다 <세븐즈>가 더 나을 것 같아. 너희들은 인성이 됐잖아.”
그 말에 차준이 미간이 구겨지는 게 보였다.
나는 슬그머니 차준 곁으로 다가가서 속삭였다.
“차준 씨, 졸업 축하해요. 삼전 모델 하차도 축하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