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02)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02화(402/576)
제402화
알람이 울리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나에게 오늘 아침은 평상시와 다를 것이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문을 여는 순간, 그곳에는 인생의 전환점을 막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전태국이었다.
전태국이 정갈한 머리를 한 채 식탁에 앉아 있었다.
전태국이 나보다 일찍 일어난 것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성국아, 아침 같이 먹자. 박 비서가 오는 길에 해장국 사 왔어. 속이 든든해야 오늘 회의 잘 견딜 것 같아서.”
“네, 형.”
박성희 비서는 밥을 먹는 전태국 옆에서 연신 오늘 회의 관련 브리핑을 했다.
“오늘 최대 이슈는 평택 반도체 공장 설립입니다. 정부에서도 강력하게 추진 중인 사안이고요. 다음 정권에서 첫 삽을 뜨기 위해서 회장님이 강력하게 추진 중이셨습니다.”
“평택 부지 시찰도 있던데?”
“다음 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퇴원하신 후겠지만, 도련님이 대표 자격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후계자로 반도체 사업을 이끄셔야 할 테니까요.”
“하아… 사진 엄청 찍히겠네.”
전태국은 해장국을 꼭꼭 씹어 먹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성국아, 반도체 사업 이렇게 확장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저야 반도체 쪽은 잘 모르잖아요.”
나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실제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사업이었다.
저번 생에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 사업이었고, 삼전의 제2 전성기를 이끈 사업이기도 했다.
“머리가 아프다. 아파….”
전태국은 연신 투덜거렸다.
[전태국, 괜히 엄살 부리지 마.]나는 태연히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박성희 비서는 지겨워하는 전태국에게 계속해서 정보를 주입했다.
“도련님, 반도체 사업은 회장님께서 전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삼전 반도체의 임철희 대표가 오늘 총 브리핑을 할 것입니다.”
전태국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나는 성격상 엔터테인먼트 쪽이 어울리는데… 아버지는 괜히 이런 사업 맡으셔서… 지금이라도 CGJ 쪽에 연락해볼까?”
“도련님, 투정은 그만하시고 앞으로의 일정에 주목하시죠.”
“네네. 박 비서님.”
전태국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해장국 국물까지 쭉 들이켰다.
“성국아, 회사 같이 가자. 김 비서는 회사로 바로 출근하라고 하고….”
“그러죠.”
* * *
오전 7시가 되지도 않은 시각.
아무리 삼전의 본사라고 해도 출근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시각에 전태국이 회사에 온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전태국은 커피를 연신 마시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박성희 비서가 알파 층과 전태국이 일하는 전략기획팀 층을 눌렀다.
“성국아, 임원 회의 끝나고 점심시간에 보자.”
“형, 임원들이랑 점심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점심까지 그 사람들이랑 먹으면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겠니. 밥이라도 편하게 먹고 싶어.”
“알았어요, 이따 봐요.”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 * *
박성희 비서는 얼른 전태국의 눈치를 살폈다.
전태국은 생각보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셨다.
“도련님, 성국 군의 말대로 점심은 임원들과 드시는 게 어떨까요?”
“박 비서…. 내가 왜 성국이랑 밥 먹는 줄 알아?”
“깊은 뜻이라도 있으십니까?”
박성희 비서는 의아한 눈으로 전태국을 쳐다봤다.
박성희 비서가 아는 전태국은 항상 어딘가 부족하고, 일하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박 비서도 나 보좌한 지 오래됐잖아. 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 거라고 생각해.”
“전부는 아니어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전태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 밥그릇은 잘 알거든. 솔직히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어쨌든 내가 이 회사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실제로 느껴진 건 처음이었어…. 그때, 내가 딱 보이더라고.”
전태국은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고 있었다.
“공부 머리도 별로고, 사업 감각도 없지. 여태까지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물려주신 거 그냥 숟가락 얹어서 놀고먹은 거지. 아버지가 항상 그랬거든. 넌 머리가 나쁘니까 좋은 사람 옆에 두는 것만 배우라고. 넌 적당히 당근과 채찍만 휘두르면 되는 거라고….”
박성희 비서는 전태국을 조금 새롭게 봤다.
어쩌면 지금 전태국은 당근과 채찍을 충분히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지도 몰랐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이미 삼전에 목숨 건 임원들이 아니고 성국이야. 삼전의 녹봉을 먹는 자들이야 보너스 몇 푼에 또 열심히 일할 거잖아. 내가 지금 필요한 건 외부에서 삼전을 봐줄 사람이야.”
“그게 성국 군이고요?”
“응. 그러니까 임원들이랑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성국이랑 밥 먹는 거라고.”
박성희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비서….”
전태국이 평소와 달리 조용히 박성희 비서를 불렀다.
“네, 도련님.”
“박 비서가 성국이 때문에 내 옆에 있는 것도 알아.”
박성희 비서는 조금 놀라기까지 했다.
박성희 비서를 이 자리에 넣은 게 바로 전성국 대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젠 내 사람이지?”
“… 네, 도련님.”
“이제 도련님 아니고 상무님. 다음에는 부회장쯤 부를 수 있을 거야.”
“네, 상무님.”
박성희 비서는 얼른 자세를 바꿨다.
* * *
[전태국이 임원 대신 나와 밥을 먹겠다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건가….]나는 김미소 비서가 내민 카페라떼를 마셨다.
“김 비서님, 저 보좌하시긴 하지만 삼전 소속이시잖아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제안을 하나 할 겁니다. 김미소 비서님.”
“갑자기….”
“안 받으시면 아마 직장을 오늘 내로 잃게 되는 제안일 겁니다.”
나는 카페라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김미소 비서의 얼굴에서는 어느새 웃음이 사라졌다.
직장인들에게 직장을 뺏는 건, 곧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비슷했다.
거기다 김미소 비서는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서 삼전에 입사한 케이스가 아니었다.
전태국이 김미소 비서를 붙여줄 때, 당연히 뒷조사는 한 상태였다.
김미소 비서는 2녀 1남 중 장녀였다.
아버지가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외벌이로 아직 밑의 두 동생은 대학생이었다.
그 말인즉슨, 김미소 비서의 월급 대부분은 동생들 학비로 보내질 거라는 의미였다.
원래 대한민국 장남, 장녀의 숙명이 그랬다.
가족들의 희생으로 공부해서 졸업하면, 이번에는 자신이 희생해서 가족들을 돌봤다.
“대표님, 제안이긴 하지만 협박이나 뭐 그런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원래 말은 어떻게 포장하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법이니까요.”
“그럼, 대표님은 제안이라고 말씀하시고, 저는 협박으로 들리는 그 이야기 들어봐도 될까요?”
“김미소 비서님, 삼전 측에 제 동선을 어디까지 보고하시죠?”
“그건….”
물론 기밀 사항일 게 뻔했다.
말하는 순간 계약을 어기는 것이고, 이것만으로도 삼전에서 쫓겨날 수 있었다.
“그럼, 먼저 제 제안의 혜택부터 말씀드릴게요. 우선 삼전 측의 지시 사항을 저에게 앞으로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해주시면 삼전 측에서 이 사실을 알고 해고할 시, 제가 바로 고용을 책임지겠습니다. 동시에 저희 ‘페이스 노트’ 본사로 발령해드리겠습니다.”
김미소의 눈이 번쩍였다.
삼전 그룹의 비서실에 채용될 만큼 김미소의 학력과 능력은 이미 인정받은 상태였다. 일도 꼼꼼하고 빈틈없었다.
“대표님, 그 부분 계약서로 명시할 수 있을까요?”
김미소는 지금 내 당근을 잡았다.
“물론이죠. 대신, 삼전 측에서 오는 지시 사항 저에게 바로 전달해주세요. 그리고… 최대한 오랫동안 들키지 마세요. 제가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 들어갈 때 이왕이면 같이 들어가면 좋지 않겠어요?”
김미소가 이름처럼 미소를 지었다.
“지금 굉장한 협박을 하시는데, 말씀은 참 로맨틱하십니다. 하마터면 설렐 뻔했네요.”
“성공이 보장된 길이니, 설레셔도 될 거예요.”
“대표님 말씀은 삼전 측의 지시 사항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하고, 대표님이 원하는 식으로 보고하란 말이시죠?”
“네, 정확합니다.”
“그 일을 적어도 대표님이 군 복무를 마칠 때까지는 비밀스럽게 진행하고요.”
“네.”
“한마디로, 이중 스파이네요.”
“그런 셈이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김미소 비서가 손을 내밀었다.
“계약서 준비해주십시오. 도장은 찍을 준비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 알아주세요.”
“뭐죠?”
“이건 제가 삼전을 배신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옮기는 것이라고요.”
“물론이죠. 저는 김미소 씨를 믿거든요. 믿지 않으면 이런 제안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김미소 비서의 손을 잡았다.
내가 파악한 김미소 비서의 성격은 굉장히 심플한 데가 있었다. 바로 조직에 충성한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삼전에 충성했고, 이제는 그 상대가 바뀔 타이밍일 뿐이다.
“이건 계약서를 더 유리하게 작성하기 위한 하나의 팁인데요. 삼전 비서실에서 내려온 지시기는 한데, 그동안 내려온 지시와 달라서 아마 전태국 상무님이 직속으로 내린 지시 사항 같았습니다.”
“그게 뭔가요?”
“당분간 전성국 대표님 보좌하면서 만나는 인물 전부를 보고하라는 지시였습니다. 그동안 전재형 회장님은 전성국 대표님의 동선 중에서 효진 그룹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셨거든요. 그런데 전재형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바로 이런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계약서에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할 정보네요.”
나는 빙긋 웃었다.
[전태국, 의심 많은 건 저번 생이나 이번 생이나 여전하네….]* * *
“성국아!”
전태국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구내식당 1번은 전태국이었다.
“오늘은 내가 속 시원한 게 먹고 싶을 것 같아서 짬뽕 부탁드렸어.”
“저도 오랜만에 짜장면 대신 짬뽕 먹죠.”
우리는 나란히 짬뽕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늘 그렇듯 우리 주위에는 누구도 앉지 않았다.
전태국은 짬뽕을 허겁지겁 먹더니, 물을 쭉 들이켰다.
“일하고 먹으니 맛있네. 성국아, 평택에 반도체 공장 규모를 계속해서 축소하자는 의견이 많네…. 요즘 국제 정세도 안 좋고. 반도체는 이미 대만이 꽉 잡고 있으니까….”
[이제 시작인 건가?]나는 전태국을 흘끔 쳐다봤다.
적당히 팁을 줄 때인 것 같았다.
“삼전 가전, 솔직히 이제 하락세 아닌가요? 거기다 핸드폰은 아플에 뒤지고. 삼전에 좋은 기반 사업들이 많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그저 그런 국내 기업 되는 거 한순간이에요.”
그 말에 전태국은 살짝 벙찐 얼굴로 짬뽕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박성희 비서와 김미소 비서가 살짝 뒤늦게 우리 옆자리로 앉았다.
두 사람 모두 어제와 다른 긴장감이 느껴졌다.
[전태국이 박성희 비서를 포섭한 모양이군….]“성국아,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한다? 그게 반도체고?”
“이미 개척하고 있는데, 형 왜 자꾸 그렇게 의심해요?”
“반도체야 워낙 어려운 분야니까.”
“그럼, 공부를 좀 더 하세요.”
나는 빙긋 웃으면서 짬뽕을 후루룩 먹었다.
이때, 전태국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동안 내가 너무 놀았지. 박 비서, 자료 좀 준비해줘.”
“네, 상무님.”
[상무님이라…]박성희 비서를 포섭했을 거란 나의 짐작은 거의 확실시됐다.
그럼, 이제 전태국의 의중을 떠볼 차례였다.
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전태국의 아플폰을 쳐다봤다.
“형, 이제 핸드폰 바꿔야 하지 않아요?”
“아직 아플 신제품 안 나왔잖아.”
전태국은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다가 문득 아플폰을 쳐다봤다.
삼전 그룹 본사에서 유일하게 아플폰을 쓰는 삼전의 직원.
전태국은 쓴웃음을 다시 지으며 박성희 비서를 쳐다봤다.
“박 비서, 삼전폰 신상품으로 가져다줘.”
“네, 상무님.”
전태국은 은근히 나를 보더니 내 아플폰을 쳐다봤다.
“성국아, 너도 이 기회에 삼전폰으로 바꿔봐. 이번 신상품 장난 아니게 좋아.”
“전 아직 아플이 좋아요.”
[전태국, 난 이번 생에서 절대 삼전의 사람이 되지 않아!]나는 다시 짬뽕을 후루룩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