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09)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09화(409/576)
제409화
오디션이 끝나고 데니스 샤젤은 감격한 얼굴로 나를 꽉 끌어안았다.
“성국! 믿어지지 않아! 중요한 배역 캐스팅이 다 끝났잖아.”
나는 데니스를 은근슬쩍 밀어냈다.
[나,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뼛속까지 한국 남자라고. 남자끼리 이러는 거 영 불편해, 데니스.]데니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흥분한 얼굴로 눈가까지 촉촉했다.
나는 그런 데니스를 팔짱을 끼고 잠시 쳐다봤다.
“데니스, 그렇게 좋아?”
“당연하지… 드디어 내 시나리오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거잖아. 내가 남자라 출산은 안 해봐서 모르지만, 왠지 내 작품이 나오면 꼭 나를 닮은 아이를 낳은 기분이 들 것 같아.”
[데니스, 오버하지 마.]“성국, 정말 나 너무 가슴이 벅차올라.”
“데니스….”
나는 차분하게 데니스를 불렀다.
“데니스, 나 지난 며칠 동안 띡똑 발표하고, 각종 언론으로부터 욕먹느라고 바빴거든. 그리고 LA로 바로 날아와서 <채찍> 오디션 봤고.”
“아, 미안. 내가 너무 감격했나 봐.”
“미안해할 거 없어. 내 말은 지금 난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미친 듯이 마시고 싶다는 거야.”
“우유만 마시던 녀석이 이제 맥주도 찾고. 오늘은 늦었으니까, 우리 집으로 가자.”
* * *
데니스가 사는 곳은 LA 시내의 작은 콘도였다.
침실과 거실 그리고 부엌뿐인 작은 공간이었다.
거실에 놓인 책상에는 이미 수없이 그린 <채찍>의 콘티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콘티들을 열심히 훑었다.
[많은 고민을 했군….]<채찍>이 탄생하기까지 데니스가 했던 고민의 흔적이 이 책상 위에 다 놓여 있었다.
데니스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서 내밀었다.
“뭘 보는 거야?”
“네가 그린 콘티들. 이제 정말 영화만 찍으면 되겠는데….”
“배우들 스케줄 조절도 해야 하고… 아마 하반기에나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사전 작업이 오래 걸렸다.
나는 데니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데니스는 나의 하버드 룸메이트였다.
검은 곱슬머리를 헝클어트리면서 영화감독이 꿈이라던 녀석이 진짜 영화감독이 되다니…. 내가 다 감격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데니스, 넌 정말 좋은 감독이 될 거야.”
“이미 여러모로 성공한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데뷔 전부터 기분은 좋은데….”
“참, 내일 낮에 스티븐 스필버스 만나는데 같이 갈래?”
“내가 같이 가도 돼?”
“인터뷰는 몇 시간 정도 할 거고…. 끝나고 스티븐이 작은 파티 열거래. 영화 관계자들 모이는 자리니까, 너도 가면 좋을 거야.”
데니스는 두 눈을 반짝였다.
“성국, 마치 넌 나를 영화계로 인도하는 사람 같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데니스, 내가 너 영화 찍도록 엄청나게 채찍 휘두른 거 알지?]“데니스, 우리 두 번째 영화 고심했던 거 기억나?”
“당연하지. 배경이 이곳이잖아. LA.”
데니스의 두 번째 영화는 LA를 배경으로 하는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에 관한 뮤지컬 영화가 될 것이다.
“데니스, 그 두 번째 영화도 내가 미리 투자 예약한다. 아마 두 번째 영화는 <채찍>이 성공한 이후라서 스케일을 좀 키워도 될 거야.”
“성국, 모든 게 네 말처럼 되면 좋겠다.”
그 순간,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맥주병을 내려놨다.
“데니스, 지금 가야 할 곳이 있어.”
“어디?”
“차 키 어디 있어?”
데니스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건넸다.
“나만 따라와.”
* * *
그리피스 천문대에 올라서 나와 데니스는 저 멀리 펼쳐진 LA의 야경을 내려다봤다.
데니스는 연신 감탄을 했다.
“성국, 나 여기는 처음 와봐.”
“나도 처음이야.”
“근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다 미래의 네 영화 보고 알았지.]나는 가만히 야경을 내려다봤다.
“우연히 검색하다 봤는데, 여기서 네가 말한 그 LA 배경 영화 찍으면 어떨까 싶어서. 이 안에 푸코의 진자도 있잖아. 꿈을 찾아온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딱 일 것 같지 않아?”
“투자도 해주고, 이렇게 영감도 팍팍 주고… 근데, 성국. 너무 성급한 거 아니야? 첫 번째 영화 망하면 두 번째 영화 들어가는 거 힘든 거야 기정사실이잖아.”
데니스의 말대로 첫 번째 영화의 성적이 저조하면 두 번째 영화의 투자는 어려웠다.
몇 년을 계속 엎어지는 영화로 마음고생만 하다가 이 바닥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다.
나는 데니스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데니스, 두 번째 영화까지는 내가 무조건 투자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마.”
“성국… 너를 만난 건 정말 내 인생의 행운인 것 같아.”
[데니스, 나야말로 널 만난 게 행운이지. 두 번째 영화까지는 상도 많이 받고 돈도 많이 벌어들이잖아. 세 번째부터는 좀 그렇지만….]나는 다시 LA의 야경을 눈에 담았다.
저번 생에서 수없이 온 곳이었지만, 매번 일 때문에 왔다.
이렇게 친구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야경을 감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데니스, 나도 고마워.”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정말 하나도 없는데. 뭐가 고마워?”
“나한테 꿈을 꾸게 해주는 것 같아. 넌….”
데니스는 내 말을 가만히 들었다.
“난 단 한 번도 꿈을 꾼 적이 없거든. 내가 할 수 있는 거, 돈 버는 거, 그런 것만 생각하며 살았거든. 근데 데니스 너를 보면서 나도 같이 꿈을 꾸는 것 같아.”
“성국….”
나는 데니스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데니스, 너는 계속 사람들을 꿈꾸게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데니스의 어깨를 꽉 잡았다.
“데니스, 감동은 여기까지. 아까 콘티 보니까 아직 초반이던데, 속도 좀 내야 하는 거 아니야? 내일 스티븐 파티도 가야 하잖아.”
“정말… 네, 투자자님. 그럼, 집에 가서 맥주 마시면서 콘티 보죠.”
데니스가 피식 웃었다.
* * *
스티븐 스필버스가 나와 데니스를 환한 얼굴로 반겼다.
“성국, 데니스. 오랜만이야.”
“잘 지내셨죠, 스티븐?”
“나야 잘 지냈지.”
스티븐 스필버스의 주택은 LA의 고급 주택가의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아래로는 넓은 포도밭이 펼쳐진 게 인상적이었다.
“데니스, 캐스팅 거의 다 됐다며?”
“네, 성국 덕분에 마음에 드는 배우로 캐스팅이 됐어요.”
“정말 <채찍> 나도 너무 기대 돼.”
우리는 스티븐 스필버스의 안내에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거실을 지나자 스티븐이 미리 와있는 작가 한 명을 내게 소개했다.
“성국… 여기는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 애런 쇼우네.”
“안녕하세요,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나는 얼른 애런 쇼우의 손을 잡았다.
애런 쇼우는 할리우드의 천재 시나리오 작가로 유명했다.
그가 각본을 맡은 <이스트 윙>은 정치 드라마의 걸작으로 손꼽히며 에미상을 휩쓸기도 했다.
애런 쇼우의 눈이 안경 너머에서 빛났다.
“SNS의 제왕을 이렇게 만나 뵙게 되는군요.”
“<이스트 윙>의 엄청난 팬입니다.”
나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립서비스를 했다.
“참, 여기는 데니스 샤젤이요. 제 하버드 룸메이트라서 제 인터뷰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같이 왔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도 곧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거든요.”
“아, 스티븐이 말한 친구가 바로 이 친구군요. <채찍> 시나리오 저도 엄청 재미있게 읽었어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중에 하나던데, 드디어 제작되는군요!”
“친구 잘 둔 덕에 하반기에 촬영 들어갈 것 같아요.”
우리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는 스티븐 스필버스의 작업실 겸 서재로 들어갔다.
* * *
LA의 따뜻한 오후 햇살이 서재로 깊숙이 들어왔다.
애런 쇼우는 여전히 흥미로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스티븐이 어느 파티에서 ‘페이스 노트’의 전성국이라는 사람이 무척 흥미롭단 이야기를 흘리듯이 한 적이 있거든요.”
나는 슬쩍 스티븐을 쳐다봤다.
[스티븐, 슬쩍 흘린 거 아니지?]분명 스티븐 스필버스는 애련 쇼우의 관심을 떠보려는 작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런 쇼우는 그 미끼를 단번에 물었다.
“‘페이스 노트’라면 저도 계정은 열어두고 그냥 방치한 SNS거든요. 나같이 그런 거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알 정도의 SNS를 만든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서 스티븐에게 하나씩 물었죠. 그랬더니… 세상에 고등학교 때 룸메이트와 이걸 만들었다는 거예요.”
애런 쇼우는 마치 내 인생 이야기를 적절히 더하고, 빼고 하며 풀어놨다.
“제가 첫 번째로 놀란 건 이걸 십 대 때 사업화할 생각을 한 거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놀란 건 뭔가요, 애런?”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유학 온 어떤 남자라니… 심지어 이 남자의 인맥은 정재계에 걸쳐서 너무 화려하더라고요.”
“그리고 마지막 더 놀란 건… 그래봤자 아직 20살 남짓이라는 사실이죠!”
“네, 아직 20살이에요. 만으로는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애련 쇼우는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연신 나를 믿을 수 없단 눈으로 쳐다봤다.
“정말 보고도 믿기지 않는단 말이에요.”
“애런, 진정해. 나도 처음에 성국 보고 그런 생각했어. 다들 성국이 사기꾼인 줄 알았다니까.”
“사기꾼일 리가 없잖아요. ‘페이스 노트’도 멀쩡하고. 심지어 너튜브에 인스타그림까지 대표인데요. 뒷배경 좀 찾아보니 구글의 세르게이 브릭이랑 장난 아니게 밀당을 했던데요.”
“최근에 발표한 띡똑은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아요.”
나는 일부러 조금 부족하게 보였다.
[사람이 너무 완벽하게 재미가 없잖아, 애런 쇼우]애런이 폭소를 터트렸다.
“이제 겨우 실패를 마주하는 건가요, 성국?”
“아직 실패는 아니죠. 띡똑이 곧 SNS의 새 미래가 될 거거든요. 사람들이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고요.”
스티븐은 애런을 쳐다봤다.
“애런, 내가 이 친구한테 반한 게 이런 면모야. 자신감. 멋지지 않아?”
“와우… 내가 스무 살 때는 술 먹고 다니느라 바빴던 것 같은데. 여자들한테는 매번 차이고… 성국, 엠마 왓튼이랑도 사귀었던데 여자들한테도 인기 엄청 많죠?”
옆에서 데니스가 끼어들었다.
“그 부분에 대한 증언은 제가 해드릴게요.”
“어서요! 어서 말해줘요, 데니스.”
“성국이의 가장 큰 단점은 자기 자신을 너무 잘 알고… 너무 사랑한다는 거죠.”
그 말에 애런 쇼우는 흥미로운 단서를 찾은 탐정처럼 신난 표정이었다.
“자기애가 강하다?”
“원래 천재들은 다 그렇잖아요.”
데니스가 덧붙였다.
“천재에, 자신감… 그리고 엠마 왓튼과의 연애… 스티븐, 이건 뭐 실화를 영화로 만든다고 해도 뻥이라고 하겠어요.”
“그럼… 애런, 제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요?”
나는 흥분한 애런에게 새로운 제안을 할 생각이었다.
“무슨 제안이요, 성국?”
“제 영화가 아니라… 저와 제 친구들의 영화면 어떨까 해서요.”
“성국과 친구들이요?”
“그리고… 영화 제작 시점은 지금부터 10년 뒤쯤으로 했으면 해서요.”
스티븐과 애런이 내 말이 턱을 매만졌다.
“성국, 왜 그런 제안을 하는지 물어도 될까?”
스티븐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아마 저들은 나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다루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 인생에 친구들이 없었다면 이 성공을 이루지 못했을 거거든요. 제가 잘난 것도 맞지만,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마크가 없었다면 ‘페이스 노트’는 존재할 수도 없었어요.”
“흠… 마크 그 친구도 독특하고 재미있더군. 북한 출신 해커랑 동거 중인 것도 특이하고….”
스티븐은 이미 나와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성국, 이 영화가 10년 후에나 나와야 하는 이유가 있나?”
[사실 그 이후의 인생은 나도 잘 모르거든.]내가 죽은 날 이후로는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스티븐과 애런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사실… 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