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16)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16화(416/576)
제416화
꼴깍.
흰둥이의 목구멍을 타고 반지가 넘어가는 선명한 소리.
얼음이 된 우리 가족들.
그리고 그 순간, 제일 빨리 흰둥이를 안아 든 사람은 다름 아니라 엄마였다.
“성국아, 운전해! 동물병원으로 바로 가자.”
“어, 엄마.”
나는 얼른 차 키를 들었다.
* * *
남산 호텔의 중식당은 조용했다.
전태국은 옷깃을 다시 만졌다.
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철의 여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엄마, 성국이는 오늘 집에 일이 있어서….”
“그래, 오랜만에 아들이랑 밥 한 끼 하지.”
단둘이 밥을 먹는 것.
그것 자체가 전태국에게는 낯선 일이었다.
전태국은 심호흡을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왜 엄마 앞인데, 긴장이 되지?’
곧 철의 여인이 미리 주문한 코스 요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에서의 일은 잘 본 거야?”
“응, 엄마. 실리콘밸리 탐방이라서 삼전 직원들이랑 박람회도 보고… 이래저래 살피고 왔어. 엄마는 별일 없었지?”
전태국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이미 이혼 소송 자체가 별일이기는 했다.
“예나 지금이나 눈치 없는 건 똑같구나.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거니?”
‘엄마도 돌직구는 여전하네….’
전태국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엄마… 안 좋은 일 있는 건 알지. 진행 상황을 듣고는 있어.”
“내가 아무래도 이상한 게 있어서 말이야.”
철의 여인은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젓가락을 내려놨다.
“뭐가 이상한데?”
전태국은 최대한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가지고 있는 것을 너희 아버지가 어떻게 알았지?”
“엄마, 그건 나도 모르던 일이잖아.”
“그니까. 너도 모르는 것을 누가 알고 있던 거지? 혹시 성국이가 알고 있었을까?”
“엄마, 성국이를 의심하는 거야?”
“…….”
철의 여인은 말이 없었다.
침묵은 곧 긍정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래서 뭐라는데?”
“그건 니네 아버지한테 들어.”
아무래도 자존심이 엄청 상하는 이혼 합의 조건을 제시한 것 같았다.
전태국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픈 마음뿐이었다.
* * *
“드디어 나왔네요!”
동물병원의 수의사 선생님이 환희에 찬 얼굴로 노란 다이아몬드 반지를 집어 올렸다.
“잠시만요. 깨끗하게 세척해서 드릴게요. 그리고 흰둥이에게 칭찬해주세요. 다행히 장기는 안 건드렸는데, 그래도 고생 많았을 거예요.”
엄마는 얼른 흰둥이를 쓰다듬었다.
“흰둥아, 고생 많았어.”
[고생은 무슨! 너 때문에 한국에 오자마자 진짜 개-고생하고 있잖아!]나는 싸늘하게 흰둥이를 내려다봤다.
우리 집안에 들어온 이상 막둥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건 아니었다.
이때, 민국이가 슬쩍 끼어들었다.
“엄마, 이 반지 정말 환불받을 거야?”
엄마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엄마, 흰둥이 항문으로 나왔는데… 환불받는 건 아닌 것 같아.”
“나도 형 말에 동의!”
민국이도 찬성했다.
“근데… 저 비싼 걸 내가 어딜 하고 나가. 그리고 너무 커서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엄마, 이제부터 공식 석상에 나갈 일 많을 거야. 나는 아이돌 되고, 형은 이제 ‘페이스 노트’ 상장도 하잖아.”
“엄마, 지희가 서울대 들어가면 입학식도 가야 하잖아. 그리고 엄마가 껴야 내 스캔들도 잠잠해지지 않겠어?”
나도 덧붙였다.
그제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흰둥이가 집어삼킨 게 아무래도 내가 끼길 바라서인 것 같아.”
“끼이잉-.”
흰둥이는 누워서도 찬성의 신음소리를 냈다.
“자, 세척도 깔끔히 마쳤습니다!”
수의사는 반지를 엄마에게 내밀었다.
“어머님, 이 반지 정말 예뻐요. 그러니까 꼭 예쁘게 끼세요!”
“아들이 사준 거니… 어쩔 수 없이 해야겠네요.”
엄마는 민망해하면서도 반지를 손가락에 꼈다.
반지 치수도 모르고 사온 거지만 엄마의 네 번째 손가락에 적당히 잘 맞았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발신자에는 양 비서의 이름이 떴다.
나는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양 비서님?”
– 네, 양 비서입니다. 전성국 대표님. 회장님께서 약속을 잡기를 바라셔서요. 이번 주말부터 회장님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장을 가셔서, 그 전에 뵐 수 있을까요?
“제게 주실 건 준비가 됐나 궁금한데요.”
전재형 대표는 이혼 소송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내 정보를 얻는 대신, 삼전이 가지고 있는 알파의 지분을 다 넘기기로 했다.
– 그 부분도 같이 논의드릴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 뵙지요.”
– 네, 장소 정해서 연락 남기겠습니다.
* * *
약속 장소는 삼전 호텔 중식당이었다.
대충 예상한 장소였다.
안으로 깊이 위치한 룸에 전재형 회장은 미리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양 비서도 함께였다.
“전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양 비서가 인자한 얼굴로 나를 맡았다.
전재형 회장은 조금 굳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앉게나.”
“네….”
전재형 회장의 얼굴은 며칠 사이 좀 더 피곤해 보였다.
미국 출장에, 이혼 소송. 거기다 쓰려졌던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양 비서, 잠시 나가 있지.”
“네, 회장님.”
스르륵- 문이 닫히고, 이 공간에는 나와 전재형 회장과 둘만 남았다.
전재형 회장은 차를 조용히 마셨다.
“버진 아일랜드에 비자금을 꽤 많이 모아뒀더군.”
전재형 회장은 비자금의 규모를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어느 정도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500억 상당이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여러 가지 조사해보니 차명으로 삼전 주식도 샀고, 이래저래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더라고. 마치 나보다 오래 살 것처럼….”
전재형 회장은 자신이 일찍 죽으면 철의 여인이 삼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준비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혼하지 않으면 철의 여인은 그럴 의도가 분명했다.
자신이 손에 아들 전태국과 딸 전미진을 쥐고 흔들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자식들이 나 같지 않으니, 철의 여인이 많이 욕심을 부렸군.]나는 차분히 전재형 회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네만 보면 왠지 종종 속내를 털어놓게 되는군.”
[그런 말 안 믿어, 전재형 회장.]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 아픈 소리를 할 때 진짜 약해졌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저것도 비즈니스에서는 다 계산된 이야기이다.
“회장님, 알파요….”
“그렇지. 우리는 그걸 이야기하려고 만난 거지.”
전재형 회장은 낮은 숨을 내쉬었다.
[하소연 좀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하나….]전재형 회장은 의자에 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한번 보게. 약속은 약속이니까. 변호사 말로는 와이프가 숨긴 비자금과 여러 가지 정황상 나에게 이혼을 유리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
삼전의 전재형 회장에게 변호사가 저런 말을 했다면 틀림없는 승소의 가능성이 컸다.
“물론 내 외도를 흠잡겠지만, 협의 이혼으로 풀어봐야지.”
나는 서류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삼전이 가진 알파의 지분 전부를 나에게 판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내용은 깔끔했고, 나는 당연히 알파의 지분을 전부 살 돈도 있었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려는 찰나.
“그리고….”
전재형 회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 본사에서 알파 사무실도 빼주길 바라네.”
한순간, 잠시나마 연민을 가졌던 내 마음이 쏙 들어갔다.
[그럼, 그렇지… 사람 안 바뀌지.]“그럼, 지분 먼저 정리하고 사무실 이전은 몇 달 여유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게…. 단, 7월 전에는 나가줬으면 해.”
“그러겠습니다.”
* * *
나는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효진의 구수영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성국 군, 오랜만이야.
구수영 회장은 언제나 먼저 나를 반겨줬다.
어쩌면 이번 생에서는 나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인연이었다.
“회장님, 저… 알파 관련해서 상의 드릴 일이 있어서요.”
– 목소리가 바빠 보이는데. 어딘가?
“삼전 호텔입니다.”
– 흠… 차는?
“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 내가 10분 후쯤이면 지나갈 것 같은데, 픽업하겠네. 근처에 내가 요즘 자주 가는 카페가 있어. 시간 보니, 밥은 먹었을 것 같아서.
“네, 좋습니다.”
그리고 구수영 회장은 정확히 10분 후에 삼전 호텔 로비에 도착했다.
* * *
“산세가 참 좋네요.”
구수영 회장이 안내한 곳은 남산이 보이는 작은 카페였다.
“여기 앉아서 남산을 보면 참 기분이 묘해져. 나는 늙는데, 여긴 안 늙어서 그런가….”
“회장님,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칠순 넘은 지가 언제인데….”
구수영 회장은 좋아하는 커피도 요즘 하루 한 잔만 마신다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나저나 오늘 보자는 이유가 뭔가?”
“띡똑, 박람회 나간 거 보고도 드리고.”
“보고는 무슨. 거기 가서 있었던 이야기나 해보게.”
사실 구수영 회장은 띡똑이 얼마나 혹평을 받았는지 이미 다 보고받은 상태일 것이다.
“아시잖아요. 엄청 혹평받은 거요.”
“허허. 원래 사람이 앞서나가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지.”
“저는 좀 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보는데… 삼전은 아닌 모양이더라고요.”
구수영 회장도 전재형 회장이 미국을 오간 것도 이미 들었을 것이다.
“삼전 측에서 뭐라는가?”
“우선 제가 삼전이 가진 지분을 모두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흠… 전재형 회장도 잔인하군. 한 번 혹평에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오히려 저한테는 기회 같아서요.”
“그래, 오늘 보자고 한 건 그 일 때문인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삼전 본사에 있는 알파 사무실을 옮겨야 할 것 같아서요.”
“이런. 전재형 회장, 사람이 매몰차네. 사무실도 옮기라고 해?”
“네….”
“걱정 말게. 우리 회사 건물들 중에 빈 사무실. 아니지… 비워서라도 마련해주겠네.”
“임대료는 잘 내겠습니다.”
“이건 우리 투자야. 난 알파 투자자 아닌가.”
“항상 너무 많은 것을 해주셔서요.”
구수영 회장은 잠시 말이 없다가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그럼 내 부탁을 하지… 자네가 이미 우리 회사에 입김을 낼 정도의 위치에 있는 건 알지만.”
나는 이미 구수영 회장이 증여한 효진 그룹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회에… 우리 회사의 사외 이사직을 맡아주면 어떻겠나?”
“제가요?”
조금은 뜻밖이었다.
“삼전은 그만 돕고… 이제 우리 효진 좀 도우란 말일세.”
구수영 회장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그리고 이 제안은 어쩌면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회장님, 생각할 시간 조금 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자네가 군 복무 중이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아네. 그러니 우리 쪽에서도 법에 저촉되지 않게 알아보고 다시 연락하겠네.”
“네, 회장님.”
* * *
구수영 회장은 나를 다시 삼전 호텔에 데려다주고 자리를 떴다.
구수영 회장도 칠순을 넘었고, 전재형 회장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서서히 삼전과 효진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민국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형, 어디야?
“집에 가려고.”
– 우리 집?
“아니, 한남동 집.”
이상하게 민국이의 목소리에 힘이 쭉 빠진 상태였다.
6월 데뷔하려면 한창 연습할 때인데….
“민국아, 무슨 일 있어?”
– 형아….
[꼭 지 필요할 때만 형아라고 부르지….]– 형아… 왜 JM이라고 대형 기획사 있잖아. 거기서 이번에 남자 아이돌 그룹이 나온대. 우리보다 두 달이나 빨리 데뷔한대.
“그게 왜?”
– 내가 걔들 사진 봤는데….
민국이는 잠시 한숨을 쉬더니 토하듯 말을 뱉었다.
– 너무 잘생겼어! 형아, 우리 망한 거 같아!
[정말 미래를 말해줄 수도 없고… 답답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