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20)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20화(420/576)
제420화
판교의 테크노밸리 11층.
구수영 회장과 나는 나란히 서서 판교의 스카이라인을 훑었다.
“내가 한 십 년만 젊었어도, 이런 데서 다시 시작해 보는 건데….”
“회장님, 아직 정정하시잖아요.”
“정정은 무슨. 안 아픈 데가 없고, 안 먹는 약이 없는데…. 이제는 한 발 뒤로 물러나서 자네 같은 인재 도와주는 일이나 해야지.”
구수영 회장은 효진 그룹의 일에는 손을 떼고, 요즘은 거의 준호 재단 일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참, 성국 군. 내 제안은 생각해 봤나?”
일전에 만난 자리에서 구수영 회장은 효진 그룹의 사외 이사를 제안했었다.
“어려운 일인 것은 아네. 법적으로 검토해보니,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면서 사외 이사로 재직하는 것은 크게 문제 될 게 없는 모양이네만. 나는 자네가 알파도 알파지만, 우리 효진 그룹의 IT 쪽 사외 이사를 해주면 어떻겠나 싶어.”
“회장님… 제안 너무 감사하지만, 제가 과연 그 일까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혹여나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도 되고요.”
“성국 군, 자네는 자네를 여전히 과소평가하는가? 자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효진 그룹의 IT 분야는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걸세.”
구수영 회장의 말은 사실이다.
내 존재만으로도 아마 효진 그룹은 주목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달에 ‘페이스 노트’의 상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마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될 것이지만, 이제는 정말 주주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효진 그룹을 IT 분야 사외 이사라고 해도,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효진에서 한 일이 ‘페이스 노트’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었다.
“회장님, 솔직하게 이야기 드리겠습니다.”
“그러게.”
“저는 현재 ‘페이스 노트’의 공동 대표이고, 5월에 ‘페이스 노트’는 나스닥에 기업 공개를 합니다.”
“나도 잘 알지. 그때 나도 그 주식 살 걸세.”
“한마디로, 저는 이제 전성국이 아니라 ‘페이스 노트’의 공동 대표로 책임감 있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마 이 말뜻은 구수영 회장님께서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그제야 구수영 회장은 깨달은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런… 내가 또 내 욕심이 앞섰네.”
구수영 회장은 진심 어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내 생각이 짧았어. 그 자리 나도 잘 알지. 이제는 기업 공개도 한 회사의 대표인데, 대한민국의 회사 사외 이사로 덜컥 앉았다가 실적이라도 안 좋으면… 여러 곳에서 공격이 들어갈 거야… 내가 왜 이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회장님, 괜찮습니다. 저도 회장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에 사회 이사 자리를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이런 걸림돌이 있더라고요.”
구수영 회장은 나를 대견한 눈으로 쳐다봤다.
“준호 재단의 첫 장학생이 이제 나스닥에 상장하는 기업의 대표라니… 그것만으로도 내 자랑이고, 우리 준호 재단의 자랑일세. 사외 이사 제안은 없던 걸로 하지. 난 자네 인생에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아. 내 할 수 있는 한 조력자가 되고 싶지….”
“회장님, 띡똑 꼭 성공시켜서 주신 은혜에 보답하도록 할게요.”
그 마음은 진심이었다.
구수영 회장에게 받은, 조건 없는 지원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있었다.
“성국 군, 그 말은 든든하지만, 너무 부담 가지지 말게.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게 우리 일 아닌가. 사업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이야. 실패했을 때,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네. 우리도 사업하는 사람 이전에 그저 사람 아닌가….”
“그 말씀도 명심할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수영 회장은 정말 저번 생과 변함이 없었다.
삼전 그룹의 부회장으로 반도체 공장을 확장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 구수영 회장을 만나면 항상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네. 우리도 사업하는 사람 이전에 사람 아닌가.
구수영 회장이 따뜻한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군, 이제 ‘페이스 노트’가 나스닥에 상장되는 날도 얼마 안 남았네. 그날이 정말 나도 누구보다 기다려지네. 자넨 어떤가?”
“실감이 안 납니다.”
나는 그저 웃었다.
물려받은 회사와 재산이 아닌 내 힘으로 일군 회사가, 드디어 한국도 아닌 미국의 나스닥에 상장하다니….
나도 실감이 나지 않는 일이었다.
* * *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김미소 비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철의 여인과의 이 싸움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대표님, 어떻게 됐나요?”
“사모님이 원본 파일 요구하십니다.”
이런 거래에서는 서로가 얻는 게 있어야 잃는 것도 있는 법이었다.
물론,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 것도 있었다.
“김 비서님, 사본 파일 만들어 놓으세요.”
“이미 복사는 쫙 해놨습니다. 진성균 대표 파일 따로 만들었고요.”
김미소 비서는 이 일에 있어서는 언제나 활기차 보였다. 그리고 조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김 비서님, 혹시… 제 파일도 따로 만드셨나요?”
“대표님, 대표님은 제가 보기에도 일밖에 안 하시는데. 파일을 따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튼 김 비서님이랑 원수가 되면 곤란하겠네요.”
“걱정 마세요. 참, 이 기회에 삼전 사람들 파일을 다 만들어볼까 하는데, 어떠세요?”
“삼전가 사람들을 다요?”
김미소 비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삼전 사람들의 파일은 필요 없었다.
이미 내 머릿속에 쏙쏙 박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김미소 비서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여기까지 하죠.”
“네, 알겠습니다.”
“김 비서님, 원본 파일을 퀵으로 사모님에게 보내세요.”
“네, 대표님.”
김미소 비서는 가볍게 사무실을 나섰다.
어차피 진성균의 갑질은 언젠가는 터진다. 내가 아니더라도.
하지만 마약 문제는 달랐다.
운전사, 가정부 갑질이야 여론이 들끓을 때 사과하고, 조용해지면 다시 제자리를 찾으면 됐다. 하지만 마약은 자리까지 위협받는 일이었다.
철의 여인도 알 것이다.
아무리 원본 파일을 받았다고 해도, 진성균이 마약은 끊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내가 언제든지 그 사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정도면 철의 여인을 방어하기에는 적당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진동으로 해둔 핸드폰이 요란하게도 울렸다.
발신자 표시에는 방무혁이 떴다.
[벌써 철의 여인이 움직였군….]나는 여유롭게 전화를 받았다.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 성국아, 전 피디가 연락 와서 대기로 박아놓은 자리에 우리 애들 넣어준대. 정말 다행이지? 그리고 그 다음 주에도 무대 하나 더 잡힐 것 같아.
철의 여인은 기브 앤드 테이크가 확실했다.
“아저씨, 잘됐네요.”
– 그래도 아쉽기는 해. 내가 너무 로비를 못 해서 방송국에서 예능 같은 건 잡히지도 않고…. 대형 기획사들 멤버들이 다 들어가 있으니, 중소는 경쟁이 안 되네.
“아저씨, 저희는 실력으로 승부 보기로 했잖아요.”
– 애들 실력이야 좋지. 그게 아쉬워서 하는 말이고.
“아저씨, 걱정 마세요. <세븐즈>는 너튜브와 SNS로 인지도 올리는 방법으로 가요. 앞으로는 이 방법이 방송보다 더 유리하게 될 거예요.”
– 그래, 선구안 있는 네 말을 믿어보지. 안 그래도 애들 안무 영상 찍느라 난리야. 성국아, 암튼 이번 일, 네 덕분에 잘 해결된 거 맞지? 고마워.
사실 이 모든 일의 원인도 나였다.
“아저씨, 이제 <세븐즈> 애들한테 데뷔 무대 연습만 열심히 하라고 하세요.”
– 그래, 조만간 사무실 한번 와.
“네….”
나는 전화를 끊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일이 하나씩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세븐즈>의 전설도 써지고 있었다.
중소 출신 아이돌.
대타로 나간 데뷔 무대!
[전민국이 밥값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트라넷으로 회사 이전 공지를 올렸다.
– 알파의 사옥이 판교 테크노밸리로 이전합니다. 앞으로 한 달 후입니다. 모두 준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 * *
알파의 사옥 이전은 이미 예견된 일이라 직원들의 동요는 크게 없었다.
서초보다 서울에서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판교 이전에 크게 불만이 없었다.
자취를 하는 직원들에게는 판교로 자취방 이전시 복비와 이사 비용을 지원했고, 거리가 멀어진 출근자들에게는 교통비를 지원했다.
문제는 샘과 애덤이었다.
두 사람은 나와 전태국과 함께 한남동에 살았고, 둘 다 한국에서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거기다 야근이 잦은 두 사람에게 판교는 거리도 거리지만, 낯설기도 한 장소였다.
샘과 애덤 그리고 나와 전태국은 맥주를 마시면서 고민에 빠졌다.
“샘, 애덤… 여기서 판교는 자차 없이 출퇴근하기 힘들 거예요. 나랑 같이 출근해도 되지만….”
“성국, 우리는 새벽 6시에 나가고 싶지 않아요.”
애덤이 정색을 했다.
아무래도 야근이 잦다보니 새벽 6시에 나와 함께 출근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럼, 판교 근처로 숙소를 옮기는 건 어때요?”
“그건 내가 반댈세!”
잠자코 있던 전태국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말 다들 이러기야? 밥도 이제는 혼자 먹어야 하는데, 나보고 이 집에 혼자 살라고? 참고로 이야기하지만 지금 우리 엄마랑 아부지 이혼 소송 중이라서, 두 사람 다 나랑 살기를 원하지 않아. 물론, 나도 원하는 건 아니지만.”
전태국의 강력한 반대에 샘과 애덤이 난색을 표했다.
어쨌든 세 사람은 그동안 맥주와 치킨, 소주와 삼겹살로 끈끈한 우정을 쌓아왔다.
“성국은 어쩔 생각이에요?”
샘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전 처음 몇 주는 출퇴근 해보고, 힘든 것 같으면 판교로 옮기게요. ‘페이스 노트’, 너튜브 한국 지사 모두 이전할 계획이거든요.”
이때, 전태국이 손바닥을 딱 마주쳤다.
[뭐지, 전태국?]“성국아, 내가 판교로 옮기면 되겠네.”
“형이요?”
“서초 본사야 매일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동탄이랑은 판교가 가깝잖아. 요즘 동탄 갈 일도 많고… 나야 기사 딸린 차 타고 다니니까 제주도에서 출퇴근하는 것만 아니면 괜찮을 것 같은데.”
[전태국, 이제 그만 쫓아와.]나는 차갑게 전태국을 쳐다봤다.
“형, 이제 저희 각자 사는 건 어떨까요?”
“어?”
“샘도 애덤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언제까지 이렇게 넷이 살 수 없는 문제잖아요. 이번 기회에 모두 독립해서 사는 건 어떨까 해서요.”
나는 샘과 애덤을 쳐다봤다.
“회사 근처로 숙소 알아볼게요. 어때요?”
“전… 반대요. 저는 솔직히 샘과 태국이랑 사는 게 좋거든요.”
애덤이 조용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성국, 저도 마찬가지예요. 낯선 타국에서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데요.”
“흠… 그럼, 이 기회에 저는 독립하겠습니다!”
그 순간, 모두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예상한 반응이 아닌데? 다들 나 잡아야 하는 거 아니야?]“성국아, 그래. 너는 이번 기회에 독립해. 안 그래도 너 너무 일찍 일어나고, 늦게까지 일하고. 그러는 통에 우리도 조용히 해야 할 때가 많아서 힘들었어. 나랑 샘, 애덤은 서로 라이프 스타일이 잘 맞으니 같이 살면 되지, 뭐.”
그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성국, 그래요. 성국은 우리랑도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다르잖아요.”
[애덤마저….]옆에 앉은 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샘….]나는 당황한 기색을 얼른 숨겼다.
“그, 그러죠. 그럼…. 이 기회에 저는 독립할게요.”
이 말에도 다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어색하진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캄캄한 방 침대에 그대로 누웠다.
[설마, 지금 나 왕따 당한 건가….]독립은 당연한 건데, 그렇다고 아무도 잡지 않으니 뭔가 섭섭했다.
나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정신 차려, 전성국! 너도 이제 독립해야지!]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쓸쓸한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