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21)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21화(421/576)
제421화
드디어 5월이 다가왔다.
알파 사무실 이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이제 5월 7일부터는 모두 판교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할 계획이었다.
거기다 나의 독립도 생각보다 빨리 진행됐다.
집 구하는 문제는 김미소 비서에게 맡겼다.
똑. 똑. 똑.
사무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덤이 빼꼼 얼굴을 들이밀었다.
“성국, 오늘은 퇴근하기 전에 직원들에게 한마디 좀 해줘요. 이제 다음 주부터는 우리 모두 판교로 출근하잖아요.”
“알았어요, 애덤.”
나는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삼전 본사 사옥을 떠날 때였다.
* * *
직원들은 조금 상기된 얼굴로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에 앉아 있었다.
“다들 정리 다 하셨죠?”
“네….”
“주말 동안 사무실은 판교로 이전되어 있을 겁니다. 그럼, 모두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판교 사무실에서 뵙죠.”
나의 짧은 인사말에 직원들은 정든 책상을 손으로 만져보거나, 개인 물건을 들고 일제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곧 빈 사무실에는 애덤과 샘만 남았다.
애덤이 울적한 얼굴로 사무실을 훑었다.
“애덤, 서운해요?”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밥도 맛있어서요.”
“판교에 가면 우리랑 비슷한 업계 사람들이 많으니, 서로 교류도 하고 도움도 될 거예요.”
“기대하고 있어요. 한국의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라고 말들 하더라고요.”
“참, 애덤이랑 샘. 집은 구했어요?”
[나, 왕따시키고?]샘이 머리를 긁적였다.
“태국이 집 문제 같은 것은 자기한테 맡기라고 해서요.”
“그렇죠… 집은 태국이 형이 알아서 잘할 거예요. 자, 두 사람도 이사하려면 바쁠 텐데, 주말 동안 잘 쉬고 월요일에 판교에서 봐요.”
“성국, 오늘 집에 안 와요?”
“내일은 어린이날이고, 다음 주에는 어버이날이 있어서요. 이번 주말은 본가에서 보내려고요.”
“아하….”
애덤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음 주에 회사에서 봐요.”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나 뒤끝 있는 남자라고. 세 사람, 어디 잘 먹고 잘살아 봐!]* * *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자 김미소 비서가 입구에 차를 대는 게 보였다.
“대표님!”
“김 비서님, 저는 오늘 제 차로 본가로 바로 가려고요.”
“네, 그러신다고 하셔서 판교의 집 열쇠 전해드리려고요.”
김미소 비서가 각종 열쇠와 카드키가 들어있는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집 구하셨군요?”
“그럼요. 판교역에서 걸어서 5분 컷. 회사는 차로 5분 컷. 공원도 가깝고, 각종 편의시설도 많은 곳입니다.
대단지 아파트라 커뮤니티 시설도 잘되어 있고요. 층간 소음에 예민하신 대표님을 위해서 제일 위층으로 구했습니다.
50평 정도 되는 규모라서 혼자 사시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 같고요. 원래 외국인들 상대로 렌트하던 집이라 가구랑 냉장고 같은 기본 옵션들 모두 완비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진짜 독립을 하는구나….]나는 묵직한 서류 봉투를 들고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 한남동 집에서 옷 외에 따로 챙길 건 없죠?”
“네, 노트북은 제가 챙겼고. 옷도 별로 많지 않으니 따로 크게 옮길 건 없을 거예요.”
“주말 동안 옮겨놓을게요. 월요일 저녁에 퇴근하면 불편한 것 없이 바로 사용 가능하게 세팅해놓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비서님, 이번 주말만 좀 신경써주세요.”
“그것도 걱정 마세요. 파격적인 특별대우 등등 제가 많이 받고 있잖아요.”
나는 차로 향하다 문득, 김미소 비서를 돌아봤다.
“김 비서님, 비서님도 자취하시잖아요. 집은 어떻게 하시기로 했어요?”
“저도 대표님 아파트 인근 오피스텔로 이사 예정입니다.”
“주말 동안 수고해주시고, 다음 주 평일에 휴가 내세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주말 잘 보내세요.”
이제 정말 한남동 집과는 안녕이었다.
나는 포르샤에 시동을 걸었다.
이때, 똑똑. 김미소 비서가 차창을 두드렸다.
“김 비서님, 무슨 일이세요?”
“제가 이걸 차에 두고 깜빡할 뻔했네요.”
김미소 비서는 케이크 상자와 작은 쇼핑백 그리고 카네이션을 내밀었다.
“이건….”
“대표님 성격에 당연히 돈으로만 해결하실 것 같아서요. 요즘 인기 많은 케이크고요. 작은 쇼핑백은 지희의 어린이날 선물입니다. 그리고 카네이션은 당연히 부모님 드리시고요.”
“이런 것까지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요.”
“저희 부모님과 동생 거 챙기면서 산 거예요. 대표님이 사신 것처럼 해서 드리세요.”
“고마워요, 김 비서님.”
* * *
“엄마, 이거….”
“어머, 다음 주 어버이날이라고 카네이션 사 온 거야?”
“응. 아빠는?”
“아직 가게에 계시지.”
“이따, 내가 모시러 가야겠네.”
“오구오구, 우리 성국이 다 컸네.”
엄마는 내 엉덩이를 평상시처럼 두드렸다.
“엄마, 나… 다 큰지 오래거든.”
“키만 컸지, 이런 건 챙길 줄도 몰랐잖아.”
엄마는 내가 피파니의 반지를 선물했을 때보다 카네이션을 보면서 더 흐뭇해하셨다.
이때, 방문을 열고 지희가 조르르 나왔다.
“오빠, 나는?”
“지희야, 넌 이제 어린이 아니잖아. 어린이날 선물 바랄 나이가 아니지.”
“치이… 그렇다고 성인도 아니잖아.”
지희는 삐죽 입을 내밀었다.
나는 뒤에 숨겨놨던 작은 쇼핑백 하나를 내밀었다.
“내년에 대학 들어가면 대학생이니까, 올해가 마지막이야.”
“와아! 이게 뭐야?”
지희는 쇼핑백을 풀어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김미소 비서가 지희 선물로 뭘 샀는지는 알지 못했다.
“지희야, 오빠가 선물로 뭐 사줬어?”
“엄마, 이것 봐. 귀걸이야.”
“귀걸이?”
엄마는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그거 네가 산 거 맞아? 지희 아직 귀도 안 뚫었는데.”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생 되면 하라고.”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지희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내 허리를 폭 감쌌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다 큰 오빠에게 잘 안기지도 않더니… 이게 선물의 효과인가….
“오빠, 잘할게. 이거 너무 예뻐!”
“그래, 지희야. 밥 먹기 전까지 하던 공부 마저 해야지.”
“네에!”
지희는 손을 번쩍 들고 방으로 조르르 들어갔다.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김미소 비서 덕분에 가족들에게 칭찬받는 기분이었다.
[김 비서한테 메시지나 보낼까… 고맙다고….]그러다 문득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금요일 저녁에 회사 대표가 연락하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 * *
오랜만에 <원아저씨 보쌈>의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문 닫을 시간인데도 술잔을 기울이는 손님들이 보였다.
주방에서 나온 아버지가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계셨다.
“저희 문 닫을 시간입니다. 약주들 많이 하셨네요. 어서 집에 들어가 보셔요.”
“그래야죠.”
“남은 건 포장해드릴까요?”
“그래도 돼요?”
“물론이죠.”
아빠는 이곳저곳 테이블을 돌아다니면서 손님을 챙기느라 내가 들어오는 것도 못 본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아빠에게 가서 아빠 손에 들린 손걸레를 잡았다.
“아빠, 테이블 정리는 내가 할게.”
“성국아, 언제 왔어?”
“좀 전에.”
“조금만 기다려. 홀만 정리하면 끝나.”
“응, 나도 도울게.”
손님들이 다 나가고, 청소까지 마치자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아빠의 한 손에는 예전처럼 남은 보쌈과 골뱅이가 들려 있었다.
“니네 엄마가 골뱅이무침 먹고 싶대.”
“나도 먹고 싶었는데, 잘됐네.”
[아빠, 내가 한 살 때부터 옆에서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알아?]나는 그 시절이 떠올라서 얼른 골뱅이무침이 든 봉투를 들었다.
“아빠, 내가 들게.”
“우리 성국이가 정말 언제 이렇게 컸나 몰라.”
아빠의 눈시울이 급 붉어지는 게 보였다.
[아빠, 사연팔이는 금지야!]“아빠, 요즘 갱년기인가 봐?”
“이 녀석이 크더니 못 하는 말이 없네.”
아빠는 금세 웃더니, 내 어깨를 토닥였다.
“가서 엄마랑 아빠랑 골뱅이무침에 소주 한잔하자.”
“좋지!”
* * *
아빠와 나, 그리고 엄마의 바람은 지희 때문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아니, 지금 수험생이 있는 집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큰오빠가 소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겠다는 거야?”
“지희야, 방해 많이 되니?”
아빠가 당황해서 물었다.
“아빠,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방음이라는 게 안돼. 문을 다 닫아도 건넛방에서 이야기하면 들리는 구조잖아. 그런데 사방이 뻥 뚫린 식탁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하겠다고? 나, 올해 검정고시 모두 패스하고 서울대 법대 들어가야 하는 거 알잖아.”
지희는 완강했다.
“지희야, 이 오빠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서울대 들어가는 게 어려워? 가족들이 대화도 못 하게 하고, 그렇게 공부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이야?”
그 순간, 나는 지희의 붉으락푸르락하는 얼굴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큰오빠, 지금 뭐라고 했어?”
“큰오빠가 한국에서 입시를 안 치러서 그래. 알았다. 알았어. 우리 딸 어서 들어가서 공부해. 엄마, 아빠가 조용히 할게.”
엄마는 화난 지희를 달래서 겨우 방으로 들여보냈다.
“성국아, 대한민국 고3은 예민해. 그러니까, 네가 참아.”
[이번 한 번만이야, 엄마.]결국, 우리는 안방에 들어가서 몰래 골뱅이무침에 소주를 기울였다. 목소리가 저절로 작아졌다.
“이렇게 방에서 작은 상 펴놓고 마시니까, 옛날 생각나네.”
[응, 아빠. 나도 옛날 생각나. 엄마, 아빠는 소주 마시면서 나한테는 젖병 물려줬잖아.]“성국아, 그때 너도 같이 있었던 거 알지?”
“기억 하나도 안 나지, 나야.”
소주를 한잔 걸친 아빠는 붉어진 얼굴로 엄마를 쳐다봤다.
“여보, 우리 오늘 성국이랑 다 같이 안방에서 잘까?”
[응, 그건 내가 사양할게.]“성국아, 어때?”
엄마도 내심 기대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이럴 댄 대화를 돌려야지.]“엄마, 아빠… 나, 이번에 판교에 가면서 독립해.”
“독립?”
“회사에서 너무 멀어서 판교로 집을 옮기려고. 이 기회에 태국이 형이랑 샘, 애덤과도 헤어져서 혼자 살아볼까 해.”
“그걸 왜 이제야 얘기하는 거야? 집은 구했어?”
엄마가 걱정스레 물었다.
“응. 김 비서가 구해놨대. 회사랑도 가깝고, 판교역이랑도 가깝고. 월요일에 퇴근하고 가보게.”
“그런 건 엄마한테 말해야지. 엄마가 저녁에 가서 집 정리 좀 도와줄게.”
“김 비서가 알아서 할 거야.”
“성국아….”
엄마가 내 이름을 은근히 불렀다.
이럴 땐 왠지 무서워졌다.
“왜 그래, 엄마?”
“김 비서 말이야. 니네 집에 그렇게 막 드나들어도 돼? 다 큰 남자가 사는 집에 다 큰 여자가….”
“엄마, 걱정하지 마. 김미소 비서님, 정말 일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야.”
“아니, 엄마는 걱정하는 게 아니라… 김미소 비서, 저번에 보니까 사람이 참 괜찮더라고요.”
“엄. 마.”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엄마는 얼른 내 등을 도닥였다.
“알았어, 우리 아들. 참, ‘페이스 노트’ 상장하러 언제 갈 거야?”
“한국 일정이 빠듯해서, 상장 이틀 전에 뉴욕으로 갈 거 같아. 그리고 말이야…. 엄마, 아빠…. 그때, 가족들 다 같이 뉴욕에 가자.”
“우리도?”
“당연하지. 아들 회사 나스닥에 상장하는데, 다 같이 가야지.”
아빠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성국아…. 정말 이 아빠가 너 같은 아들을 낳다니.”
아빠의 눈가가 또다시 촉촉해질 기미가 보였다.
타악! 이때, 엄마의 매서운 손이 아빠의 등짝을 가격했다.
“소영아!”
“자기야, 이제 사연팔이 좀 그만해!”
[내 말이!]* * *
월요일은 정신이 없었다.
아무리 업체에서 모든 이삿짐을 정리한 후라지만, 직원들은 다시 자리를 세팅하고 샘과 애덤은 프로그램 보안 문제로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오갔다.
나도 여기저기 살피며 부족한 곳들을 챙기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모두가 퇴근하고, 샘과 애덤만이 남아 마지막으로 보안을 확인하고 있었다.
“샘, 애덤… 집은 언제 옮겨요?”
“태국이 오늘 우리 출근하고 이사했대요. 오늘 우리한테 주소 줬거든요. 퇴근하고 거기로 오래요.”
[다들 빠르네….]“회사 근처죠?”
“태국이 그렇대요.”
[말끝마다 태국이, 태국이.]내가 먼저 독립한다고 했는데, 왜 서운하지….
“그럼, 마저 일 보고 퇴근해요. 나도 이사한 집 가봐야 해서요.”
“성국, 내일 봐요!”
샘과 애덤은 해맑게 인사를 했다.
나랑 헤어진 게 하나도 안 서운한 것처럼.
* * *
판교역 푸르네 주상복합 104동 2501호.
나는 김미소 비서가 알려준 주소로 갔다.
아직은 주차장도, 엘리베이터도 낯설었지만, 이제 익숙해져야만 하는 공간이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25층에 도착하자마자 문이 열렸다.
김미소 비서가 준 카드키로 도어락을 열자, 잘 정돈된 집 안이 드러났다.
외국인에게 렌트를 주던 집이라 가구들도 세련됐고, 곳곳이 정갈했다.
늘 들리던 TV 소리나 치킨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모든 게 평화로운데.
[왜 자꾸 쓸쓸하지….]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전태국이었다.
[전태국의 전화도 반갑네….]나는 낮은 한숨을 내쉬면서 전화를 받았다.
전태국의 팔팔한 목소리가 들렸다.
– 성국아, 저녁 뭐 먹을래?
“형, 저… 오늘부터 판교 살잖아요.”
– 알지. 나도 오늘 이사 왔잖아. 이사했으니까 중국집 먹어야지.
“형, 우리 집이 어딘 줄 알고요?”
띵동!
동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설마?
나는 얼른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전태국이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배시시 웃고 있었다.
“성국아, 우리 집은 2502호야. 이웃사촌끼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