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28)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28화(428/576)
제428화
이제 데뷔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민국이는 제법 연예인 티가 났다.
살도 많이 뺐고, 여러 가지 관리를 받으면서 얼굴도 이전보다 훨씬 갸름해졌다.
물론 그렇게 해도 나를 따라오려면 멀었지만.
그리고 지금은 살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민국아, 계약서 챙겼지?”
“응, 형아.”
민국이는 아주 옛날, 전태국과 작성한 계약서가 든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계약서를 꺼내 봤다.
[역시….]내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민국이가 속한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자마자 삼전 가전의 전속 모델이 되는 것!
내가 했던 삼전 가전의 전속 모델을 동생이 이어받는 것이었다.
계약 당시에도 불공정 계약이니 뭐니 말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삼전 가전 측은 몇 년만 지나도 감사하게 될 것이다.
민국이가 걱정스레 물었다.
“형, 근데… 이걸로 진짜 가능할까? 법적인 효력 있는 거 맞아?”
“그때 다 변호사 공증 받은 계약서였어. 법적인 효력이야 당연히 있지.”
그래도 알 수 없는 게 삼전 측의 반응이기는 했다.
대한민국 최강의 법무팀이 모여서 허점을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었다.
나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민국이를 쳐다봤다.
“민국아, 긴장하지 말고.”
“긴장은 형이 더 한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도 말 한마디를 안 지는 것 보니, 내 동생이 확실했다.
“형, 난 태국이 형을 애교로 공략할게. 형은 논리적으로 공략해. 알았지?”
“콜!”
나와 민국이는 두 손을 마주 잡았다.
* * *
띵동!
나는 앞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내 손에는 와인과 맥주가, 민국이의 손에는 아버지의 보쌈이 들려 있었다.
문이 곧 열리더니 전태국이 얼굴을 내밀었다.
“성국아, 민국아. 어서 와.”
나와 민국이는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형제가 나랑 술을 다 마시자니. 어쩐 일이야?”
전태국은 아마 자신이 예전에 한 계약 따위는 기억도 못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샘이랑 애덤은 오늘 늦는대.”
우선 전태국과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샘과 애덤은 야근을 시켰다.
“형, 판교에서 본사 다니기 힘들지 않아요?”
“별로… 한남동에서 다닐 때랑 나는 별 차이 없어. 여긴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주변도 깨끗하고 나랑 잘 맞는 것 같아.”
민국이가 얼른 아빠의 보쌈을 풀었다.
“태국이 형, 우리 아빠 보쌈.”
“아저씨 보쌈 정말 오랜만이다. 성국아, 손에 든 술 마시려고 가지고 온 거지?”
“응.”
나는 얼른 술도 내려놨다.
전태국이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술잔을 내왔다.
나와 민국이는 왠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자리에 앉았다.
우선 난 얼른 전태국에게 와인을 따랐다.
“형, 와인 마실 거죠?”
“그러자.”
전태국은 아버지 보쌈을 안주 삼아 와인을 단번에 들이켰다.
“정말 아버님 보쌈은 대한민국 최고라니까. 삼전이 요식업 사업만 했어도, 내가 가져와서 대박 내는 건데.”
“효진 그룹에서 하고 있잖아요.”
“아쉽단 말이야.”
민국이가 빈 와인잔을 내밀었다.
“형, 저도 한 잔 주세요.”
“그래, 우리 민국이도 이제 성인이지. 다음 달 데뷔 맞지?”
“네.”
“어디 어디 나가? 내가 말해서 삼전 광고 좀 집어넣을게. 아니다, 내가 아예 방송국 사장들에게 전화 한 번씩 돌릴까?”
와인 한 잔이 기분이 좋아진 전태국이었다.
[그럼, 슬슬 시작해볼까?]나는 민국이와 눈을 마주치고는 준비한 서류를 전태국에게 내밀었다.
“성국아, 이게 뭐야?”
“형, 이거 혹시 기억해요?”
“뭔데?”
“한번 봐요.”
전태국은 흥얼거리며 서류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안에서 계약서를 꺼내서 쓱 훑었다. 그러곤 나와 민국이를 번갈아 봤다.
[저 표정은 뭐지?]도대체 감이 오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때였다.
전태국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서류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지금 두 사람… 이 옛날 계약서 가지고 나 테스트하러 온 거야?”
[테스트는 아니고 압박이라고 할 수 있지.]전태국은 낮은 한숨을 쉬더니 와인을 단번에 들이켰다.
“하아… 실망인데.”
[전태국, 분위기 잡지 마. 계약대로 이행해야지.]전태국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성국아, 내가 설마 이 계약을 잊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이건 내가 예상한 전태국이 아니었다.
“형, 기억하고 있었어요?”
“당연하지. 안 그래도 우리 엄마가 방송국에 압박 넣어서 민국이 데뷔 무대 설 자리 없어진 거 알고 좀 미안한 마음에 뭐로 도울까 고민 중이었어.”
“형….”
민국이가 감동 먹은 얼굴로 전태국을 바라봤다.
“성국아, 민국아. 정말 실망이야. 날 약속도 안 지킬 사람으로 보는 거야? 심지어 계약서까지 썼는데?”
“형, 그럼 미리 말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내가 먼저 말하기 전에요.”
전태국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최근에 기억나긴 했어. 민국이 도와줄 방법 이것저것 찾다가…. 암튼, 걱정 마! 이 전태국,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
* * *
전태국은 출근하자마자 삼전 가전의 관계자들을 다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제 데뷔하는 <세븐즈>의 사진이었다.
“상무님, 이게 뭡니까?”
“삼전 가전의 새 모델이요.”
“네에?”
놀란 관계자가 되물었지만, 모두들 눈치만 살필 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뭘 그리 놀라세요? 제가 이 친구 중 한 명이랑 예전에 계획한 게 있거든요. 데뷔하면 삼전 가전의 모델로 써주겠다고. 그때 회사 변호사 통해서 공증도 받아놓은 거라고 물릴 수도 없어요.”
“상무님, 그래도 이렇게 검증이 안 된 아이돌을 썼다가는 괜한 특혜 논란에 휩싸입니다.”
“특혜 논란에 휩싸이면 어떤가요? 솔직히 말해서 광고업계에서 인기 있는 몇 명 빼고는 다들 특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개인적 취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광고 모델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이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삼전 가전 제품 한번 알아보세요. 참, 이 중 한 명의 형이 전성국 대표에요.”
이때, 여자 직원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말해보세요.”
“전성국 대표님이 어릴 적에 삼전 가전 중에 통돌이 세탁기로 데뷔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광고를 동생이 20년 후에 물려받았다는 것으로 광고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렇게 추진해보세요.”
“네!”
직원들이 나가고 박성희 비서만이 회의실에 남았다.
“참, 박 비서.”
“네, 상무님.”
“성국이 말로는 <세븐즈> 회사가 로비를 안 해서 무대 잡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우리가 광고 몇 개 끼워주고, 데뷔 무대 좀 빵빵하게 잡아봐.”
“알겠습니다, 상무님. 근데, 왜 이렇게까지 성국 군과 민국 군 도와주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전태국은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이상해서….”
“뭐가요?”
“성국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방송국에 돈 뿌리는 로비도 안 하고… 최소한의 투자를 하는 게 이상하거든.”
“저도 그 생각은 했습니다. 전성국 대표야 이제는 ‘페이스 노트’로 세계적인 부자가 됐잖아요. 그런데 동생 일에 왜 투자를 안 하는 거죠?”
“뭐, 어제 술 마시면서 들어보니까. 동생에게 쉽게 성공하는 법을 알려주고는 싶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런 말을 흘리더라고.”
전태국은 성국이가 술에 살짝 취했을 때 흘린 말을 기억했다.
– 형, 중소 엔터 출신이 아이돌에게는 서사가 필요해. 그걸 민국이네 <세븐즈>는 가져가야 하고… 물론 나 같은 형이 있다는 것도 서사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만약 <세븐즈>를 광고에 쓴다면 형은 지금 당장은 비난받을지 몰라도 몇 년 후면 선구안을 가진 삼전의 후계자라고 칭송받을 거야.
박성희 비서는 의아한 눈으로 전태국을 바라봤다.
“술에 취해서 한 말 아닐까요?”
“내가 성국이를 봐온 지 오래야. 성국이는 절대 빈말 안 해. 그래서 베팅 한번 해보는 거야. 성국이의 말이 정말일지, 아닐지. 그리고 오늘 그 여직원 아이디어 좋던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직원 이름이 어떻게 되지?”
“기획팀의 박소현 사원입니다.”
“이번 광고 추진하는 거 한번 지켜보게. 똘똘한 친구 같아.”
“네, 상무님.”
박상희 비서는 전태국과의 미팅을 마치고 회의실을 나섰다.
왠지 전태국에서 드디어 진짜 후계자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 * *
“성국아, 회사 일 안 바빠?”
“바쁘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데, 우리 회사까지 와서 민국이 데뷔 플랜 봐줄 시간이 있는 거야?”
“제 동생 일이기도 하잖아요.”
방무혁은 빙긋 웃었다.
“역시 동생들한테는 약하다니까.”
“제가 여기 투자자기도 하잖아요. 투자했는데, 손해 보면 안 되죠.”
방무혁이 시안을 하나 건넸다.
“성국아, 이것 봐. 삼전에서 온 광고 시안이야.”
“세탁기네요?”
[핸드폰 같은 거 해주면 안 되나….]아쉬웠지만, 현재로서는 세탁기도 감지덕지였다.
“네가 어릴 적에 한 광고를 20년 후에 동생이 물려받는다는 콘셉트야.”
“콘셉트 좋네요.”
이제는 통돌이가 아니라 드럼 세탁기였지만, 광고의 콘셉트는 확실해 보였다.
20년 전 내가 기어가며 땀 냄새가 나는 아빠의 셔츠를 킁킁거리며 “아빠?”라고 불렀던 광고였다.
그 광고를 <세븐즈> 멤버들이 다시 이어받는 것이었다.
땀범벅이 된 연습생들의 빨래들과 내 셔츠를 들고 민국이가 드럼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그때, 내 셔츠가 떨어지는데. 민국이가 냄새를 킁킁 맡더니 “형?” 이러면서 과거에 내가 했던 “아빠?” 광고가 삽입되는 형식이었다.
– 20년 전에도 삼전 세탁기, 지금도 세탁기는 삼전입니다!
“나도 콘셉트가 마음에 들어.”
방무혁도 마음에 들어 했다.
“데뷔 무대 이후로 이 광고가 나오게끔 시기는 조절해야 할 것 같아요.”
“애들이 엄청 좋아하겠는데?”
“이걸로 만족하면 안 된다고 알려주세요. 이건 그저 이름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고, 가수로서 인정은 무대에서 받아야 한다고요.”
“안 그래도 내가 생각한 기획이 하나 있는데….”
방무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생각한 기획이라고 한 것 보니, 아무래도 돈이 필요한 기획 같았다.
“뭔데요, 아저씨?”
“우리 <세븐즈> 콘셉트가 힙합하는 아이돌이잖아. 그래서 미국 본토에 가서 길거리에서 랩도 하고, 음악도 하는 것을 짧게 다큐로 제작해서 너튜브에 올리려고….”
[방무혁, 괜히 여기까지 온 게 아니군.]방무혁의 아이디어는 꽤 쓸만해 보였다.
“좋은데요, 콘셉트.”
“그렇지… 근데 돈이….”
방무혁은 돈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아저씨, 걱정 마세요. 이런 가능성 있는 기획에는 제가 투자해야죠.”
방무혁이 안심한 얼굴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저씨. 단, 조건이 있어요.”
“조건? 무슨 조건?”
“이 기획은 최저가로 하면 어떨까요?”
“최저가라면….”
“비행기도 이코노미. 제일 싼 항공권을 구해서 경유도 한두 번 해도 상관없고요. 공항에서 노숙도 하고, 멤버들끼리 서로 의지하면서 가는 과정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생고생 콘셉트가 되겠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세븐즈>의 서사는 중소 엔터 출신의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이에요.”
“그건 알지만…. 사실 서사는 우리가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팬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거잖아. 난 그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
방무혁의 말도 맞았다.
“아저씨 말이 맞죠. 그리고 사실 지금 저희 돈 없는 건 맞잖아요.”
“그래, 네가 부자지. 우리 회사야 정말 그지지.”
“그럼, 당연히 초저가로 이번 영상 찍어야죠.”
“알았다. 알았어.”
방무혁은 웃으면서 내 어깨를 토닥였다.
[방무혁, 난 엔터 사업이라는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만큼 난 <세븐즈>에 최소한으로 투자해서 최대한으로 뽑아먹을 거야. 동생이 있는 그룹이라고 봐주는 거 없다는 것만 알아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