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52)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52화(452/576)
제452화
크리스마스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데니스의 영화 <채찍>이 선댄스 영화제에 초대받은 것이었다.
데니스는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 성국! 믿기지가 않아. 내가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받다니….
[데니스, 앞으로 아카데미도 씹어먹을 거면서 겨우 이런 거에 감동하면 안 되지.]선댄스 영화제는 전 세계 독립 영화를 다루는 국제 영화제였다. 이 영화제를 통해서 데뷔한 유명 감독들도 많았다.
– 성국, 너도 투자자니까 와야 하는 거 알지?
“영화제가 언제인데?”
– 1월 15일부터 열려. 난 첫날부터 가서 영화도 좀 보고 그러려고. 올 수 있지?
“시간 한번 내볼게. 데니스, 그리고 선댄스 영화제 초청받은 거 축하해.”
– 아직 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뭐. 겨우 초청만 받은 건데 쑥스럽게.
“이렇게 다 시작하는 거지. 데니스, 크리스마스 잘 보내.”
– 응, 너두!
데니스와의 짧은 전화를 마치고 뒤돌아서려는 순간, 지희가 눈앞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고 서 있는 게 보였다.
“전지희, 무슨 일이야?”
“오빠, 그 영화제 나도 가면 안 돼?”
“네가 영화제를 가겠다고?”
지희가 공부에 관한 부탁은 해도, 이런 것을 부탁한 적은 없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제 대학교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사시 준비 해야 하잖아.”
“지희야, 법학 과목 35학점 이상 이수해야 사시에 응시할 수 있다는 건 아는 거지?”
“오빠, 나 전지희야.”
[저 말을 지희의 입에서 듣게 될 줄이야….]“오빠, 나는 예술 쪽에 좀 관심이 많거든.”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네가?”
“응. 민국이 오빠도 일종의 예술가잖아. 앞으로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 산업이 엄청 커질 거란 말이지.”
어릴 적부터 지희도 혹시 인생 2회차인지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오늘도 그랬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K-POP을 비롯해서 영화, 드라마 모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다. 민국이를 <세븐즈>에 악착같이 넣은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지희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되면 법적인 문제들도 당연히 발생할 거잖아. 저작권이나 이런 문제들 말이야. 나는 법을 공부해도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흥미로운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거든.”
“문화 콘텐츠 전문 법률가로 일해보고 싶단 말이지?”
“응, 오빠.”
지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래, 그럼 오빠랑 이번에 같이 영화제 가자.”
이때, 화장실을 가다가 우리 이야기를 들은 전태국도 끼어들었다.
“나두!”
[하아… 정말 업보들 데리고 또 미국이라니….]* * *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선댄스 영화제는 미국의 유타 주에 위치한 파크 시티에서 열렸다.
나는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지희에게 팜플렛을 하나 내밀었다.
“오빠, 이게 뭐야?”
“이번 선댄스 영화제 상영작 목록이야. 그리고 거기서 투자 마켓 같은 것도 열릴 것 같아. 설명 쭉 읽어보고, 한번 투자할 만한 영화 좀 골라봐.”
전태국이 나를 보더니 혀를 내둘렀다.
“성국아, 너 하는 짓 보면 꼭 우리 아버지 생각이 난단 말이야….”
[그럼, 내가 다 누구한테 배운 것인데….]삼전 유치원 다닐 때, 미국 연수를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전재형 회장은 나에게 IT 박람회에 나온 기업들 리스트를 내밀면서 관심 있는 기업들을 뽑아보라고 했다.
내가 뽑은 기업들은 막 스타트업으로 각광받고 있었던 구굴과 일론의 테슬론이었다.
“형, 지희가 앞으로 문화 콘텐츠 쪽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해서요. 이런 것도 어릴 적부터 감을 익혀두면 좋잖아요.”
“암튼 대단한 남매야.”
전태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영화제가 열리는 유타주의 파크 시티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스키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과 영화제를 보러온 사람들이 한데 뒤엉켜서 북적였다.
우리를 마중 나온 데니스는 그사이 훌쩍 큰 지희를 격하게 반겼다.
“지희야!”
“데니스 오빠, 잘 계셨어요?”
“수능 만점 받았다며? 정말 너희 가족은 대단해.”
“오빠가 대한민국 수능 만점 받은 게 무슨 자랑이냐고, 아무 데서도 떠들지도 말래요.”
“하하. 성국이는 능히 그렇게 말하고도 남지. 지희야, 이번 영화제 동안 오빠만 따라다녀. 내가 에스코트해줄게.”
이걸 들은 전태국이 괜히 헛기침을 했다.
“음흠. 데니스, 영화제에 참석한 감독이 지희 데리고 다닐 만큼 한가해?”
“나야 영화 상영하고, 인터뷰 몇 개 하면 크게 할 일은 없어.”
“바쁘네, 그럼. 지희야, 너는 이 오빠랑 다니자.”
지희는 데니스와 전태국을 번갈아 보더니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심하단 얼굴이 한눈에 보였다.
“하아… 전 성국이 오빠가 내준 숙제해야 하니까, 알아서들 다니세요.”
지희는 휭하니 두 사람을 제치고 숙소로 향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내 동생이었다.
데니스가 머쓱한 얼굴로 다가왔다.
“지희가 정말 많이 컸어.”
“그래도 아직 미성년자야.”
“성국아, 벌써부터 지희 단속하는 거야?”
“그냥 그렇다고, 데니스. 참, 이번 네 영화 상영일은 언제야?”
“요번 주 토요일 저녁.”
이때,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한 명 걸어왔다.
광이 나는 특유의 얼굴과 어느새 풍성해진 머리.
“성국! 여기서 보다니!”
“일론, 여긴 어쩐 일이에요?”
“머리 식히러 잠시 왔지. 성국은?”
“저는 이번에 투자한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영돼서 방문했어요.”
“성국, 도대체 투자하지 않은 게 뭐야?”
“글쎄요.”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나와 일론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돈이 되는 일에는 뭐든 투자한다!
* * *
데니스는 인터뷰하러 가고, 일론과 나는 선댄스 영화제 이곳저곳을 훑었다.
물론 제일 관심 있는 데는 투자 부스였다.
선댄스 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는 물론 그 외의 영화에 대한 투자와 수입에 대한 상담도 이뤄지는 곳이었다.
“성국, 난 영화는 도대체 모르겠단 말이야.”
“영화배우랑 사귀시는 분이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되죠.”
“허허. 그 소식이 한국에도 간 거야?”
“그럼요.”
일론 머스트는 이혼을 하고, 머리숱도 심더니 최근에는 배우와 사귀고 있었다.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영화 부스를 훑다가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오는 영화가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애니메이션이었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 부스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지희를 발견했다.
나는 조용히 지희의 뒤로 다가갔다.
지희는 야무지게 이것저것 묻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은 캐릭터가 굉장히 중요한데, 주인공이 세상을 다 얼려버리면 빌런 아닌가요?”
“처음엔 저희도 그런 걸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빌런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거든요.”
담당자 역시 친절하게 지희의 각종 질문에 답해주고 있었다.
일론이 슬쩍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툭 쳤다.
“저 숙녀분에게 왠지 익숙한 사람이 보이는데.”
“제 여동생이에요.”
“어쩐지.”
지희는 여러 가지 상담을 마치고는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하지만 얼굴은 밝지 않았다.
“지희야, 무슨 상담한 거야?”
“저 애니메이션 엄청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내가 투자해서 사 오기에는 돈이 없어.”
“지희야, 네가 직접 투자해서 사 오게?”
“그러고 싶은데… 나는 돈이 없대두.”
지희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전지희, 정말 인생 2회차 아니야?]지희가 찍은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인 히트를 치는 디즐리의 애니메이션 <겨울궁전>이었다.
<눈의 여왕>이라는 안데르센의 명작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 천만을 넘는 관객을 기록한다.
저번 생에서 아이들이 이 애니메이션에 빠져서 한동안 극장을 여러 번 전세 냈던 적이 있어서 잘 알았다.
지희는 잠시 울적한 얼굴로 한숨을 쉬더니, 나를 쳐다봤다.
“이 애니메이션 오빠가 수입하면 안 돼?”
“이것 말고는 다른 영화는 눈에 들어온 것 없어?”
“다른 것들은 대부분 마블이라 그냥 그렇고. 이건 좀 내용도 신선하고 해서 눈에 들어오고… 참, 놀랜 감독의 <인터우주>도 좋은 것 같아, 오빠.”
[이 녀석, 보는 눈이 제법인데.]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면서 지희에게 물었다.
“지희야, 만약 이 애니메이션 오빠가 국내에 수입하면 원하는 조건 있어?”
“흠… 잘은 모르지만, 이런 경우 내가 오빠에게 적절한 조언을 준 거니까 수익의 20% 어때?”
[어쭈, 이제는 딜도 하는 거야?]20%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지희의 조언이 없었더라고 <겨울궁전>을 수입할 수 있으면 수입했겠지만, 어쨌든 지희가 눈여겨보고 알려준 것도 인정해줘야 하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지희도 이제 슬슬 민국이처럼 경제적 자립이 필요한 때였다.
민국이야 <세븐즈>로 대박 날 것이지만, 그에 비해서 변호사 월급은 뭐 푼돈이었다.
“그럼, 내가 한번 상담해보고 수입할 수 있으면 수입해보지.”
나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겨울궁전>의 부스로 걸어갔다.
일론이 이 상황을 보더니 내 어깨를 잡았다.
“성국, 투자를 이런 식으로 하겠다는 거야? 동생 말만 믿고?”
“일론, 투자는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잖아요. 지희의 선구안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정말 억만장자는 달라.”
“일론, 앞으로 우리가 그 억만장자 순위를 놓고 경쟁할 텐데. 너무 그러지 마요.”
일론은 유쾌하게 웃었다.
아직 일론의 테슬론은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페이스 노트’와는 격차가 났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일론이 나를 앞지를 것이라는 사실을.
“그 말처럼 나도 한번 돈지랄해보고 싶네.”
[일론, 돈지랄 아니야. 곧 보면 알게 될 거야.]나는 여유롭게 <겨울궁전>의 부스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 부스에 앉아 있던 여자 직원이 입을 틀어막았다.
“대박, 페노 대표시잖아요. 맞죠?”
“네, 맞습니다. 좀 전에 제 여동생이 여기서 상담을 했더라고요.”
“어머, 그 귀여운 여학생이 동생이었어요?”
여자는 또다시 놀랐다.
“동생이 그러는데, 이 영화가 꽤 흥미로워 보인다고 저보고 한국에 수입을 하라고 하네요.”
“아… 수입사가 따로 있긴 한데요. 제가 한번 위에 자세히 알아볼게요!”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 * *
일론은 사귀는 여배우와 사라지고, 나와 데니스 전태국과 지희는 모두 모여서 저녁 식사를 했다.
<겨울궁전>을 수입하고 싶다고 저녁 자리에서 이야기하자 전태국이 제일 의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영화도 수입하게?”
“<겨울궁전> 재미있어 보여서.”
“근데… 디즐리는 작은아버지가 하는 계열사 회사가 독점 수입하도록 예전에 무슨 계약을 체결했었는데….”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저번 생에서 나의 작은아버지기도 했으니까.
그 회사는 과감한 투자를 내세우며 디즐리의 영화에 대한 한국 및 동남아 독점 수입, 배급권을 따냈다.
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 제일 큰 시장인 일본을 제외한 독점 수입, 배급권이 무슨 소용이냐며 욕만 먹었다.
사실 작은아버지는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서 오랜 애니메이션 명가인 디즐리의 이름이 필요해서 결정한 일이었다.
계약을 맺을 때만 해도 불공정한 계약은 맞았다.
그리고 아직도 그때의 계약으로 크게 돈은 벌고 있지 못했다.
전태국은 식사를 하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근데 그때 맺은 그거 거의 실적용이지. 여태까지 투자한 돈도 제대로 회수 못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형, 형네 작은아버지 그 계열사요. 혹시 제가 인수할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럼, 정말이죠.”
“그거 돈이 안 될 텐데.”
“우리 지희가 문화 콘텐츠에 관심이 많거든요. 이럴 땐 돈이 안 되는 일도 해보는 거죠.”
나는 지희를 보면서 오빠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