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raise this family RAW novel - Chapter (453)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53화(453/576)
제453화
전태국은 두 팔을 걷어 올렸다.
“우리 지희가 관심 있어 한다면, 내가 또 나서봐야지.”
우리 지희?
이 말이 신경에 살짝 거슬렸지만, 전태국이 나서줘야 하는 일이기는 해서 입을 꾹 다물었다.
“형, 그런데… 작은아버지 쪽 회사랑 사이가 별로잖아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사이는 사실 최악이지. 하지만 나는 그래도 종종 연락드리고, 사촌들이랑 페노도 같이 하잖아.”
전태국의 장점인가?
삼전의 후계자로 독불장군 같았던 나와 달리, 이번 생의 후계자인 전태국은 능력은 없지만 그런 탓에 적도 많지 않았다.
“아마 선희 누나가 엔터 쪽은 맡아서 하는 것 같은데, 내가 한국 돌아가자마자 물어볼게.”
“한번 그분이랑 자리 좀 마련해주세요.”
“그러자. 내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어쩌면 네가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우리 선희 누나가 또 잘생긴 남자 엄청 좋아하거든.”
나는 전선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삼전가에서 태어났지만, 그 누구에게도 없는 화려한 유전자를 타고난 여자.
타고나길 튀는 것을 좋아해서 패션도 화려했고,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 기질 때문에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들었고, 괄목할 만한 성장도 있었다.
하지만 약점도 많았다.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우울증을 항상 달고 살았고, 그 때문에 국내에서는 불법인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었다.
그리고 파티광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릴 적부터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라서 파티 문화에 익숙한 것은 전선희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하기도 했다.
파티 자리에서 유명 감독, 연예인들과 인맥을 쌓고 그게 일로 이어지는 게 비즈니스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선희는 도가 지나칠 때가 종종 있었다.
회삿돈을 들여서 사옥에다가 비즈니스룸이라고 일컬어지는 호화 파티룸을 만들기도 했고, 그곳에 특정 소속사의 가수와 배우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특혜를 주기도 했다.
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만약 전선희가 내 제안을 거부한다거나, 가격을 높게 부르면 그녀를 흔들 단점들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전선희 누나,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겠네….]* * *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데니스의 목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성국아, 나야.”
“잠시만.”
나는 얼른 호텔 문을 열었다.
데니스가 초조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성국아, 이번 주말에 <채찍> 상영 끝나고 하는 인터뷰 있잖아.”
보통 영화가 상영된 후에는 감독과 관계자들이 기자들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때 나랑 같이 인터뷰하지 않을래?”
“내가?”
“응. 네가 우리 영화 투자자이기도 하고… 아까, 기자들이랑 인터뷰했는데 너무 떨려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어.”
초보 감독인 데니스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데니스의 화려한 데뷔를 막을 생각은 없었다.
“데니스, 이 영화의 감독은 너야.”
“알지….”
“나는 그저 투자자일 뿐이야. 그런데 지금 내가 너랑 인터뷰에 등장한다면 스포트라이트가 나에게 쏠릴 거야.”
데니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은… 그걸 원하는 것이기도 해. 나, 정말 너무 긴장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어.”
“데니스, 앞으로 수없이 겪을 일이야. 첫 데뷔 무대를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해내야지만 다음 무대에서 그 긴장감도 떨쳐낼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나는 데니스의 어깨를 잡았다.
“데니스, 그날 난 인터뷰 지켜보면서 응원할게.”
“그래… 성국. 이건 내가 짊어진 운명이겠지.”
“잘 해낼 거야. 넌 내가 본 어떤 감독보다도 대단해.”
“억만장자가 응원해주니 살짝 용기가 생기네.”
이때, 복도에서 전태국이 걸어왔다.
“두 사람, 나 빼고 한 잔 더 하는 거야?”
“영화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참, 선희 누나도 이 영화제 온대. 내일 도착한다나 봐. 내가 그래서 너랑 만나는 자리 마련하겠다고 했어.”
영화에 관심이 많은 전선희도 선댄스 영화제에 오는 모양이었다.
“형, 고마워요.”
“데니스, 데니스도 같이 가자. <채찍> 홍보도 좀 해. 우리 누나 완전 한국 영화계 큰손이야.”
“그럴게, 태국.”
* * *
파크시티에는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어둑해지는 지금까지 눈발이 계속해서 날렸다.
정말 겨울다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면서 다시 전선희가 가진 약점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내가 저번 생에서 가지고 있던 가족들의 약점 리스트에서….
우울증.
파티광.
그리고… 생각이 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도대체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별 대수롭지 않은 약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울증약 복용 문제나 파티광 같은 이야기야 언론의 구설수 정도로 오르내릴 수는 있었지만, 전선희를 뒤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소하지만 강력한 무슨 약점이었나….
이때,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태국이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전태국의 황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성국아! 선희 누나 왔는데, 당장 너 보고 싶다고 난리야.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다섯 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각이었다.
“준비해서 나갈게요.”
– 참, 지희도 같이 데리고 와.
“지희도요?”
– 누나가 수능 만점 받은 아가씨 보고 싶대. 선희 누나가 정이 좀 많아. 똑똑한 사람 좋아하고.
[물론 잘 알지.]전선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베풀기로도 유명했다.
특히 자기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건 없이 잘 베풀었고, 그런 성격이 사업에서는 특혜로까지 이어졌다.
“네, 데리고 나갈게요.”
* * *
지희는 평소에 잘 입지 않은 단정한 차림의 원피스를 입고 복도로 나왔다.
“못 보던 옷이네.”
“태국이 오빠가 이 옷 보내줬어. 오늘 만나는 분이 청바지 입고 나오면 싫어할 거라고 해서….”
전선희는 겉모습을 특히 중요시했다.
겨울이라 패딩밖에 안 가져온 지희를 태국이가 챙긴 모양이었다.
“그래, 첫 만남인데 나쁘게 보여서 좋은 건 없지.”
“오빠, 무슨 할 말 있어서 잠시 먼저 보자는 거 아니었어?”
“응. 오늘 만날 분에 대해서 주의할 게 몇 개 있어서.”
지희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봤다.
“나도 인터넷으로 검색 좀 해봤어. 삼전이랑 사촌 관계이고, 방송국 운영이랑 영화 쪽 투자 전문 회사 운영하시는 분 맞지?”
“응.”
인터넷에는 전선희에 대한 간략한 경력만 나왔다. 성격까지 나올 일은 없었다.
“근데 그분이 좀 기분파시거든. 말을 좀 조심해야 해.”
“어떤 말을?”
“오늘 너나 나를 떠보려는 말을 계속 던질 수가 있어. 특히 내가 <겨울궁전> 수입사에 관심이 있으니까.”
“좀 순진하게 보여야 하는 거야?”
“아니. 순진하기보다는 똑똑하게 보여야지.”
지희는 조금 혼란스러워했다.
“오빠, 내가 그 영화 잘될 것 같아서 그 수입사 사려고 하는 거잖아. 이런 것들을 가감 없이 말해도 되는 거야? 오히려 숨겨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과감하게 말해. 그리고 네가 왜 영화에 관심 있는지도 말하고.”
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오빠.”
지희는 분명 전선희의 마음에 쏙 들 것이다.
똑똑하고, 자기주장이 강하면서도 예쁘니까.
전선희는 이런 사람들에게 특히 약했다. 그리고 한번 마음에 들면 끝까지 밀어주기도 했다.
나는 오늘 전선희의 그런 성격을 이용해보려고 하는 중이었다.
* * *
만나기로 한 식당에 들어서자 의외로 전태국이 혼자 앉아 있었다.
전태국은 흐뭇한 얼굴로 지희를 바라봤다.
“지희야, 옷 잘 맞아?”
“네, 오빠.”
“우리 지희 이렇게 입으니까 꼭 꼬마 숙녀 같아.”
“오빠, 저 꼬마는 아니거든요.”
“오빠가 너 요만 할 때부터 봤거든.”
전태국과 지희는 만나자마자 서로 티격태격했다.
“형, 전선희 대표님이랑 먼저 만나고 계신 거 아니었어요?”
“아, 누나는 짐 풀고 바로 온다고 했어. 내가 누나를 좀 아는데 짐 풀려면 시간 좀 걸릴 거야. 그리고 너랑 지희한테 해둘 말도 있고.”
“뭔데요?”
“누나 앞에서는 절대 겸손한 척하지 마.”
[전태국, 의외인데? 선희 누나 성격도 아는 거였어?]전태국은 낮은 한숨을 쉬었다.
“선희 누나가 성격이 좀 장난 아니야. 뭐라고 할까, 롤러코스터를 계속 타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오르락내리락 알지?”
“…….”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성격 누구보다 잘 알지.]“그리고 똑똑한 사람들 무지 좋아하잖아. 너희 남매는 내가 보기에 선희 누나가 좋아할 걸 다 가지고 있어. 똑똑하고 잘생기고, 예쁘지.”
[지희는 그렇게 예쁜 편은 아니지. 못난이 정도 좀 벗어난 정도지.]“아무튼 그런 사람들이 겸손한 건 잘못된 거라고 누나는 그래. 자기가 재벌로 태어나서 시장표 옷 사 입는 건 겸손한 척하는 것이지, 겸손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주의할게요.”
“그래… 그리고 이건 내가 기획실 통해서 알아본 건데, 지금 네가 사려는 그 수입사 실적이 너무 안 좋아서 안 그래도 구조조정 대상 중 하나래. 이것도 티 내지 말고. 누나는 자기 감이 틀렸다는 것을 절대 인정하지 않거든.”
“알았어요. 잘 접근해볼게요.”
롤러코스터 같은 성격. 거기다 고집까지.
정말 상대하기 어려운 건 저번 생이나 이번 생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때, 입구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전선희가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뒤로 전선희를 수행하는 남자 한 명이 따라 들어왔다.
[전선희가 남자 문제로 이슈가 된 적은 없는데….]전선희는 다른 재벌가 여자들과 달리 자신의 애인을 곁에 두고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연예인을 좀 더 선호하기도 했다.
전선희는 우리를 보자마자 이가 다 보이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 대박. 페노의 전성국 대표를 이렇게 보다니… 영광이에요!”
“제가 더 영광입니다. 태국이 형한테 말씀 들었습니다.”
“태국이가 전 대표랑 친한 줄은 알았는데, 우리 집안들끼리 사이가 영 별로라서 내가 만나게 해달라고 대놓고 부탁은 못 했잖아요. 어머, 실제로 보니 너무 잘생겼다. 마성의 남자 맞네, 맞아!”
그리고 기억대로 수다스럽고, 요란하기도 했다.
나는 지희를 가리켰다.
“여기는 제 여동생 전지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전지희입니다.”
지희가 인사를 하자 전선희는 또다시 호들갑스럽게 말을 했다.
“어머, 수능 만점에 서울대! 대박! 이렇게 예쁘기까지 하고, 정말 재벌로 태어난 것보다 이렇게 똑똑하고 이쁘게 태어난 게 더 좋은 거라니까.”
그러더니 문득 말을 멈췄다.
“어… 생각해보니… 전선희, 전지희. 이름도 비슷하고… 우리 왠지 통하는 게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지희 양?”
“저도 그럴 것 같아요.”
지희는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대답했다.
전선희는 지희와 요란하게 인사를 나누곤 같이 들어온 남자를 우리에게 소개했다.
“여긴 우리 회사 이경주 팀장.”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이경주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전선희가 운영하는 회사의 팀장이기는 하지만, 어느 파트에도 속하지 않은 독특한 존재.
나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경주 팀장은 사법고시를 패스해서 변호사이기도 했고, 신내림을 받아서 무당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선희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그게 이제야 떠올랐다.
이경주 팀장이 인사를 건넸다.
“전 대표님, 이경주 팀장이라고 합니다. 만나 봬서 저 역시 영광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경주, 정말 오랜만이야.]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경주 팀장이 전선희의 약점인 것은 기분파인 전선희가 유일하게 말을 듣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경주 팀장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경주 팀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오고 사시까지 패스해서 전선희가 더욱 신뢰하는 존재였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투자팀의 성적은 마이너스였다.
그걸 전선희에게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나는 지금부터 이경주의 고삐를 잡아 쥐면 됐다.
전선희는 이경주의 말을 신뢰하고, 나는 이경주의 약점을 아니까!